메뉴 건너뛰기

close

애플 웹사이트 첫 화면에 올라와 있던 창립자 잡스의 추도사진.
 애플 웹사이트 첫 화면에 올라와 있던 창립자 잡스의 추도사진.
ⓒ 애플

관련사진보기


"스티브 잡스가 죽었어."

학생 한 명이 외쳤다. 학교 신문사 편집회의 때였다. 편집부 학생이 방금 들어온 통신전문을 확인하다 전한 소식이었다. 순간 자리에 있던 몇 명이 짧은 신음을 토했다. 

짧은 충격에 이어 긴 애도가 찾아왔다.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를 타고 잡스의 생전 모습과 슬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날아들었다. 잡스 집 앞에는 꽃, 편지, 촛불이 쌓이고, 애플 매장 유리는 포스트잇에 쓴 추도문으로 덮였다. 어느 곳이든 애플과 연관된 곳에서는 한 입 베어 문 사과가 굴러다녔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코노미스트>에 실린 사진이다. 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애플 매장 앞 유리에 글씨를 쓰고 있다. 붉은색 글씨다. 여자 오른손에는 립스틱이 쥐어져 있다.     

"고마워요, 스티브."

잡스가 죽은 후 전 세계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동시에 그의 업적에 감사했다. 사진은 홍콩과 영국의 애플 매장 풍경으로 쪽지, 꽃, 초, 사과가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잡스가 죽은 후 전 세계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동시에 그의 업적에 감사했다. 사진은 홍콩과 영국의 애플 매장 풍경으로 쪽지, 꽃, 초, 사과가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공개사진

관련사진보기


립스틱으로 쓴 '잡스, 고마워요'

매장 앞에 붙은 애도 쪽지에도 '고맙다'는 말이 수없이 등장했다. 공짜도 아니고, 돈 받고 물건을 만들어 판 사람이 뭐가 그리 고마울까. 모두 대책 없는 '애플빠'나 '앱등이'들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애플 물건을 안 쓰거나, 심지어 싫어하는 사람조차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말이다.

왜냐고? 애플이 아니었다면 지금 당신이 이 글을 휴대폰으로 읽고 있지 못할 테니 말이다. 당신 주머니에는 여전히 폴더형 피처폰이 들어 있고, 전화기 위에는 표준형 이어폰잭이 달려 있지 않으며, 전화기 안에는 메모리가 남아도 음악을 수천 곡씩 담을 수 없을 것이다. 어떤 회사 제품을 쓰든 상관없다. 당신의 스마트폰은 애플이 통신사, 음반사와 싸워서 얻어낸 결실의 직간접적 수혜물이다. 

와이파이(무선랜)는 당연히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잊었는가? 아이폰이 등장하기 전까지 정부와 통신사 모두 와이파이를 '공공의 적'으로 삼았다는 사실을. 불과 두 해 전까지 한국 업체는 스마트폰에서 와이파이 기능을 빼고 팔았고, 한국 정부는 무선랜 제공자와 사용자의 보안 의무를 법으로 강제하려고 했다. 와이파이 사용이 늘어 통신사 매출이 줄어드는 걸 막아주기 위해서다. 무료통화 앱이나 '카카오톡' 같은 건 상상도 하지 말자.   

마땅히 국내 제조업체도 고마워해야 한다. 왜냐고? 애플이 아니었으면 여전히 폴더형 피처폰을 주력생산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가장 감사해야 할 것은, 통신사에 의해 좌우되던 휴대폰 설계와 생산의 주도권을 제조사에 넘겨주었다는 점이다. 애플이 아니었다면 삼성과 엘지 모두 소비자가 아니라 통신사를 위한 물건을 찍어내고 있을 것이다. 애플은 국내 제조업체를 위해 대신 싸워 준 은인인 셈이다. 물론 가장 큰 수혜자는 소비자들이다.

애플이나 삼성 이야기를 할 때 흔히 겪는 문제가 있다. '빠'-'까' 논쟁이다. 하지만 세상은 '빠'와 '까'로만 이뤄져 있지 않으며, 현실은 그런 이항적 사고구조보다 훨씬 복잡한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말해두고 싶다. 물론 이런 말이 소용없다는 걸 안다. 그런 이해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세상을 '빠'와 '까'로 구분하지도 않을 테니 말이다.

어쨌든 나는 미디어학자로서 이 편 가르기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중이다. 국경을 초월해 누구와도 교류할 수 있고, 언제 어디서든 방대한 정보를 손가락 하나로 검색하는 '첨단 정보-소통의 시대'라는데,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조만간 이에 대해서도 글을 써 볼 생각이다.     

애플은 시장조사를 전혀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어느 회사보다 사람들의 욕구를 잘 이해하는 회사다. 잡스는 그 비결을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로 설명했다. 사진은 뉴욕시의 애플 매장.
 애플은 시장조사를 전혀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어느 회사보다 사람들의 욕구를 잘 이해하는 회사다. 잡스는 그 비결을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로 설명했다. 사진은 뉴욕시의 애플 매장.
ⓒ 강인규

관련사진보기


최초로 개인용 컴퓨터(PC)를 선보인 회사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 사실이 있다. 애플이 '개인용 컴퓨터(Personal Computer)'를 처음으로 만든 회사라는 사실 말이다. 이제 '개인용 컴퓨터'의 준말인 '피시(PC)'는 '맥'과 경쟁하는 상품군, 즉 윈도 운영체계로 작동하는 컴퓨터 일반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1976년에 잡스와 워즈니악이 만든 애플의 첫 컴퓨터 '애플I'. 애플은 대중을 위한 컴퓨터를 처음 만든 회사다.
 1976년에 잡스와 워즈니악이 만든 애플의 첫 컴퓨터 '애플I'. 애플은 대중을 위한 컴퓨터를 처음 만든 회사다.
ⓒ 공개자료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애플 컴퓨터가 1976년에 '애플I'을 내놓을 당시, 컴퓨터는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산업용 컴퓨터다. 당연히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극소수만이 다룰 수 있는 물건이었다. 이 전문가용 기계를 일반 대중도 요긴하게 쓸 수 있게 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리고 이 생각을 처음으로 실현한 것도 애플이었다. 

애플의 정체성이 된 '그래픽 기반 인터페이스(GUI)'는 누구나 컴퓨터를 쉽게 쓸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복잡한 명령어를 입력할 필요 없이 마우스로 화면의 그림을 클릭하는 것만으로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여기에 '국제사무기기(IBM)' 같은 무시무시한 명칭 대신 '애플'이라는 편한 이름으로 대중의 거부감을 없앴고, 컴퓨터 앞면을 '인상 좋은' 사람 얼굴 모양으로 디자인했다. 월터 아이작슨이 <타임> 추모판에 공개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잡스는 자신을 예술가로 여겼고, 그로 인해 디자인에 남다른 열정을 가졌다. 그에게는 1980년대 초 첫 매킨토시를 만들 때부터 디자인은 최대한 친근해야 한다는 고집이 있었다. 당시만 해도 '친근한 디자인'이란 컴퓨터 하드웨어 기술자들에게는 생소한 개념이었는데 말이다. 잡스가 생각한 해결책은 이랬다. 컴퓨터 앞면을 사람 얼굴처럼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화면 위쪽의 테두리를 얇게 만들었다. 이 부분을 두껍게 하면 이마가 튀어나온 네안데르탈인처럼 보이게 될 터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기술대중주의'는 애플이 창업부터 유지해 온 철학이지만, '누구나 쓸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컴퓨터를 잘 알아야 할 뿐 아니라, 사람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애플은 늘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로 위에 존재했다'는 잡스의 말은 빈 수사학이 아니다. 인문학은 인간의 조건, 즉 의미, 가치, 행복,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이기 때문이다.

잡스는 사람들이 컴퓨터에 친밀감을 느낄 수 있도록 사람 얼굴 모양으로 설계했다. 특히 '인상 좋은' 얼굴을 만들기 위해 화면 위의 플라스틱 틀을 얇게 만들었다. 실제로 '이마' 부분을 넓히면 더 무뚝뚝한 모습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오른쪽). 컴퓨터 스위치를 켜면 매킨토시 아이콘(왼쪽)이 미소 지으며 사용자를 반기곤 했다.
 잡스는 사람들이 컴퓨터에 친밀감을 느낄 수 있도록 사람 얼굴 모양으로 설계했다. 특히 '인상 좋은' 얼굴을 만들기 위해 화면 위의 플라스틱 틀을 얇게 만들었다. 실제로 '이마' 부분을 넓히면 더 무뚝뚝한 모습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오른쪽). 컴퓨터 스위치를 켜면 매킨토시 아이콘(왼쪽)이 미소 지으며 사용자를 반기곤 했다.
ⓒ 강인규

관련사진보기


사람 없는 기술의 한계

사람에 대한 이해 없이 기술에 초점을 둔 제품은 두 가지 결과를 낳는다. 사람들에게 철저히 외면당하든지, 사람을 배려하는 기술이 아닌 '사람을 잡는' 기술이 된다. 집에 있는 텔레비전 리모컨을 보라. 얼마나 심오하고 복잡한지, 리모컨을 분석하는 것만으로 학위논문 두세 편은 족히 쓸 수 있을 듯하다. 물론 그런 후에도 기능을 다 이해한다는 보장은 없다.

기술은 뛰어나나 사람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부족한 것, 이것이 많은 한국 업체의 문제다. 대표적인 예가 3D 텔레비전이다. 삼성과 엘지는 3D TV가 '텔레비전의 미래'라며 사활을 건 투자경쟁을 벌였다. 아바타 등 3D 영화의 흥행에 고무된 탓이다. 하지만 매출이 예상보다 저조하자, 업체들은 '콘텐츠 부족 때문'이라며 실패의 책임을 외부로 돌리고 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원인은 다른 데 있다.

이 업체들이 깨닫지 못한 점은, 영화와 텔레비전이 완전히 다른 매체라는 사실이다. 영화와 텔레비전은 사람들의 삶 속에서 완전히 다른 가치와 의미를 갖는다. 영화 관람은 두 시간 동안 '시각자극의 세례'를 받기로 작정하고 어두운 방을 찾아 들어가는 일이다. 텔레비전 시청은 그렇지 않다. 

온가족이 모여 숟가락질을 하면서 보기도 하고, 설거지를 하다 잠깐씩 고개를 돌려 보기도 하며, 책을 읽거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멀티태스킹'을 하기도 한다. 물론 텔레비전을 보는 중 쉴 새 없이 전화가 울리고('음소거' 기능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같이 보는 사람은 수시로 말을 걸기 일쑤다. 입체안경을 쓴 채 이런 활동을 하기는 어렵다. 입체 텔레비전은 텔레비전의 미래가 아니다. 적어도 안경을 써야 하는 제품이라면 말이다. 

매체의 내용 면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텔레비전 방송에서 스포츠나 액션 넘치는 드라마 등 입체영상으로 즐길 만한 프로그램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재난방송, 앵커의 따분한 얼굴, 인기 없는 정치지도자의 '국민과의 대화' 등으로 채워진다. 이런 걸 입체로 보고 싶은가? 눈앞으로 튀어나오는 대신 뒤로 오목하게 들어가 보이는 '음각영상'이 아닌 한 말이다.      

한국 업체들은 기술은 뛰어나나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대표적인 예가 3D 텔레비전 실패다. 입체영화의 성공에 자극 받은 업체들이 입체텔레비전 시장에서 사활을 건 경쟁을 벌였으나, 영화와 텔레비전은 전혀 다른 매체다. 미국 백화점에 한국 텔레비전이 다른 나라 제품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한국 업체들은 기술은 뛰어나나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대표적인 예가 3D 텔레비전 실패다. 입체영화의 성공에 자극 받은 업체들이 입체텔레비전 시장에서 사활을 건 경쟁을 벌였으나, 영화와 텔레비전은 전혀 다른 매체다. 미국 백화점에 한국 텔레비전이 다른 나라 제품들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 강인규

관련사진보기


실패의 길을 가는 삼성

삼성이 최근 야심차게 내놓은 '갤럭시 노트'를 보자. 사람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제품의 대표적 예라 할 만하다. 물론 기술적 측면, 즉 '스펙'을 보면 흠잡을 데가 없다. 고속 처리장치에 고해상도 화면, 800만 화소 고성능카메라가 장착되어 있다. 주머니 속에 편히 들어갈 크기는 아니나, 다른 태블로이드보다 작고 가벼워 상대적으로 휴대가 쉽다.  

하지만 '노트'라는 이름이 말해주듯, 제품의 가장 큰 차별점은 스타일러스(전자펜) 입력에 있다. 기기에 딸린 전자펜으로 화면을 정교하게 조작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자유롭게 필기도 하고 그림도 그릴 수 있다. 물론 전화기능은 기본이다. 현재 이 제품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소프트웨어에 대한 문제제기가 일부 있기는 하나, 화면과 카메라 등 하드웨어에 대해서는 호평 일색이다. 이런 훌륭한 제품이 어떻게 실패할 수 있느냐고?

'갤럭시 노트'는 삼성 제품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한다. 크기와 기능이 조금씩 다른 여러 제품들을 쏟아내는 동시에, 하나의 제품에 최대한 많은 기능을 집어넣는 것이다. 넓게 쏘아 매출을 높이는 동시에 실패위험을 분산하는 '산탄총(scattershot) 전략'이다. 하나의 제품에 집중하는 애플의 '저격수 전략'과 대조를 이루지만, 어느 전략이 항상 낫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문제는 삼성이 애플과 경쟁하면서 '제품 다양화'를 기계적으로 남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이 갤럭시탭 7인치를 내놓은 것은 아이패드와 정면충돌을 피하면서 틈새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문제는 이 '틈새'가 무척 좁다는 데 있다. 태블릿에 관심 있는 소비자 가운데 아이패드가 너무 크고 무겁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만 이뤄진 시장이기 때문이다.

저조한 매출 속에서 삼성은 10.1인치를 선보였고, 그 다음에는 8.9인치를 내놓았다. 이번에 나온 '갤럭시 노트'(5.4인치)는 갤럭시탭 7인치와 스마트폰 갤럭시S2(4.3인치, 4.5인치) 사이를 채우는 제품이다. 결국 삼성은 4.3인치에서 10.1인치까지 촘촘한 그물망을 완성한 셈이다.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주었다고도 할 수 있지만, 이 '다양한 선택권'은 소비자의 필요를 반영한 결과가 아니라, 단순 제품차별화의 일환이었을 뿐이다. 이게 왜 문제가 되는지 보자. 

삼성이 최근 출시한 '갤럭시 노트'. 태블릿과 휴대전화의 특성을 모두 지닌 '하이브리드' 제품으로, 스타일러스 입력이 가능하다.
 삼성이 최근 출시한 '갤럭시 노트'. 태블릿과 휴대전화의 특성을 모두 지닌 '하이브리드' 제품으로, 스타일러스 입력이 가능하다.
ⓒ 삼성

관련사진보기


태블릿과 전화기 : 집-거리, 낮-밤의 차이

삼성이 '갤럭시 노트'를 내놓은 의도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휴대폰과 태블릿의 중간 제품으로 양쪽 시장을 모두 공략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휴대폰과 태블릿이 사람들 삶 속에서 완전히 다른 영역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판단착오였다. 휴대폰이 말 그대로 '휴대용'인 반면, 태블릿은 주로 집에서 사용하는 '가정용'이기 때문이다.

태블릿과 휴대전화는 사람들에게 다른 가치와 의미를 갖는다. 구글의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태블릿을 주로 집에서 밤에 사용하고 있었다.
 태블릿과 휴대전화는 사람들에게 다른 가치와 의미를 갖는다. 구글의 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태블릿을 주로 집에서 밤에 사용하고 있었다.
ⓒ 애플

관련사진보기

구글이 2011년 3월 발표한 연구결과를 보자. 아이패드나 갤럭시탭 등 태블릿 사용자의 82%가 기기를 집 안에서 사용한다고 답했다. 이동 중에 쓴다는 사람은 11%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사람들은 주말(31%)보다 주중(69%)에, 그리고 낮(38%)보다 밤(62%)에 태블릿을 쓰고 있었다.

이렇듯 휴대폰과 태블릿은 시공간적으로 완전히 구분되는 매체다. 구글의 조사에 따르면, 태블릿은 집안-주중-밤의 의미요소를 갖는다. 그렇다면 '갤럭시 노트'가 장점으로 내세운 작은 크기, 통화 기능, 카메라는 매력적인 구매요소가 되기 어렵다.

크기가 작으니 갖고 다니면 되지 않느냐고? 갤럭시 노트는 기본적으로 '전화기'인 만큼 당연히 가지고 다녀야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이 '전화기'는 주머니에 넣기엔 크고, 한 손으로 쥐기엔 거북하고, 귀에 대기 민망한 크기다. 제품이 공개된 후 영국 시넷(CNET)은 다음과 같이 불평했다.

"갤럭시 노트는 얇고 놀랄 만큼 가볍다. 하지만 크기가 너무 커서 주머니에 편하게 넣으려면 삐에로가 입는 판타롱바지 같은 걸 장만해야 한다. 이 전화기는 주머니 대신 가방에 넣고 다녀야 할 물건이다." - 샘 킬드센, "삼성 갤럭시 노트 리뷰" (2011. 11. 4)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자리에 앉아 가끔 꺼내보는 태블릿은 가방에 넣고 다녀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수시로 벨이 울리고, 트윗이 업데이트되어 올라오고, 듣던 음악을 바꿔야 하는 전화기를 가방에 넣을 수는 없다.

손가락은 궁극의 스타일러스

갤럭시 노트의 차별점인 스타일러스 역시 별로 매력적인 요소가 아니다. 광고를 보면, 전자펜으로 메모도 하고, 사업보고서도 쓰고, 멋진 그림도 그린다. 하지만 스타일러스를 요긴하게 쓸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이 이 기능을 사용하지 않거나 호기심으로 몇 번 써 본 후 묵혀둘 것이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게으르다. 옆에 꽂힌 스타일러스를 꺼내는 것도 귀찮을 뿐 아니라, 스타일러스를 쥐는 순간 기계에 대한 통제력을 잃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다들 알 듯, 한 손으로는 전화기를 잡아야 한다. 나머지 다섯 손가락을 쓸 수 있지만, 스타일러스를 잡는 순간 이야기가 달라진다. 스타일러스는 손가락 다섯 개를 한 개로 줄이는 대단히 비효율적 입력장치다. 

잡스가 폐기한 '뉴튼'. 애플의 실패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잡스가 폐기한 '뉴튼'. 애플의 실패작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 공개자료

관련사진보기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났다 복귀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있다. '뉴튼'이라는 전자수첩을 시장에서 철수한 것이다. 잡스의 작품은 아니나, '뉴튼'은 나름대로 획기적이었다. 사용자가 스타일러스로 화면에 글을 쓰면 문자로 인식해서 입력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잡스는 이 제품을 혐오하고 저주했다. 그는 언젠가 열 손가락을 펴 보이며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신은 모든 사람에게 스타일러스를 열 개씩 주었다. 그러니 새로 만들 생각은 하지 말자."

물론 호기심 많은 소비자나 전문가들에게는 스타일러스가 요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대중을 겨냥한 탓에, '갤럭시 노트'의 기능은 디자이너 등 전문가가 쓰기에는 너무 단순하고 제한적이다. 결국 전화기도, 태블릿도 아니고, 대중도, 전문가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애매한 물건이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많은 비용을 들여 내놓은 물건이다. 이 제품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시간과 노력을 쏟았을 것인가. 부디 좋은 결과를 거두었으면 한다. 앞서 말한 내 판단이 틀렸기를 바랄 뿐이다.   

배려를 받아 본 사람만이 배려할 수 있다

나도 잡스에게 감사한다. 사실 내가 가진 애플 제품은 두 개뿐이다. 아이폰과 맥북프로 노트북. 이 중 내가 산 건 아이폰뿐이다. 직장에서 사무용으로 맥북을 사 줬지만, 집에서는 윈도가 깔린 노트북을 쓴다.

그럼에도 감사할 이유는 충분하다. 애플 제품을 쓸 때마다 존중하고 배려받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애플 디자인을 분석한 기사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한 가지 예를 들면 이렇다.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하루 중 귀에 이어폰이 꽂혀 있지 않은 시간은 남과 대화하거나 잠잘 때, 그리고 목욕할 때뿐이다. 그렇다고 이 세 가지 경우라고 늘 음악이 꺼져 있는 건 아니다. 가끔은 잠잘 때와 목욕할 때도 아이폰에 달린 외부 스피커로 음악을 틀어놓기도 한다.

하지만 휴대전화의 모노 스피커 출력이 오죽하겠는가. 샤워할 때는 볼륨을 최대한 높여도 물소리에 묻히기 일쑤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나는 건망증이 심하다. 화면의 습기를 닦은 후, 볼륨이 최대로 올라가 있다는 사실을 잊은 채 이어폰을 귀에 깊숙이 꽂고(이래야 저음이 잘 들린다) 시작 버튼을 누른다.

다행히 내 귀는 아직 무사하다. 애플 덕분이다. 이어폰을 꽂는 순간 볼륨이 자동으로 내려가 평상시 듣는 수준에 맞춰진다. 이어폰을 빼면 다시 '목욕탕 모드'로 돌아간다. 나처럼 음악을 좋아하고, 귀청이 몇 번 떨어져나가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의 배려일 것이다. 잡스는 애플의 성공 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우리는 스스로 갖고 싶은 제품을 만든다. 물건을 만들 때 당신 자신, 친구, 가족을 위해 만들어 보라. 졸작이 나올 수 없다."        

나를 배려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새기게 만드는 제품을 좋아하지 않을 방도는 없다. 그럼 이런 제품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간단하다. 회사가 직원을 배려하면 된다. 배려를 받아 본 사람만이 남을 배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남을 가장 많이 배려하는 사회가 가장 경쟁력 있는 사회인지 모른다. 이런 곳에서 사람을 배려하는 제품이 나오는 것은 물론, 누구나 와서 살고 싶어 할 테니 말이다. 이런 곳에서는 아기 낳으라고 돈 주지 않아도 더 많은 사람이 가족을 만들고 싶어 하지 않을까.

애플 제품은 세밀한 부분을 잘 챙기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아이폰에 이어폰을 꽂으면 과거에 이어폰으로 듣던 음량으로 되돌아간다.
 애플 제품은 세밀한 부분을 잘 챙기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아이폰에 이어폰을 꽂으면 과거에 이어폰으로 듣던 음량으로 되돌아간다.
ⓒ 강인규

관련사진보기



태그:#삼성, #애플, #아이폰, #갤럭시 노트, #스티브 잡스
댓글4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