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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권양숙 봉하재단 이사장과 부둥켜안고 오열했다.평소 사저안에서 예방을 받았던 권양숙 이사장은 이날 특별히 직접 사저밖으로 나와서 고 노무현 대통령 묘소 참배를 마치고 오는 한 총리를 맞이했다.
▲ 오열하는 권양숙 이사장과 한명숙 전 총리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2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한 뒤 권양숙 봉하재단 이사장과 부둥켜안고 오열했다.평소 사저안에서 예방을 받았던 권양숙 이사장은 이날 특별히 직접 사저밖으로 나와서 고 노무현 대통령 묘소 참배를 마치고 오는 한 총리를 맞이했다.
ⓒ 사진제공 노무현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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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모른다. 직접 당해보지 않고는. 공소권을 독점한 검찰이 정치적 목적으로 한 인간을 어떻게 파멸시키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치 검찰이 던져주는 먹이를 받아먹으면서 언론은 그 인격살해에 어떻게 공범자가 되는지를. 언론의 이런 역할에는 수구언론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진보언론도 때로 그다지 다르지 않다. 정치 검찰이 진보언론을 더 요긴하게 써먹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목격해 왔다.

한명숙 전 총리의 눈물

이명박 정권 들어서 있었던 여러 '검·언 복합체 잔혹사'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견제받지 않는 권력집단이 무엇인지, 그래서 가장 절실하게 혁파되어야 할 과제와 대상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한 장의 사진은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압축해서 전해준다. 최근 무죄판결을 받은 뒤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내려가 권양숙 여사를 만나 포옹을 한 한명숙 전 총리가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정치 검찰의 잔혹한 표적 수사로 인해 2년 동안 무지막지한 세월을 보내면서 겪었을 마음고생과 고통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

이날 한 전 총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에 참배한 뒤 "진실이 밝혀졌지만 그동안 얼마나 (대통령께서) 가슴이 무너졌을까 생각하니 너무 죄송하다... 그동안 내가 2년간 받은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인간으로서 견디기 힘든 고통을 짊어지고 간 노 전 대통령을 생각하며 각오를 새롭게 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는 무죄판결 이전에도 자신의 처지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통을 종종 이야기했다. 지난 7월 중순, 서울 여의도에서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문득문득 노무현 대통령 유언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는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이 말이 새삼 가슴에 사무친다"고 말했다.

재판 시작도 전에 이미 '중죄인'

한명숙 기소를 보도한 2010년 7월 21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한명숙 기소를 보도한 2010년 7월 21일자 <조선일보> 1면 기사.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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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무죄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정치 검찰은 온갖 이야기들을 언론에 흘리면서 한 전 총리의 인격을 무참하게 짓밟았고, 언론은 언론대로 '중죄인'으로 판명된 듯 그렇게 일방적 보도를 했다. 예컨데 지난해 7월 검찰이 한 전 총리를 기소할 때 <조선일보>는 1면 기사로 "한 전 총리, 직접 차 몰고 와 돈 가방 실어갔다"는 검찰 주장을 제목으로 뽑았다. 그러면서 철저하게 검찰의 주장만 옮겼다. 기사를 한 번 보자.

"검찰은 한 전 총리가 2007년 3월 말쯤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자택 부근의 한적한 도로에서 한씨와 만나기로 미리 약속하고, 직접 차를 몰고 와서 현금 1억5000만원과 수표 1억원, 5만 달러가 든 여행용 가방을 조수석 뒷자리에 실어간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한 전 총리는 같은 해 4월 말쯤 자택에서 17만4000달러와 현금 1억3000만원이 든 여행용 가방을 한씨에게서 받았다고 검찰은 말했다.

한 전 총리는 또 같은 해 8월 말쯤 역시 자택에서 현금 2억 원과 10만3500달러가 든 여행용 가방을 한씨에게서 받았다고 검찰은 말했다. 검찰은 한 전 총리가 "일부는 달러로 달라"고 요구했으며, 한씨가 직원들을 시켜 환전했다고 말했다."

이 기사에서는 한 전 총리 쪽 주장이나 반론은 전혀 없었다. 그냥 검찰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했을 뿐이다.

이에 앞서 7월 16일 자 <조선일보>의 한 칼럼은 아예 드러내놓고 한 전 총리 쪽을 맹비난했다. 1차 사건(곽영욱씨의 뇌물 5만 달러 사건) 1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온 이유가 한 전 총리 변호인 측의 '재판 전략의 승리'라고 규정지었고, 2차 사건(9억 원 뇌물 수수 사건)에서도 "그 전략은 검찰에선 한 마디도 하지 않는 철저한 '입 닫기'였다. 그는 일찌감치 검찰 수사에 '정치 공작'이란 포장지를 씌우고 검찰 수사나 신문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국법을 집행했던 한 전 총리가 '법의 허점을 이용해 버티면 그만이고, 그게 아주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선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전 총리의 재판 전술 앞에서 법은 이용당하고, 무시되고 있다"고 힐난했다. 이런 비난의 전제는 한 전 총리가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전략적으로 '무시 작전'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재판이 시작하기도 전에 유죄로 단정지은 셈이다.

진보언론도 검찰 먹이의 예외는 아니었다

<조선일보>뿐 아니다. 거의 모든 언론이 그랬다. 일부 진보언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전 총리 사건의 재판과정에 한 전 총리의 변호인단이 특히 진보언론의 보도 행태에 분노하는 경우를 자주 목격했다.

정연주 전 KBS사장이 4월 1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표적수사 중단과 대통령의 사과 및 법무부장관, 검찰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정연주 전 KBS사장이 4월 19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표적수사 중단과 대통령의 사과 및 법무부장관, 검찰총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릴레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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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재판이 끝난 뒤 언론은 언제 우리가 검찰 편을 들었느냐는 식으로 표변했다. <조선일보>는 11월 1일자 사설에서 '앞날 위태로운 검찰'이라고 비난했고, <중앙일보>도 같은 날 사설에서 '검찰의 무능과 무리수'를 질타했다.
"한 전 총리는 작년 4월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인사 청탁과 함께 뇌물 5만 달러를 받았다는 사건에 이어 또다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당시 뇌물 사건 재판부는 '곽씨가 검찰 수사와 법정에서 한 전 총리에게 줬다는 돈의 액수와 전달 방식을 몇 번이나 바꾸는 등 진술에 신뢰성이 없다'고 무죄 이유를 밝혔다. 검찰은 곽씨의 진술에만 의존하는 안일한 수사를 했다는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았다. 국민은 검찰이 이번 정치자금 사건 수사에선 확실한 증거를 찾아낼 것인지 특별한 관심을 갖고 지켜봐 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정치자금 수사도 한만호씨의 진술에만 의존한 부실 수사였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한씨의 검찰 진술을 뒷받침할 증거들로 한신건영 경리부장의 진술·비밀장부 등을 제출했지만 이것들만으론 한 전 총리의 유죄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했다. 검찰은 한 전 총리의 뇌물 사건에서 곽씨가 법정에서 진술을 번복하는 바람에 무죄 선고가 내려지는 것을 겪고도 똑같은 허점을 드러냈다. 검찰의 앞날이 위태롭다. - <조선일보> 사설 '한명숙 전 총리 또 무죄, 앞날 위태로운 검찰'

<중앙일보>는 더 적극적으로 검찰을 질타했다.

"검찰은 할 말이 없게 됐다. 무능한 데다 무리수까지 뒀다는 비판 앞에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전직 국무총리를 뇌물수수에 이어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두 차례나 법정에 세웠을 땐 뭔가 있으리라고 내심 믿었다. 1년6개월 만에 두 번의 무죄 선고를 보는 국민은 철저히 배신당한 느낌이다. '정치검찰'이란 냉소가 판치고, 검찰 신뢰는 끝 모르게 추락하게 됐다.

(중략)이번 무죄는 입에 의존한 수사, 근거가 약한 기소,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공소유지가 만들어 낸 검찰의 합작품이다. 무죄판단 이유는 두 사건에서 똑같았다. 재판부는 '한만호 전 대표의 검찰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고 했다. 지난해에는 '곽씨 진술이 일관성, 합리성, 객관성이 부족하다'고 했다. 구체적 물증도 없이 진술에 놀아났다는 얘기다. 돈과 관련된 사건은 은밀함의 특성상 입증하기 힘든 면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허술한 수사가 자초한 망신이다. - <중앙일보> 사설 '한명숙 무죄, 검찰의 무능과 무리수'

"법조계에서 보는 가장 황당한 사건"

한명숙 전 총리 사건에 대해 1심 무죄 판결이 나온 뒤 이명박 정권에서 있었던 여러 정치검찰 사건들이 함께 소개되면서 나의 '배임 사건'도 다시 거론됐다. 내 사건은 피디수첩, 미네르바 사건 등과 함께 이명박 정권에서 정치 검찰이 어떤 짓을 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매우 생생한 사례다. <한겨레>는 한 전 총리 무죄 판결이 있은 뒤 '정권 반대세력 수사 연전연패'라는 제목의 관련 기사에서 나의 '배임 사건'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뒤 검찰이 법정에 세운 이른바 '정권 반대 세력' 사건에서 연이어 무죄가 선고되고 있다. 검찰이 법리가 아닌, 정권의 의중이 반영된 무리한 기소를 강행해 비난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명박 정부 들어 진행된 검찰 수사 중 법조계에서 가장 황당한 수사로 꼽는 사례는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의 배임 사건이다. 지난 2005년 <한국방송>이 국세청과의 세금 반환 소송에서 재판부의 조정에 따라 법인세 및 부가가치세 2448억원을 포기하고 556억원만 돌려받아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게 사건 요지다. 감사원의 해임 요구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은 정 전 사장을 해임했고,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정 전 사장을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의 기소 내용은, 결국 조정을 권고한 법원이 정 전 사장의 배임을 도운 공범이 되는 구조다. 1·2심 법원은 정 전 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나의 '배임 사건'이 왜 이렇게 "가장 황당한 사건"이 되었을까.

덧붙이는 글 | 연재



태그:#정연주, #KBS, #한명숙의 눈물, #검언 복합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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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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