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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말부터 며칠간 일본의 도쿄와 사이타마현, 군마현에 다녀왔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원자력안전기술원의 방사능방재센터에 들러 방사능 계측기, 정확히 말하면 방사선량 계측기(감마선)를 빌렸습니다. 지난 3.11 일본 핵발전소 사고 이후 방사능에 대한 우려가 높기도 했지만, 이번 방문지가 사고가 났던 후쿠시마 현 인접지역이기 때문에 방사능 오염이 어느 정도인지를 직접 확인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너무나도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와 언론이 자국민에게 어느 정도 상태인지, 최소한의 정보조차 알려주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차라리 모르고 있는 것이 약이라는 판단에서 일까요?

따스한 가을 햇살 아래 나들이 나온 가족들의 밝은 표정과 바로 그 자리에서 계측기에 찍힌 방사능 수치를 보며 착잡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함께 지켜보던 일본 교수님 얼굴이 굳어져 버리더군요.

한국에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서울의 주택가에서 엄청난 방사능이 검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한국과 일본 모두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하지 못하다는 사실에 부랴부랴 글을 올립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너무나 위험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방사선 계측기를 가져와 처음 제가 사는 집 앞 마당에서 측정을 하였습니다. 저는 전북 부안군에서 살고 있습니다. 에너지 자립마을로 알려진 등용마을입니다. 계측기에 찍힌 수치는 0.14 µSv(마이크로 시버트)였습니다.(사진1)

0.14 마이크로시버트
▲ 사진1 부안 등용마을 0.14 마이크로시버트
ⓒ 이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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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수치는 정부가 말하는 소위 안전기준치를 넘는 수준입니다. 불편한 진실의 시작입니다.
이번에 찾은 일본 방문지는 도쿄에서 출발하여 서북쪽으로 올라가는 사이타마현, 군마현입니다. 군마현은 핵발전소 사고가 난 후쿠시마현과 경계하여 남서쪽에 있는 곳입니다. 도착한 동경의 하네다 공항은 0.12, 사이타마현 치치부시의 숙소 마당에서는 0.24가 나왔습니다. 일행이 술렁거리기 시작합니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군마현으로 들어서자 수치는 가파르게 올라갑니다. 우에노무라에서는 0.36까지 나왔습니다. 카와바무라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전원(田園)Plaza에서는 0.46~0.55가 나왔습니다.(사진2,3) 마침 가족단위로 수많은 주민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이곳의 유명한 상품 중 하나가 요쿠르트라고 합니다. 맛있게 먹었던 일행의 얼굴이 굳어집니다. 신선한 우유제품이 진열되어있는 매장에서 발길을 돌립니다.

0.46 마이크로시버트
▲ 사진2 일본 전원플라자 0.46 마이크로시버트
ⓒ 이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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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5 마이크로시버트
▲ 사진3 일본 전원플라자 0.55 마이크로시버트
ⓒ 이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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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사과농장을 방문하였습니다. 최근에는 블루베리를 많이 심고 있었습니다. 나무 아래에서는 0.70~ 0.77까지 나왔습니다.(사진4) 빨갛게 익은 사과를 하나씩 따먹어 보라는 농장주인의 친절한 배려에도 누구 하나 선뜻 나서는 이가 없습니다. 일행 중 미혼인 여성은 그날 저녁식사를 포기합니다.

0.70 마이크로시버트
▲ 사진4 일본 사과농장 0.70 마이크로시버트
ⓒ 이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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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에 약간의 비가 내렸습니다. 숙소 마당에서 측정한 수치는 0.88~ 0.97이었습니다.(사진5)

0.88 마이크로시버트
▲ 사진5 일본 숙소 0.88 마이크로시버트
ⓒ 이현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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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25년 전 체르노빌 핵발전소 폭발사고가 일어난 현지의 방사능 수치가 지금 4~5입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 되어버린 곳입니다. 방문지가 점점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방사능 수치는 높아져 갔습니다. 특히 산으로 둘러 쌓인 분지나 고원지대에서는 더욱 높은 방사능 수치가 나왔습니다. 동경에서 잠깐 들린 오에노공원에서는 0.11이 나왔습니다. 이제야 일행은 한숨을 돌립니다.

이번 일본 방문은 '일본 농업과 마을만들기, 에너지 자립마을'의 현지를 견학하는 것이 주제였습니다. 일행들은 장소가 옮겨질 때마다 계측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일행으로부터 조용히 빠져나와 계측기를 켜곤 하였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높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었던 겁니다.

일본 농업, 특히 주민이 힘과 뜻을 합하여 만들어 낸 마을만들기의 모범사례를 찾아 방문한 곳에서 우리는 또 다른 교훈을 얻었습니다. '친환경 농업, 내발적 발전, 주민과 함께하는 지자체' 등 모두 훌륭한 사례였습니다. 또한 주민 리더들의 열정과 노력에 찬사를 보내곤 하였습니다.

70대 중반의 농민과 90대 후반의 은퇴한 지자체장 등 지역의 어른들이 지키고 계셨습니다. 방문한 지역마다 미래에 대한 믿음과 열정이 전해졌습니다. 하지만 한 순간에 끝나버릴 수 있습니다. 원자력발전의 편리함은 이렇게 위험천만한 실체를 숨겨두었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였던 겁니다.

귀국길 신문에 서울의 노원구 월계동에서 1.4~ 2.5 µSv가 검출되었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세슘 137이라는 방사선 핵종이 검출되었습니다. 인체에 암과 백혈병 등을 일으키는 물질입니다. 방사능이 절반으로 줄어드는데(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30년이 걸리는 물질입니다.

일행들 모두 기가 막히다는 표정입니다. 일본에서 내내 마음 졸이며 '그래 집 떠나면 개고생이라더니... 우리나라가 안전하지'라는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든 한국에서든 방사능으로부터의 안전을 확실할 수 없었습니다.

여전히 정부는 우려할만한 수준이 아니라고 하고서는, 다음날 오염된 아스팔트를 걷어내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더군요. 저는 언론의 보도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방사능 누출사고가 터질 때마다 기준치 이하이니 괜찮다고 해왔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말하는 기준치는 1 mSv(밀리시버트)입니다. 일반인의 피폭한계치, 즉 일반 국민이 1년 동안 맞아도 괜찮다(?)는 양입니다. 1 mSv(밀리 시버트) = 1,000 µSv(마이크로 시버트)입니다. 단순히 계산해도 1,000÷365(일) ÷24(시간) = 0.1141 즉 1시간에 0.11을 넘어서면 안됩니다.

부안에서의 0.14는 기준치를 넘는 수준입니다. 평상시가 이 정도인데 비가 내리거나 궂은 날씨에는 수치가 더 높아집니다. 대기 중의 방사능 물질이 땅으로 모아지기 때문입니다.

방사능에 대한 기준치와 관련하여서 세계적으로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방사능에 대한 안전이란 기준치란 없습니다. 정부에서 인용하는 미국 국립과학아카데미의 BEir 리포트에서조차 '방사선량에서는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최소치란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기준치 이하의 방사능 노출은 안전하다가 아니라 기준치 이하의 적은 양이라도 암, 백혈병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내용입니다. '인류가 누리는 편리함을 위하여 이 정도는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하는 사회적 합의의 수준을 의미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정부와 원자력안전기술원에서는 "방사선량이 일정량을 넘지 않으면 우리 몸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는다" "빗물 속 방사선량은 하루 2리터씩 1년 동안 마셔도 X-선 촬영 한번 한 것보다 수십 분의 1수준이다"라고 학교에 교육 자료를 보내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식수(먹는 물)기준을 보면 미국은 방사능 오염기준치를 모두 합쳐 연간 0.04mSv로 정해 놓고 있고, 캐나다는 0.08, 세계보건기구(WHO)는 0.1입니다. 국가마다 기준이 다릅니다. 미국의 방사선안전위원회(NCRP)는 지난 100년 동안 기준치를 6차례나 낮추었습니다. 의학의 발달에 따라 낮은 수준의 방사선에 의한 피해의 증거가 새롭게 발견되었고, 그만큼 안전도를 높여왔다는 겁니다.

1mSv의 기준치만으로도 1만 명 중 1명의 암환자 발생 확률이 높아진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5,000만의 국민 중에 5,000명의 암환자가 발생한다는 수치입니다. 0.14µSv(마이크로 시버트)는 단순계산으로 1년에 1226µSv입니다. 연간 6363명의 암환자를 발생시키는 수치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지난 일본 후쿠시마 핵폭발사고는 인간에 대하여 자연이 보내는 마지막 경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핵발전 사고는 우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힘들게 이루어왔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끝장내고 맙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3.11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태그:#일본 방사능, #핵발전, #서울 방사능, #아스팔트 폐기물, #주택가 방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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