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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포 풍물시장의 홍어 좌판. 흑산도에서 올라온 홍어가 손질을 기다리고 있다.
 영산포 풍물시장의 홍어 좌판. 흑산도에서 올라온 홍어가 손질을 기다리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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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포에 홍어가 많이 사라졌다고 한디. 안 그려. 오히려 지역 특산물로 키우고 있제. 홍어거리도 맹글고, 홍어축제도 하고 그렁께. 아버지 뒤를 이어 홍어장시하는 젊은 사람도 많어."

나주 영산포에서 30년째 홍어만 팔아온 홍어장수 이금렬(60)씨의 얘기다. 영산포는 흑산도 인근에서 올라온 홍어의 삭힘을 완성하는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뱃길이 끊어진 뒤 명성이 퇴색했다고 허지만 그래도 홍어하면 영산포여. 영산포 홍어는 맛이 다르거든. 톡 쏘는 맛이 죽여주제."

이씨는 "그 맛을 아는 사람은 금값을 치르고라도 사간다"고 했다.

"전에는 홍어가 전라도 음식이었제. 근디 지금은 아녀. 여그서 파는 것 대부분이 서울이나 경기도로 나강께. 부산 대구 제주도까지도 간당께. 요즘은 세 살 네 살짜리도 홍어 맛 붙여노면 잘 묵잖여."

홍어를 손질하는 이금렬씨. 영산포에서 30년째 홍어만 팔고 있는 홍어장수 아저씨다.
 홍어를 손질하는 이금렬씨. 영산포에서 30년째 홍어만 팔고 있는 홍어장수 아저씨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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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홍어값이 치솟아 전라도 잔칫상에서 홍어 구경하기 어렵다는 말도 있었다. 홍어 값이 궁금했다.

"홍어도 많이 없어져불었능가봐. 값이 계속 올라가. ㎏에 4만 원 하제 지금. 근디 어떻게 몰강스럽게 딱 1㎏만 담겄어? 보통 200(g)정도는 더 담제."

시장 여기저기를 둘러봐도 생각만큼 홍어 파는 가게가 많지 않다. 영산포시장이라고 하면 홍어 가게가 즐비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요즘은 시장에서 홍어를 파는 사람이 별로 없어. 다 가게에서 팔지. 내 가게도 영산포 선창에 있고. 가게에 있으믄 심심하잖애. 그래서 사람 구경도 할 겸해서 이렇게 나와서 손질하고 있는 것이제."

홍어를 손질하는 그의 손길이 익숙하다. 수준급이다.

"허허!! 이 사람 뭔 소리하고 있당가. 한 평생을 홍어하고 살았는디. 이 정도는 기본이제. 기본"

홍어 손질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게 이씨의 얘기다. "영 까다로운 게 아니다"는 것이다. 그는 홍어를 통째 사서 보기 좋고 먹기 좋게 손질을 해서 판다. 소비자들이 집에서 받아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초장까지 넣어 완벽하게 보내준다고.

깔끔하게 손질된 흑산홍어. 숙성된 홍어와 또 다른 맛으로 미식가들을 사로잡는다.
 깔끔하게 손질된 흑산홍어. 숙성된 홍어와 또 다른 맛으로 미식가들을 사로잡는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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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포에 장이 들어선 것은 일제 강점기. 물류의 중심지였던 이곳 일본인들이 애지중지(?) 했던 땅이다. 내륙에 있으면서 바다로 연결되고, 나주평야의 쌀도 매력 덩어리였다. 곡식을 빼앗아 가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영산포는 한편으로 온갖 물자가 몰리는 경제의 중심지였다. 쌀 등 온갖 곡식과 생선의 물물교환이 성황을 이뤘다. 영암 장흥 해남에서도 찾아들었다. 남도를 대표하는 장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1981년 영산강 하굿둑이 세워지면서 바닷길이 막혔다. 시나브로 시장도 활기를 잃어갔다. 배가 더 이상 들어오지 않자 사람들의 발길도 사그라졌다. 뱃사람을 상대하던 수많은 가게도 문을 닫았다.

그렇게 선창의 영화는 영산강 뱃길과 운명을 같이했다. 갯것이 수북이 쌓였던 장터에는 톡 쏘는 홍어만이 남았다.

"그때는 대단했제. 배가 들어오는 날이면 선창에 발을 디딜 틈이 없었어. 보리 한 말 갖고 가믄 양철동이에 황실이를 가득 담아왔제. 그 때가 좋았어."

시장이 번창할 때를 회상하는 한 할머니의 볼이 불그레해진다. 할머니는 갯것을 가득 실은 배가 영산강 물길을 가르며 들어오는 날이면 포구는 '다른 세상'이었다고 했다. 포구는 갯것으로 넘쳤다. 발에 치이는 게 갯것이었다. 언제나 장날은 잔칫날이었다고.

영산포 풍물시장. 흑산홍어를 빼면 여느 재래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는 우리네 전통 5일장이다.
 영산포 풍물시장. 흑산홍어를 빼면 여느 재래시장과 크게 다르지 않는 우리네 전통 5일장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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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포 풍물시장 입구. 오래 전과 달리 상가들이 말끔하게 정비돼 있다.
 영산포 풍물시장 입구. 오래 전과 달리 상가들이 말끔하게 정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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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여 년 동안 포구의 갯내음을 맡았던 영산포시장이 가까운 이창동으로 옮겼다. 2003년이었다. 이름도 '영산포풍물시장'으로 바꿔 달았다. 부지도 1만㎡ 넘게 불렸다. 겉모습도 그럴싸한 장옥으로 바뀌었다.

여기에는 상가 150여 개가 만들어졌다. 홍어와 젓갈 가게가 들어섰다. 장터국밥 등 장꾼들의 허기를 채워줄 식당도 들어섰다. 한가운데엔 공연할 수 있는 풍물광장도 만들어졌다. 시장은 풍물광장을 중심으로 어물전, 채소전, 잡화전, 의류전, 옹기전 등이 나선형으로 늘어서 있다.

겉모습은 바뀌었지만 옛 흔적은 지울 수 없는가 보다. 어물전을 어슬렁거리는 게 재밌다. 갯것의 비릿한 내음과 짭조름한 젓갈 냄새가 물씬 묻어난다. 신발 파는 아저씨, 닭 잡는 아주머니, 톱날 세우는 할아버지, 좌판 벌인 할머니의 입담도 옛날처럼 구수하다. 장은 매 5일과 10일 선다.

영산포 풍물시장의 젓갈코너. 갯것의 비릿함과 짭조름함이 뒤섞여 옛 재래시장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영산포 풍물시장의 젓갈코너. 갯것의 비릿함과 짭조름함이 뒤섞여 옛 재래시장의 맛을 느낄 수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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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터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함이 없다. 영산포 풍물시장에서 한 할아버지가 칼날을 손질하고 있다.
 장터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함이 없다. 영산포 풍물시장에서 한 할아버지가 칼날을 손질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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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남새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영산포풍물시장, #재래시장, #흑산홍어, #이금렬, #영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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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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