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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 책 줄게, 새 책 다오!'. 중고 책을 기부하면 공부방 아이들에게 새 책을 선물합니다. 오마이뉴스는 CJ도너스캠프, 인터넷서점 알라딘과 함께 오는 11월 30일까지 '책 나눔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나의 애독서'는 이 캠페인 가운데 하나로, 명사들이 감명깊게 읽었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연재 기사입니다. 친필 사인을 담은 명사들의 추천 애독서는 책 나눔 캠페인에 참여했던 기부자 분들께 추첨을 통해 선물할 예정입니다. 여러분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한국PD연합회 주최로 지난 6월 3일 저녁 서울 신촌 소통홀에서 열린 '나는PD다'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정혜윤 CBS PD.
 한국PD연합회 주최로 지난 6월 3일 저녁 서울 신촌 소통홀에서 열린 '나는PD다' 토크콘서트에 참석한 정혜윤 CBS PD.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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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말에서 작가의 책임을 생각했다. 그에게 글쓰기는 재미있는 놀이가 아니라 막중한 의무가 담긴 어떤 일이었다. 그 의무란 어떤 것일까? 글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미래를 향한 물꼬를 터주는 것이었다.

그는 한 시간이라도 먼저 미래의 인간이 태어나게 하고 싶어 했다. 그는 글에서 아름다움이 아니라 구원을 다루고 싶어 했다. 그는 어떤 역경이 닥치더라도 절망의 가장자리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두려움을 직시하고 꿋꿋하게 끝까지 싸우는 인간에게 경의를 표했고 글을 통해 그들을 살려내고 싶어 했고 그러면서 자신도 용기를 얻고 싶어 했다.

그는 인간에게 자부심이 필요한 이유는 평화나 위안, 기만에 가득 찬 희망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약하고 하찮은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는 어떤 인생을 가치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했을까?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영혼의 자서전> 서문에서 그가 인정하는 사람의 가치란 힘과 끈질긴 인내심에 의존해서 가장 높은 정상에 다다르기 위해 한걸음 한 걸음 나아가려는 노력에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에게 인간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인간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에 오르는 존재다. 하지만 수많은 이들은 중간에 멈추고 쓰러지고 오르지 못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자신의 영혼은 물론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할 수 없게 된다. 그는 한 사람의 생 전체는 누군가의 손에 들린 활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세 가지의 영혼, 세 가지의 기도'를 올린다.

첫째, 나는 당신의 손에 쥔 활이올시다. 주님이여, 내가 썩지 않도록 나를 당기소서
둘째, 나를 너무 세게 당기지 마소서. 주님이여. 나는 부러질지도 모릅니다.
셋째, 나를 힘껏 당겨 주소서. 주님이여, 내가 부러진들 무슨 상관이겠나이까?

이 기도처럼 그는 삶을 통해 끝없는 '오름'의 여정이란 여행에 나섰다. 그렇게 만난 사람 중에 조르바란 노인이 있었다. 조르바는 세 번째 기도에 해당하는 사람이고 요새 말로 바꾸면 '짱'인 할아버지, 어지간히 밝히는 할아버지였다. 조르바는 대지와 접촉한 영혼이었다. 그는 고운 말을 쓰지 않고 책에서 들은 말로 돌려 말하지 않고 오로지 그가 겪은 것, 그가 본 것으로 삶을 보되 삶을 깊이 사랑했다.

어떤 무엇도 그의 영혼을 파괴하지 못했다

그에게 날아오르는 새, 굴러가는 돌멩이 하나도 새롭지 않은 게 없었다. 그 앞에서 지구는 매일 아침 생명력을 얻고 꿈틀댄다. 그는 말한다. 예수는 크리스마스에 태어났잖아요. 나도 크리스마스 때마다 아이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조르바는 여자, 먹을 것, 마시는 것, 춤추고 노래하는 것에서 결코 관심을 끊은 적이 없었기에 결국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이렇게 말하고 마는 것이다. '주위 세계에 함몰된 그 소박하고 단순한 모습, 모든 것(여자, 빵, 물, 고기, 잠)이 유쾌하게 육화하여 조르바가 된 데 탄복했다.' 조르바는 '당신이 먹는 걸로 무얼 하는지 가르쳐줘 봐요. 그럼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가르쳐줄테니'라고 말한다.

우리도 먹는 것, 읽는 것, 자는 것, 길을 잃는 것, 고민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합해져 어떤 신비로운 화학작용에 의해 우리가 된다. 우리는 먹는 걸로 뭘 하는 것일까? 우리의 육체는 어떻게 영혼으로 변화하는가?

사랑할 때는 죽도록 사랑하고, 일할 때는 죽도록 일하고, 말할 때는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외치고, 침을 뱉어야 할 때는 퉤퉤 뱉고, 춤출 때는 중력을 극복하려는 듯 뛰어올랐던 뜨내기 조르바가 산투리(그리스 악기, 기타)를 남기고 죽었을 때 니코스는 '흙과 물과 불이 어우러져 새로운 조르바를 빚어내는 우연이 또다시 가능할까? 그런 영혼은 죽어서는 안 된다'라고 비통해한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는 니코스가 부활시킨 조르바인 셈이다. 그를 부활시킨 이유는 역시 조르바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다. 조르바는 그 확 트인 화끈한 영혼과 힘찬 육체로 독수리처럼 로켓처럼 하늘로 올라가는 화살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조르바가 죽으면서 두목! 당신은 사람 중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었어요, 라고 말한 게 좋다.

바람 중에 가장 좋아하는 바람은? 나무 중에 가장 좋아하는 나무는? 구름 중에 가장 좋아하는 구름은? 말해 봐요. 조르바. 나는 언제나 그가 가장 좋아하는 것, 하지만 그가 죽었기 때문에 우리에게 들려주지 못한 그것들이 궁금하다. 그는 만물이 태어난 이유, 그리고 스러져야 하는 이유를 궁금해 했고 오로지 가슴 아프게 죽어간 사람 때문에만 분노했다. 그 외의 어떤 무엇도 그의 영혼을 파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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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CBS PD가 추천하고 기증한 책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 열린책들 | 2009


<그리스인 조르바>는 현대 그리스 문학의 맹주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대표작이다. 실존인물인 65살의 '자유로운 영혼' 조르바와 그를 동경하는 한 30대 그리스 지식인의 이야기를 소설로 엮었다.

소설 속 조르바는 기행을 일삼는 인물이다. 물레를 돌리는데 거추장스럽다고 스스로 손가락을 자르고 섹스에 열광하며, 여성의 치모로 베개를 만들어 베고 자고, 수도승을 꼬셔서 수도원에 불을 지르게 만든다. 작품의 화자이자 지식인을 대표하는 주인공 오그레는 이러한 조르바의 자유로움을 동경하고 찬사한다. 그리고 조르바를 흉내내며 조르바처럼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

조르바 특유의, 삶에서 깨달은 지혜를 탐독하는 것도 즐겁지만 무엇보다 조르바와 오그레가 얽어가는 각각의 에피소드들과 그리스의 역사, 풍광이 얽혀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어내려가는 소설 본연의 재미 또한 쏠쏠한 작품이다.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베르그송과 니체, 부처의 영향을 받아 한계를 극복한 인간이 신의 자리를 대체하고 나와 세계의 구분을 없애 절대적인 자유를 누리자는 뚜렷한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인 조르바>, <미칼레스 대장>,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등의 저작에는 카잔차키스의 이러한 사상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신성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그리스 정교회와 교황청으로부터 파문을 당하기도 했지만 카잔차키스와 그의 작품들은 1951년과 1956년 두 차례에 걸쳐 노벨 문학상 후보로 지명되는 등 세계적으로 그 문학성을 인정받고 있다.


태그:#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나의 애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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