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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의 죽음이 사실이라면 청천벽력이다. 김종서는 군 선배로서 존경하고 개인적으로 사부(師父)같은 존재다. 그가 좋아 그의 휘하에 있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고 그가 6진을 개척했을 때 자신이 천하를 얻은 것처럼 기뻤다. 헌데, 그가 죽었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다.

정말 그가 죽었다면 아무리 멀어도 이곳까지 부음(訃音)을 전하지 않을 관계가 아니다. 자연사라면 이해 할 수 없고 변고라면 곡절이 있을 것이다. 이징옥은 자신의 머리칼이 빳빳하게 서는 것을 느꼈다.

"진실을 알아보아라. 그 대신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이징옥이 큰 아들 자원이에게 귀엣말로 지시했다.

"명심하겠습니다."

세 아들 중에서 무예가 가장 출중한 아들이다. 잠시 다리쉼을 끝낸 이징옥 일행이 길을 떠났다. 행렬 후미에 쳐져 기회를 엿보던 자원이에게 기회가 왔다. 한 녀석이 용변을 보기 위해 대열에서 이탈한 것이다.

"어 시원하다."

퀴퀴한 구석에 갇혀있다 모처럼 바깥나들이 나온 녀석을 털며 시원함을 만끽하고 있던 녀석의 뒤로 돌아 붙은 자원이가 목을 감아쥐었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만 하면 널 죽이지는 않는다."

얼굴은 보이지 않고 목소리가 넘어왔다. 그 앞에 단검이 번뜩였다.

"예, 예. 말씀만 하십시오."

목이 졸린 녀석이 부들부들 떨었다. 그 떨림이 자원이 팔에 전해왔다.

김종서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김종서로 분한 이순재. 수양대군의 기습을 받아 절명하기 직전 장면이다.
▲ 김종서 KBS 드라마 <공주의 남자>에서 김종서로 분한 이순재. 수양대군의 기습을 받아 절명하기 직전 장면이다.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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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 장군이 죽었다는데 사실이냐?"
"에이, 그딴 거 물으려고 이렇게 무섭게 장난치며 그렇습니까? 이 손 놓고 말씀 하시라요."

잔뜩 긴장했던 그 녀석이 풀어진 느낌이다. 그 녀석은 장난같이 느껴졌지만 자원이에겐 심각한 문제다.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라."

자원이가 목을 더 감아쥐었다.

"한양에서는 다 아는 사실인데 그게 무슨 큰 비밀이나 된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빨리 말하지 않겠느냐?"

자원이가 팔에 힘을 주며 다그쳤다.

"에혀! 장난 심하게 하다 진짜 사람 잡겠습니다."

너스레를 떨며 엄살을 피우던 녀석이 마른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죽었습니다."

순간, 자원이의 다리가 풀렸다.

"정말이냐?"
"네에."

녀석이 이상스럽다는 듯이 눈동자를 굴렸다.

"그냥 죽었느냐?"
"젊은 아이를 가까이 두고 계시던 분이 그냥 죽긴요."

김종서는 70객 노인이었지만 젊은 처자 2명을 첩으로 두고 있었다.

"누가 죽였느냐?"
"수양대군이 죽였습니다."
"어떻게 죽였느냐?"
"수하를 데리고 김종서 장군 집으로 쳐들어가 죽였습니다."
"대호장군만 죽였느냐?"
"아들 승규도 함께 죽였습니다."

자원이의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리고 또 죽인 사람은 없느냐?"
"황보인, 이양, 조극관을 불러들여 박살냈습니다."

정보가 차단되어 한양소식을 모르고 있던 지역 사령관

이럴 수가 있는가? 도성의 변고를 모르고 있었다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통신이 발달하지 않는 그 시절. 한성에서 벌어진 정변이 보름이 다 되도록 변방에 알려지지 않았다. 국경에서 벌어진 위급상황이라면 봉화를 올리고 매 30리마다 대기하고 있는 급주마를 띄워 한성에 알릴 수 있지만 아름답지 않은 정변 소식을 누가 그렇게 빨리 알리려 했겠는가. 더구나 함길도 길주에는 체포의 대상 이징옥이 있으니 정보를 차단할 수밖에 없었다.

"알았다.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라. 만약 입을 뻥긋했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애버릴테니까."
"알았시유."

자원이가 목을 풀어 주었다. 녀석이 뒤돌아보았다.

"에이 장난도 심하셔, 증말. 진짜 사람 죽이는 줄 알았습니다."
"약속 잊지 말아라."
"내가 그 소리를 떠벌리면 나만 바보 되는데 내가 왜 그런 바부탱이 짓을 하겠습니까?"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 녀석은 대열에 합류했고 자원이는 아버지 곁에 바짝 붙었다.

"대호장군님을 수양이 죽였답니다."
"뭐라?"

이징옥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했다.

"정말이냐?"
"네, 아버님!"

"김종서 장군이 죽었다니..."

믿고 싶지 않았다. 이징옥은 다리가 풀려 주저 않을 것만 같았다. 허나, 여기에서 동요하면 일을 그르칠 수 있다. 그는 곧 냉정을 되찾았다. 부관 박문헌을 불러 뒤따라오는 송취를 불러오게 했다.

"내가 한성에 가지고 갈 선물을 깜빡 잊고 왔는데 되돌아가야 할 것 같소."
"잊으신 것이 있다면 부관을 보내면 될 일이지 되돌아 갈 일이야 없지를 않습니까?"
"내가 직접 갈 일이오."
"사적인 일이라면 아드님을 보내시지요."

이징옥을 압령하라는 특명을 받고 한성에서 길주까지 온 송취 역시 만만한 인물이 아니다. 자신의 임무 달성을 위해 자꾸 제동을 걸었다.

"이놈들을 여기에서부터 쓸어버려?"

이징옥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신과 그의 아들 셋. 그리고 부관이라면 송취와 그의 졸개 10여 명 쯤은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하면 길주에서의 일이 어긋날 수 있다.

"되돌아갔다 오느라 하루를 버린다면 그만큼 빨리 달리면 될 게 아니오. 내 말은 천리마 이니 걱정하지 마오."

이징옥이 발길을 돌렸다.

"함흥을 벗어나 체포하려던 계획을 변경하여 여기에서 덮쳐?"

잠시 망설이던 송취가 고민에 빠졌다. 긴급작전에 들어가면 무력충돌은 불을 보듯 뻔하다. 수적으로는 우세하지만 이곳은 이징옥의 텃밭 함길도가 아닌가. 승산이 없다. 송취가 체포를 순순히 접었다. 다함께 발길을 돌렸다.

길주 대동여지도에 그려진 길주(오른쪽). 함길도의 군사요충이다. 왼쪽 상단은 삼수 그 아래가 갑산이다. 흔히 산수갑산이라고 평가하는데 실은 백두산 아래 오지다.
▲ 길주 대동여지도에 그려진 길주(오른쪽). 함길도의 군사요충이다. 왼쪽 상단은 삼수 그 아래가 갑산이다. 흔히 산수갑산이라고 평가하는데 실은 백두산 아래 오지다.
ⓒ 이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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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슥한 밤 이경(二更). 이징옥이 길주 영문(營門)에 들어섰다. 깜짝 놀란 도진무 이행검이 사령청에서 뛰어 나왔다. 박호문은 명목상 절제사일 뿐, 길주 군영의 실세다.

"한성으로 떠난 장군께서 웬일이십니까?"
"내가 깜빡 잊은 것이 있어 되돌아 왔다."
"아랫것들을 보내면 되지 직접 오셨습니까?"
"내가 직접 챙겨야 할 것이 있어 왔다."
"무엇입니까?"
"박 장군이 평안도 도절제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기에 왔으니 어찌 그 까닭이 없겠는가? 내가 직접 물어보겠다. 박 장군은 어디 있느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징옥이 신발을 신은 채 내아 숙소로 뛰어 올랐다. 이행검이 은근슬쩍 가로막으며 제지했다.

"비켜라."

이징옥의 눈에 살기가 번득였다. 위세에 눌린 이행검이 뒷걸음질 쳤다. 지난해 수양대군이 명나라 사신 다녀올 때 요동까지 나아가 호송부사를 완벽하게 수행하여 수양의 눈도장을 받은 후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조선군 정예부대가 몰려있는 관북지방의 군사를 안정시키라는 밀명을 받고 온 무관이다. 그도 순간에 밀린 것이다.

궁지에 몰린 신임 절제사, 선혈을 뿌리며 무너지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놀란 박호문이 문틈으로 바깥 동정을 살폈다. 이징옥의 성난 얼굴이 예사롭지 않다. 위기를 직감한 박호문이 문구멍 사이로 화살을 날렸다. 수하 장졸들과 함께 밀고 들어가던 이징옥이 박호문의 활을 걷어찼다. 구석에 몰린 박호문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선대왕께서 나라에 변고가 생기지 않는 한 부르지 않을테니 변방을 수호하라 당부하시었소. 내가 해임되었다면 왕명이 있었을 것 아니오. 교지를 보여 주시오."
"교지는 없습니다."
"뭐라 했소?"

이징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교지는 없다 했습니다."
"그럼 누구의 명을 받고 왔소?"
"수양대군입니다."
"뭐라!"

이징옥이 호통과 함께 칼을 빼어 들었다. 놀란 박호문이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이징옥이 박호문의 목에 칼을 겨눴다.

"대호장군은 어떻게 되었느냐?"
"죽었습니다."
"누가 죽였느냐?"
"수양대군입니다."
"뭐라."

이징옥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그리고 칼을 높이 쳐들었다.

"삭풍한설 마다하지 않고 변방을 지키던 장수를 죽이고 나라를 도적질한 놈들이 따뜻한 도성에 앉아 공신놀음을 하고 있다니 하늘이 두렵지도 않다더냐? 나라를 도적질한 그놈 수양이 바로 나라의 큰 도둑이다. 그 놈의 명을 받고 예까지 온 너 역시 그놈의 패당이니 죽어 마땅하다."

표호와 함께 이징옥의 칼이 위에서 아래로 그어졌다. 순간, 겨누고 있던 박문헌의 화살이 먼저 발사되었다. 눈에 화살을 맞은 박호문이 선혈을 뿜으며 꼬꾸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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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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