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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 전쟁> 저자인 정우성 최정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가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갖고 최근 삼성-애플 특허 소송 과장을 보도하는 국내 언론이 사실을 왜곡하고 관전자들의 감정을 격화시켰다고 지적했다.
 <특허 전쟁> 저자인 정우성 최정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가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를 갖고 최근 삼성-애플 특허 소송 과장을 보도하는 국내 언론이 사실을 왜곡하고 관전자들의 감정을 격화시켰다고 지적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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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길 거냐가 아니라 어떻게 잘 마무리 하느냐가 관건이다."

애플 대 삼성전자.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주도하는 두 공룡끼리 '특허 전쟁'이 한창이다. 초반 분위기는 애플이 유리해 보인다. 네덜란드, 독일에 이어 호주에서 갤럭시탭10.1 등 신제품 판로가 막힌 삼성은 결국 아이폰4S 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이란 '진검'을 빼들었다.

양사의 자존심 싸움을 부추기는 흥미 위주 보도나 특정업체에 쏠린 '편파 중계'가 많은 요즘 특허 전문가 관점에서 나름 이번 분쟁을 객관적으로 분석한 책이 바로 <특허 전쟁>(에이콘)이다. 하지만 이 책은 이번 '특허 전쟁'에서 누가 이길지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양사가 승패를 가리기보다 협상으로 서로 '윈윈'하는 게 비즈니스 세계에서 더 현실적인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결국 '극적 타결'로 마무리... 내년 여름 안 넘길 것"

이 책을 쓴 정우성(39) 최정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를 19일 오후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났다. 마침 이날 스티브 잡스 추도식에서 팀 쿡 애플 CEO를 만나고 귀국한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애플에) 부품 공급은 내년까지 그대로 간다"면서 "추가 소송은 법무팀, 경영진과 논의해 필요하면 할 것이고 아니면 안 할 것"이라고 밝혀 여운을 남겼다.

정 변리사는 "팀 쿡이 초청해서 '후계자' 이재용 사장이 미국에 간 모양새가 좋다"면서 "당사자들이 자칫 감정이 격해질 수 있는데 어차피 협상을 해야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감정을 순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정 변리사는 특허 전문가이면서도 법 자체보다는 비즈니스 측면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번 분쟁이 결국 협상으로 끝날 걸로 보는 것도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밀어붙일 경우 파국 외에는 양사 모두 실익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국 양사가 협상을 통해 매듭지을 겁니다. 시기 문제인데 소송이 최고 정점을 찍을 때 극적 타결 가능성이 높아요. 양사 비즈니스 관계를 고려하면 내년 여름을 넘기지는 않을 거예요. 애플-삼성 간에 앞으로 3~4년에 걸친 반도체 수급 계약이 걸려있고 이번 분쟁 영향이 양사 신제품에까지 미치는 것도 안 좋기 때문이죠."

정 변리사는 애플 소송 직후 삼성의 초기 대응을 싸움보다 협상을 염두에 둔 '플랜A', 최근 가처분신청 등 공격적인 맞대응이 '플랜B'라면, 결국 '우아한 악수'로 표현되는 '플랜C'에 따라 '극적 타결'로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재용 사장이 미국에 있을 때 삼성이 일본과 호주에 아이폰4S 판매금지 가처분신청을 한 것도 좋게 봐요. '플랜C' 핵심은 '극적 타결'이거든요. 애플도 큰일 날 뻔 했다, 삼성도 양보했지만 궁지 몰린 애플이 협상에 사인했다는 시나리오가 갖춰져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싸움은 장기로 갈 수밖에 없어요. 결국 어떻게 이길 거냐가 아니라 어떻게 우아하게 마무리 하느냐, 서로 기업 이미지 훼손하지 않고 '윈윈' 하느냐가 이번 소송의 관건인 거죠."

애플 아이패드(왼쪽)와 삼성 갤럭시탭10.1. 독일과 호주 법원은 두 제품이 외형상 큰 차이가 없다며 애플이 요구한 갤럭시탭10.1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애플 아이패드(왼쪽)와 삼성 갤럭시탭10.1. 독일과 호주 법원은 두 제품이 외형상 큰 차이가 없다며 애플이 요구한 갤럭시탭10.1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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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소송은 애플 미래를 위한 스티브 잡스 선물"

애초부터 협상을 바랐다면 애플이 삼성을 상대로 소송이란 극단적 선택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특허 전쟁>에 따르면 애플이 소송한 목적은 특허 권리 보호, 경쟁자 견제, 내부 기업 전략 등 3가지 측면에서 볼 수 있다.

"우선 삼성 제품이 자기 권리를 침해했다고 보고 권리 보호에 나선 거예요. 스티브 잡스가 경쟁사 제품을 '카피캣'이라고 할 정도로 디자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데 삼성 제품의 외관 침해가 애플을 많이 자극한 거죠.

두 번째로 애플이 소송을 글로벌로 확산시킨 건 안드로이드 진영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있어요. 안드로이드 진영 중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하고 강력한 경쟁자가 삼성이거든요. 애플이 미국 반독점법 때문에 구글과 직접 싸울 수 없기 때문에 안드로이드 진영 대표 주자인 삼성을 택한 거죠."

이 두 가지는 지금까지 언론 분석과도 큰 차이가 없다. 정 변리사는 이뿐 아니라 앞으로 애플 자신을 겨냥할 특허 공격을 미리 막으려는 의도도 깔려있다고 보고 있다. 애플이 지난 7월 MS, RIM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캐나다 통신장비업체 노텔의 특허 6000여 개를 45억 달러에 매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 노텔 특허 매수를 놓고 애플과 경쟁을 벌인 구글은 결국 지난 9월 특허 1만7000여 건을 보유한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인수했다. 

"애플이 가진 기술 특허가 많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 특허 때문에 생기는 불확실성을 특허 분쟁으로 해결하려 한 거예요. 지난 수십 년 글로벌 기업들도 다 그랬어요. 특허가 많은 소니, 히타치, 파나소닉 같은 일본 기업도 미국 기업이나 삼성, LG 등을 상대로 특허 소송을 통해 협약을 맺었죠. 결국 특허 협약을 맺은 자기들 위치를 공고히 하면서 새로 진출하는 기업은 힘들게 만든다는 점에서 서로 윈윈한 거죠."

정 변리사는 이번 소송을 '스티브 잡스의 선물'에 비유했다. 

"끝까지 가면 애플 삼성 모두 파국이에요. 삼성은 MS에 (특허 협약으로) '보험'을 들었고 애플은 TSMC(대만 반도체 칩셋 개발업체)를 접촉하고 있지만 애플은 삼성과 비즈니스 관계를 계속 유지할 거예요. 애플은 이미 안정적인 자기 생태계를 갖고 있어 굳이 다른 제품을 상대로 싸울 필요가 없어요.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삼성에 싸움을 건 건 집착보다는 애플 미래를 위한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삼성 표준특허 소송은 잘못... 아이폰4S 가처분신청 잘해"

이런 애플의 공세에 대한 삼성전자의 반격은 적절했을까? 정 변리사는 지금까지 기술 표준 특허를 앞세운 삼성전자 반격에 비판적이다.

"지금까지는 삼성이 잘못했어요. 이 소송은 길어야 내년 여름인데 단기에 끝내려면 단순한 소송이 좋아요. 소송이 10개국으로 번져있고 소송자료와 증거도 많은데 판사가 전부 판단하려면 간단명료해야 해요. 사용자 환경(UI)이나 디자인은 눈으로 볼 수 있는데 기술표준특허는 복잡하고 프랜드 규정(표준 특허의 경우 특허권이 없는 사람도 제품을 먼저 만들고 합리적인 로열티를 낼 수 있도록 한 것)도 판단해야 해서 삼성 쪽 주장은 효용성이 떨어졌어요."

덕분에 애플이 제품 외관 등 디자인특허를 앞세워 네덜란드 헤이그법원, 독일 뒤셀도르프법원, 호주 연방법원 등에서 잇따라 삼성 제품 판매금지 조치를 이끌어낸 반면 삼성은 지난 14일 네덜란드 헤이그법원에 표준특허 침해로 제기한 가처분소송이 기각당하며 수세에 몰렸다. 

삼성전자-애플 특허 소송 법원 결정 일지
 삼성전자-애플 특허 소송 법원 결정 일지
ⓒ 김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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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정 변리사는 삼성이 최근 유럽과 호주, 일본 등에 제기한 아이폰4S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선 소송 전략 차원에서 높이 평가했다. 

"요즘 삼성쪽 주장도 간단해졌어요. 일본 호주에 제기한 UI, 멀티미디어 특허나 프랑스, 이탈리아의 안테나 특허 주장은 판사가 판단하기도 어렵지 않아요. 초기 애플 주장을 삼성에서 학습한 거죠."

기업이 특허 침해에 대응하는 방식은 크게 확정판결 전까지 제품 판매금지 등을 요구하는 가처분신청과 특허침해금지청구, 손해배상청구 등 본안 소송으로 나뉜다. 가처분신청은 한시적인 조치에 불과하지만 결정이 6개월 이내에 빨리 나와 상대방에게 바로 타격을 줄 수 있는 반면 본안 소송은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2~3년씩 걸리는 지루한 싸움이다. 그런데 특허전쟁 초반 애플은 판매금지 가처분신청으로 적극성을 띤 반면 삼성은 '본안소송'으로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삼성이 디자인 특허를 상대한 경험이 없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수도 있고 처음부터 협상을 염두에 뒀을 수도 있어요. 지금의 공격적인 '플랜B'가 나온 것은 상황이 불리해져 만회해야 하기 때문이죠. 승패가 무의미한 게 끝까지 안가요. 대법원까지 가려면 길게는 5~10년인데 가처분 결정이 빨리 나와야 협상에 활용하죠. 처음부터 가처분신청으로 갔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는데 삼성 특허팀에서 준비가 제대로 안됐던 것 같아요."

"'사실상 삼성 승리'는 사실 왜곡... 승패 떠나서 봐야"

<특허 전쟁> 저자인 정우성 최정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특허 전쟁> 저자인 정우성 최정국제특허법률사무소 대표 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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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변리사는 그간 특허 소송 과정을 보도하는 국내 언론이 사실을 왜곡하고 관전자들의 감정을 격화시켰다고 지적했다.  

"법적 소송인 만큼 언론 보도를 할 때는 정확한 사실 확인이 필요해요. 축구 경기처럼 팬이 생겨 감정이 개입되면 전망이 틀리게 되고 그런 언론 기사를 보고 독자들 감정이 격화돼요. 정치나 스포츠와 달리 비즈니스는 관전자가 흥분할 필요가 없는데 그렇게 만든 건 언론 역할이 커요."

국내 언론은 삼성-애플 소송을 기업 자존심이 걸린 감정싸움으로 몰아갔을 뿐만 아니라 가처분 신청 결과를 놓고 국내 기업인 삼성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해석을 내놓았다. 지난 9월 네덜란드 헤이그법원에서 삼성 제품 판매금지 결정을 했는데도 애플의 10가지 주장 가운데 1가지만 인정한 것을 두고 '사실상 삼성 승리'라고 해석한 게 대표적이다.

"견강부회죠. 가처분 결과는 누가 판매를 하느냐 못 하느냐를 봐야지, 어떤 주장이 받아들여졌냐 측면에서 본 건 잘못된 해석이에요. 이 국면에선 애플이 물건을 못 팔아 괴롭냐, 삼성이 괴롭냐로 따져야지 '사실상 승리'란 건 사실을 왜곡하는 거예요.

기자가 참고할 만한 '레퍼런스(기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론 보도 결과만 보면 주관적인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기대와 사실은 구분해야죠. 누가 이길 거다, 둘이 헤어질 거다, 라는 관점 말고 결국 적절히 타협할 거다, 안 헤어질 거다란 관점에서 보면 기대도 커지지 않아 사실 왜곡도 하지 않게 돼요."

시 쓰는 변리사... "좋은 특허는 좋은 글로 표현돼야"

고려대 전기공학과를 나와 지난 2002년부터 10년째 변리사 생활을 하고 있는 정우성 변리사는 요즘도 업무 틈틈이 시를 쓴다. 아직 습작 수준이지만 변리사 일도 시인 못지않게 '예술적인 활동'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특허 침해 소송에선 제품끼리 비교하지는 않아요. 언어로 표현된 특허 문헌과 상대방 제품을 비교하는 거죠. 그래서 좋은 특허는 기술도 중요하지만 좋은 글로 표현돼야 해요. 시가 안에 것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처럼 변리사 일도 복잡한 기술 내용을 말로 풀어내는 예술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정 변리사는 공동 저자인 윤락근 변리사와 함께 지난해부터 이 책을 준비했다. 기업인이나 일반 독자들이 비즈니스 관점에서 특허를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해야 하는지 설명할 목적이었다. 마침 지난 4월 애플-삼성 특허 소송이 시작되자 책 내용을 모두 손봤다. 이번 소송이 기업들이 특허 중요성을 이해하는 좋은 본보기라 봤기 때문이다.

"특허는 기업 경영에 큰 불확실성을 줘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어요. 이번 특허전쟁이 주는 교훈은 이제까지 하드웨어 관점에서 기술 중심으로 봐왔지만 디자인 특허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 제조사 관점에서 특허를 봤지만 이제 소비자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어요. 애플 특허들은 모두 소비자 관점으로 돼 있거든요."


태그:#특허전쟁, #애플, #삼성전자, #정우성 변리사, #특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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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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