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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일하는 곳은 서울시 종로구 운니동에 있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과 종로3가역에 인접해 있고 낙원상가, 탑골공원, 창덕궁과 인사동 그리고 골목골목의 정겨운 가게 등 바삐 움직이는 사람살이의 냄새와 함께 오래된 것들이 그득히 자리한 동네이다. 그리고 출퇴근길에 늘 마주하는 운현궁이 있다.

운현궁은 이름에 '궁'자가 붙어 있으나, 궁궐은 아니다. 그래서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처럼 유명하지도 않고 실제로도 장소가 가진 의미엔 당연히 차이가 있다. 이곳은 흥선대원군 일가의 사저로서, 훗날 임금이 된 고종이 임금의 자리에 오르기 전까지 나고 자란 곳이다. 다른 임금들과는 다르게 궁궐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왕이 된 것은 아니지만, 한 나라의 임금이 나고 자란 곳이니 임금이 된 후에 '궁'으로 승격된 것이다.

 운현궁에 찾아온 가을, 점심시간 이곳을 찾은 발길들이 운현궁에서 휴식을 얻는다.
 운현궁에 찾아온 가을, 점심시간 이곳을 찾은 발길들이 운현궁에서 휴식을 얻는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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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니동 새 일터에 자리를 틀고 나서 지난주 처음으로 운현궁을 찾았다. 사람들이 사무실이 어디냐고, 어떻게 가냐고 물으면 늘 운현궁 오른쪽 골목으로 들어오면 된다고 설명을 하면서도 은근히 '그런데 사람들이 운현궁이 어디 붙어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있을까?' 싶기도 했다.

고궁과 사찰을 좋아하는 취향을 가지고 있지만 운현궁은 정말 처음 가 보는 것이었다. 경복궁이나 창덕궁, 그리고 인사동과도 지척인데 늘 그 주변을 다니면서도 쉽사리 발길이 옮겨지지 않았던 것은 왜일까. '궁'자가 붙긴 했어도 진짜 궁은 아니니까? 더욱이 크고 이름난 문화재를 더 찾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단지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입장료 700원'에 누리는 사색... 가을 단풍 든 나무도 아름다워

 사랑채로 흥선대원군이 주로 사용하던 공간 노안당(老安堂). 이곳에서 인사정책, 주요관제복구, 서원철폐, 복식개혁 등 나라의 주요 정책이 논의되었다.
 사랑채로 흥선대원군이 주로 사용하던 공간 노안당(老安堂). 이곳에서 인사정책, 주요관제복구, 서원철폐, 복식개혁 등 나라의 주요 정책이 논의되었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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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산책 삼아 나서니, 햇살이 따사로웠다. 보통 때도 입장료가 700원뿐이지만,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무료입장이라는 소문을 듣고 입구에 들어서니 넓직한 마당 오른쪽 수직사(守直舍) 마루에는 직장인들이 커피 한 잔을 들고 드문드문 앉아 짧은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운현궁의 경비와 관리를 맡았던 이들의 거처였다는데, 아들이 임금으로 등극한 뒤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된 흥선대원군에게 경호가 필요해지자 궁에서 직접 경비병이 파견되고 관리 수도 많이 늘었다고 한다. 방 안에는 호롱불이나 가구, 화로와 생활용품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마당에는 가을 단풍이 든 큼직한 나무가 몇 그루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었다. 한쪽에는 아예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얼마 전 궁중의상 패션쇼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봄 가을에 두 달씩 매주 일요일 오후 4시, 이 특설무대에서 다양한 전통문화 예술공연이 열리는데 가을에는 9~10월에 이루어진다. 지난 일요일에 볼일이 있어 잠시 사무실에 들르는데, 운현궁 담자락 너머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저 지붕 아래, 창호지 문살 너머 안에 누군가 곱디고운 사람 살고 있을 것만 같다.
 저 지붕 아래, 창호지 문살 너머 안에 누군가 곱디고운 사람 살고 있을 것만 같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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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에도 일을 더 해보겠다고 책상머리에 앉아 있다가 뒤늦게 나온 터라, 시간적 여유가 많지는 않았지만 찬찬히 둘러보며 휴식과 사색을 취하기에 참 좋은 공간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직사 마루에 앉아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었고, 가을 단풍을 사진기에 담는 사람도 있고, 문화재 관람을 하듯이 하나 하나 둘러보고 설명안내판도 꼼꼼이 읽는 사람도 있었다. 어느 구석에 앉아서 가만히 한 시간을 보내도 복잡한 머리 속을 비우고, 쉬는 가운데 좋은 기운이 돋아날 것 같다.

수직사를 지나 노락당 쪽으로 가니 또 기품있는 옛집과 그 가문의 삶의 숨결이 전해져 오는 것 같다. 특히 노락당(老樂堂)은 이름 자체가 참 좋다. 노년을 편안하게 보낸다는 의미인데, 그렇다고 노년을 보내는 어른이 기거하던 곳은 아니고, 운현궁의 안채로서 명성황후가 삼간택 후 왕비수업을 받은 곳이라 한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가 치러졌을 때 그 준비를 이곳에서 했다고도 한다. 운현궁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다.

 운현궁의 안채로서 명성황후가 삼간택 후 왕비수업을 받은 곳 '노락당(老樂堂)이라 한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가 치러졌을 때 그 준비를 이곳에서 했다고도 한다. 운현궁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다.
 운현궁의 안채로서 명성황후가 삼간택 후 왕비수업을 받은 곳 '노락당(老樂堂)이라 한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가 치러졌을 때 그 준비를 이곳에서 했다고도 한다. 운현궁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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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년을 편하게 지내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노락당. 안채에 해당된다.
 노년을 편하게 지내는 곳이라는 뜻을 가진 노락당. 안채에 해당된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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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이 주로 쓰던 노안당... 걸어보니 매력적인 '운현궁'

노년을 편안히 보내는 곳이란 이름값을 정말 하는 그런 집이 있다면 나도 꼭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잠시 머물다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대문채를 지나 노안당(老安堂)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락당과 노안당 사이에 있는 문인 대문채는 운현궁을 방문한 인재 중 흥선대원군이 선택한 사람은 이 문을 지나 관직에 올랐다고 해서 등용문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노안당은 사랑채로 흥선대원군이 주로 사용하던 공간이다. 이곳에서 인사정책, 주요관제복구, 서원철폐, 복식개혁 등 나라의 주요 정책이 논의되었다. 임오군란 때 납치되어 청으로 갈 때 이곳 노안당에서 납치되었으며 환국한 뒤, 집권과 하야를 반복할 때 역시 이곳에서 정치도 하고, 유배생활을 하는 것 같은 은거를 했다고 한다. 흥선대원군은 79세를 향년으로, 이곳 노안당의 안쪽 방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랑채 노안당
 사랑채 노안당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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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도 운현궁 안살림의 최고 책임자이자 흥선대원군의 아내, 고종황제의 모친이었던 부대부인 민씨가 주인이었던 이로당(二老堂)에서는 초·중·고교생들을 대상으로 전통예절교실을 실시하고 있었다. 외국유학생이나 다문화가정, 유치원생들도 많이 찾아와 예절교실에 참여한다고 한다. 내가 찾은 날도 입구에 아이들의 신발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

그리고 안채인 만큼, 건물 옆에는 주방 살림을 하는 공간도 있었다. 관광객을 위해서 사람 모습을 한 모형인형이 전통 복식을 입고 서 있었다. 이 모든 생활공간을 다 보고 나오면, 유물전시관이 있다. 운현궁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들이 전시되는 공간으로, 주로 흥선대원군과 관련된 유물이 전시되어 있고 그 시대배경적 이야기들이 안내판에 적혀 있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 의상 등도 전시되어 있다.

 운현궁 내 마련된 유물전시관에는 흥선대원군과 관련된 전시물들이 있다.
 운현궁 내 마련된 유물전시관에는 흥선대원군과 관련된 전시물들이 있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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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직사, 이로당, 노안당, 노락당 등 각각의 옛집 건축물 방과 공간 안에는 이렇게 살림살이들이 전시되어 옛 향취를 느낄 수 있다.
 수직사, 이로당, 노안당, 노락당 등 각각의 옛집 건축물 방과 공간 안에는 이렇게 살림살이들이 전시되어 옛 향취를 느낄 수 있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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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의 봄>이란 소설이 있다. 학교 다니던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 교과서나 참고서를 통해서라도 읽어봤을 소설 <감자>로 유명한 작가 김동인의 작품이다. <운현궁의 봄>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일대기를 그린 역사소설로,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까지 일부러 대가집과 잔칫집을 기웃거리는 모자란 사람 행세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훗날을 도모하는 야인적 모습과 함께, 그가 안동김씨 가문의 세도정치를 타파하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며 제국주의 열강의 시대로 접어들기 시작한 국제 정세 속에서 나라를 잘 지켜나갈 수 있는 인물이었는데 세상을 떠났음을 슬퍼하는 입장에서 쓰여진 역사소설이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야 저마다 다를 수는 있겠지만, 다양한 스토리를 알고 스토리를 따라 걷고 보고 체험하는 여행은 그만큼 재미가 있다.

 가을이 깊이 들어왔다, 운현궁에 내린 가을빛깔과 햇살.
 가을이 깊이 들어왔다, 운현궁에 내린 가을빛깔과 햇살.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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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집 산책에서 만나게 되는 문 하나도 빠뜨릴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옛집 산책에서 만나게 되는 문 하나도 빠뜨릴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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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이 사람을 쉬게 한다. 운현궁 가을 산책 풍경.
 풍경이 사람을 쉬게 한다. 운현궁 가을 산책 풍경.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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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현궁의 봄이란 소설 제목도 있는 만큼, 운현궁에는 봄에 매화, 진달래, 철쭉, 목단, 미나리아제, 제비꽃과 민들레 등 봄꽃들이 피어난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그 사진들도 볼 수 있는데, 역시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는 봄에 직접 가볼 일이다.

하루나 반나절을 꼬박 시간을 내야만 어느 정도 그 깊이를 느낄 수 있는 경복궁이나 다른 궁궐들과는 달리, 운현궁은 비교적 짧은 시간 동안에 작은 여유와 사색, 쉼을 가질 수 있는 문화유적이다. 점심시간, 아무리 바빠도 밥 먹고 운현궁이든 가까운 공원이나 문화유적이든 걸어 보자. 엉켜있던 머리 속도 풀어지는 것 같다. 한 번 발걸음을 떼니, 자꾸 가게 된다. 운현궁으로의 발걸음은 이제 더 늘어날 것 같다.


태그:#운현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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