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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판결 24번째 이야기다.
① 중앙정보부 블랙리스트 관리 국가배상 (서울중앙지법 10. 7.)
② 'G20=쥐20 포스터' 유죄 확정 (대법원 10. 13.)
③ 책임 보험 미가입차량 운전, 누가 책임지나 (수원지법 9. 22.)

중앙정보부 블랙리스트 관리 "국가가 배상"

1970년대는 그야말로 살벌한 시대였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목소리는 묵살됐다. 산업역군이라던 노동자들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노동기본권 보장이나 민주노조 건설이라는 합법적인 요구조차도 철저하게 짓밟혔다. 그것도 국가기관의 주도에 의해서! 1978년 '동일방직 사건'은 단적인 예이다.

[사례 1] 70년대, 동일방직 노동자들은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어용노조를 몰아내기 위해 싸움을 벌인다. 대부분 20대 꽃다운 여성들이었던 그들은 민주노조를 만들어 인간답게 살고자 몸부림쳤지만 방해세력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노조 대의원 선거가 벌어진 78년 2월, 회사의 비호를 받은 반대파 조합원들은 폭력을 행사하고 똥물을 투척하면서 선거를 무산시켰다. 노조 집행부는 항의하면서 명동성당에서 농성을 벌였다. 그 후 노사가 '복직보장과 구속자석방'에 합의하여 농성 조합원들은 회사 복귀를 앞두고 있었는데, 그해 4월 1일 회사쪽은 별다른 설명 없이 124명을 해고해버렸다.

이 해고자 명단은 전국 사업장에 배포되어 이들의 재취업은 막혀버렸다. 소위 블랙리스트는 노동운동의 통제 수단으로 오랜 세월 활용되었다. 더 충격적인 사실, 이와 같은 시나리오의 중심에 중앙정보부가 있었다.

이 사건은 의혹 속에 묻혀있다가 2000년대 들어 진실이 밝혀졌다. 노조의 대의원대회 무산, 조합원 해고, 블랙리스트 관리 등 일련의 조치에 중앙정보부를 필두로 경찰, 노동부가 적극 개입했던 것이다. 2001년 전직 중앙정보부원이었던 최종선씨의 증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해고 노동자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을 받게 되었다. 2006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위)는 "국가의 사과와 피해자 명예회복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하였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동일방직 해고자 중 17명은 올해 '대한민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 일부 승소했다. 20대 꽃같은 여성노동자들은 30여 년이 지난 2011년 법정에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 소송에서 국가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 "왜 당시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느냐"는 항변이다. 하지만 국가기관이 노조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지시하고, 또다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노조 통제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사실을 은폐해놓고도 이런 주장을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법원은 이 사건을 "노동권과 직업선택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을 수호할 의무가 있는 국가가 오히려 공권력을 불법 개입시켜 원고들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규정한 뒤, 그런데도 "국가가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권리남용에 해당해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서울중앙지법은 7일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불법행위를 구성하고 이로 인하여 원고들이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 것임이 명백하다"며 위자료 지급 판결을 내렸다. 1인당 위자료 액수는 2천만 원.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중앙정보부가 국가안전기획부로 다시 국가정보원으로 바뀌었다. 이름 말고 정말로 변한 게 뭐가 있을까.

'G20=쥐20' 포스터 낙서 무슨 죄?

G20 홍보 포스터에 쥐 그림이 그려져 있다.
 G20 홍보 포스터에 쥐 그림이 그려져 있다.
ⓒ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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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서울 시내에 붙어 있던 홍보 포스터 10여 개에 쥐그림을 그려 넣은 박아무개씨의 유죄판결이 확정됐다. 13일 대법원 상고기각 판결로 벌금 2백만 원 형 확정.

한마디로 'G20'을 '쥐20'으로 표현한 건 예술이 아니라 범죄라는 말이다. 무슨 죄일까. 비밀누설죄? 아니다. 대통령모독죄? 그런 죄는 없다.

바로 공용물건손상죄다. 공무소에서 사용하는 서류, 물건 등을 손상하면 징역 7년 또는 벌금 1천만 원까지 처벌할 수 있다. 공용물건은 파출소 무전기, 소방서의 소화기, 관공서의 차량, 시설물 등을 가리킨다.

포스터도 공용물건? 법원은 "그렇다"고 했다. 공무상 목적을 위해 공무소가 작성, 게시한 물건은 법으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 공용물건이라는 설명. 검사는 박씨에게 징역 10월을 구형했는데 법원은 1심부터 3심까지 벌금 2백만 원 형이 적정하다고 판결했다.

최근 동일한 죄목인 공용물건 손상으로 처벌된 두 사례를 더 보자. 먼저, 병원응급실에서 소란을 피우다 출동 나온 경찰에 앙심을 품고 경찰차를 주먹으로 때려 후사경을 깨뜨린 이에게 벌금 3백만 원 형이 떨어졌다 (10월 6일 대구지법 안동지원 판결).

또한 술에 취해 파출소(지구대) 출입문을 발로 2회 걷어차고, 주차된 순찰차량을 걷어차 뒷 문짝을 찌그러뜨린 취객에게 법원은 벌금 2백만 원 형을 판결했다(9월 16일 대전지법 홍성지원 판결). 

결과적으로 박씨의 행위는 법적으론 이들과 비슷한 수준의 범죄행위로 평가되었다는 말이 된다. 박씨는 자신의 행위가 그래피티아트(벽이나 화면 등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에 해당한다며 예술창작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지만 1심은 "다른 사람의 창작물, 게시판에 낙서하여 훼손하는 행위까지 정당화될 수 없다"고 답했다. 

항소심도 "국가정책에 대한 자유로운 토론과 비판은 당연히 허용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공무를 위해 설치된 물건을 모든 사람들이 임의로 변형시킬 수 있다면 물적 측면에서의 공무집행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이라며 유죄를 확인했다.

정부가 시민들의 풍자적 행위를 이해 못한다고, 법원이 예술을 모른다고 타박하지 마시라. 예술의 길은 배고프고 춥고도 험한 고난의 길이라는 깨우침을 주기 위한 시련일지도 모르니. 

책임 보험 미가입차량 타인이 운전하면 처벌은?

자동차 의무보험가입은 말 그대로 의무이다. 의무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은 자동차를 운행했다가는 보유자가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그런데 보유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운전했을 땐 어떻게 될까.

[사례 2] A씨는 아는 사람으로부터 자동차 1대를 넘겨받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차는 의무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상태였는데, 누군가 도로에서 운전하다가 경찰의 무인단속기에 걸려 적발이 되고 말았다. 검찰은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위반으로 A씨를 기소했다.

1심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차량이 무인단속에 걸렸던 그날 A씨가 직접 차를 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교도소에 수감중이었다. 하지만 검사는 "A씨가 직접 차량을 운행하지 않았더라도 보유자로서 형사책임이 있다"며 항소했다.
    
항소심은 단순히 운전자가 누구였느냐가 핵심이 아니라고 보았다. 법원은 "자동차의 소유자 또는 보유자는 통상 '자동차에 대한 운행을 지배하여 그 이익을 향수하는 책임주체로서의 지위'에 있는 것으로 추인된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운행지배와 운행이익이 완전히 상실되었다고 볼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이 밝혀낸 사실은 이렇다. A씨는 지인 B씨에게서 폐차 부탁을 받은 차를 계속 관리해왔다. 이 사건의 단속 당일엔 다른 사람이 몬 건 사실이나 그 전이나 그 후 계속해서 차량운행은 A씨 자신이나 가족이 해왔다. 2009년엔 A씨의 누나가 의무보험에 가입한 후 이 차를 몰기도 하였다. 법원은 "A씨가 지인으로부터 차를 넘겨받은 이래로 계속 차량을 직간접적으로 운행지배함으로써 '보유'하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수원지법 형사4부)은 A씨에게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 항소심의 판단은 자동차 보유자가 차를 직접 운전하지 않았더라도 직간접적으로 차량을 사용(지배)해왔다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으로 올라갔다.  

덧붙이는 글 |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반인을 위한 법률책인 <생활법률상식사전>(2010)과 <생활법률해법사전>(2011)을 펴냈습니다.



태그:#쥐20, #쥐포스터,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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