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한불영화제 홈페이지.

제6회 한불영화제 홈페이지. ⓒ FFCF


영화의 나라 프랑스, 그 수도 파리에서 한불영화제(10.11~18)가 열리고 있다. 영화를 사랑하는 순수 민간 한국 영화 협회인 '1886 협회(Association 1886)'가 주관하는 영화제다. 그동안 파리의 학생가인 캬르티에 라탱의 소극장에서 이루어졌는데, 6회를 맞은 올해는 유서 깊은 '셍 앙드레 데 자르' 소극장에서 열리고 있다.

올해 한국에서 흥행한 <써니>를 개막작으로 하여 일주일 동안 50여 편의 한국 영화가 상영된다. 이 중에는 17편의 단편 영화도 포함되어 있다.

영화제 주관자인 배용재씨는 한불영화제의 목적이 프랑스 관객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한국의 신진 감독들을 소개하는 데에 있다고 밝혔다. 임권택, 김기덕, 홍상수, 박찬욱 등 프랑스 관객에게 잘 알려져 있는 감독들의 작품은 일반 영화관에서도 자주 접촉할 수 있는데 반해, 이들의 뒤를 잇고 있는 무명의 신진 감독들은 프랑스에 거의 소개되지 않고 있다. 그러한 신진 감독들의 작품을 소개해 한국 영화의 다양성과 연계성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1886 협회'란 이름은 한국과 프랑스가 수교한 1886년에서 따온 것이다. 6년 전에 이 협회의 주축을 이룬 세 멤버가 개인 자금으로 이 영화제를 시작했다. 한불영화제는 어려움을 딛고 발전을 거듭해 이제는 일부 한국 기업과 파리 한국문화원, 한국관광공사 등의 협찬을 받고 있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파리 시의 광고 후원도 받았다. 그 덕분에 파리 각 지역의 게시판에 한불영화제 광고가 걸려 있고, 파리 시 사이트에서도 한불영화제 광고를 볼 수 있다. 

한불영화제는 한 해에 150~200여 개의 영화제가 열리는 프랑스에서 서서히 인정을 받고 있다. 올해는 <써니>의 강형철 감독과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 배우 정유미씨가 프랑스 관객과 대화하는 시간도 마련돼 있다.

프랑스에 한국 영화가 제대로 알려진 것은 2000년대 초반부터다. 그 전에는 임권택 감독과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 한국 영화를 대표했는데, 2004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가 칸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후 한국 영화가 프랑스 관객에게 한 걸음 가깝게 다가간 것이 사실이다. 이후 홍상수, 봉준호, 임상수, 이창동 감독의 작품들이 계속 소개되어 프랑스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특히 이창동 감독의 <시>는 프랑스에서 아시아 영화로서 최대 관객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작년 한불영화제에는 5000여 명의 관객이 다녀갔다. 올해는 영화제가 시작된 후 3~4일 만에 벌써 5000명의 관객이 다녀가, 영화제가 끝날 때까지 1만여 명의 관객을 모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소극장에서 진행되는 영화제로서는 많은 인원을 모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들 중 80%가 프랑스 관객이다. 한불영화제의 마지막 상영작은 18일 저녁에 관객과 만날 <마당을 나온 암탉>이다.

 한불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셍 앙드레 데 자르 영화관. 많은 관객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한불영화제가 열리고 있는 셍 앙드레 데 자르 영화관. 많은 관객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 한경미


<파수꾼> 윤성현 감독 "한국은 폭력에 둔감한 사회"

이번 한불영화제에 게스트로 초청된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을 만났다.

- 파리에 처음 온 건가? 분위기가 어떤 것 같나?
"파리에 처음 왔다. 개인을 존중하는 사회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가게들이 저녁 7시에 문을 닫는 걸 보고 그렇게 느꼈다."

- 외국에서 처음으로 본인 영화가 상영되는 건가? 느낌이 어떤가?
"처음은 아니다. 이미 아시아 지역에서도 상영되었고 유럽에서는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상영되었다. 파리에서는 처음이다. 느낌이 색다르고 흐뭇하다."

- 한국에서 프랑스 영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나?
"프랑스 영화하면 우선 누벨바그부터 생각한다. 지극히 예술성이 짙은 영화로 일부 영화 애호가들이 좋아한다. 대중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 한국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프랑스 감독을 든다면?
"일반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감독은 뤽 베송이다. 프랑스 영화 애호가들에게는 고다르, 에릭 호메르 등이 많이 알려져 있다."

- 프랑스 영화 많이 보나? 어떤 감독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나?
"많이 보지는 못한다. 트뤼포를 좋아하고 다르덴 형제 감독도 좋아한다."

- 이번에 한불영화제에서 <파수꾼>과 4편의 단편 영화가 상영되는데, <파수꾼>에 등장하는 고등학생들이 상당히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하고 있어서 충격적이었다. 실제로 요즘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그렇게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하나?
"내 영화에서보다 더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요새 고등학생들은 어떨지 몰라도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적에는 훨씬 더 폭력적인 일상을 보냈다. 난 오히려 절제를 한 편이다."

- 영화가 현실을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물론 본질은 같아야겠지만 표현에 있어서는 굳이 현실을 모방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 영화에서 기태가 희준에 대한 관심(사랑)을 폭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사랑이 동성애적인 것으로 보이던데, 맞나?
"육체적인 면으로 보면 그렇지 않지만, 정신적인 면으로 보면 일종의 동성애라고 볼 수도 있다. 청소년들에게는 친구 사회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니까 이런 사랑의 감정도 자연히 싹트게 된다고 본다."

- 그런데 기태가 희준에 대한 사랑을 폭력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뭔가?
"한국은 폭력이 많이 사용되는 사회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폭력에 둔감해진다. 폭력을 가하는 이들도, 당하는 이들도 그게 폭력인 줄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또한 관심이나 사랑을 폭력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 받아들여지는 사회다."

- 기태는 엄마 없이 아버지하고만 산다. 이러한 엄마의 부재가 폭력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본 건가?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

- 주인공인 세 학생의 가정 모습이 전혀 나타나 있지 않은데 의도적이었나?
"그렇다. 이 학생들이 부모 그리고 교사와 맺은 관계 등은 일부러 배제했다. 이들의 우정관계만을 포착하고 싶었다."

- 지금까지 찍은 영화들이 주로 교실에서 일어나는 청소년들의 세계를 그리고 있는데 이유는?
"한국 교실은 일종의 작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 사회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교실이라는 장소를 잡은 것이다. 난 사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데, 특히 약자에 대한 연민이 강하다. 한국 사회에서는 표면적으로는 남자가 강하고 여자가 약한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에 실제로는 남자가 약하고 여자가 강한 것 같다. 그래서 약한 남자의 이야기들을 그리는 것 같다."

- 차후 작품으로 어떤 영화를 생각하고 있나?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한 건 없다. 내가 SF영화, 판타지를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 완벽한 비현실을 잘 담아내는 팀 버튼 감독을 좋아한다. 팀 버튼의 동화적인 영화 <가위손>처럼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세계, 비현실을 통해 현실을 얘기해 보고 싶다."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

<파수꾼>의 윤성현 감독. ⓒ 한경미


"한국 영화, 시나리오·연기력보다 이미지를 중시하는 느낌"

윤성현 감독에 이어 한불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인 리카다를 만나 한국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 한불영화제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한불영화제에서 상영할 영화를 선택하는 일을 한다. 다른 두 명의 프로그래머와 1년 동안 200여 편의 한국 영화를 보는데 주로 2~3년 사이에 상영된 최근 영화들이다. 이 중에서 15편의 장편 영화와 17편의 단편 영화, 6편의 클래식 영화 등을 선정하고 있다."

- 영화 선정 기준이 무엇인가?
"한국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주로 선정하고 있다. 픽션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등 모든 장르를 통해 프랑스의 기존 영화관에서 상영되던 잘 알려진 한국 감독의 작품이 아닌 새로운 얼굴이 그려내는 다양한 한국 사회 모습을 다루는 게 콘셉트다."

- 한국 영화의 장점과 단점을 꼽는다면?
"한국 영화의 장점은 장르가 다양하고 시각적인 이미지와 미장센이 굉장히 강하다는 것이다. 단점은 김지훈, 봉준호, 박찬욱 감독들로 대표되는 상업적인 영화인들이 엄청난 예산 및 작업 면에서 많은 자유를 누리는 반면 독립영화를 만드는 영화인들은 작은 예산으로 자유 영역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들 수 있다."

- 한국 영화와 프랑스 영화를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한국 영화는 장르가 다양하고, 시각적인 이미지와 미장센을 시나리오나 연기자들의 연기력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느낌이다. 반면에 프랑스 영화는 장르가 다양하지 못해서 '프랑스 영화 스타일'이라는 딱지를 계속 붙이고 다닌다. 프랑스 감독들은 시나리오와 연기자들의 연기력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한국 감독들에 비해 야망이 적다."

- 프랑스에서 한국 영화가 차지하는 위상은?
"2000년대 초부터 한국 영화가 프랑스 관객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2004년에 <올드보이>가 칸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후 (프랑스) 영화인들 사이에서 한국 영화에 대한 이미지가 새롭게 구축된 것 같다. 현재 프랑스 관객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한국 감독은 박찬욱, 홍상수, 임상수, 봉준호, 김기덕, 이창동, 임권택 등이다. 프랑스에서는 1990년대에 일본 영화가 각광을 받았는데, 그 기세가 줄어들고 (대신) 2000년대에 등장한 한국 영화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느낌이다."

- 한불영화제에 오는 관객은 주로 어떤 사람인가?
"우선 파리에 사는 한국인들이 온다. 다음으로는 한국 영화를 좋아하는 애호가들이 있고 세 번째로는 모든 영화를 좋아하는 애호가들이다. 우리는 한불영화제를 통해 일반 영화 애호가들을 한국 영화 애호가로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 동네 주민들이 한국 영화를 보러 올 수 있게 다방면으로 길거리 홍보를 하고 있다. 또한 한국 드라마와 K-POP을 즐기는 한류 청소년들이 이 영화제를 통해 한국 영화를 알고 즐기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한국 감독은?
"김기덕과 봉준호를 좋아한다. 김기덕의 <빈집>과 <섬>,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을 인상 깊게 봤다."

 수석 프로그래머 리카다.

수석 프로그래머 리카다. ⓒ 한경미


한불영화제 파수꾼 윤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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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자유기고가, 시네아스트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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