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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1학년 시절의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고등학교1학년 시절의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 박원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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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77년 1월 대학에 합격한 직후 나는 시골어른들께 인사드리러 갔다. "어디 합격했노?" "서울대 사회계열입니다." "뭐시라꼬?" "...아, 예 법대 가려고..." "아 서울법대 들어갔나. 장하다." 이웃 어른들이 사랑채에 모였고, 큰아버님이 특히 으쓱해하셨다. "와, 우리 인셉이 서울법대 들어갔다. 장하다~~" 이렇게 나는 입학 이전에 우리 고을에서 이미 "서울법대"로 소문이 났다. 난 그걸 "그런갑다" 하며 받아들일 수밖에.

2.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하여 2학년때 법대에 진학했다. 법대를 졸업했지만, 우리가 몇줄 자기소개할 땐 사회계열 언급은 하지 않는다. 그냥 "서울법대졸"이라든가, 좀 더 길게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1977-1982)"라고 쓴다. 정확히 쓰면 "서울대 사회계열입학, 법대로 진입, 법대 졸업"이렇게 써야 하는데, 이렇게 쓰는 사람 1/100도 안될 게다(아니, 본 적이 없다).

서울대 입학 80일만에 감옥간 박원순

3. 그런데 전공 진입도 못하고 1학년때 제적된 학생도 있었다. 77학번 여균동(감독), 1학년 2학기에 데모 참가로 제적. 그는 뭐라고 자기소개를 쓸까. 그래도 여균동은 박원순보단 낫다. 2학기에 잘렸으니까.

가장 불쌍한 케이스가 박원순이다. 입학한 지 80일 만에 반유신시위에 참가했던 수천 명 중에 잡혔다고 제적. 세상에 단순가담조차 무자비하게 짜르던 유신체제의 폭압성에 치가 떨릴 지경. 이력서가 아닌, 만남에서는, 이 경우 자기소개할 방법이 별로 없다. "저는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하여...짤렸다" 이렇게? 사람들은 박원순이 '서울대 입학, 사회계열, 사법시험 합격, 검사...변호사...' 이렇게 알면서 자연스럽게 '서울법대 입학'이라 맘속으로 기억해버린다.

처음엔 시골어른들에게처럼, "저 법대입학까진 아닙니다..." 이렇게 부득부득 고칠려면 "뭐 그게 그거 아냐..." 자꾸 이런 반응 나오니 내버려둔다. 출판사도 그렇게 쓴다. 또 "아니 저는 그게 아니고..." 하면서 고쳐달라 하기도 하고, 방치하는 경우도 있었지 싶다.

4. 박원순은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한다. 단국대 재학중 1980년 '서울의 봄'이 왔다. 전국 대학에서 제명된 학생들의 복학이 허용되었다. 계열상태의 1학년 제적생은 갈 곳이 없었다. '사회계열'은 이미 폐지되었다. 대학측은 군사정권의 압력으로 학생을 무더기 제명한 터라 학생들에게 미안했다. 학생들은 자신이 원하는 학과를 전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다. 박원순이 복학 신청을 했으면, 서울법대가 그의 소속학과가 되는데 어떤 장애도 없었다. 

제적생들은 1980년 이후 원하는 학과를 선택할 수 있었다

5. 거의 대부분의 제적생들이 복학했다. 1학년 학생들도 복학하여 원하는 학과에 즉시 들어갔다. 그런데 박원순은 복학신청하지 않았다. 왜? 그가 '서울법대'라는 타이틀을 중시했다면, 당연히 복학하여 '서울법대'생이 되었을 것이다. 이미 그는 학력 타이틀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이 학벌지배의 한국사회에서 경이롭게 보이기도 한다). 

6. 독재와 싸우는 민주화과정에서 학생들의 희생은 엄청났다. 나중에 제적·정학당한 학생들이 복교하여 자기 학과를 찾아갔다. 재학중 민주화운동으로 사망한 학생들에게는 학교 차원에서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그런데 미아가 되어버린 학생도 있다. 바로 박원순 같은 경우다. '사회계열'은 1학년 용도이기에, 사회계열을 소속 학과로 말하기 어렵다. 뭐라고 지칭할까? 1980년의 학사방침("제적생은 그의 희망에 따라 과를 정할 수 있다")에 따르면, 그가 법대를 원할 경우 당연히 법대생으로 등록될 것이다. 학생의 소속을 이미 사라진 사회계열에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속도 없이 희생된 학생들을 찾아내어, 그 원상회복을 위한 구제조치를 하는 것은 학교의 의무이기도 하다. 비유하자면 그는 서울법대생이라고 주장할 확실한 채권을 갖고 있다. 그 채권을 현금으로 아직 안 바꿨을 뿐!

7. 그는 단국대 역사학과에 입학하여 졸업한다. 젊은 국사학자들의 연구를 지원하기 위해 "역사문제 연구소의 사무실"까지 쾌척하고, 소장한 장서 수만권까지 기증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80년대 말 당시 '한국최고의 현대사 콜렉션'이란 평가까지 받았다. 그가 종종 단국대 경력을 말하는 것을 듣곤 했다. 그의 주례는 단국대 장충식 총장이다.

8. 그는 이제 무슨 학력 내세워 이익을 얻을 수준에 있지 않다. 어느 대학 입학 따위로 후광을 더할 필요조차 없다. 법학저서로만 해도 한국의 웬만한 법학자가 도전장을 내밀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의 경력엔 "인권변호사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아름다운가게 희망제작소"가 들어있다. 거개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것이다. 자기과시 좋아하는 정치인이라면 자랑목록은 끝도 없을 것이다. 막사이사이상 공공봉사상, 불교인권상, 심산활동가상, 단재상까지 수상경력만 나열해도 충분하다. 한용운, 김창숙, 신채호...우리 민족독립사에 빛나는 인물을 기념하는 상을 두루 받은 인물은 그 말고는 없다. 이런 경력의 인사에게 "서울법대" 하나 더한다고 무슨 광영이 더 주어지겠는가(상금은 모두 사회단체, 외국단체에 쾌척했다. 쾌척한 상금만도 1억 원은 넘을 게다). 그는 사회활동에 집도 내고, 장서도 내고, 상금도 내고, 아이디어 내고 에너지를 냈다. 덕분에 그의 경제형편은 갈수록 가난해졌지만, 그 덕분에 사회는 갈수록 많은 혜택을 얻었다.

'고의적 학력조작'이 아닌 이유

9. 박원순 변호사가 자신의 학력에 대해 언론매체에 언급할 때가 종종 있었다. 가령 언론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을 때다. "박변은 서울법대 다니다 짤리고, 참여연대… 활동을 하면서 특히 느낀 점은 무엇입니까?" 그 때마다 "아 저는 서울법대는 아직 아니었고요, 서울대 사회계열이란 데를 다니다 짤리고요, 그 점 일단 정정하고, 에~ 지금 무슨 질문 하셨지요?" 매번 이렇게 자르고 가야 하나? 초점을 이탈해서 말이다(백지연의 케이블방송에서 인용되는 부분이 그렇다. 백지연이 진행의 초입에 학력 한번 말하고 본론으로 넘어가려는데, 서론에서 말끝마다 자르면 진행이 안된다. 다만 "예" 하고 지나가는 것이다. 방송에서 중요도 낮은 지나가는 질문에 일일이 토달고 교정하고 하는 초청인을 본 적 있는가? 백지연의 토크는 국회의 인사청문회와 다르다!).

10. 그 시대 대학을 다녔고 박원순을 아는 사람들(중견언론인 포함하여 아주 많다!)은, 박원순이 "대학 입학하여 첫 학기중에 잘렸다"는 것을 대충 안다. 1학년이라면 아직 "사회계열"이었다는 것도 알고, 그래서 누군가가 "박원순이 서울법대 1학년때..." 라고 누가 말하면, "아 그건 아니고..." 하면서 일부 수정할 필요를 느끼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11. 박원순은 서울법대에서 인기 강사로 정규 강의와 특강에 자주 초대되었다. 그의 삶의 궤적이 법조인 꿈꾸는 후학들에게 한 모델이 되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의 특강엔 법대생들이 늘 모여들었다. 그 때 그는 한번도 "나는 서울법대" 라고 자기소개한 적이 없다. 오히려 "여러분의 선배, 서울법대 출신들이 옛날 못된 짓도 많이 했다~"고 일침을 가하곤 했다. 

12. 자신의 저서에서는 "서울대"로 명기된 것도 있고, "서울법대"라 되어 있는 곳도 있고, 대학언급이 아예 없는 것도 있다. 그 중 대학을 전혀 언급 않은 유형의 책이 제일 많다.  '서울대+단국대'로 언급한 책과 '서울법대+단국대'로 언급한 책의 수가 비슷하다. '서울법대'란 말이 들어간 소개는 1/3이 안 된다. 2/3 정도는 '서울대 중퇴'라고 되어 있거나, 아예 '서울대' 언급을 쓰지 않았다. 단국대 언급은 거의 빼지 않는다. 책마다 자기소개가 다른 것은, 그가 '자기소개'에 무심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나경원의 주장처럼 무슨 '고의'로 '학력조작'을 했다고는 도저히 볼 수 없다(학력조작을 하려면, 40여 권 모두에 일관성있게 '서울법대'라 썼어야지!).

13. 공식홈페이지나 정확성이 요구되는 자기소개(가령 네이버 등)에는 "사회계열 다니다 제적…"이라고 쓰고 있다. 내 느낌엔, 그는 자기소개에 대해 둔감하다. 그에 대한 소개만 찾아도 수백개 이상 널려있는데, 일일이 전화걸어 "저는 서울대 사회계열..."이라면서 고쳐달라고 해야 하나? 그런 일에 대해 관심 자체가 없다. 신발이 어떻든 그냥 내버려두듯이. 대신 그는 현재의 일에 무섭도록 집중하고, 돌파한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박원순 야권단일 후보가 12일 오후 서울 정동 환경재단 레이첼 카슨홀에서 열린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지지·후원하는 전·현직 시민사회 대표자 기자회견'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열손가락으로 나비 모양을 만들며 활짝 웃고 있다.
이날 박원순 후보 지지 선언에는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전 상임대표, 성유보 민언련 전 이사장, 신필균 사회투자지원재단 이사장, 윤경로 한성대 전 총장, 윤준하 6월 민주포럼 대표, 이부영 민주평화복지포럼 대표, 이정자 여성정치포럼 대표, 이용선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전 공동대표, 이학영 한국YMCA전국연맹 전 사무총장, 조성우 민화협 공동의장, 주종환 민화련 이사장, 최영애 한국성폭력상담소 전 소장, 최병모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 등이 참여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박원순 야권단일 후보가 12일 오후 서울 정동 환경재단 레이첼 카슨홀에서 열린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지지·후원하는 전·현직 시민사회 대표자 기자회견'에서 지지자들과 함께 열손가락으로 나비 모양을 만들며 활짝 웃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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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이 갖고 있는 '서울법대' 기대권

14. 난 서울대 법대 교수가 되어, 그에게 "서울대 재입학 하지 않으려오" 하고 농반진반으로 말을 건넨 적이 있다. 이후에도 그가 '서울법대'라는 타이틀을 걸치고만 싶었다면, 제도상 당연히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어디로? 사라진 '사회계열'로? 거긴 갈 방법도 없다. '서울대법대 1학년 학생'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90년대 중반 때 그는 그런 학력을 운운하기에 너무 커버렸다. 법률실력, 변호사실력, 저서와 문장력 모두. '1학년 학생'이 아니라 교수로 모실 정도의 수준이 되고도 남았던 것이다. 그것도 최일류의 교수였을 것이다.

15. 이게 대체적 스토리다. 이게 무슨 "고의적 학력위조"라고 네거티브 공격을 받을 것인가. 다만 일부 저서에 '서울법대'란 것을 쓰도록 방치해둔 무심함(불찰)에 대해서는 비판받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서울법대 타이틀을 쓸만한 '채권'은 갖고 있다. 이걸 무슨 '학력조작'이라 밀어붙이는 것은 가당찮다.

16. 일장춘몽으로 끝난 그의 서울대 체험을 생각할 때 동시대의 인간으로 나는 뭔가 애잔해진다. "서울대 입학한 지 80일만에 감옥에 끌려간 열아홉 청춘"을 생각해보라. 미팅의 설렘으로 도서관에 있다가 데모에 참여하여, 제적의 벼락을 맞고 엄청나게 좌절했을 불쌍한 촌놈 신입생의 모습! 놀라운 것은 그가 좌절과 절망에 함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감옥에서 엄청난 공부를 하고 선배들로부터 집중학습을 했다. 그 때 잡혀간 선배들의 술회. "세상에 박원순같은 물건이 없다. 선배들의 지식을 스폰지처럼 받아들이던 괴물..."하면서 혀를 찼다고 한다. 좌절과 절망의 역경을 승화시킨 그의 불굴의 의지에 감탄한다. 가끔 헤매는 제자들이 내 연구실로 오면 이 일화를 들려주면서 분발을 촉구할 때가 있다.

* 필자 한인섭은 현재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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