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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100여 명이 워싱턴 시내를 행진하며 '디시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시민들 100여 명이 워싱턴 시내를 행진하며 '디시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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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백악관이 보이는 거리를 따라 걷고 있는 시민들.
 저 멀리 백악관이 보이는 거리를 따라 걷고 있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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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스트리트'로 대표되는 탐욕의 체제에 분노하여 열흘 넘게 타오른 민심의 불길이 워싱턴디시(DC)로도 옮겨 붙었다.

"DC를 점령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모여든 시민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있는 백악관에서 불과 두 블록 떨어진, 맥퍼슨 스퀘어 공원에 아예 이부자리까지 마련하고 장기전에 돌입했다. 웨스트버지니아에 사는 캐리 스톤씨는 집회 참석을 위해 200마일을 열흘 동안 걸어오는 열정을 보여 시위대를 놀라게 만들었다.

10월 1일 첫 집회를 시작으로 매일 두 차례씩 전체집회를 갖고, 오후 5시에 3마일가량 거리를 행진하는 것 외에 정해진 일정은 없다. 뚜렷한 목표 없는 산만한 투쟁이라 말하지만 이들의 메시지는 단순하고 분명했다. '99%에 해당하는 우리가 이 나라의 주인이고, 주인인 우리가 화났다'는 메시지로 요약된다. 이 분노는 미국 전체 부의 35%를 가지고 있는 최상층 1%에 대한 금융 규제를 완화와 감세 혜택으로, 나머지 99%는 더욱 가난해지고 있는 현실에서 비롯됐다.

"이 나라는 누구 것? 우리 것!" 

시위대를 향해 손을 흔드는 시민들.
 시위대를 향해 손을 흔드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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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9일, 시위대는 "우리는 99%에 속한 사람들(We are 99%)"이라고 외치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당신은?(how about you?)" 하고 되물었다. 시민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대열에 동참했다.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창문을 열고 환호했고, 차를 타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경적을 울려 지지를 표했다. "돈이 한 푼 없어 굶었던 적이 있다"고 대답한 가정의 비율이 30%에 육박하고(노스캐롤라이나), 당장 수입이 끊기면 6개월을 버티기 힘들다는 미국인이 4명 중 3명에 이르는 미국 사회의 현실이 시위대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었다.

시위대는 "권력은 누구에게 있지(Whose got the power)?, 우리에게(We got the power)"
등의 구호를 연달아 외치며 시민들의 각성과 참여를 촉구했다.

"이 거리가 누구 것(Whose street)?, 우리 것(Our street)."
"이 도시는 누구 것?(Whose city?), 우리 것(Our city)."
"이 나라는 누구 나라?(Whose country), 우리 것(Our country)."


조지매이슨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팻말들 만들어 들고나왔다. 시민들이 관심을 보이자 설명해주고 있는 모습.
 조지매이슨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팻말들 만들어 들고나왔다. 시민들이 관심을 보이자 설명해주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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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변호사인 에릭 씨는 사무실에 있는 서류 파일에 구호를 적어 목에 걸고 시위대와 함께 걸었다.
 현직 변호사인 에릭 씨는 사무실에 있는 서류 파일에 구호를 적어 목에 걸고 시위대와 함께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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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변호사인 에릭 로텍씨는 3일째 자발적으로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서류 파일에 어설프게 쓴 문구를 목에 걸고 시위대에 동참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도 99% 중 한 명이다. 보험료, 교육비, 주거비 등등을 빼면 아내와 내가 둘이 벌어도 빠듯하다.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게 자연스러운 것인데 이제 특별한 일이 되어버렸다. 나라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시위는 어느새 축제로

시위대가 '케이 가(K street)'를 가로질러 히스토릭 소사이어티 광장에 접어들자, 드럼을 치고 있는 '드러밍포저스티스(Drumming For Justice)' 그룹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이내 시위는 축제 분위기로 빠져들었다. 드러밍포저스티스는 인종과 민족과 계층의 벽을 드럼과 춤을 통해 뛰어넘어, 연대하고 하나 되기 위해 시작된 모임이다. 드러머의 손이 바빠질수록 시민들은 더욱 흥겹게 몸을 흔들었다.

드러밍 포 저스티스 멤버들이 드럼 연주를 하는 모습.
 드러밍 포 저스티스 멤버들이 드럼 연주를 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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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 연주에 맞춰 인간 띠를 만들고 춤추는 시위대.
 드럼 연주에 맞춰 인간 띠를 만들고 춤추는 시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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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오바마 대통령이 "월스트리트 시위는 미국인들의 좌절감을 보여준 것"이라며 시위대에 우호적인 반응을 보여서일까. 백악관이 지척인데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은 전무했다. 오히려 경찰은 경찰차 대여섯 대가 번갈아 앞뒤로 오가며 시위대의 행진을 에스코트했고, 시위를 마친 시민들은 경찰들과 악수를 하면서 공원으로 들어갔다. 5일째 노숙하고 있다는 한 시민은 공원에서 노숙하는데도 아무런 제재가 없었다고 말했다.

로비에 무너지는 정치인들을 견제하라

가두행진이나, 전체집회 외의 시간에는 공원에서 즉석에서 강좌를 열거나 좌담을 열면서 고민을 공유했다. '디시(DC)를 점령하라'는 시위는 타락한 금융자본뿐 아니라 이런 체제를 묵과하는 정계에도 화살을 돌렸다. 지난 수십 년간 되풀이된 정책적 실패와 정치인들의 부패의 고리를 겨냥했다.

시위대는 미국의 엄청난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민주공화 양당의 대표들로 특별히 조직된 '슈퍼위원회(Super committee)'에 대해서 감시와 견제를 강조했다. 정부 예산 지출을 대폭 줄이는 일을 앞두고, 주된 삭감 대상인 군수산업체 등의 로비가 치열하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은 정치권의 로비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기업이 얼마나 많은 돈을 로비 자금으로 사용하는지, 또 그 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등을 짚어갔다.

출출한 시민들을 위해 무료로 음식을 제공했다.
 출출한 시민들을 위해 무료로 음식을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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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식 저녁식사가 제공됐다. 기자 입장에서도 음식과 물, 잠자리까지 제공된 최상의 취재현장이었다.
 에티오피아식 저녁식사가 제공됐다. 기자 입장에서도 음식과 물, 잠자리까지 제공된 최상의 취재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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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현장에서 왕따당하는 <폭스>

시위가 점차 확대되자 주류 언론들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현장에는 보수 성향을 보이며 시위대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여온 <폭스>도 나왔다. <폭스>를 향해 대놓고 야유하는 이는 없었지만, 한 시민은 "<알자지라>와는 인터뷰했지만, <폭스>와는 거절했다"며 우회적으로 거부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일자리를 도둑맞았다는 문구로 실업난을 호소하는 시민들.
 일자리를 도둑맞았다는 문구로 실업난을 호소하는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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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 중에는 한때 열심히 오바마를 지지했던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구동성으로 실망했다고 평가했다.

지난 번 대선 때 오바마 캠프에서 활동하기도 했다는 에반스 데이비드씨도 자신을 "오바마에게 실망한 사람 중에 한 명"이라고 규정하면서 "철군, 부자 감세, 금융 개혁 등 공약대로 제대로 이뤄진 게 없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민들이 뭔가를 깨닫게 되는 시점이 온 것 같다, 이번엔 화가 많이 난 모양이다"면서 "오바마가 이런 움직임을 변화와 개혁을 위해 이용해주길 바란다"고 오바마 정부에 대한 기대를 남겼다.

가두행진이 끝나고 공원에 돌아온 시민들은 음식이 마련된 테이블로 향했다. 개인 혹은 단체가 기부한 음식들로 100여 명이 넘는 시민들이 배불리 먹었다. 현대판 오병이어(五餠二魚)의 현장이다. 마이크가 필요 없다. 누군가 메시지를 외치면, 모두 한 목소리로 복창하는 방식으로 전달한다.

가게 문을 닫고 이틀째 머무르고 있다는 닉씨에게 이런 종류의 저항운동을 경험한 적이 있냐고 묻자, 그는 "백악관이 있으니까 워싱턴디시에서 시위가 자주 일어나지만 이렇게 집에도 안 가면서 시위하는 것을 본 적은 없다"며 진풍경에 스스로도 놀랐다고 말했다.

시위가 끝난 뒤에는 즉석 공연도 펼쳐졌다. 미국의 패권주의로 세계가 몸살을 앓는 것을 풍자하는 내용이었다.
 시위가 끝난 뒤에는 즉석 공연도 펼쳐졌다. 미국의 패권주의로 세계가 몸살을 앓는 것을 풍자하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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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주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OCCUPY DC, #오바마, #월스트리트, #워싱턴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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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갈등전환센터 센터장 (서울시 이웃분쟁조정센터 조정위원, 기상청 갈등관리 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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