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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후보님.

연일 강행인 선거 운동에 건강은 어떤지 걱정되네요. 공인으로 살아간다는 게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지난 8일에는 선거 준비 때문에 대학 수시 모집 시험에 응시하는 따님을 수험장까지도 데려다 주지 못했다는 기사를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더욱이 그 따님이 다운증후군의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수험생 엄마보다 더 마음이 짠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또 장애를 가진 딸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더욱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였나요? 요즘 나경원 후보님이 장애인 문제와 관련돼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네요.

"시각장애인이 제일 우수"... 경악했습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서는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빛예술단 정기연주회에 참석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나 후보는 이날 행사 축사에서 "시각장애인이 제일 우수"하다는 발언을 해 논란을 빚고 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서는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빛예술단 정기연주회에 참석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나 후보는 이날 행사 축사에서 "시각장애인이 제일 우수"하다는 발언을 해 논란을 빚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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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에는 시각장애인 문화예술 행사에 참석해 "이제는 장애인이 먹고 자고 입는 문제만 말할 것이 아니라 문화를 향유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한 뒤 "시각장애인은 장애인 중에서도 제일 우수하며, 우리가 관심을 가질수록 더 역량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죠? 저 역시 시각장애인으로서 그 말을 듣고 기쁜 마음이 들어야 하겠지만 왠지 씁쓸해지는 건 왜일까요?

후보님 말씀이 맞습니다. 이제 장애인이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닌 문화도 향유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회를 줘야 한다"거나 "우리가 관심을 가지면 더욱 큰 역량을 발휘할 것" 이런 말에서 나 후보님의 인식이 읽혀 마음이 씁쓸합니다.

언제까지 장애인은 비장애인으로부터 끊임없이 관심을 '받고' 무언가 '줘야만' 하는 대상이어야 할까요? 기회 주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장애인이 이 사회에서 혼자의 힘으로 일어서려고 할 때 부딪히는 장벽만 사회가 책임지고 없애면 되지 않을까요?

사실 그것보다 더욱 경악한 것은 "시각장애인이 장애인 중에서 제일 우수하다"는 말이겠지요. 시각장애인이 제일 우수하면 두 번째는 어떤 장애일까요? 그리고 제일 열등한 장애인은 또 어떤 그룹일까요? 또 나 후보님 따님이 가지고 있는 다운증후군은 어느 수준에 속할까요?

시각장애인 문화예술 행사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발언은 아주 신중하지 못해 보입니다. 또 우수하다는 판단 근거는 무엇인가요? 장애인의 경쟁력을 가지고 서열 매기기를 하는 건 아닌가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나 인간이라는 자체의 고귀함보다 그저 경쟁에서 이길 수 있으면 우수한 존재가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어떤 목적을 위해서는 혹시 사람마저 수단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신가요? 12살이나 된 남자 장애학생을 알몸 벗겨 조명시설에 반사경까지 설치하고 카메라를 들이댄 일은 그런 오해를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연 혹은 해프닝? 그건 아닌 것 같네요

어쩌면 두 사건 모두 우연히 벌어진 일이거나 하나의 해프닝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장애인에 대한 나 후보님의 의식 단면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에 대해서만이 아니죠.

나 후보님의 여성에 대한 의식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지난 2009년 11월 진주에서 열린 '경남여성지도자협의회 정기총회' 강연이었던가요. 그때 나 후보님이 "1등 신붓감은 예쁜 여자 선생님, 2등 신붓감은 못생긴 여자 선생님, 3등 신붓감은 이혼한 여자 선생님, 4등 신붓감은 애 딸린 여자 선생님"이라고 하셨던 것 기억나시죠?

나 후보님은 인간에 대해 서열짓기를 좋아하시는 듯합니다. 아니, 나 후보님 마음 속에 그런 서열 매기기가 자신도 모르는 새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선거 유세를 하면서 만나는 서울 시민도 "이 사람은 몇 등, 저 사람은 몇 등"하며 서열 매기기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되네요.

부잣집 딸로 태어나 사람들의 관심 한몸에 받고, 판사에 이제 집권당의 서울시장 후보까지 오르는 등 나 후보님의 인생에서 험난한 고갯길은 없었겠지요. 그래서 인생에서 지치고 힘든 사람을 보면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것 아닌가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모두 못나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보이나요? 그래서 장애인 등수 매기기 발언이 나온 것 아닐까요.

"장애인 딸 둔 엄마로서"... 관심 끄세요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의 '중증장애인 알몸 목욕' 논란에 대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은 지난 9월 28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진정서를 제출했다.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의 '중증장애인 알몸 목욕' 논란에 대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은 지난 9월 28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진정서를 제출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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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후보님은 많은 언론보도에서 '장애인의 자녀를 둔 엄마'로 그려집니다. "나도 장애인 딸을 가진 엄마로서…"라는 나 후보님의 말이 마치 이명박 대통령이 "내가 해봐서 아는데…"처럼 들리는 건 왜일까요.

나 후보님. 간절히 그리고 엄중히 부탁드립니다. 장애인에 대해 관심 갖지 말아 주세요. 그릇된 의식과 판단을 가지고 대하는 관심은 오히려 상처가 됩니다. 장애인은 도구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 마냥 보살피고 무언가 끊임없이 베풀어 줘야 할 상대도 아닙니다. 모든 사람과 똑같이 웃고 울고 사랑하고 싸우는 존재입니다. 다만 조금 불편할 뿐입니다.

이 사회가, 특히 나 후보님 같이 많이 가지고 높은 위치에 계신 분들이 그저 그 불편한 장벽을 허물고, 장애인이 자신의 힘으로 내딛는 발걸음 앞에 있는 걸림돌을 제거하는 데 동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같이 없고 못난 장애인들보다는 경쟁력 있고 힘센 분들이 힘을 합치면 훨씬 수월할 테니까요.

그렇게 서로를 인정하고 힘을 합치려는  마음이 드실 때 진정으로 장애인에게 관심을 가져 주세요. 그럼 우리 장애인들도 나 후보님께 진정어린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태그:#나경원, #서울시장 선거, #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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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이 땅에서 소외된 삶을 살아가는 장애인의 삶과 그 삶에 맞서 분투하는 장애인, 그리고 장애인을 둘러싼 환경을 기사화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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