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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 미디어 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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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열풍이 거세다. 영화 <도가니>는 누구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실제 사건이 바탕이다. 장애 아동들에게 가해진 성폭행에 대한 분노가 이어지면서 '도가니' 열풍이라는 하나의 사회 현상을 낳고 있다.

나도 복합장애 1급 아들을 둔 장애아 부모다. 하지만 도가니 열풍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 왜일까.

영화 <도가니> 때문에 장애와 장애인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는 건 긍정적인 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의 경험만 놓고 보면 우려가 앞선다.

<도가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어떤가. 장애인의 문제, 장애인의 삶, 장애인의 현실에 대한 것이 아니라 '장애'를 가진 '어린' 학생들을 '성폭행'했다는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장애에 대한 인식의 변화보다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표현만이 넘쳐난다. 극장에 간판이 걸린 동안의 관심에 지나지 않겠나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명 '도가니 현상'이 장애인의 현실 전반에 대한 관심이 아닌 아이들에게 가해진 성적 학대, 폭력에만 초점이 맞춰진다면, 또 정치적 이유로 형성된 일회성 관심에 그치게 된다면 장애인 문제는 더 깊은 늪에 빠지게 될 것이다. 도가니 현상이 한편으로는 반갑고 다른 한편으로는 반갑지 않은 이유가 이 때문이다.

'제2의 도가니 사태'? 이건 정말 아닙니다

가장 걱정되는 중 하나가 장애인 문제에 대한 감정적인 대응이다. 당장 서울 노원구의 장애아동지원센터를 둘러싼 '제2의 도가니' 논란만 봐도 그렇다.

사건은 노원구의 한 장애아동지원센터의 센터장이 장애 아동을 폭행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청의 진상조사로 센터장이 장애 아동을 폭행한 사실이 밝혀졌고 센터장 또한 이를 인정했다. 이에 노원구청은 지난 9월 5일 해당 센터의 바우처 지정을 취소했다. 이후 센터장은 다른 사람에게 센터 운영권을 넘겼다.

문제는 운영자가 바뀐 해당 센터가 지난 9월 30일 신규 바우처 시설에 지정되면서 다시 불거졌다. 몇몇 부모들이 센터장과 센터 이름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문제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 하지만 노원구청은 기존 센터장과 바뀐 운영자 사이의 어떠한 인척 관계도 없고 장애아동을 폭행한 전 센터장이 운영에 개입할 시 지정을 취소한다는 단서조항도 있다고 밝혔다.

문제 제기한 부모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센터 매매에 문제가 없고 그 과정을 확인했다고 설명해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또 언론은 이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폭행 사실을 확대 해석해 '노원구판 제2의 도가니'라는 선정적인 제목으로 다루고 있다.  

법적인 판단을 의뢰했다면 폭행 사실만 다투면 될 일이다. 그런데 사안을 확대해 지역의 장애아동센터 전체가 폭행을 일삼고 있고 바우처 기관 선정에도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기사를 쓰는 게 과연 올바른 대응일까. 도가니 열풍에 편승해 기사 한 번 내고 보자는 식의 언론 보도는 장애 문제의 본질을 훼손하는 것이다.

이것이 센터 전체의 문제로 번지면서 이제는 다른 센터 이용자들과 교사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런 사례들이 늘어난다면 지역사회에서 장애인들이 함께 살아가는 환경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지지받을 수 있을까.

서울시 장애인 평생교육 예산 5200만 원, 말이 됩니까

지금까지 장애인 문제는 사회적 관심을 끌지 못했다. 광화문 사거리를 점거하고, 마포대교를 점거하고, 국회 계단을 기어오르며 서울 한복판에서 '장애인도 사람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쳐도 신문이고 방송이고 외면했다.

일 년 내내 집회와 농성을 하고 겨울만 되면 국회 앞에 텐트 치고 장애인 관련 예산 확보를 얘기해도 누구 하나 진정성을 가지고 다가오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 한 편으로 장애인의 인권을 새삼 거론하고 있다. '도가니법'을 만드느니 장애인 관련 범죄 양형을 강화하겠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가슴에 와닿지 않는 이유는 정말 가능할까 하는 의심병이 생겼기 때문이다.

일례로 장애인 교육을 살펴보자. 학교에 가면 장애인 교육은 뒷전이다. 성적과 입시 중심 교육에서 장애학생들에게까지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고등학교에도 특수학급조차 없는 학교가 더 많다. 통합교육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학교, 특수교육이 왜 특수교육인지 관심이 없는 학교, 특수교사가 부족하다고 아무리 외쳐도 눈도 꿈쩍 않는 교과부, '정당한 편의 제공'과 '관련서비스 제공'을 하라는 법조문은 예산과 인력 앞에서 뒷전으로 밀리는 현실이다.

성인기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이는 올 해 서울시 장애인평생교육 예산을 보면 알 수 있다. 서울시 전체 등록 장애인이 41만 명이 조금 넘고 그중 90%가 성인기에 있다. 하지만 2011년 서울시가 장애 성인을 위해 배정한 평생교육 예산이 5200만 원이라는 사실은 놀라움을 넘어 허탈하기까지 하다. 직업을 가지고, 지속적인 교육과 훈련을 위한 환경은 꿈도 꾸지 못하는 현실이 지금 장애인들의 삶이다.

선거 때면 우르르... 너무 익숙합니다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 삼거리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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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현상에서 가장 걱정이 되는 것은 기대치다. 이번엔 뭔가 바뀔 것이라는 기대치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장애인 스스로도 도가니 현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당장' 장애인 인권, 장애인의 미래, 직업, 자립생활 등 장애인들이 염원하는 것들이 실현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겨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기대감에 뚜렷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현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단지 만들어진 분위기에 편승해 가는 것이다. 이런 현상들은 선거 때마다 익히 경험했다. 후보들은 장밋빛 공약을 내세우며 표를 호소하지만 당선되고 나면 가장 소외된 계층의 욕구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도가니 현상으로 변화를 만들어 내겠다면 장애 문제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일시적인 현상을 가지고 마치 문제에 대한 답을 만들었다는 식의 자가당착은 안 된다. 단지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가해진 성폭력에 국한해 사건을 지엽적으로 만들어 가서는 안 된다.

장애인을 격리시키고 배제시키는 지금의 의식과 환경이 바뀌는 것이 우선이다. 장애인의 사회적 참여를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지에 대한 답은 만들지 않고, 단지 장애인을 사회적 '약자'로만 바라보면서 내놓은 인기 영합 발상들은 다시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기를 바란다.

장애인들이 마음 놓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안전하게 교육 받고 이동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어떻게 인정받을 것인지 하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도가니 현상을 바라봤으면 한다.

한 번씩 우르르 일어나 관심을 가지는 척하다가도 이내 돌아서는 대중 심리, 여기에 무임승차하는 정치인들의 인기성 발언, 자극적 제목으로 관심을 끌려는 언론과 방송의 태도는 제2, 제3의 도가니 사태를 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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