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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에서 최고 조사관으로 손꼽히던 강모 직원의 '계약해지'에 항의해, 인권위 직원 80여 명이 1인 시위, 언론 기고, 자유게시판 게시, 탄원서 제출 등을 진행했다. 인권위는 이 중 11명에 대해 9월 2일 자로 정직 및 감봉 1~3개월 등의 징계 처분을 내렸다. 이 사건은 표현의 자유를 앞장서 보호해야 할 인권위에서 발생한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징계자들은 공무원의 정당한 표현의 자유를 인정받기 위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정직' 처분을 받은 직원의 '정직한 일기'를 싣는다. [편집자말]
김밥재료 새벽에 일어나 준비한 김밥재료
▲ 김밥재료 새벽에 일어나 준비한 김밥재료
ⓒ 육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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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4일. 한 달간의 정직을 끝내고 출근하는 날이다. 스스로 '정직함'을 채우기에 부족한 시간이었으되, 현장의 '정직함'을 배우기에 넘치는 여정이었다. 그 사이 말라붙은 내 몸속에서 마중물의 기운이 돌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제주 강정마을에서 평택 쌍용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진솔한 언어와 뜨거운 열정으로 배움의 길을 열어준 분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또 감사해야 할 이들이 있다. 바로 내가 돌아가야 할 곳에서 일하는 인권위 직원들이다. 그들은 정직자들의 명절 휴가비와 징계자들의 소송비를 모금해 무려 1180만 원을 모았다. 매우 놀라운 일이고 몹시 송구한 상황이다. 정직자 4명은 동료들이 전해준 돈으로 명절을 쇠고 소송비용을 지불했다.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도 있는 법, 마음의 선물로 빚을 갚고 싶었다. 나는 오늘 그 일을 하기 위해 새벽 3시부터 부엌을 지켰다.

정직자들은 저마다 음식을 만들어 점심 뷔페를 차리기로 했다. 정직자 육성철은 김밥, 정직자 김원규는 떡, 정직자 박병수는 잡채와 전, 정직자 최준석은 주먹밥을 맡았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사실상' 해고자 강인영은 홍어회 무침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또 인권위 공무원으로 일하다 목수로 변신해 지리산에 정착한 임송 선배는 사과 3박스를 보내주었다. 이만하면 한 끼 점심식사로 나무랄 데가 없을 듯하다.

김밥 30줄을 만들기 위한 준비작업은 길었다. 그동안의 개인 최고기록이 20줄인지라 분량 조절이 쉽지 않았다. 시금치를 데쳐 참기름에 무치고 당근은 채로 썰어 볶았다. 계란을 10개 풀어 넓게 부쳐내고 햄은 약한 불에 살짝 익혔다. 깻잎은 물기를 뺀 다음 그릇에 담아내고 단무지, 참치, 연근, 맛살, 치즈는 서로 섞이지 않도록 접시로 옮겼다.

보온밥솥과 압력밥솥으로 세 차례 밥을 지었다. 처음 밥은 조금 되고 두 번째 밥은 다소 질었다. 두 밥을 절반씩 섞으니 그런대로 물기가 맞았다. 나는 오래 전 종로의 어느 김밥 전문점에서 자신을 '김밥 달인'이라 칭한 분으로부터 김밥의 정석(?)을 사사받은 일이 있다. 오늘도 그분이 일러준 대로 소금, 참기름, 깨소금을 순서대로 넣고 비볐다. 밥알이 뭉개지지 않도록 시종일관 주걱을 꼿꼿하게 세우라는 달인의 비법도 잊지 않았다.

야채김밥, 치즈김밤, 참치김밥을 스무 줄 만들고 마지막으로 누드김밥을 말았다. 김과 밥이 만나 김밥이 된다는 점에서 누드김밥은 보통김밥과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김과 밥이 잠시 자리를 바꾼 것만으로도 묘한 느낌을 받는다. 검은 김도 운이 없으면 뒤에 가릴 수 있고, 하얀 밥도 때를 만나면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색깔의 반전 때문일 것이다.

김밥 30줄을 썰어 도시락에 담았다. 이제 가족들의 아침식사를 준비할 시간이다. 남은 재료를 모아 야채김밥, 치즈김밥, 누드김밥을 한 줄씩 말았다. 두 아들은 누드김밥, 치즈김밥, 야채김밥 순으로 젓가락을 옮겼고, 어머니는 도시락에 들어가지 못한 김밥 꼬투리를 드셨다. 마지막으로 나는 여러 그릇에 남아 있는 옆구리 터진 김밥을 깨끗이 비웠다.

어머니는 한 달 만에 출근하는 아들에게 "몸조심해라"는 딱 한마디만 하셨다. 내가 경찰에 붙잡혀 갔을 때도, 군대에서 죽다 살아났을 때도, 폭설경보를 무시하고 백두대간으로 떠났을 때도 그렇게 말하신 분이다. 두 아들은 아빠가 더 이상 아침에 데려다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입을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좀 더 쉬면 안 돼?"라고 물었다. 이 순간 끌어안고 뽀뽀하는 세리머니를 꿈꾸었지만 두 놈 모두 징그럽다며 잽싸게 달아났다.

지리산에서 올라온 사과 3박스와 김밥 30줄을 싣고 차를 몰았다. 창문을 여니 가을 기운이 완연하다. 피켓을 들고 언론에 기고한 것은 겨울이었다. 조사를 받고 부당함에 항의한 건 봄이었다. 징계를 받고 정직이 결정된 건 여름이었다. 법의 판단을 받고자 소송을 진행하는 건 이 가을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정직기간 중 가장 자주 들었던 강허달림의 <기다림, 설레임>을 틀었다.

'기다림 속에서도 활짝 웃을 수 있겠지. 아무렇지 않는 듯 흘러버린 시간들 공간들도 얘기할 수 있겠고, 그래 기다림이란 설레임이야. 말없이 보내주고도 기쁠 수 있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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