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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의 선을 넘어갑니다. 제가 다녀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질 것이고, 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 저의 이 걸음이 분단의 벽을 허물고, 민족의 고통을 넘어 평화와 번영의 길로 가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줄 알았다. 그때만 해도 자연스러운 일 같았고, 그다지 어려운 일 같지도 않았다. 군사 분계선을 넘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상이 그러했다. 허나 꼭 4년 만에 '금단의 선'은 형편없이 헝클어져 있고, 그 장벽 또한 까마득히 높게만 느껴진다. 아니, 그렇게 됐다.

10.4 남북정상선언 4주년 기념식이 열린 4일 저녁. 이번에는 문재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이 인천시청 중앙홀 연단에 섰다. 문 이사장은 "당시 남북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으로서 가슴 벅찼던 기억이 새롭다"면서 이날 행사 진행을 맡은 김창호 전 국정홍보처장 표현 그대로 "절절한 말씀"을 이어갔다.

문재인 이사장 "이명박 정부 대북 정책은 총체적으로 실패"

축사를 하고 있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축사를 하고 있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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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에서 수없이 많은 것이 퇴보하고 거꾸로 갔습니다. 남북관계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6.15 선언과 10.4 선언 성과를 토대로 해서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가 추구했던 동북아와 한반도 평화 번영의 시대라는, 담대하고 가슴 벅찬 비전들이 모두 시들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은 총체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안보는 곳곳에서 구멍이 났습니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태에서 이명박 정부가 보여준 것은 치욕스러운 안보 실패와 안보 무능입니다. 국민들은 이명박 정부의 안보 능력을 믿을 수 없게 됐고, 전쟁의 불안에 떨게 됐습니다. 인천 앞 바다가 다시, 분쟁과 공포의 바다로 되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낙담만 하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역주행을 결코 이대로 놔둘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남북 관계의 파탄이야말로 10.4 선언의 소중한 가치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안보에 있어서도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정부가 훨씬 유능하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줍니다.

이명박 정부도 파탄 난 남북 관계를 바로 잡으려면 이제라도 10.4 선언을 받아들이고 이행하는 자세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6.25 전쟁 이후 역대 정부는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을 통해 평화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거듭해왔습니다. 어느 정부도 이전 정부들이 이룬 성과를 부정하지 않고 그 성과 위에서 자신의 성과들을 더 해 갔습니다.

"이전 정부 성과를 외면하고 거꾸로 간 정부는 이명박 정부 뿐"

4일 인천시청 중앙홀에서 열린 '10.4 남북정상선언 4주년 기념식'
 4일 인천시청 중앙홀에서 열린 '10.4 남북정상선언 4주년 기념식'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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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정부의 7.4 공동성명, 노태우 정부의 남북 기본 합의서, 김대중 정부의 6.15 선언과 노무현 정부의 10.4 선언은, 모두, 이전 정부들이 이룬 성과들 위에서 그 성과들을 더욱 발전시켜 나간 것들이었습니다. 이전 정부들이 이룬 성과들을 부정하고, 외면하고, 거꾸로 간 정부는 이명박 정부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물론, 분단된 조국을 다시 하나로 만드는 통일입니다. 그러나 통일은 우리의 노력만으로 되는 일은 아닙니다. 국제 정세와 여건이 맞아 떨어져야 하며, 역사적 운도 따라줘야 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평화는, 우리가 노력하면, 우리가 노력한 만큼, 이룰 수가 있습니다. 그래야만 통일을 바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정부는  통일을 바랄 것이 아니라, 평화에 목표를 둬야 합니다. 이전 정부들이 이룬 성과 위에서 평화를 더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야말로 모든 정부의 역사적 책무이고, 또 헌법적인 책무입니다. 이명박 정부에게, 남은 기간 동안이라도, 남북 간 평화를 복구하는 일에 최선의 노력을 다해줄 것을 촉구합니다."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바통'은 이날 행사를 주최한 인천광역시의 송영길 시장이 이어 받았다. "10.4 선언 4주년을 맞은 오늘, 찬란한 역사를 만들어 낸 두 분 전직 대통령께서 이 자리에 함께 계시지 않은 것을 슬퍼하는 것은 저 뿐만이 아닐 것"이란 말, 연단 중앙 앞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있던 이희호 여사와 권양숙 여사의 얼굴이 쓸쓸해 보였다.

송영길 시장 "우리가 살아갈 유일한 방법은 한반도 평화 공존"
김진표 원내대표 "홍준표 대표 방북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연단 앞 중앙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이희호 여사와 권양숙 여사. 이 테이블에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송영길 인천광역시장,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연단 앞 중앙 테이블에 나란히 앉은 이희호 여사와 권양숙 여사. 이 테이블에는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송영길 인천광역시장,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등이 자리를 함께 했다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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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시장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역사에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뤘지만, 무엇을 이뤄냈는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며 "한반도의 평화 공존과 통일은 우리가 살아갈 유일한 방법이다. 전쟁의 위협 앞에서 가장 고통 받는 존재는 바로 우리 국민, 우리 민족이기 때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송 시장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은 민족 생존의 길이자 경제도약의 전제조건이며, 우리 사회와 민주 발전의 기초"라며 "인천시는 남북 관계 발전을 위한 이러한 철학과 자세를 견지해 나갈 것이다. 서해에서 시작된 평화의 물결이 남북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아시아 대륙을 넘어 세계로 뻗어 나갈 때 그 중심에 인천이 있음을 자랑스럽게 말하겠다"는 말로 각오를 밝혔다.

그 다음은 문 이사장과 송 시장의 '각오'에 정치권이 답할 차례였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먼저 "4년 전 오늘 군사분계선을 넘던 노무현 대통령 내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그러나 지금의 현실을 생각하면 답답하고 안타깝기 그지없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김 원내대표는 "지금이라도 10.4 선언과 6.15 선언 정신으로 돌아가 남북 화해 협력의 물꼬를 터야 한다"면서 "최근 북한을 다녀 온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행동이 진정성을 인정받으려면 최소한의 인도적 식량 지원 등 촉구사항을 시급히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희 대표 "통합과 연대로", 유시민 대표 "통합 단결로 불의 심판하자"

'평화의 인사' 건배를 나누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평화의 인사' 건배를 나누는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와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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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연단에 선 정당 대표들은 '통합과 연대'를 강조했다. 먼저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는 "오늘은 내 기억 속 노무현 대통령 임기 중 가장 빛나는 날"이라며 "또 이틀 후 노 대통령이 도라산역에서, 거뭇거뭇한 어둠 속에서 했던 연설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고인에 대한 추억을 회상했다.

그리고 이 대표는 "통합과 연대의 길, 이것이 우리가 가야할 길"이라면서 "부족함이나 아직 이루지 못한 일이 많지만, 2012년 국민들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고 가야한다고 본다.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말로 박수를 받았다.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의 인사말은 더욱 '셌다'. 먼저 유 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이 정권으로부터 어떤 기대도 하지 않는다"며 "4년간 통일부가 한 일은 대변인이 TV에 나와 북한을 비난하는 성명을 한 것 말고 도대체 무엇이 있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유 대표는 "6.15 선언과 10.4 선언의 부활을 원하는 사람들이 할 일은 함께 손을 잡고 정권 교체를 이뤄내는 것"이라며 "민족의 미래를 확신하는 사람들이 통합하고 단결하고 연대해서 이 불의한 권력을 심판하고 국가 권력을 되찾자"고 말해 역시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권양숙 여사·송영길 인천시장 '평화의 쌀' 전달식도 열려

봉하·강화쌀을 대북 지원단체에 전달하고 있는 권양숙 여사와 송영길 인천시장
 봉하·강화쌀을 대북 지원단체에 전달하고 있는 권양숙 여사와 송영길 인천시장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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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노무현재단과 인천광역시가 주관한 이날 행사에는 정치인, 학자, 시민사회단체, 시민, 공무원 등 약 5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인천 대학생 대표의 10.4 남북정상선언문 낭독, 인천어린이합창단의 축하공연 등 이채로운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됐다.

특히 권양숙 여사와 송영길 인천시장이 봉하·강화쌀을 대북 지원단체에 기증하는 '평화의 쌀' 전달식도 함께 열렸다. 공식 행사는 김병삼 천주교 인천교구 몬시뇰 신부의 '평화의 인사'와 건배를 제의하는 것으로 마무리됐으며, 참가자들은 봉하쌀로 지은 연잎 주먹밥 등을 메뉴로 '평화의 만찬'을 즐겼다.

이날 행사에는 김우식 전 교육부총리, 이재정·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윤광웅 전 국방부 장관, 장하진 전 여성부 장관, 김만복 전 국정원장, 백종천 전 청와대 통일외교안보정책실장, 천호선 전 청와대 홍보수석, 염상국 전 경호실장, 서주석 전 외교안보수석 등 참여정부 인사들이 대거 참여했다.

또한 신계륜·신학용·원혜영·유인태·유필우·허운나·홍영표 전현직 국회의원을 비롯, 이기명 전 노무현 대통령 후원회장, 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 등 재야 친노 인사들도 다수 눈에 띄었다. 김만수 부천시장, 김영배 성북구청장 등 현직 지자체장도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태그:#노무현, #문재인, #10.4 남북정상선언, #인천시, #남북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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