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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은 기자다. 모든 블로거, 트위터리언, 그리고 페이스북 유저 역시 시민기자다. 이들은 때론 정규군보다 빠르고 깊이가 있다. 기존 문법을 파괴하는 촌철살인과 감각적 글쓰기. 뉴스게릴라들은 하루에도 수차례씩 인터넷 생태계 곳곳에 출몰해 융단폭격을 퍼부으며 의제를 설정한다. 바야흐로 시민기자 전성시대다. 김병기 뉴스게릴라본부장(편집국장)이 곳곳에서 활약중인 시민기자들을 만났다. [편집자말]
무개념 아줌마, '개소리' 좀 들어보실래요?

신경호(4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신경호(4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 오마이뉴스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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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호(43) 시민기자가 지난 7월 21일 쓴 기사의 제목이다. 조회수는 30만. 대박은 아니지만, '중박' 정도는 된다. 개를 의인화한 편지글 형식. 지하철에 안내견을 데리고 탄 시각장애인에게 막말을 퍼부었던 '무개념 아줌마'에게 보내는 개념찬 쓴소리다.

편집국에서 시민기자들에게 권하는 무공 중의 하나는 기사쓰기 공식 파괴. 말은 쉽지만 이를 몸소 실천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김미선 편집부장은 그의 정체가 궁금했나 보다. 이 코너의 3번째 초대 손님으로 그를 적극 추천했다.

그런데 헐-. 그와 전화 통화를 한 뒤 김 부장이 "신 기자님은 1급 시각 장애인"이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의 지난 기사를 훑어보니 14편 모두 시각장애인 관련 기사다. 시각장애인 전문기자? 그를 만난 뒤에 안 사실인데, 위의 기사를 쓰는 데 20여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전광석화 같은 무공이다. 대체 어떻게 컴퓨터 화면에서 글을 읽고, 기사를 쓰는 것일까?     

지난 9월 16일 저녁, 대전 서구의 한 빌라 앞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자신의 큰 딸 신비(6세)의 손을 잡고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한 손에는 흰색 지팡이를 들었다. 그는 서울에서 내려온 취재진을 배려해 식사를 하면서 인터뷰할 것을 제안했다. 2시간여 동안 그와 보쌈을 먹으면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시각장애인들이 읽기에 조금이라도 편할 수 있는(?) 구술 방식으로 인터뷰를 정리했다.

모든 빛은 나에게 추억이 됐다

망막색소변성.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병명이다. 내 나이 스물 다섯에 이 병이 눈 안에서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망막에 맺힌 상을 인지해 시신경에 전달해 주어야 할 시세포가 하나둘씩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의학으로는 이 병을 치료할 수 없다. 세포가 죽어가는 속도를 늦추는 약은 개발되어 있는데 그리 신통치는 않다. 

모든 빛은 나에게 추억이 됐다. 나의 닉네임은 '두물머리'. 망막에 상이 제대로 잡히던 젊은 시절 즐겨찾던 장소였다. 서울 중랑구 신내동에 살았는데 시간이 나면 버스를 타고 양수리역에 갔다. 거기서 1km 정도 걸어가면 북한강과 남한강의 합수머리가 나온다. 강물을 바라보며 구멍가게에서 캔맥주를 사서 먹기도 하고 아름드리 느티나무 밑에서 책을 읽기도 했다.

이제는 그 눈부신 강물을 육안으로 볼 수 없다. 서른 살이 되어서는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 글씨가 희미해졌다. 33, 34살에는 컴퓨터 화면을 비롯해 모든 활자를 볼 수 없었다. 요즘은 대낮에 횡단보도에 있으면 하얀선이 희미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런데 나의 뇌세포는 시간이 더할수록 빛에 대한 과거의 기억을 더욱 선명하게 퍼올리고 있다.

시력이 건재했을 때의 마지막 직장은 건강보험 심사평가원(과거 의료보험 연합회)이다. 7년여간 행정직-전산직으로 업무를 했고 비상근 노조 일을 하면서 노보를 제작했다. 직장을 나와 마포에서 술집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시력을 잃은 뒤에는 그것조차 할 수 없었다. 절망감이 압도했다. 거의 1년여동안 문을 걸어잠그고 집안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세상과 소통을 단절했다. 라디오만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의 귀는 나의 눈을 대신해 주었다. 시세포가 죽어간다고 내 몸의 모든 세포를 다 포기할 수는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이 되어준 것은 라디오를 듣다가 우연히 알게된 '스크린 리더'(screen reader). 컴퓨터 화면에 떠있는 글을 나의 시세포 대신 읽어주는 프로그램이다(시각 장애인들에게 화면의 내용과 자신이 입력한 키보드 정보나 마우스 좌표 등을 음성으로 알려 주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

가령 거의 매일 들어가는 <오마이뉴스>의 경우 화면에 보이는 페이지의 텍스트를 위에서부터 쪽 내려가면서 스크린 리더가 읽어준다. 무엇이 메인 기사인지는 모르고, 이미지가 많거나 플래시의 경우는 접근이 안 되기도 하지만, 기사의 중요도는 조회수 등으로 판단할 수 있다. 스크린 리더는 글을 쓸 때도 아주 유용한 도구다. 학교에서 전산공부를 했던 나는 손쉽게 그 기능을 익혔고, 정보문화진흥원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가 벌이는 장애인정보화사업에서 방문강사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지난 2006년 외국 유학생 장애인으로서는 최초로 도쿄대 박사학위를 받은 아내 전영미씨를 만났고, 나는 지금 일본 츠쿠바기술대학에서 침구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요즘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면서 일본의 인터넷 신문 'JPNews'(http://www.jpnews.kr/)에 고정칼럼 '신경호 전영미의 베리어프리'를 연재하고 있다. 

활자를 본 지가... 띄어쓰기가 가장 어렵다

ⓒ 오마이뉴스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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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2005년 10월 '장애인에게 여행의 자유를'이라는 공모에 참여하면서부터다. 여행 공모기사가 당첨돼 '공짜'로 일본을 다녀왔고, 그 부채감 때문(?)에 그 해 11월 시민기자가 됐다.

그 뒤 1년동안 기사를 쓸 엄두를 못냈는 데 2006년 10월 17일 용기를 내서 "LG 공익사업에 LGT 가입자만 찬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나의 첫 작품이기도 한 이 기사에는 김시연 상근기자와 공동 바이라인이 달렸는데, LG 쪽의 반론 등이 필요해서였다. 

취재할 때는 주로 전화를 활용한다. 또 인터넷 서핑도 즐겨한다. 인터넷 상에서 화제가 되는 사안을 선택해 관련자들을 상대로 전화 취재하고, 크로스 체킹도 한다. 주장성 기사를 많이 쓰기 때문에 취재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는다. "안내견인데...신성한 국회라 동물은 안된다고?" 제목의 기사는 관련자들과 일일이 전화 취재하느라 식은땀을 뺐지만, '무개념 아줌마' 기사는 칼럼성 글이어서 15~20분 정도에 기사를 마무리했다.    

기사를 쓰는 데 가장 어려운 부분은 띄어쓰기다. 눈으로 활자를 본 지가 10여 년 됐다. 일반 사람들의 경우는 띄어쓰기가 쉬울 수 있는데 나는 활자에 대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스크린 리더기로 교정을 하다 보면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곤 하는 데 확인해보면 어김없이 맞춤법이 틀렸거나 띄어쓰기가 잘못된 것이다.

지금까지 쓴 기사는 모두 14개. 그 중 가장 애착이 가는 기사는 "듣지도 보지도 못하지만 공부할 수 있어요" 제목의 기사다. 10여 평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조영찬씨가 시청각장애인 최초로 나사렛대학교에 합격했지만 등록금을 조달하기 어려운 형편을 담은 내용이다. 이 기사가 나가고 난 뒤에 여기저기에서 후원이 이어졌다. 전에는 방구석에만 있었던 조씨는 지금 대학 4학년인데, 다큐 영화에 출연하고 신학공부도 하면서 한국의 시청각장애인의 실상을 알리고 있다.

'무개념 아줌마'는 사실 잔머리를 굴리며 쓴 기사다. 현안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작년에 내가 펴낸 창작동화책 안내견 '리버'(도서출판 창해)를 홍보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나의 꼼수'를 간파했는지 편집부가 제일 뒷부분에 적어놓았던 나의 책 소개를 빼 버렸다. 어쨌든 이 기사는 나의 최고 기록이었던 "이근행 PD 쫓아낸 김재철 사장은 참 나쁜 사람" 기사가 기록한 3만 클릭의 10배 가깝게 읽혔다. 시민기자의 힘이다. 무엇보다 이렇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겐 큰 기쁨이다.

귀족-슈퍼-거지-바보 장애인을 아시나요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오마이뉴스의 모토가 마음에 들어 시민기자를 가입했는데, '시각장애인 전문기자'라는 평가를 받기엔 아직 많이 부족하다. 우선 2004년에 한국에서 장애인으로 등록을 했는데 2년 뒤에 일본을 건너가서 한국 상황을 잘 모른다. 또 난 장애인계의 마이너다.


장애인은 4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귀족', '슈퍼', '거지', '바보' 장애인. 귀족 장애인은 시각장애인의 세계에서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다. 슈퍼 장애인은 장애를 극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이다. 장애인계 안에 있지만 장애인이 아닌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거지 장애인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요구만하고, 바보 장애인은 아무런 정보도 취하지 못하고 그냥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난 귀족 장애인들의 권력을 감시하면서 장애인계 전체를 위해 보다 나은 사회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다. 단편적일지라도 곳곳에서 분투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삶을 소개하고 그들의 입장을 알려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에 침구사 제도가 만들어지는 데 보탬이 됐으면 좋겠다. 일본에서 침구학을 배운 뒤에 이를 한국에 심고 싶다. 한국의 시각장애인들은 한의사와의 힘의 싸움에서 밀려 침을 놓지 못하고 있다. 침구학에 대한 논문도 제대로 없고 이론적으로 일천하기 때문이다. 또 시각장애인의 안마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특수학교에서는 침교육도 실시하고 있는데 자신의 전공과목이 아닌 영어-수학 등의 교사가 이를 담당하고 있다. 그런 교육 기관에서 일하고 싶은 욕심도 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두 가지다. 시각장애인으로서 <오마이뉴스>의 접근성은 다른 곳에 비할 때 크게 떨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편집국장이 된다면 국제적인 웹 표준인 'W3C'를 제대로 지키고 싶다. 우리나라에도 '한국형 웹 표준형 지침'이 마련되어 있는 데 제대로 지켜지지는 곳이 별로 없다. 

또 내가 쓴 기사의 원고료를 나만 타갈 수 있는 데, 비영리단체에 기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 내가 쓰고 싶어서 쓴 기사인데 돈까지 준다니... 이럴 때에는 문득 남을 위해 착한 일을 하고 싶다.   

신경호(4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와 그를 인터뷰하고 있는 김병기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본부장.
 신경호(43)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와 그를 인터뷰하고 있는 김병기 오마이뉴스 뉴스게릴라본부장.
ⓒ 오마이뉴스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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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가 짧게 정리한 신경호 시민기자의 이야기다. 최근 필자는 아내와 함께 영화 <도가니>를 봤다. 새벽 3시 넘어서 영화관을 나서면서 불현듯 떠오른 단어는 '팩트'였다. 영화보다 더 충격적이고 적나라한 팩트의 힘이 지금 온 나라를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공지영 작가가 영화를 통해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면, 신경호 시민기자는 기사를 통해 일상적으로 장애인들의 삶을 조명하는 '시각장애인 전문 시민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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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딸 신비를 위해 처음으로 동화를 쓰기 시작한 신경호 시민기자는 2006년 '앞 못보는 호랑이'로 제6회 설중매 신춘문예 동화 부문 대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이후 계간지 '솟대문학'에 <아빠가 들려주는 동화>를 연재했고, 2008년 첫 동화집 '참돌이의 여행'에 이어 2010년에 '리버'를 출판했다. 지난 2008년 'MBC 휴먼다큐 사랑'에 <우리 신비> 편으로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 소개되기도 했다.



태그:#신경호, #시민기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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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환경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10만인클럽에 가입해서 응원해주세요^^ http://omn.kr/acj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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