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맛집, 관광지 등은 물론이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낱낱이 보여드립니다. 10월, 첫 번째 지역투어 현장은 대전충남충북입니다. [편집자말]
28일 이종민 소장이 자신의 농장을 방문한 경기도 원당의 농협대학 학생들에게 고추재배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28일 이종민 소장이 자신의 농장을 방문한 경기도 원당의 농협대학 학생들에게 고추재배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 이화영

관련사진보기


고추밭에 고추가 없다.

올해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린 탓에 탄저병, 역병 등 병충해로 대부분의 고추 농가 수확량이 급감했고 아예 수확을 포기한 농가도 나오고 있다.

첫 수확 때인 지난 8월 초까지만 해도 600g(1근)에 8000원 씩 직거래 되던 고추 가격이 품귀 현상을 보이며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최근 2만2000원까지 뛰면서 고소득 효자 농작물 반열에 올랐다.

고추의 주산지인 충북 음성군, 이 지역은 1960년대 말 전국 최초로 밭에 두둑을 쌓고 비닐을 씌워 고추를 수확하는 '비닐멀칭 재배법' 개발해 명성을 얻은 지역이다.

이 지역 고추는 농림수산식품부 주관 농산물 파워브랜드 대전에서 4회 연속 표창을 수상했다. 또 소비자가 뽑은 세계명품브랜드 대상 3년 연속 수상, 울진세계친환경엑스포 품평회 대상을 수상하는 등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음성군도 비와 병충해는 비켜가지 않았고, 수확량이 급감한 건 다른 지역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약속 지키는 고추 박사

28일 이종민 충북고추연구소장 자신이 생산한 고추를 들어 보이고 있다.
▲ 이종민 충북고추연구소장 28일 이종민 충북고추연구소장 자신이 생산한 고추를 들어 보이고 있다.
ⓒ 이화영

관련사진보기

"고추 가격이 뛰었다고 값을 올려 받을 수 있나요. 나를 믿고 거래하는 소비자와 무언의 약속을 지켜야죠"

'고추대통령' '고추농사의 달인'으로 통하는 이종민(59)씨의 말이다. 충북 음성군에서 고추 농사를 짓고 있는 그의 공식직함은 충청북도고추연구소 소장이다.

이 소장은 자신이 땀 흘려 노력한 대가에 농자재 등 재료비를 계산해 일정금액을 정하고 아무리 고추 가격이 등락 하더라도 그 이상이나 이하로 팔지 않기로 유명하다.

이번 고추가격 폭등에도 단골 고객에게 자신이 정한 600g(1근)에 1만5000원을 넘겨 팔지 않고 있다. 연간 수입을 3억 원 정도로 예상하고 있는 그는 현재 시세인 한 근에 2만2000원에 판매하면 2억 원의 추가 소득을 볼 수 있지만 이를 포기했다.

"우리 고추는 20년이 넘게 거래하는 고객이 대부분입니다. 고정 고객이 900여 가구에 이르지만 이름만 대면 알 정도로 친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 제주도를 비롯해 미국 등 외국에서도 주문을 해주십니다.

사람의 입맛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우리집 고추 맛을 본 사람들과 깊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죠. 이들은 3000원에 고추가 거래될 때 1만 원에 우리 집 고추를 사먹었습니다. 이런 거래가 가능했던 건 서로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농산물 가격이란 게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지금은 고추 가격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지만 내년에는 폭락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고추가격은 37년 만에 찾아온 기회라고 말들 하지만 저에 대한 단골들의 믿음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는 다른 고추 농가에서 가격을 올려 받으라는 성화에도 소비자와의 보이지 않는 약속을 지켜가고 있는 셈이다.

이 소장은 까칠하다. 아무나 쉽게 단골로 인정하지도 않거니와 돈 있다고 한사람에게 무한정 고추를 팔지도 않는다. 그는 고추 농장을 직접 방문해 재배, 수확, 세척, 건조 등 고추생산 과정을 직접 목격해야 단골로 받아들인다. 또 1인이 구매할 수 있는 물량을 18kg(30근)으로 한정해 놨다.  

여기에는 직접 확인하고 구매하라는 의미와 보다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고추를 먹이고 싶은 그의 욕심이 담겨 있다.

중졸 학력에 교과서에 실리다

지난 2003년 이종민 소장의 고등학교 교과서 등재를 축하하기 위해 열린 마을 잔치에서 지인들과 축하떡을 자르고 있다.
 지난 2003년 이종민 소장의 고등학교 교과서 등재를 축하하기 위해 열린 마을 잔치에서 지인들과 축하떡을 자르고 있다.
ⓒ 이화영

관련사진보기


이 소장이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데는 정직하게 농사짓고 노력한 만큼만 받으면 된다는 가치관에서 비롯됐다. 이런 소신 때문에 중학교 졸업 학력이 전부인 그의 삶과 직업관은 정규 고교 교과서에 소개되기도 했다.

경기도교육청은 2003년 고교 교과서 <진로와 직업> 과목에 이 소장의 인생 역정과 도전정신 등을 5쪽 분량으로 소개했다.

39,669㎡(1만2000평)의 고추밭에서 연간 2억 원의 소득을 올리는 이 소장은 국내 최초로 비닐하우스 고추 재배법을 도입해 소득을 극대화 한 사람이다. 그는 광폭형 비닐하우스, 에너지 절약형 건조장 등을 독자 개발해 학계와 농민사회에서 고추대통령으로 통한다.

40여 년간 고추 농사를 지어온 이 소장은 노지재배만으로는 수지를 맞추기가 어려워 농한기에도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다 비닐하우스 재배법을 개발했다.

지난 1995년에는 노지 재배와 하우스 재배의 단점을 보완한 방법(비가림 재배법)까지 개발, 다수확의 길도 터놓았다. 보통 농가의 3.3㎡(1평)당 고추 생산량은 900g(1.5근) 정도지만 이 소장은 이보다 6배인 최고 5400g(9근)까지 생산한다. 6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고추를 계속 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오이만한 슈퍼 고추도 생산해봤고, 물 공급 횟수와 온도 조절 등으로 매운맛 정도를 조절하는 방법도 개발했다.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동탑산업훈장증을 받고 있는 이종민 소장
▲ '국가 대통령'과 '고추 대통령'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동탑산업훈장증을 받고 있는 이종민 소장
ⓒ 이종민 고추연구소

관련사진보기


1일 농림부장관에 임명된 이종민 소장
 1일 농림부장관에 임명된 이종민 소장
ⓒ 이종민 고추연구소

관련사진보기


이 같은 공로로 그는 농업인 최초로 신지식인이 됐다. 지난 2000년에는 1일 농림부장관으로 선정되기도 했으며, 지난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동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의 농장엔 연간 2만여 명의 농민과 학생, 소비자들이 견학을 온다. 예약없이 이곳을 불쑥 찾아왔다간 헛걸음하기 일쑤다. 8년 전인 2003년부터 한국농업대학 원예과를 졸업한 아들 신호(32)씨가 농사를 돕고 있다. 이 소장은 농부가 되겠다는 아들의 결정을 누구보다 존중하고 자랑스러워한다.

"땅은 정직해요. 사랑과 정성으로 농사짓고 소비자들에게 믿음을 심어준다면 우리 농산물은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현장에서 배운 기술과 정보를 바탕으로 고추 농사를 짓겠다는 사람이라면 숨김없이 나눠줄 생각입니다."

'고추대통령' 이종민 소장, 건강한 먹거리 생산에 그의 하루는 짧기만 하다.

28일 이종민 소장이 자신의 농장을 방문한 경기도 원당의 농협대학 학생들에게 고추재배 기술을 설명하자 한 참가자가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28일 이종민 소장이 자신의 농장을 방문한 경기도 원당의 농협대학 학생들에게 고추재배 기술을 설명하자 한 참가자가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다.
ⓒ 이화영

관련사진보기


28일 이종민 소장이 자신의 농장을 방문한 경기도 원당의 농협대학 학생들에게 하우스 바닥에 돌을 깔게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28일 이종민 소장이 자신의 농장을 방문한 경기도 원당의 농협대학 학생들에게 하우스 바닥에 돌을 깔게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 이화영

관련사진보기


28일 이종민 소장이 자신의 농장을 방문한 경기도 원당의 농협대학 학생들에게 고추 건조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28일 이종민 소장이 자신의 농장을 방문한 경기도 원당의 농협대학 학생들에게 고추 건조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이화영

관련사진보기




태그:#이종민, #음성군, #고추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세 아이의 아빠입니다. 이 세 아이가 학벌과 시험성적으로 평가받는 국가가 아닌 인격으로 존중받는 나라에서 살게 하는 게 꿈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