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슈투트가르트 해적당이 베를린 선거 자축연 겸 정기 모임을 열고 있다. 독일 TV에서 영상 취재를 나왔다.
 슈투트가르트 해적당이 베를린 선거 자축연 겸 정기 모임을 열고 있다. 독일 TV에서 영상 취재를 나왔다.
ⓒ 한귀용

관련사진보기


19일(현지 시각) 저녁 급히 해적당 슈투트가르트 선거 자축연 및 정기 회의에 다녀왔다. 그 전날인 18일 치러진 베를린 지방선거에서 해적당이 드디어 의석을 차지했다(득표율 8.9%로 지방의회 진출)고 독일 TV와 신문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했기 때문이다. 이름부터 해적당? '뭐야 이거, 장난 아니야?' 싶은 생각이 드는 정당이 독일 정치 1번지라는 베를린 지방의회에 진출했다는 것은 뭔가 변화의 바람이 불어올 것임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수소문하던 중, 마침 19일 저녁 8시 슈투트가르트에서 해적당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해적당 모임이 열린 작은 레스토랑에는 SWR TV, 슈투트가르트 신문 등 여러 언론의 취재진이 진을 치고 있었다.

정당 모임치곤 아주 젊은 층이 많이 눈에 띄었다. 해적당 당원 평균 연령은 29세. 정치에 상대적으로 무관심한 젊은 층을 이렇게 많이 모이게 한 해적당의 매력은 무엇일까?

기성정당에 대한 불만이 해적당 탄생의 모태

해적당 평당원 클로츠 스테판(24세, 전기기술자)은 "다른 정당에 비해 해적당은 당원의 직접 참여가 가능하다"는 점을 장점으로 꼽았다. 자신과 같은 젊은 층이 겪는 현실적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정책을 제안하고 결정하기가 쉽다는 것이다.

기존 사민당이나 녹색당, 기민당에서도 당원으로서 정책을 제안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클로츠 스테판은 "기성정당의 관료들은 벌써 이해력이 떨어진다. 예를 들어 그들이 인터넷과 관련해 만들어 놓은 정책들을 보면 현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들이 (현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지조차 의심스럽다."고 기성정당에 대한 불신과 불만을 표출했다.

이러한 평당원의 견해와 관련해 아이첸베르거 마틴(28세, 학생) 슈투트가르트 지역 홍보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해적당의 목적에 '투명한 정치과정(transparenz politische Prozess)'이 들어 있다. 즉 정책이 제안되고 토론되고 결정되는 과정이 모두 인터넷으로 공개되며, 모든 정보는 공개된다. 당비 역시 마찬가지다. 해적당은 밀실회합이나 야합이 있을 수 없는 구조다. 이런 구조가 평당원의 생각을 당 정책에 훨씬 민주적이고 개방적으로 반영할 수 있게 한다."

젊은 당원들 사이에서 조금 지긋해 보이는 사람을 발견했다. 52세의 연구소 직원인 헤르만 하랄드였다. 헤르만 하랄드는 해적당에 참여한 동기에 대해 "기대를 걸었던 사민당과 녹색당이 무엇을 했나? 영세민 지원 긴축 법안, 아프가니스탄 참전은 다 사민당과 녹색당에서 결정했다. 기성정당은 이념 논쟁에 치우친다. 해적당의 토론과 정책은 좌파와 우파라는 이데올로기를 떠나 실용적"이라고 밝혔다. 헤르만 하랄드는 기성정당의 '관념적 이념 대립'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대다수가 직장인인 해적당의 실용주의 노선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기성정당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해적당의 실용적인 노선 때문에 입당했다는 헤르만 하랄드.
 기성정당에 대한 실망감, 그리고 해적당의 실용적인 노선 때문에 입당했다는 헤르만 하랄드.
ⓒ 한귀용

관련사진보기


가볍고 유쾌한 정치... "정치에 접근하는 방법이 다를 뿐"

여러 언론 매체가 취재 중인데도, 해적당 당원들은 전혀 눈치를 보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당원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피자를 시켜먹고 음료수를 마시며, 중간 중간 농담을 주고받으며 토론을 이어갔다. 유치원 어린이들이 부르는 노래에 대한 저작권법에 대항하기 위해 어린이 노래책을 배포하는 이야기, 가두선전을 통해 홍보하는 방법, 청소년 모임을 활성화할 방안, 당 후원금 문제 등 다른 정당에서 토론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차이가 나는 것은 권위적이지 않은 분위기다. 회의 진행자에게 "이봐, 네 뒤에 피자 있어. 그것 먼저 넘겨줄래? 안 그러면 식거든."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예삿일이었다. 당 모임이 아주 가볍고 유쾌하게 진행됐다. 누가 선전대를 설치할 것인가를 물어보자 자발적으로 손을 들었다. "거기는 우리 집에서 가깝고 그날 휴무니까 내가 할게."

아이첸베르거 마틴 해적당 슈투트가르트 지역 홍보위원장.
 아이첸베르거 마틴 해적당 슈투트가르트 지역 홍보위원장.
ⓒ 한귀용

관련사진보기

해적당이란 이름이 주는 느낌처럼 정말 해적들이 모여 먹고 마시고 유쾌하게 떠드는 느낌이었다. '경직된 진지함'과는 거리가 먼 해적당이 살벌한 정치판에서 정치적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이름부터 장난스럽고 '인터넷 정당' 아니냐는 비판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러자 홍보위원장인 아이첸베르커 마틴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정당 모임도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사람들이 정당을 통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다. 해적당은 정치에 접근하는 방법이 다를 뿐이다. 사실 우리 정당만큼 많은 주제를 정책으로 다루는 정당도 없다. 우리는 사회 구성원의 다양성(Diversity)을 존중하고,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하며, 시민 개개인의 사생활은 보호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해적당 강령은 자유(Freiheit), 평등(Gleichheit), 다양성(Diversity), 함께 어울림(Toleranz)이다. 이를 위해 참여 예산제 실시, 저작권법 남용 금지, 인터넷 규제 폐지, 소수자 인권 보호, 사생활 정보 보호 및 감시 제도 폐지, 학교 제도 변화를 정책으로 만들고 있다."

"해적당은 서민들이 목소리를 내는 곳... 도둑 정당에 맞선다"

검은 셔츠에 오렌지색(해적당을 상징하는 색깔) 넥타이를 맨 람벡 토마스(32세)는 엔지니어이면서 소도시 루드빅스부르크의 시장 선거 후보로 나섰다. 람벡 토마스는 직장인이면서 직접 정치 일선에 나선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내가 꼭 정치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지금은 우리 사회에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 생각하고, 그것을 기성정당이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해적당 대표로 지방도시 선거에 나선 것이다. 그리고 대다수 당원이 컴퓨터나 인터넷 매체를 통해 경험한 것처럼 서로 힘을 합하고 해결책을 토론하면 어려운 사회 문제라도 좋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해적당은 정치가나 은행가 혹은 전문가 등의 사회 주류층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직접 그 문제를 피부로 느끼고 생활에서 부딪치고 있는 서민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새로운 정치 환경을 만들고자 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인터넷 규제나 정보 규제를 반대하는 것이다.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어야 시민들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다."

변화가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하는 루드빅스부르크 위원장 람벡 토마스(가운데).
 변화가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하는 루드빅스부르크 위원장 람벡 토마스(가운데).
ⓒ 한귀용

관련사진보기


마지막으로 당의 이름을 왜 해적당으로 한 것인지 물었다. 람벡 토마스는 정치에 다르게 접근하기 위한 상징이 바로 '해적'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해적이라는 말은 남의 것을 훔치는 도둑, 법을 지키지 않는 범법자라는 뜻과 함께 구속되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추구한다는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그 의미를 우리는 사회적으로 풍자한 것이다. 기성정당인 기민당, 사민당처럼 법을 직접 만들고 나서 그 법을 어기고, 법의 이름으로 남의 것을 훔치는 도둑 정당에 대항하는 해적이라는 의미, 그리고 탈권위와 시민의 자유를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해적당으로 정했다."

해적당은 인터넷상의 불법 음원 다운로드에 대한 제재에 반발하며 2006년 스웨덴에서 처음으로 결성됐다. 현재까지 22개국에서 이에 공감해 해적당이 결성됐는데, 이들은 국제적으로 연합하고 있다.

독일의 해적당 당원은 1만2000명으로 추산되는데, 젊은 층 사이에서 '신선한 바람'으로 받아들여지며 급속히 당원이 늘고 있다. 과연 이 '해적'들이 "분명한 실천을 통한 변화"(해적당 구호다)를 독일 사회와 정치권에 불러올 수 있을까. 그 결과는 해적당의 '신선함'을 흥미진진하게 주목하고 있는 일반 시민들이 얼마만큼 호응하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해적당 로고. 오렌지색은 해적당을 상징하는 색이다.
 해적당 로고. 오렌지색은 해적당을 상징하는 색이다.
ⓒ 한귀용

관련사진보기



태그:#해적당, #독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