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가 받아온 학교 급식 안내문
▲ 초등학교 급식 안내문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가 받아온 학교 급식 안내문
ⓒ 안호덕

관련사진보기


서울이라는 거대 도시. 아이들 밥 먹이는 문제로 큰 홍역을 치렀다. 결과는 분명했으나 패자는 패인을 인정하지 않은 채 물러났고,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쟁은 수많은 이슈 속으로 사장되고 말았다. 그리고 초등학교 6학년 아이를 학부모로 든 나는 아이가 가져온 '9월 학교급식 안내' 가정 통신문을 받았다. 중식비 2124원×19회=40350원, 우유 값 330원×19회=6270원, 합계 46620원을 9월 6일까지 급식비 개인통장에 입금해달라는 안내문이었다.

무상급식을 위한 투표 결과를 겸허히 수용하겠다던 서울시. 하지만 권한대행을 앞세워 추가적인 무상급식 예산집행 여부는 대법원 판결 이후 다음 시장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라고 발뺌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럴 것 같으면 대법원 판단만 기다리지 뭐하러 182억 혈세를 쏟아부어 주민투표를 하고, 투표 결과를 존중하겠다는 입에 발린 소리는 왜 하는가?

오세훈 서울시장은 물러났지만, 오기와 억하심정으로 가득한 오세훈표 고위 행정관료들. 그 아집과 독선, 다섯 살 철부지의 외고집을 보는 것 같아 안쓰럽기까지 하다.

182억 원 들인 주민투표, 이럴 거면 뭐하러 했나

이명박 정부와 보수 세력이 '잃어버린 10년'에 목매어 있는 동안 서민의 삶은 구렁텅이로 빠져들었다. 나라 전체가 빚더미에 올라앉고 가계대출은 날이 갈수록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어 자칫 경제 몰락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국내외 곳곳에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에 따르면 경제 3주체인 공공기관, 기업, 가계의 금융부채가 3300조 원을 넘어섰으며 가계부채는 1050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2010년 현재 가처분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이 155.4%, 부채능력이 취약한 가구도 13.5%에 이른다는 민주당 이용섭 의원의 자료는 전 재산을 다 처분해도 빚을 청산할 수 없을 정도로 파산 직전에 있는 벼랑 끝 삶을 수치로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도 다르지 않다. 무상급식 요구를 끝끝내 거부하고 퇴진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부채 25조5천억 원, 연간이자만 8천억 원을 부담해야 하는 엉망이 된 살림살이를 남겼다. 시민 1인당 37만 원을 부담해야 할 서울시 부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퇴진으로 오히려 홀가분해졌을지 모르지만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시민이라는 이름만으로 국가부채에 개인부채, 지방자치단체의 부채까지 떠안아야 하는 빚쟁이가 됐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되었는가? 서민들은 왜 일할수록 가난하고, 아이들 밥 한 끼도 살림살이 거덜난다고 손사래 치던 서울시는 왜 5년 새 빚을 3배나 늘렸나? 7년 전에 비해 2배나 되는 국가부채 1848조 원. 이 많은 돈은 누구를 위해 쓰였으며 누가 감당해야 할 몫인가?

한껏 주민 갈등만 불러 일으키고 잠정 중단된 국제업무지구 개발 계획에 포함된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아파트. 이 아파트 340여 가구는 지은 지 14년도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한껏 주민 갈등만 불러 일으키고 잠정 중단된 국제업무지구 개발 계획에 포함된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아파트. 이 아파트 340여 가구는 지은 지 14년도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 안호덕

관련사진보기


국가부채에 서울시 부채, 개인부채까지...허리 부러지겠다

오세훈 전 시장의 빈자리를 위한 선거. 그 열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 안철수 신드룸. 박원수 변호사에 대한 호평은 정당정치가 더 이상 국민들의 열망을 담아낼 수 없다는 것의 반증이며, 지난 인물, 지난 시정 형태를 바꿔야겠다는 의지의 함축이라고 할 수 있다. 뉴타운 건설, 한강 르네상스, 디자인 서울의 오세훈 전 시장의 시정 방향은 이제 폐기나 수정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지난 잘못된 시정의 상처는 아직도 곳곳에서 치유되지 못한 채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뉴타운 정책에 집을 잃은 전세 세입자들이 유랑민처럼 떠돌아다니고,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 한강르네상스 사업, 디자인 서울 사업은 어떻게 해야할지 예측조차 쉽지 않다.

뉴타운 건설 사업만해도 그렇다. 서울의 낙후된 곳곳이 하루아침에 싹 정리되어 집 가진 사람들은 돈방석에 앉고, 서울시민 모두가 안락한 환경의 수혜자가 될 줄 알았다. 국회의원들은 앞 다투어 자기 지역에 뉴타운 건설을 공약했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여기에 편승해 서울 곳곳을 뉴타운으로 지정했다.

그러나 시작부터 삐걱거렸다. 보증금 한 푼 못 받고 쫓겨난 영세상인의 저항이 이어졌고 '용산참사'라는 비극이 이어졌다. 그뿐인가? 서민들은 수천만 원, 수억 원으로 오른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2년에 한 번씩 이삿짐을 싸야 했으며, 중산층조차 대출받아 산 집의 이자 노예로 전락해버렸다.

그러나 여전히 현재진행형. 서민의 보금자리를 깡그리 부셔놓은 서울. 대형 평형 아파트는 넘쳐나도, 그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서민들 집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란다. 정부가 주택 정책의 밑그림을 잘못 그려놓았으면 지자체에서 색칠이라도 제대로 해야 하는데, 밑그림도 엉망인데 색칠마저 엉망으로 해놓았다.

서울의 전세난은 정부와 서울시의 졸렬한 합작품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없는 서민들의 몫이다. 없으면 없을수록 더 큰 짐을 져야 할 전세난, 이 하나만 보더라도 오세훈 전 시장의 서울 시정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었다.

세빛둥둥섬 맞은편 한강 르네상스 공사현장. 이렇게 말라 죽어가는 나무가 곳곳에 방치되어 있다.
▲ 말라죽어가는 나무 세빛둥둥섬 맞은편 한강 르네상스 공사현장. 이렇게 말라 죽어가는 나무가 곳곳에 방치되어 있다.
ⓒ 안호덕

관련사진보기


한강에는 여전히 공사가 한창이다. 시멘트를 흙으로 덮어 심었던 버드나무와 물풀들이 썩고 떠내려간 자리에 또 다시 흙을 채우고 새로운 나무를 심는다. 보기 좋으라고 하수도 맨홀 뚜껑을 대리석으로 하더니 맨홀 뚜껑이 다 깨지자 철로 된 것으로 새로 교체했다.

세빛둥둥섬 맞은 편 동작대교 북단 아래. 심어 놓은 나무들이 말라 죽어가고 있다. 드러난 뿌리에는 감은 고무와 철끈이 묶인 채 그대로 심어져 있다. 보기 좋게 만들어놓은 보행로는 채 6개월도 지나지 않아 군데군데 파여 있다. 세빛둥둥섬은 전력대란에도 아랑곳없이 황홀한 야외조명을 밝히고 있다.

서해뱃길 사업. 중랑천 유람선 운행 등 공약되었거나 추진 중인 사업들도 즐비하다. 서해 뱃길 사업을 위해 건조된 112억 원의 크루즈 유람선은 여의도 선착장에 5개월째 묶여 있다고 한다(MBC 뉴스 2011.9.14).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 부은 한강 르네상스 사업. 앞으로 유지비만도 수십, 수백억 원이 들어갈 이 사업, 그것은 소통하지 않는 개발 독재의 표상이며 반복하지 말아야 할 역사다. 새로운 시장의 지혜가 필요하다.

봄에 심었다가 말라 죽어 베어낸 나무. 뿌리를 감았던 고무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주변 대부분의 나무는 이렇게 심어졌다.
▲ 심었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베어낸 나무 봄에 심었다가 말라 죽어 베어낸 나무. 뿌리를 감았던 고무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주변 대부분의 나무는 이렇게 심어졌다.
ⓒ 안호덕

관련사진보기


"서울에서 죽고 싶으신가요?" 물음에 "예" 할 수 있었으면

"여러분은 서울에서 죽고 싶으신가요?"

수년 전 어떤 강좌에서 강사는 사람들을 앞에 앉혀놓고 이렇게 물었다. 이 황당하기 그지없는 질문에 청중들은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서울에서 '살고' 싶으냐는 게 아니라 서울에서 '죽고' 싶으냐니. 침묵이 흐르자 강사는 그 질문을 부연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인구 절반 이상이 서울과 수도권에 밀집해 살고 있고, 특히 서울에는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이 많은 사람들은 일자리와 자녀 교육, 의료 문제 때문에 서울에 살고 있지만 대부분 서울을 떠나길 희망한다. 그러나 서울을 떠나는 사람은 극소수, 95%의 사람들은 서울에서 생을 마감한다고. 떠남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나 그런 사람이 가득찬 도시. 피곤하고 혼잡하다.

서울이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뉴타운으로 떼돈 벌고, 벼락부자가 될 수 있는 땅, 그래서 한몫 챙겨 떠나가야 할 땅이 아니라 내가 죽을 때까지 살아도 좋을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자식들이 고향으로 여기며 살아가도 좋을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대부분 떠남을 생각하지만 그 사람들 중 95%가 이 땅에서 죽어야 한다면, 이 도시를 '사람 사는 도시로 만드는 투자'가 무엇보다 급선무가 아닌가 생각한다. 전셋값 따라 부엽초처럼 떠다니는 도시서민들의 삶. 한강 르네상스 사업에 대한 열정만큼만 서민 생활 안정에 쏟아부었다면 도시서민이 국가부채에, 서울시 부채에 개인부채까지 이고 진 빚쟁이가 되었겠는가? 삶이 이토록 피곤하겠는가?

새로운 서울시장, 자기의 앞날을 위한 투기꾼이 아니라 서민의 미래를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난 수 년 서울은, 서울에서 살아가는 서민은 너무 힘들었다.

세빛둥둥섬 맞은 편 동작대교 북단 아래, 포장한 지 6개월도 되지 않은 자전거도로가 군데군데 파여서 재공사를 앞두고 있다. 이 부실공사 때문에 재공사에 들어갈 공사비는 시민 혈세가 아닌가?
▲ 6개월도 되지 않은 자전거도로 세빛둥둥섬 맞은 편 동작대교 북단 아래, 포장한 지 6개월도 되지 않은 자전거도로가 군데군데 파여서 재공사를 앞두고 있다. 이 부실공사 때문에 재공사에 들어갈 공사비는 시민 혈세가 아닌가?
ⓒ 안호덕

관련사진보기



태그:#한강 르네상스, #무상급식, #서울시장 선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역사의 진보는 냉철한 시민의식을 필요로 합니다. 찌라시 보다 못한 언론이 훗날 역사가 되지 않으려면 모두가 스스로의 기록자가 되어야 합니다.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저항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