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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을 접고 지난해 귀농한 오기조 씨가 논에서 벼의 작황을 살피고 있다.
 일본생활을 접고 지난해 귀농한 오기조 씨가 논에서 벼의 작황을 살피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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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시 덕월동. 갯벌과 갈대로 널리 알려진 순천만 가는 길에 자리한,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여느 농촌처럼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오래 전부터 농사를 지어오고 있다. 벼가 주된 작물이다.

이 마을에 한 젊은이가 돌아왔다. 지난해 5월이었다. 주인공은 29살 청년 오기조씨. 오씨는 귀농 전 일본 오사카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대학 시절 해외인턴십과정을 마치고 일본에 있는 회사에 취업을 했었다. (주)노바시스템이라는 정보통신 전문업체였다.

부푼 꿈을 안고 건너간 일본은 그에게 별천지였다. 날마다 새로운 문화를 체험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일본어 구사능력도 유창하게 만들어줬다. 직장에서 업무로 인정도 받았다. 대우도 괜찮았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함을 감출 수 없었다. 어려서 뛰놀던 고향 하늘이 그리웠다. 힘들게 농사를 지으면서도 제 값을 받지 못하는 부모님도 떠올랐다. 일본의 비싼 물가 탓에 의식주 해결도 부담이었다.

선인장 종류 가운데 하나인 천년초. 이름에서부터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선인장 종류 가운데 하나인 천년초. 이름에서부터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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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초 재배단지. 일본생활을 접고 귀농한 오기조 씨의 밭이다.
 천년초 재배단지. 일본생활을 접고 귀농한 오기조 씨의 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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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을 고민했다. 일본에서 일하는 열정을 농사에 쏟는다면 못할 게 없을 것 같았다. 농사경력 40년의 아버지(오옥묵·58)도 든든한 후견인이 되겠다 싶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귀농 붐도 그의 마음을 독촉했다.

밤마다 인터넷 정보사냥에 나섰다. 농촌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할까. 농촌에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그것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던 중 천년초(千年草)에 느낌이 꽂혔다.

"이름부터 맘에 들었어요.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지잖아요. 한겨울 추위를 이겨내고, 한여름 불볕더위도 견뎌내는 작물이고요."

천년초. 식이섬유와 칼슘, 비타민 등이 풍부한 약용작물이다.
 천년초. 식이섬유와 칼슘, 비타민 등이 풍부한 약용작물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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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검색을 통해 알아낸 천년초의 효능도 빼어났다. 뿌리부터 줄기, 열매, 꽃까지 버릴 게 하나도 없었다. 식이섬유가 풍부했다. 칼슘은 멸치의 10배나 됐다. 비타민C도 알로에보다 3배 더 많았다.

천년초를 한방에서는 갖가지 질병의 처방제로 쓰이고 있었다. 아토피 등의 치료약재로도 사용되고 있었다. 지친 몸의 피로를 풀어주고 피부를 촉촉하게 유지해주는 데도 그만이었다. 웰빙 건강식품이었다.

천년초의 재배법도 매력으로 다가왔다. 기본적으로 병충해에 강한 작물이었다. 농약을 칠 필요가 없었다. 화학비료를 주지 않아도 잘 자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배농가가 아직 많지 않다는 점도 매력이었다. 천년초 재배를 결심했다.

일본생활을 접고 지난해 귀농한 오기조 씨가 천년초 밭에서 풀을 뽑고 있다.
 일본생활을 접고 지난해 귀농한 오기조 씨가 천년초 밭에서 풀을 뽑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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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귀농한 오기조 씨가 자신의 천년초 밭을 둘러보고 있다.
 지난해 귀농한 오기조 씨가 자신의 천년초 밭을 둘러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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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바로 회사를 그만두고 귀농길에 올랐다. 아버지도 고향으로 돌아온 아들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짐을 푼 오씨는 아버지를 스승으로 모시며 농사법을 배웠다. 아버지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스승이었다. 아버지도 시나브로 아들을 듬직하게 생각했다.

"솔직히 우려가 컸죠. 걱정도 되고. 일도 더 많아진 것 같아요. 그런데 농사짓는 걸 보니 한시름 놓입니다. 듬직해요. 선진지 견학도 같이 다니고. 1년이 지난 지금 보니 기대가 됩니다. 좋아요. 잘 할 것으로 믿어요."

아버지 오옥묵씨의 얘기다. 오씨는 지난해까지 순천시농민회장을 지낸 인물. 지금도 농민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귀농인 오기조(오른쪽) 씨가 농사 스승 격인 아버지 오옥묵(왼쪽) 씨와 함께 천년초 밭에서 자세를 취했다. 아버지는 지난해까지 순천시농민회장을 지냈다.
 귀농인 오기조(오른쪽) 씨가 농사 스승 격인 아버지 오옥묵(왼쪽) 씨와 함께 천년초 밭에서 자세를 취했다. 아버지는 지난해까지 순천시농민회장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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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부자가 짓고 있는 천년초 농사는 5000평. 여기에 아버지가 오래 전부터 지어 온 벼농사가 2만평에 이른다. 아버지가 기반을 다져놓은 덕에 유기농 인증도 벌써 받았다. 행정기관으로부터 '학사농업인' 지정도 받았다.

하지만 천년초 재배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시행착오가 잇따랐다. 생각보다 손도 많이 갔다. 가시가 많은 작물의 특성상 제초작업이 가장 힘들었다. 장화를 신고 장갑을 끼고 중무장을 하고 풀을 뽑지만 가시에 찔려 피를 보는 게 일상이었다. 괜히 시작했나 자책이 들기도 했다.

오씨는 천년초의 유통·가공시설을 할 계획도 세웠다. 자금이 필요해 금융기관을 찾았지만 금융기관의 문턱은 높기만 했다. 마땅한 담보물이 없다는 이유였다. '신지식 학사농업인' 지정이 허울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런 연유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든지 헤쳐 나갈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가공시설을 갖추고 유통체계를 갖추면 천년초의 부가가치는 무궁무진할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일부 가공을 해서 지인들한테 돌려 좋은 반응도 얻은 바 있어서다.

"천년초의 생명력이 끈질기거든요. 아무나 던져놔도 뿌리를 내려요. 갖은 시련 다 이겨내는 천년초처럼 질기게 버틸 겁니다. 그래서 우리 농촌의 버팀목으로 우뚝 설 겁니다. 제 인생 후회 없도록."

지난해 귀농해 천년초를 재배하고 있는 오씨. 올 가을 결혼도 해 가정을 꾸릴 예정이라는 그의 말에서 자신감이 묻어난다. 우리 농촌의 희망도 엿보인다.

오귀조 씨가 아버지와 함께 천년초 밭에서 풀을 뽑고 있다.
 오귀조 씨가 아버지와 함께 천년초 밭에서 풀을 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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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귀조 씨가 최근 새로 조성한 천년초 재배단지. 그는 천년초 대량 생산을 통해 가공과 유통까지 할 계획이다.
 오귀조 씨가 최근 새로 조성한 천년초 재배단지. 그는 천년초 대량 생산을 통해 가공과 유통까지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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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오귀조, #천년초, #귀농, #선인장, #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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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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