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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정보통신산업이 궁지에 빠진 데는 언론의 탓이 크다. 전문적 식견도, 비판적 안목도 없는 한국 언론이 정부와 기업의 발표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홍보해 온 탓이다. 사진에서 보듯, 한국 언론은 와이브로가 '한국 10년 먹여살릴 금맥'(중앙일보), '2012년까지 수출효과 30조원' (동아일보), '경제효과 94조원 이상'(데일리경제)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와이브로는 막대한 세금과 투자비용을 쏟아붓고도 제대로 쓰이지 못한 채 사장되는 신세를 맞았다.
 한국의 정보통신산업이 궁지에 빠진 데는 언론의 탓이 크다. 전문적 식견도, 비판적 안목도 없는 한국 언론이 정부와 기업의 발표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홍보해 온 탓이다. 사진에서 보듯, 한국 언론은 와이브로가 '한국 10년 먹여살릴 금맥'(중앙일보), '2012년까지 수출효과 30조원' (동아일보), '경제효과 94조원 이상'(데일리경제)이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와이브로는 막대한 세금과 투자비용을 쏟아붓고도 제대로 쓰이지 못한 채 사장되는 신세를 맞았다.
ⓒ 강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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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참 빨리 흐른다. 기억하는가? 2년 전 이때를.

다시 말해 한국에 아이폰이 등장하기 전 말이다. 기억을 돕기 위해 덧붙이자면, 한국 언론이 '아이폰, 한국에서도 통할까?,' '아이폰, 너 떨고 있니?,' '토종 웃고, 외산 울고' 같은 헤드라인을 쏟아내던 때 말이다.

한국에서 아이폰이 판매되기 시작한 게 2009년 11월이니, 채 2년이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기에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가. 불과 일 년 반 사이에 뒤바뀐 한국 언론의 보도가 이 변화상을 잘 말해 준다.

"한국 IT, 구글의 하청업체 전락 위험"
"삼성전자, 구글 하청업체 된다"
"소프트웨어의 역습… IT 한국에도 올 것이 왔다"
"삼성·LG '소프트웨어 힘 키워라'"

한국 언론은 그동안 뭐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호들갑을 떠는 것일까? '애플·구글 게 섰거라'고 외쳤으나, 잘 서주지 않았던 걸까? '소프트웨어의 역습'? 정보통신산업이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편입되기 시작한 것은 이미 수년 전의 일이다. 필자는 2년 전 '뉴미디어 기획'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한국이 경쟁력을 갖고 있던 하드웨어 분야는 급속도로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예컨대 휴대폰 산업은 애플이나 구글처럼 소프트웨어 기반업체들의 지배권 밑으로 편입되고 있다. 이제 제대로 된 인터넷 기반 플랫폼을 갖추지 못한 하드웨어 기업은 소프트웨어 업체의 하청공장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될 것이다. 세계 최강의 휴대폰 업체인 노키아 주식이 올 들어 16퍼센트 하락한 것은 이런 분위기를 잘 말해준다. 삼성과 엘지 등의 하드웨어 업체들이 긴장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 2009. 9. 1. "트위터 '2등'으로 밀어낸 한국... 뿌듯해?"

한국 정부도 부랴부랴 나섰다. 삼성, 엘지 등의 대기업과 함께 직접 모바일 운영체제(OS)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복잡하게 분석할 것도, 장황히 설명할 것도 없다. 조상의 재담을 잠시 빌리는 것으로 충분하다. '남이 장에 간다니 거름 지고 나선다.'

IT 대신 '강바닥 파기'로 고용 창출한다던 정부

이 법석의 주역이 '지식경제부'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정통부의 폐지였다. 이 결정은 물론 "정보통신산업(IT)은 고용 창출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 대통령의 소신에 따른 것이었다. '강바닥 파기'가 21세기 고용 창출 원동력이라 믿는 정부가 만드는 운영체제('명OS'?)에 기대를 품는 게 현명한가?

적어도 두 가지는 기대할 수 있다. 국민과 전문가의 의견과 상관없이 정부 멋대로 시작할 것이고, 4대강 개발처럼 '임기 내에 마무리한다'며 속전속결로 끝낼 것이다. 밀실행정과 단기 성과 집착이 한국 정보통신산업을 이 지경으로 만든 주범인데도 말이다. 하지만 정부가 한다고 하면 언론은 '떨고 있니' 시리즈로 응답할 것이고, 대기업경제연구소는 수만의 '고용 창출'과 수십 조의 '경제 효과'를 전망하는 것으로 화답할 것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0일 오후 서울 한남동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 참석해 취재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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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같은 대기업은 기대할 만하지 않느냐고? 이건희 회장은 지난 8월 말 '소프트웨어 경쟁력'를 역설했다. 하지만 그 발표가 있기 불과 석 달 전, 삼성전자는 '국내 중소업체에 위탁해온 모바일기기용 소프트웨어 용역 개발을 중국·인도 등의 해외업체로 전환한다'고 발표했었다. 원가 절감을 위해 노임이 싼 해외에 소프트웨어 개발을 맡기겠다는 것이다.
정보통신산업의 핵심축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이동한 상황에서 소프트웨어에서 인건비를 건져 '싼 가격'으로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삼성의 수익률이 계속 낮아지는 이유는 소프트웨어 기술의 부재 때문이다(애플의 수익률이 높은 이유는 삼성과 정반대다). 하드웨어의 기술 격차는 급속히 줄어들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하드웨어의 경쟁력은 가격 인하 싸움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은 부가가치 높은 경쟁력의 핵심인 소프트웨어를 해외로 넘기기로 한 것이다. 핵심 소프트웨어 기술을 해외로 아웃소싱하지 않는 것은 세계 정보통신업계의 상식이다. 물론 '핵심 소프트웨어 기술'이랄 것도 없는 삼성의 처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중국과 인도는 삼성의 가장 강력한 경쟁기업이 등장하고 있는 나라일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인건비가 빨리 상승하는 곳이다. 인도의 올해 평균 임금 상승률은 12.9%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빠른 경제성장으로 인해 중국의 임금 수준은 인도의 두 배가 넘는다. 아웃소싱은 고용의 질 면에서도 적잖은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5년 전 이미 아웃소싱 포기한 애플

애플도 한때는 대규모의 해외 아웃소싱을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처럼 잘나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한 2006년, 애플은 매킨토시의 기술 지원 및 개발 일부를 인도로 넘긴다는 구상을 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 경영자로 복귀한 직후로, 적자의 늪에 빠져 있던 회사를 구하기 위한 위기 타개책의 성격이 짙었다.

당시 애플의 주요 동기는 '인건비'였다. 이를 위해 2007년까지 인도 현지에서 3000명을 신규 고용한다는 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잡스는 이 모든 계획을 하루아침에 뒤집어 버렸다. 인도의 임금 상승률이 높아 인건비 절감을 꾀하기 어렵고(2000년부터 2004년 사이 평균 임금 상승률은 13%였지만, 중간경영자의 임금 상승률은 30%에 이르렀다), 인력 빼가기 경쟁이 치열해 안정적인 고용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고용 창출을 바라던 인도는 물론 크게 실망했다. <인디아 타임스>는 "애플 소프트웨어, 인도에서 로그아웃하다"라는 헤드라인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비즈니스위크>는 애플이 인도에 '로그인'을 한 적이 없었을 뿐 아니라, 애초에 그럴 계획도 없었다고 지적한다. 인도에 넘기려던 것은 핵심 소프트웨어 개발과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애플은 애초부터 고급 소프트웨어 개발을 인도에 맡길 생각이 없었다. 다른 회사들과 달리, 애플은 연구 개발과 제품 개발을 거의 전적으로 캘리포니아의 본사에서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즈니스위크> 2006년 6월 19일 "인도: 왜 애플은 시작도 않고 포기했나")

결국 애플은 '주변적 아웃소싱' 계획마저 폐기한 것이다. 하드웨어는 해외에서 생산할망정 소프트웨어만큼은 자신들의 손을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소프트웨어가 제품 차별화와 경쟁력의 핵심이 된 시대에 이를 외부에 맡기는 것은 뇌와 심장을 아웃소싱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이폰은 세계 정보통신기술에 혁명을 가져온 것은 물론, 사람들이 소통하고 정보를 얻는 방식을 바꿔놓았다. 사진은 2010년에 아이폰4를 소개하는 애플의 전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
 아이폰은 세계 정보통신기술에 혁명을 가져온 것은 물론, 사람들이 소통하고 정보를 얻는 방식을 바꿔놓았다. 사진은 2010년에 아이폰4를 소개하는 애플의 전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
ⓒ 공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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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트웨어로 인건비 아끼겠다는 삼성

애플과 반대의 길을 택한 삼성의 결정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을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파악하는 태도는 한국 개발자를 쥐어짜던 못된 버릇의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이다. 개발자 착취에는 기업과 정부가 따로 없다. 일 년을 매달려도 하기 어려운 일을 하도급 업체끼리 경쟁을 붙여 석 달 만에 끝내게 만드는 행태 말이다. 이 과정에서 이익은 자기들이 챙기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하도급 업체에 떠넘긴다.

계약서도 쓰지 않고 일을 맡기는 건 예사이고, 필요할 때마다 개발인력을 빼가 중소업체의 생존을 위협하기도 한다. 이렇게 뽑아간 인력을 잘 쓰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대기업의 위계적 조직 구조는 개발자의 주체적 판단이나 창의성을 용인하지도 않는다. 그저 '윗사람'이 원하는 안전한 결과물을 (다시 말하면 이미 있는 것을 베껴) 최대한 빨리 만들어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좋은 소프트웨어가 나온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사실 받는 대접을 생각하면 한국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는 정말 훌륭하게 잘하고 있는 셈이다). 개발자를 제대로 대접하지 않고 '소프트웨어 경쟁력'을 말하는 것은 공염불일 뿐이다. 이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한국형 잡스 양성 계획'을 논하고, 기업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소프트웨어를 아웃소싱하겠다고 발표한다. 

정보통신보다 강바닥 파기가 더 고부가가치를 지닌 미래산업이라는 정부.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면서 저임금 국가(한국도 만만찮은 '저임금 국가'다)로 소프트웨어 개발을 넘긴다는 기업, 이들이 힘을 합쳐 애플과 구글에 맞설 새 운영체제를 개발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협력 관계에 적절한 명칭을 붙이자면 '덤앤더머 컨소시엄'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2년 전에도 말했지만,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한국 정부와 기업 모두 하루아침에 해결하려 했기 때문에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는 것이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기술자 노임단가표.' 한국에서 개발자들은 능력보다는 학력과 경력의 천편일률적인 잣대로 평가되는 기준에 의해 대우 받는다. 개발자들의 실제 보수는 이 기준표에 한참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하도급업체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입찰에 참여하게 된다. 개발자들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소프트웨어 산업 육성'은 헛구호가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소프트웨어 기술자 노임단가표.' 한국에서 개발자들은 능력보다는 학력과 경력의 천편일률적인 잣대로 평가되는 기준에 의해 대우 받는다. 개발자들의 실제 보수는 이 기준표에 한참 못 미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하도급업체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대폭 '할인된' 가격으로 입찰에 참여하게 된다. 개발자들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환경에서 '소프트웨어 산업 육성'은 헛구호가 될 수밖에 없다.
ⓒ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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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앞의 돈만 보는 기업과 정부

창의적 인재를 기르라고 했더니 '한국형 잡스 양성계획'이라는 줄 세우기 식 경쟁 체제를 도입하고, 소프트웨어가 중요다다고 하니 '바다(Bada)' 같은 운영체제를 급조해 낸다('혼란스럽고 전혀 직관적이지도 않다'는 품질에 대한 혹평은 그렇다 치고, 이름부터 제대로 붙이면 좋겠다. '배드애스 Badass'라는 별명을 의도한 게 아니라면 말이다.)

한국에서는 단기간에 성과를 내지 못하면 투자도, 후원도 받을 수 없다. 정부부터 '5년짜리 근시안'을 벗어던져야 한다. 정권이 바뀌면서 모든 게 바뀌거나 정지되어야 한다면, 아예 정보통신사업에 간섭하지 않는 게 낫다. 

이런 분위기가 바뀌지 않는 한 운영체제는 물론 아마존,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세계적 인터넷 서비스가 탄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터넷 소매점인 아마존은 1995년에 출범했다. 당시 창립자 제프 베조스는 '기이한' 경영전략을 세운다. 사업 시작 후 5년까지는 흑자를 낼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이 말을 듣고 볼멘소리를 내는 투자자도 있었으나, 베조스는 큰 어려움 없이 사업 자본을 확보할 수 있었다.

아마존의 '느린 수익 전략'은 주효했다. 2000년 초반 '닷컴 버블'이 터지면서 온라인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할 때, 아마존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6년 후인 2001년에 첫 흑자를 기록한다.

빠른 수익을 기대하지 않는 '답답한 전략'으로 말하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도 만만치 않다. 2004년에 시작된 페이스북은 2009년 후반까지도 이익을 내지 못했다.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는 2010년 말에도 페이스북이 '손익분기점을 겨우 넘는 수준'이라고 고백한 바 있다. 광고나 유료 서비스로 벌어들인 수익 대부분을 사용자 확보와 서비스 개선에 재투자하기 때문이다.

2006년에 선보인 트위터는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수익모델을 찾는 중이다. 한두 해만 수익이 안 나도 사업을 접거나 투자를 포기하는 한국 기업이나 투자자들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이게 이해하기 어려운 만큼 한국에서 이런 서비스가 탄생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미국의 인터넷 산업은 '느린 수익모델'로 유명하다. 제프 베조스는 1995년에 아마존을 창립하면서 투자자들에게 향후 4~5년간 수익을 낼 의사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왼쪽은 <타임>지에서 '올해의 인물'로 꼽힌 창립자 베조스. 아마존이 첫 흑자를 기록하기도 전이다. 오른쪽은 2009년 <포춘>지 표지.
 미국의 인터넷 산업은 '느린 수익모델'로 유명하다. 제프 베조스는 1995년에 아마존을 창립하면서 투자자들에게 향후 4~5년간 수익을 낼 의사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왼쪽은 <타임>지에서 '올해의 인물'로 꼽힌 창립자 베조스. 아마존이 첫 흑자를 기록하기도 전이다. 오른쪽은 2009년 <포춘>지 표지.
ⓒ Time/Fortu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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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건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

한동안 '이런 것 왜 못 만드냐'가 유행하더니, 이제 '창의적 인재'가 유행이다. 정부도, 기업도 '창의적 인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다면 이 '창의성'은 어떻게 길러지는 것일까?

시카고대 교수 로버트 버트가 쓴 <좋은 아이디어의 사회적 기원>은 창의적 인재의 특징을 '교차로(intersection)형'으로 정의한다. 다양한 사람, 다양한 문화, 다양한 지식 사이의 경계에 서 있는 사람이 창의적인 발상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갖춘 사람이 다양한 사고를 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한국의 경쟁 교육과 경쟁 체제가 멍청한 이유는, 다양한 사고를 저해함으로써 오히려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카이스트에서 '공부 열심히 시킨다'며 일정 학점을 받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징벌적 등록금'을 물리기 시작했을 때,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난 첫 번째 변화는 '안전한 선택'이었다. 학점을 올리기 위해 이미 잘 알고 있거나 잘할 수 있는 과목만 수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교육 환경에서 학생들이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탐구해 '교차로형 지식인'이 되길 기대하는 건 어리석다.

카이스트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그렇다.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드문 '위험 회피 사회'다. 살벌한 경쟁 체제가 안전하고 보수적인 선택만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국가 경쟁력을 높인다'며 지속적으로 고용 유연화 정책을 펴 왔다. 그 결과 초등학생 꿈이 '9급 공무원'인 기이한 사회가 되었다. 물론 경쟁 체제가 몰고 온 더 비극적인 결과는 세계 최고의 자살과 세계 최저의 출산율이지만 말이다.

버트 교수는 '실패의 용인'이 창의적 인재 양성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도 항상 좋은 아이디어를 내놓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한 번의 실수로 낙오자가 되는 살벌한 경쟁 체제에서는 누구도 쉽게 '위험한' 아이디어를 내놓지 못할 것이다.

결국 경쟁에서 자유롭게 지식과 경험을 쌓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어도 쉽게 다른 일을 찾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창의적 인재가 탄생할 수 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목표는 여기에 두어야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하지만 입버릇처럼 '경쟁력'을 외쳐대는 경쟁력 없는 정부 밑에서 한국 사회는 점점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한국의 고질적 학벌주의와 이로 인한 경쟁 교육은 '국내용 아귀다툼'일 뿐이다. 국민들의 삶의 목표가 생존이 되고, 태어날 자식들이 고통스러울까봐 출산을 주저하고, 이미 태어난 자식이 죽음을 택하는 게 어떻게 '경쟁력'이란 말인가.

 블로거 로버트 스코블과 포즈를 취한 페이스북의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오른쪽). 그는 최근까지도 페이스북이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나드는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다.
 블로거 로버트 스코블과 포즈를 취한 페이스북의 창립자이자 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오른쪽). 그는 최근까지도 페이스북이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나드는 수준'이라고 밝힌 바 있다.
ⓒ 공개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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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통신원입니다.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언론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 기...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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