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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지능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요, 만약 컴퓨터가 사람으로 하여금 그 기계를 사람으로 착각하게 만들 수 있다면 말입니다."

1997년 5월, 체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챔피언의 중의 한 사람인 Garry Kasparov는 아마도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유명한 패배를 경험합니다. 그는 1승 3무 2패로 경기를 마치게 됩니다. 그의 상대는 Deep Blue라고 불리는 IBM이 만든 컴퓨터였습니다. 이 승부는 컴퓨터과학과 인지과학(cognitive science)의 성과로 널리 알려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이 기계는 과연 사람처럼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1940년대에 앨런 튜링(1912 - 1954)이 이미 답하고자 했던 질문의 현대판 버전입니다. 현재 컴퓨터 과학과 인공지능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는 그의 질문과 대답은 아직도 뜨거운 논쟁의 주제로 남아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에게 그리 친숙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튜링은 수학, 논리학 그리고 암호해독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영국의 천재였습니다. 튜링은 수학의 영역 중에 계산으로 풀지 못하는 영역이 있음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이 질문은 수학 계에서는 아주 오래된 난제의 하나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고안한 상상의 기계 (Turing machines)가 무한대의 메모리와 시간을 가지고도 결정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매우 실용적인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튜링의 기계가 무엇을 하지 못하느냐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가는 가에 있습니다. 바로 컴퓨터의 작동 원리입니다.  한때 튜링은 스스로 고안한 체스 기계로 행동하며 주위 사람들과 시합을 해서 때로는 이기고 때로는 졌다고 합니다. 당시는 빠른 계산을 해주는 기계 (컴퓨터?)가 없어 자신이 직접 계산을 해서 경기를 했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여기에 비추어 보면 오늘 날 Deep Blue의 성과가 약간 빛이 바래지는 듯합니다.

그의 천재성과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사회로부터의 배척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고등학생 시절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을 이론을 자신의 연구에 응용했던 그를 학교는 기존 교과과정을 소화하지 못하는 문제학생으로 취급합니다. 학계에서도 그를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outsider로 연구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는 2차 세계 대전 때에는 암호 해독가로 영국을 위해 일합니다. 우리에게 영화로 잘 알려진 독일군의 U-보트를 물리치는데 튜링의 암호 해독은 결정적 기여를 하게 됩니다. 그가 없었다면 영국은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르며 전쟁을 수행해야 했을 것입니다. 이런 혁혁한 성과로 대영제국의 공로훈장을 받게 되지만 그의 업적은 일의 성격상 대중에게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전쟁 후 튜링은 컴퓨터의 개발에 노력을 기울였으나 정부와 학계의 관료주의는 그의 연구를 지연시킵니다. 그의 컴퓨터 디자인은 애플 컴퓨터의 초기 매킨토시에 맞먹는 연산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당시 공학 기술로 그것을 실재 만들어 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만약 그가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면 오늘 날 컴퓨팅은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튜링은 자신이 게이였음을 숨기지 않고 살았습니다. 그런 솔직함이 그의 인생을 비극적인 결말로 이끌게 됩니다. 당시 영국의 법으로 동성애는 범죄였고 그는 감옥에 가는 대신 화학적 거세 (여성 호르몬 투여)를 택합니다. 그 부작용으로 여성처럼 유방이 생기고 정신적으로 황폐해진 그는 청산을 먹고 자살을 하고 맙니다. 그의 시신은 먹다 남은 사과와 함께 발견됩니다. 그의 나이 만 42세가 되기 직전의 일입니다. 참으로 뛰어난 인재의 참으로 안타까운 죽음입니다. 인류를 위해 쓰일 수 있는 위대한 재능의 낭비이기도 합니다.

튜링을 기리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2009년 영국 정부는 그에게 공식 사과를 하게 됩니다. 고든 브라운 총리는 말합니다. "우리는 잘못했습니다, 당신은 훨씬 더 좋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었습니다" 뒤늦었지만 이 사과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법, 질서와 통념이 다수와 다른 준거를 가진 집단에 속하는 개인을 얼마나 폭력적으로 대할 수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듭니다. 튜링의 삶과 죽음은 이렇게 뛰어난 개인도 기존 사회 시스템의 (자주 잔혹한) 구속과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나와 다른 가치와 규범을 가진 사람을 용인하고 존중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쉽고 아름다운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구체화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나의 가치가 법과 제도에 의해 공식화되고 보호 받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상식과 윤리가 시대와 장소에 따른 임시적 행동 규범임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당시 영국 사회가 튜링에게 범했던 실수를 반복하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덧붙이는 글 | 앨런 튜링의 슬프고 극적인 죽음은 그가 좋아했던 동화 백설공주와 연관되고 그리고 애플 컴퓨터의 로고와의 관련성으로 후일 많은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게 됩니다. 2012년은 튜링의 해로 지정되어 그를 기념하는 많은 행사가 있을 예정입니다. 자세한 행사 내용과 일정은 튜링100 주년 기념 사업회의 웹 페이지에서 (http://www.mathcomp.leeds.ac.uk/turing2012/) 확인할 수 있습니다.



태그:#튜링, #동성애, #게이, #튜링 머신, #튜링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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