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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끌벅적한 오후. 개강한지 한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방을 구하려 홍보물을 보고 있는 학생들. (자료사진)
 시끌벅적한 오후. 개강한지 한주가 지났지만 아직도 방을 구하려 홍보물을 보고 있는 학생들. (자료사진)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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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개강이다. 서울 시내 대부분 대학들이 지난주 2학기를 시작했다. 조용했던 교정은 다시 돌아온 학생들의 웃음소리로 오랜만에 활기를 띠었다. 하지만 그 속에 즐거움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반값'은커녕 동결에라도 감사해야 할 등록금 고지서와 각종 아르바이트들… 여기에 대학생 A(22)씨는 또 하나의 걱정거리로 골머리를 앓아야만 했다. 바로 '집' 문제다.

지난 8월 A씨는 자신이 살던 고시원으로부터 돌연 퇴거 통지를 받았다. 소란을 피우거나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준 적도 없기에 더욱 이해하기 힘든 조치였다. 자초지종을 알고 보니, 9월부터 고시원이 영업을 그만두기 때문에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 모두가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A씨는 제대로 항의 한 번 못해보고 살던 곳을 떠나야만 했다. 개강을 2주 앞두고 일어난 일이라 마음이 더 급해졌다.

예정에 없던 이사인 만큼 수중에 돈이 넉넉할 리 없었다.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발품을 팔았지만 마땅한 방이 없었다. 이상하다, 이렇게 건물이 많은데 어째서 나 하나 들어갈 방이 없단 말인가? 그렇게 꼬박 일주일 여를 헤매고 나서야 그녀는 겨우 방 한 칸을 얻을 수 있었다. 이전에 살던 고시원 월세는 30만 원이었지만 이번에 이사하게 된 곳은 44만 원을 요구했다. 예전보다 매달 14만 원을 더 얹어줘야 했지만, A씨로서는 그조차 감지덕지한 일이었다. 월세를 부모님이 내주시기로 했다는 그녀는 "가뜩이나 자취하면서 돈이 많이 드는데 부모님께 더 부담을 얹어드린 것 같아 죄송스럽다"며 "대신 통신비나 식비, 기타 비용은 내가 마련하기 위해 주말만 하던 아르바이트를 주중까지 늘렸다"고 말했다.

'전세 대란'에 덩달아 고통받는 대학생들... "알바를 더 할 수밖에"

원룸, 하숙 등을 구하는 전단지가 붙은 전봇대
 원룸, 하숙 등을 구하는 전단지가 붙은 전봇대
ⓒ 박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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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 시즌이 되면 평소보다도 많은 학생들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집 구하기'에 나선다. 그리고 이때마다 번번이 대학생 주거 문제가 지적돼 왔다. 하지만 이번의 경우 기존의 집 문제에 '전세대란'까지 겹치면서 대학생들의 살 곳 마련이 더욱 어려워진 상황이다.

직접 대학가 주변 부동산들을 찾아가 보았더니 가구 등의 옵션사항을 차치하고 평균적으로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40만 원 수준이었다. 혹은 보증금을 1000만 원으로 올리는 대신 월세를 낮춰주기도 하는데, 그래도 월세를 최대 70만 원까지 요구하는 곳도 있었다. 대학생은 물론 일반 직장인도 감당하기에 버거운 금액이다.

여기에 관리비며 공과금이 붙는다면 한 달에 적어도 40~50만 원이 지출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 조차도 쉽게 구하기 어려운 상황. 중개업자와 직접 찾아가 본 대학가 근처 신축 건물 한 곳은 완공한 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단 한 가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입주가 완료돼 있었다.

이에 대해 한 부동산 중개인은 "최근 전세 대란으로 인해 대학가에까지 직장인 등이 유입되면서 1인 가구가 부쩍 늘었다. 이 때문에 집주인들이 월세를 더 올려 받기도 한다. 또, 집주인들 역시 다달이 들어오는 월세를 무시할 수 없어 보증금을 올려주기보다는 보증금을 낮추고 높은 월세를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설명했다.

직장인과 사회초년생 등이 전세 대란 때문에 도시 중심에서 집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그 영향이 고스란히 대학생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대학생 B(21)씨는 "통학만 왕복 6시간이라 체력적으로 힘들어 독립을 해볼까 생각도 했었는데 학교 앞 집값이나 물가를 보고 바로 단념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학교 기숙사도 고려해봤지만 선발 인원이 적고, 수도권 학생은 잘 뽑아주지 않는데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뽑는 기준도 까다로워져 들어가기가 쉽지 않아 포기하게 되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적당한 가격의 방을 찾지 못한 대학생들은 룸메이트를 구해 생활비, 월세 등을 분담하며 같이 살기도 하는데 이 역시 녹록지 않다. 실제로 기자가 신입생이던 시절, 입학 일주일 전까지 집을 구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다 방을 구하지 못한 다른 친구와 함께 학교 홈페이지, 학교 근처 등을 샅샅이 뒤져 가까스로 작은 방 하나를 얻었다. 그렇게 시작된 갑작스러운 동거가 편할 리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입학 2주 전 처음 본 사이였기 때문에 서로에 대해 무지한 상태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나와 달리 올빼미족인 룸메이트는 아침잠이 많아 함께 있는 내내 불편했고, 생활수칙을 놓고 사사건건 부딪히기 일쑤였다. 결국 룸메이트 생활 반 년 만에 싸움에 지친 우리는 서로에게 말 걸기를 '포기'했고, 어색한 상태를 이어가다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

대학생 주거정책 턱없이 부족... "공부하러 서울온 게 불효같다"

20대 커뮤니티에 올라온 방 구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게시글에 달린 누리꾼들의 반응. 자신과 같은 처지의 대학생들에게 공감하고 대안을 요구하는 댓글이 많았다
 20대 커뮤니티에 올라온 방 구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게시글에 달린 누리꾼들의 반응. 자신과 같은 처지의 대학생들에게 공감하고 대안을 요구하는 댓글이 많았다
ⓒ 박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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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대학생 주거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서울시는 2010년부터 대학생 보금자리 주택인 '유스 하우징(Youth Housing)'을 실시하고 있다. 유스 하우징은 정부의 재정지원으로 매입한 다가구 매입임대주택의 일부를 대학생 주거용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사업이다. 평균 보증금이 100만 원, 평균 임대료가 6~7만 원 수준이어서 일반 하숙이나 월세에 비해 가격부담이 적다. 서울시는 올해 112호 202방을 공급했고 2012년부터 매년 900개 이상의 방을 공급하겠다고 밝혔으나, 아직까지 대학생들의 주거 부담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각종 악조건들이 맞물리면서 대학생들은 또 한 번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있는 지방 출신 또래 대학생 몇몇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역시 학기 초 집을 구하는 데 애를 먹었던 대학생 C(22)씨는 "자취하면서 나 때문에 부모님이 더 고생하시는 것 같아서 정말 죄송하다"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는 "공부하려고 서울까지 온 것이 어떤 때는 불효처럼 느껴진다"고 울먹였다. C씨의 말에 함께 있던 대학생들 모두가 숙연해졌다. C씨는 덧붙여 "어떤 날은 차라리 '내가 달팽이나 거북이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며 "적어도 그들은 집을 구하는 데 애를 먹지는 않을 것 아니냐"고 허탈하게 웃었다.

개강을 맞아 교재비며 밥값, 기타 경비 등을 셈하다 보면 가뜩이나 가벼운 대학생의 주머니 사정은 더욱 빠듯해진다. 여기에 주거비로 인한 경제적 부담 가중은 대학생은 물론 그 부모의 어깨까지 무겁게 하고 있다. 이들의 고달픈 짐을 함께 덜어내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박가영 기자는 오마이뉴스 대학생 기자단 '오마이 프리덤'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대학생,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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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대학생기자단 오마이프리덤 1기로 활동했습니다. 사람과 영화가 좋습니다. 이상은 영화, 현실은 시트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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