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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
▲ <모든 죽은 것> 겉표지
ⓒ 오픈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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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연쇄살인범에게 살인은 하나의 의식(儀式)이다. 대부분의 연쇄살인범들은 뒤틀린 성적욕망을 참지 못해서, 또는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해서 사람들을 죽이고 다닌다.

'의식으로서의 살인'을 하는 살인범들은 조금 다르다. 물론 이들도 살인 그 자체를 즐기고 거기에 중독되는 경향이 있기는 하다.

여기에 한가지 더 덧붙여서 이들은 살인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려고 한다. 영화 <세븐>에서 살인범이 범죄현장에 일곱 가지 죄악을 차례대로 적으면서 그것을 경고했던 것처럼.

그 메시지가 살인범 혼자만의 착각이건 과대망상이건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런 살인범들은 지치는(?) 법이 없다. 역사상 최악의 연쇄살인범 중 하나였던 '조디악'은 '제발 나를 도와주세요. 나 자신을 제어할 수 없습니다'라는 공개편지를 보내오기도 했었다.

살인이 의식인 사람에게서는 이런 종류의 편지 또는 심경의 변화를 기대할 수가 없다. 살인을 통해서 평범한 인간들에게 나름대로 소중한 메시지를 들려주는데 어떻게 타인에게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살인범에게 처자식을 빼앗긴 형사

연쇄살인범을 추적하고 검거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거리를 뛰어다니며 단서를 모으는 형사들은 기본이고, 시체를 부검하고 현장을 분석하는 법의학자들도 있어야 한다. 살인범의 초상을 그려줄 프로파일러와 함께, 범인이 남긴 메시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종교학자나 기호학자도 필요할지 모른다.

존 코널리의 1999년 작품 <모든 죽은 것>에서도 연쇄살인범을 추적하기 위해서 전문가들이 모두 동원된다. 작품에 등장하는 연쇄살인범은 그만큼 현장을 잔인하면서도 기이하게 꾸며놓았다. 형사들은 이름없는 살인범에게 '떠돌이'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작품의 시작은 주인공인 형사 찰리 파커의 부인과 어린 딸이 떠돌이에게 살해당하면서 시작된다. 떠돌이는 파커의 부인을 의자에 앉혀서 묶어놓고 살해했다. 그 딸도 죽여서 엄마의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두 희생자의 얼굴은 심하게 훼손되었고 신체의 가죽 일부도 벗겨진 상태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파커는 형사를 그만두고 사립 탐정 비슷한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떠돌이를 찾아서 수사를 해나가지만 좀처럼 단서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던 도중 다른 장소에서 비슷한 수법으로 살해당한 시체가 연달아 발견되면서 사건수사도 활기를 띠게 된다.

희생자들은 모두 가죽이 벗겨졌고 복부가 절개되고 내장까지 해부당한 채 이상한 자세를 취하고 죽어있다. 떠돌이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일부러 이처럼 묘하게 살해현장을 조작한 것이 분명하다.

이에 대해서 범죄심리학자는 이렇게 조언을 해준다. 희생자의 눈을 제거한다는 것은 고통과 죽음에 대한 몰이해를 신체적으로 상징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고통을 느끼고 언젠가는 죽음을 경험하게 된다. 그런데도 떠돌이는 오로지 자신만이 그것을 타인에게 가르쳐줄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공감하는 능력을 가진 탐정의 등장

<모든 죽은 것>은 존 코널리의 '찰리 파커 시리즈' 첫 번째 편이다. 미국의 미스터리 전문가 오토 펜즐러가 엮은 책 <라인 업>에서, 존 코널리는 '공감이 인간의 감정 가운데 가장 위대한 감정 중 하나'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처럼 느낄 수 있어야 하며, 그런 공감의 부재는 바로 악 그 자체라는 것이다.

찰리 파커도 그래서 탄생하게 된 캐릭터다. 파커는 처자식을 한꺼번에 잃고 복수를 원하지만, 파커를 규정하는 것은 복수가 아닌 고통이다. 파커는 가족을 상실한 고통을 겪어봤기에 다른 사람들이 고통받는 것을 그냥 보아넘기지 않는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복수에 집착하다가 스스로 파괴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죽은 것>에서 34살의 나이로 등장하는 찰리 파커는, 다른 젊은 형사나 탐정들처럼 터프하거나 강압적이지 않다. 파커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잃은 후에도 인간으로 살기 위해 애를 쓰는 한 남자일 뿐이다. 또한 현실이 아무리 암울하더라도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모든 죽은 것> 존 코널리 지음 / 강수정 옮김. 오픈하우스 펴냄.



모든 죽은 것

존 코널리 지음, 강수정 옮김, 오픈하우스(2011)


태그:#모든 죽은 것, #찰리 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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