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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만에 돈 주고 사고싶은 앨범이 생겼다. 리쌍 7집이다. 길, 개리 두 멤버의 예능에서의 활약이 호감 상승에 기여한 바도 있겠으나 99%는 관록있는 그들의 '농밀한' 음악이 내뿜는 매력 그 자체가 이유다. 특히, 이미 각종 음악차트 베스트를 휩쓸고 있는 <TV를 껐네>와 <나란 놈은 답은 너다>가 역시 좋다. 하지만 앨범 통째로 어느 하나 미운 곡이 없다.  

그런데 지난 주 <TV...>와 <나란 놈...> 두 타이틀곡에 대해 KBS 측이 방송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이유는 '가사가 비관적'이라서. 수십 번도 더 들었지만 이 시점에서 '비관적이었나?' 하는 의문이 들어 다시 한 번 들어본다. 아~, 후자의 경우 "내 맘이 그래 나 죽어 버릴까' '술에 취해 벽을 치고 괜한 사람 어깨를 부딪치고" 이런 부분이었겠군.

 힙합 듀오 '리쌍'
 힙합 듀오 '리쌍'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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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랑 노래잖아. 영어로 치면 'I will'이 아니고 'I would', 즉 완곡어법이란 거다. 게다가 뼈저린 자기성찰 뒤에 책임있는 사랑에의 갈망이 이어진다.

"남잔 바람도 필 줄 알아야 돼. 여자에 얽매이면 안 돼. 그렇게 말했던 이 남잔 니가 떠나고 홀로 남자 가슴에 불이 난다." "80 넘은 부부도 싸우고 보름도 안 되서 또 티격태격 하지만 오늘도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잖아 넌 나에겐 그런 존재"처럼. 비관적이라기보다 건설적이다.

KBS의 '방송부적격' 판정, 참으로 어이없다

전자는 또 어떠한가. 이 곡은 비관과는 진정 거리가 먼데…. 아마도 가사의 선정성 때문이었을 거다. 하지만 한창 콩깍지 씌인 성인남녀의 지극히 평범한 사랑의 테마다. '딱딱하게 말하지마 니가 날 딱딱하게 만들었잖아'가 다소 당혹스럽지만 기실 참으로 재치있는 대구이자 비유가 아닌가. 사랑하는 연인을 만지고 싶고, 그 소중한 순간이 밤낮없이 떠오르는 건 사랑에 빠져본 이들이면 다 알 일. 

이와 함께 주말 양일 인터넷 검색어를 달군 것이 최초로 공개된 여성가족부(이하 여가부) 청소년유해매체 판정 회의록. 해당 문건을 읽는데 머릿속엔 중세시대 사제복을 입은 성직자들의 회동 장면이 떠오르고 그 내용은 마치 희극 대본을 보는 것과 같았다. 실제로 오늘(30일) 사퇴한 음반심의위 위원장이 가공할 만한 유머감각을 지닌 '비정상적인' 기독교인이라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여가부 잣대가 어떠했는지 회의록 안에 언급된 노래들을 들어봤다. 먼저 MPEG의 'Let's make love'. MPEG이란 가수 존재의 여부도 몰랐기에 N사이트 '지식있는 분'께 물었더니 '동영상을 압축하고 코드로...' 어쩌고 하는 컴퓨터 용어가 나와 잠시 어리둥절. 곧이어 해당 곡을 들어본 바 이를 전원일치로 유해매체 판정한 위원들의 우려가 이해는 됐다. 하지만 역시 '아는 게 병'이고 '도둑이 제발 저린다'는 결론.

다소 코믹한 회의 기록을 그대로 옮겨보면 "유해하다고 생각합니다. let's make love 뒤에 do it do it 이라는 게 걸립니다." "다른 단어와 매치가 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우리 같이 이렇게 make love'라는 것도 그냥 사랑하자의 의미가 아니란 거죠. '우리같이'가 들어갈 이유가 없죠" 인데 여기서 매치되는 '다른 단어' 또는 '사랑하자'는 의미와 상반되는 표현은 'sex(성관계)'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성인' 위원들의 사랑에 대한 왜곡된 의식이 드러난다. 청소년이 듣는 음악이기 때문에 그 표현에 있어 수위 조절은 필요하겠으나 사랑과 섹스를 별개 치부하는 것은 올바른 관점도 대책도 아니다.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사랑의 신 에로스와 성욕의 정령 히메로스와 함께 다녔듯, 아름다운 사랑이란 심신의 조화로움이 최상이다. 그것을 이해시키고, 적당한 때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

 청소년유해매체 음반 구매 제한 문구
 청소년유해매체 음반 구매 제한 문구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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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검색이 필요없었던 세븐의 'Drip'. 이 곡 역시 'drip'이란 표현이 성적인 장면을 연상케 한다 하여 19금으로 분류되었는데, 이 심의결과에 대해선 본인 찬성했다. 'Just let it drip 온몸에 땀이 흘러, 깊은 밤이 흘러 Just let it drip Sexy Lady'란 반복되는 가사가 열정적인 정사신(scene)을 묘사하는 것이 자명하기 때문. 그렇다 해서 이 노래를 대한민국 19살 이하 모든 청소년들이 못 듣기야 하겠느냐마는, '금기'가 발휘하는 긍정적 영향력이 있기에 (개선안 발표 전 기준) 청소년유해매체로 구분했음을 존중한다.    

여성가족부의 걱정과 우려, 민망합니다

하지만 유익한 대목도 있다. '내 품에 있길 내일 이른 아침 그대와 함께 걷는 골목길'이 그렇다. 하룻밤 성욕만 채우고 도망치듯 헤어지는 관계가 아닌, 아침에 눈을 떠서도 골목길을 걸을 만큼 진지한 감정이 전제된 관계다. 진실한 사랑과 욕정에만 치우친 관계를 구분할 줄 아는 어른들은 알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옆에 누운 이를 보고 싶은 감정과 그렇지 않은 경우의 차이를!

결국 전날인 29일 여가부는 '12세 미만 이용 제한' 신설과 음반 전문가와 가요 프로그램 PD 등 4명을 심의위원에 포함한다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음반심의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초등학생을 포함한 12세 미만 아동과 12세 이상 19세 이하 중·고등학생을 한 범주에 넣으므로써 생기는 모순과 그보다 더욱 심각하게 지적돼온 애매모호한 심의기준과 심의위들의 자격 논란을 얼마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논란의 소지는 남아 있다. '술' '담배' 표현의 단순 사용이 아닌 '적극 권장'의 경우에만 제재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 그러하다. 선정성 기준 또한 새로운 음악이 나올 때마다 갑론을박의 이견을 낳을 것이다. 뭐, 그러나 다 괜찮다. 오랜 진통 끝에 이번 개선안이 마련된 것처럼 또 그것을 놓고 전문적 식견과 깊은 애정을 가진 분들이 지지고 볶고 하다보면 우리 대중문화가 보다 나은 방향으로 계속해서 발전해나갈 것임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극적이나마 문화 '주체'의 한 사람으로서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제재하고자 하는 분야가 영화이건 음악이건 책이건, 그것이 성인을 위한 것이든 청소년을 위한 것이든 "상식적으로 솔직하게 다 함께 얘기하자"는 것이다. 알면서 모르는 척, 있는 데 없는 척 하지 말자는 것이다. 섹스 없는 반쪽 사랑이 아름다운 것인냥 왜곡시키지 말자는 것이다. 청소년이 어른이 되고, 그 어른이 술 담배도 하고 사랑도 한다. 그러니 보다 장기적인 견지에서 보다 건강하고 즐겁게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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