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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군 피살 사건 진상규명대책위원회는 8월 15일 애틀랜타 일본총영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왼쪽부터 레이몬드 워즈니악씨, 강훈군의 사진을 들고 있는 아버지 강성원씨, 박해명씨.
 강훈군 피살 사건 진상규명대책위원회는 8월 15일 애틀랜타 일본총영사관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왼쪽부터 레이몬드 워즈니악씨, 강훈군의 사진을 들고 있는 아버지 강성원씨, 박해명씨.
ⓒ 강훈군 피살 사건 진상규명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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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이던 지난 8월 15일, 미국 회사에서 한국어 수업을 끝내고 나오던 길에 애틀랜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마침 내가 들렀던 건물 건너편에는 애틀랜타 일본총영사관이 입주해 있었고, 두 빌딩에서 큰 도로로 나가는 길목에 열댓 명쯤 되어 보이는 아시아인들이 일본어와 영어로 된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일본은 정직해져라(Japan Be Honest)."
"스캇 강을 위한 정의(Justice for Scott Kang)."

문구들을 보는 순간 1년 전 애틀랜타 대표신문인 AJC에서 본 기사가 직감적으로 떠올랐다. 사고나 사건에 연루돼 사망한 한국인에 대한 기사가 흔하지 않을뿐더러, 그것은 자식을 키우는 재미교포인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끔찍하고도 슬픈 사건이었다.

도쿄 신주쿠 가부키초에서 일어난 의문사

한국에서 태어나 애틀랜타에서 자란 한국계 미국인 '훈 스캇 강'(한국명 강훈). 미국 최고 경영학부 중의 하나인 뉴욕대학교 스턴 비즈니스스쿨을 학비 면제로 입학한 수재였다. 19세의 청년 강훈군은 1학년 1학기를 마친 후 학비도 벌고 한국에 대해서도 배울 목적으로 한국 정부의 원어민 영어교사 장학 프로그램(TALK Program, Teach and Learn in Korea)에 합류했다. 2학년은 영국에서, 3학년은 중국에서 보내야 하는 학사 일정 때문에, 생활비를 제공받던 ROTC 장학금을 받을 수 없게 됐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해서 강훈군은 충북 지역의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중, 방학을 이용해 일본에 놀러 갔다가 의문사했다.

뇌수술 후 강훈군의 모습.
 뇌수술 후 강훈군의 모습.
ⓒ 강훈군 피살 사건 진상규명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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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발생한 때는 작년 8월 24일 밤 11시가 넘은 시각. 그로부터 두어 시간이 흐른 25일 오전 1시 반 무렵, 강훈군은 향락업소가 즐비한 일본 도쿄 신주쿠 가부키초의 한 건물(Collins Building) 비상계단 6층과 7층 사이 계단통에서 '외부 충격에 의한 뇌 손상과 과다출혈'로 의식불명인 채 발견됐다. 왼쪽 머리 아래쪽에 0.5~1cm가량의 구멍이 생겼는데 얼마나 세게 충격을 받았는지 머리에 두세 갈래로 8.5cm나 되는 균열이 생겼고 머리 오른쪽 윗부분이 심하게 부어올랐다. 병원에서는 젊기 때문에 회생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바로 뇌 절개 수술을 진행했다.

애틀랜타에 사는 부모가 연락을 받고 한국을 거쳐 일본에 도착한 때는 8월 29일 오후 4시 반. 강군의 부모는 통상적인 면회 가능 시간을 넘겨 그날 밤 9시까지 아들을 면회했다. 다음날인 8월 30일 아버지 강성원씨가 신주쿠 경찰서를 방문하고 있던 시간에 강훈군은 수많은 의문점들을 남겨둔 채 어머니 품에서 세상과 작별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보니까 아이 눈이 자꾸 건조해진다고 눈에 테이프를 붙여놨더군요. 그런데 저희가 도착하고 1시간쯤 아이에게 얘기하고 있는데 그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봤습니다. 그 다음날 엄마가 얘기를 할 때도 눈물이 흘렀다고 해요."

뇌사 상태에서도 눈물로 이별을 고한 아들이 하늘나라로 간 지 어느새 1년.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믿기에 아들의 영원한 안식 또한 믿어 의심치 않지만 사무치는 육신의 그리움만은 어쩔 수가 없는 아버지는 오늘도 남몰래 눈물을 삼킨다. 집에서는 훈이 얘기를 꺼내지 않는다. 슬픔에 잠길 아내를 생각해서다.

그러나 강성원씨는 그리움과 슬픔에 앞서 아들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풀지 않고는 편히 지낼 수가 없다. 또한 낯선 땅 일본에서, 미국 시민권자지만 소수민족의 일원으로 이 일을 겪으면서 눈을 뜨게 된 갖가지 부조리가 그를 흔들어 깨우고 있다.

일본 경찰은 사망 이틀 만에 이 사건을 술에 취해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생긴 '사고사'로 서둘러 마무리 지었다. 여러 정황 증거들이 '폭행에 의한 살인'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아버지 강성원씨와 강훈군.
 아버지 강성원씨와 강훈군.
ⓒ 강훈군 피살 사건 진상규명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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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찰의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

강성원씨는 재수사를 신청하고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도쿄의 미국대사관을 찾았다. 그러나 "알아는 보겠다"고 사무적으로 대하는 태도에 마음이 상했다. 미국으로 전화해 오랫동안 강훈군의 주일학교 교사였던 레이몬드 워즈니악씨에게 도움을 요청한 게 그때였다.

워즈니악씨는 34년 경력의 은퇴한 교도관으로 신학과 상담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베트남전 당시 한국에 배치됐던 인연으로 한국인과 결혼하고, 한국에서 입양돼 장성한 자녀 둘이 있는 그는 그동안 애틀랜타 지역에서 일어난 크고 작은 일에서 수많은 한인들에게 도움을 준 장본인이기도 하다.

강훈군이 중학생이던 때부터 성경공부를 같이하며 부모에게 못하는 말도 다 털어놓을 정도로 사제 간의 두터운 정을 쌓아온 그는 조지아 주를 대표하는 연방 상원의원 조니 아이잭슨 및 도쿄 주재 미국대사관과 직접 통화를 했다. 곧이어 재수사가 결정됐다. 사체 부검도 진행됐다.

사건은 신주쿠 경찰서에서 도쿄 경시청으로 넘어가 수사본부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다시 진술서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CCTV 장면 해석을 놓고 이견이 생겼다.

사건이 일어난 날, 강훈군은 역시 한국계 미국인인 TALK 프로그램 동료교사 두 명(21세, 29세)과 함께 문제의 빌딩에서 저녁을 겸해 술을 약간 마시고 있었다. 각종 게이바와 파친코, 클럽들이 즐비한 가부키초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업소가 야쿠자 소유이거나 그와 관련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경찰의 감시 카메라가 여기저기 설치되어 있는 지역이다.

밤 10시 반 무렵, 강훈군은 술을 더 마시려는 두 사람에게 '30분쯤 산책하고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혼자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약 30분 뒤인 11시 4분 무렵에 찍힌 엘리베이터의 CCTV에 다시 빌딩 안으로 들어오는 강훈군의 모습이 잡혔다. 뒤이어 두 남자가 더 엘리베이터로 들어오고, 엘리베이터 버튼은 둘 중 체격이 큰 남자가 눌렀다. 뒤에 밝혀진 바로는 이 둘은 그 건물 지하 게이바에서 일하는 필리핀계 호객꾼과 일본인 보조였다.

일본인이 6층에서 내리고 엘리베이터 안에 남은 두 사람. 강훈군은 양손을 위로 올리는 제스처를 했다. 그때 필리핀계 호객꾼이 강훈군의 멱살을 잡고 뒤이어 복부를 가격하는 듯한 장면이 잡혔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 앞으로 숙인 몸. 그리고 마지막 층인 8층에서 두 사람이 내린다. 카메라가 보여주는 것은 여기까지다.

처음 신주쿠 경찰서에서 비디오를 볼 때 함께 있던 경찰들도 폭력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고 강성원씨는 말했다. 한국에서 온 TALK 프로그램 장학사 두 사람과 일본 현지 통역을 맡아준 이민숙씨도 이 비디오를 함께 보았다. 이민숙씨는 동료교사 중 21세 청년의 일본 현지 보호자로 영어학원을 운영하는데, 이 일이 터지자 생업을 제쳐두고 강성원씨를 도왔다. 

그런데 재수사 과정에서 일본 경찰은 이 장면을 구타가 아니라 동성 간의 애정 행위로 간주하려 했다. 동성애자인 필리핀계 호객꾼이 강군의 멱살을 잡는 듯한 장면을 애정 행각으로, 강군이 몸을 앞으로 숙인 자세를 키스를 하려는 제스처로 해석해 강성원씨에게 '아들이 혹시 동성애자 아니냐'는 질문을 던졌다. 강성원씨는 증거 조작 및 인멸을 의심했다.

"재수사 때 보여준 비디오는 처음에 봤던 그 아날로그 테이프가 아니었어요. 랩톱 컴퓨터를 들고 와서 보여주는데 CCTV의 화질이 눈에 띄게 떨어져 있었습니다. 처음 비디오에서는 복부를 가격하는 장면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는데, 화질이 떨어지니까 그 느낌도 생생하지가 않았어요. 오리지널을 달라고 요구하자 다른 테이프를 갖고 왔지만, 제가 처음에 봤던 것과는 테이프의 색깔이 달랐고 선명하지도 않았어요. 그뿐 아니라 처음에 봤던 현장 사진 중에는 좀 끔찍한 장면들이 제법 있었는데 재수사 때는 그런 사진들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일본 경찰은 필리핀계 호객꾼과 일본인 보조를 구속하지 않았다. 또한 이들이 경찰 조사에서 얘기한 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였다. 이들은 술에 취한 강군이 8층 옥상으로 나가 뛰어내리려고 하는 것을 붙잡아 말린 뒤 자신들의 일터로 돌아갔다고 주장했다. 그러니까 8층 현장에는 강훈군을 포함해 세 명이 있었다는 얘기다.

한 달 뒤 강성원씨가 워즈니악씨와 함께 일본을 다시 방문했을 때도 경찰은 똑같은 설명을 반복했다. 워즈니악씨는 멱살을 잡은 자세를 보면 공격적인 자세임을 금방 알 수 있다고 반박했다.

사체 부검 후 밝혀진 혈중 알코올 농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은 2.73%. 전문가들은 3%면 혼수상태에 빠지고, 4%면 알코올로 인한 사망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한다. 동료 교사들과 헤어질 당시 청주 한두 잔을 마신 정도였다던 강군이 30분 만에 만취 상태가 된 것도 석연치 않거니와, 제대로 서 있기도 어려운 상태로 8층까지 가고 대화를 나눴다는 점에 대해서도 유가족 측은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더해 강성원씨는 일본의 비좁은 건물 구조상 계단에서 굴러도 두 개 층이나 떨어질 수 없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사고 직후 일본에 도착했을 때 처음 봤던 현장 사진들에서 8층 벽면 제법 높은 위치에 사선으로 칠해진 핏자국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이냐고 따졌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했지만, 일본 경찰의 태도는 바뀌지 않았다.

생전에 강훈군이 한국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모습.
 생전에 강훈군이 한국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던 모습.
ⓒ 강훈군 피살 사건 진상규명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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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타는 가족, 바뀌지 않는 결론

장례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왔던 강성원씨는 한 달 뒤인 작년 10월 워즈니악씨와 함께 일본을 다시 방문했다. 일본 경찰을 상대로 그들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유명한 범죄 추적 TV 프로그램인 <아메리카 모스트 원티드>의 진행자 존 월쉬도 지난해 11월 6일 방영분을 강군 스토리로 다루며 도쿄에 다녀갔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일본 경찰은 비디오 원본, 사라진 사진들, 사체 부검 결과 등 요구하는 자료들은 하나도 공개하지 않으면서 "기다리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워즈니악씨는 작년 12월에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장문의 탄원서를 작성해 주미 일본대사관에 발송했다. 탄원서에는 일본 경찰에 반박했던 수사의 5가지 허점, 도쿄 미국대사관 담당자에게 설명했던 '미국이나 조지아 주라면 당연히 용의자 신병을 확보했어야만 하는 이유' 6가지, 일본 경찰이 고려해 주기를 바라는 30가지 의문점이 빽빽하게 기록돼 있다.

여기에는 8층 계단참 벽에 있는, 모서리가 뾰족한 어깨 높이의 철제 열쇠통을 중심으로 한 추리도 포함돼 있다. 폭력이 있었을 경우 왼쪽 머리 아래쪽에 난 구멍을 설명해 줄 수 있는 물건이라는 것이다.

이후 여러 달이 흘렀지만 일본에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 지난 7월초, 도쿄 미국대사관에서 2월에 수사가 '사고사'로 종결됐다고 연락했는데 이를 받았는지 확인하는 이메일이 왔다. 2월말에 작성했다는 편지를 첨부해서.

기가 막혔지만 강성원씨는 이제 다시 기나긴 싸움을 시작하려 한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생각이 들어 포기하고도 싶었지만 그럴 때마다 워즈니악씨가 용기를 북돋웠다. 두 사람이 다니는 애틀랜타 염광장로교회에서는 워즈니악씨를 사무총장으로 하고 6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강훈군 피살 사건 진상규명대책위원회'를 발족했다. 상대는 일본이라는 철옹성. 끝을 볼 수 있는 날이 언제 올지 알 수는 없지만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싸워 보려고 한다.

미국의 범죄 추적 TV 프로그램 <아메리카 모스트 원티드>에 소개된 강훈군 이야기. 진행자 존 월쉬가 직접 도쿄를 방문해 취재했다.
 미국의 범죄 추적 TV 프로그램 <아메리카 모스트 원티드>에 소개된 강훈군 이야기. 진행자 존 월쉬가 직접 도쿄를 방문해 취재했다.
ⓒ www.am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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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조지아 주 케네소주립대학교 형사사법학과의 장현석 교수는 일본을 "전 세계에서 가장 범죄율이 낮은 나라 중의 하나"라고 말하면서 "그러나 범죄율은 나라마다 각기 다른 기준으로 집계되기 때문에 신빙성 있는 자료로 삼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명백히 폭행에 의한 살인으로 보이는 사건을 '사고사'로 처리한 것을 보면 조직적인 은폐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도쿄 관광산업에 지장을 줄 만한 사건인데다, 미국과 한국이 연관돼 있어서 가급적 조용히 끝나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일본의 정경유착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합당한 설명을 내놓지 않는다면 선진 경찰의 지위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 되겠지요."

장 교수는 일본의 관련법을 알아봐야겠지만 "공신력 있는 사설탐정을 고용하는 것도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한 방법"이라고 조언하면서, 그에 앞서 "뇌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강군의 부상에 대해 밝힌 소견서, 사체 부검 결과 보고서를 확보하고, CCTV 영상 확보 및 복원이 이뤄지고 다른 목격자를 찾을 수 있다면 일본 경찰과 정부를 압박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강군이 사망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미국 정부가 나서기 전에는 문제 해결이 쉽지 않으리라는 게 장 교수의 분석이다.

사후 대책에 대해 조언한 케네소주립대 형사사법학과 장현석 교수.
 사후 대책에 대해 조언한 케네소주립대 형사사법학과 장현석 교수.
ⓒ 고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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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원씨나 워즈니악씨도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일본 총영사관 앞에서 시위할 때 애틀랜타 지역의 주요 매체들에 다 알렸다. 일부는 취재를 해 가기도 했으나 기사화되지 않았다. 한국의 여러 매체에서 다투어 소개한 것과 대조적이다. 교민 수는 250만이나 되지만 한인을 대표할 연방의원 하나 없는 소수민족 신세가 서글퍼지기도 한다.

하지만 강훈군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이들은 실망하지 않는다. 사망 1주기인 8월 30일 강성원씨와 워즈니악씨는 다시 일본으로 건너간다. 일본 경찰의 얘기를 다시 한 번 듣고 필요한 법적 대응 조치들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이전에 일본에서 외국인 사망 사건이 '사고사'로 처리됐다가 '살인'으로 번복됐던 사례들에 대한 연구도 계속하고 있다.

한인사회를 중심으로 미국인들까지 포함해 진행되고 있는 서명운동에는 현재까지 4600여 명이 동참했다. 서명운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예정이다. 일본 쪽에서도 일본변호사협회 회장이 관심을 표명했고, 영자 신문인 <저팬 타임즈>, 해외특파원 클럽 등에서 기사로 다루는 등 도움을 주고 있다.

진상규명위원회 측에서는 조만간 소셜 네트워킹이 가능한 전용 웹사이트(www.scottkang.com)를 띄워 사건을 널리 알리고 온라인 서명 릴레이도 펼칠 예정이다. 오는 10월 10일 아이잭슨 연방 상원위원 사무실 앞에서 시위를 할 예정이고, 12월 12일에는 CNN 앞에서 시위를 할 예정이다. 장래가 촉망됐던 한 청년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이 밝혀지는 그날까지 이 사건이 미국 사회에서, 그리고 한국과 일본에서 잊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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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통신원입니다. 애틀랜타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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