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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나강을 건너고 1000m가 넘는 산길을 넘어

보스니아 국경검문소
 보스니아 국경검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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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국경을 건너기 위해 드리나강의 이쪽 보스니아측 국경검문소에 잠시 멈춰 선다. 차단기가 내려지고 출국도장을 받아야 한다. 국경선이 되는 다리 앞에 '세르비아 공화국, 굿바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에는 차기 많지 않아 수속이 비교적 빨리 끝난다. 가이드가 모든 사람의 여권을 받아가 한꺼번에 출국도장을 받았기 때문이다. 차는 이제 국경 다리를 건넌다.

다리를 건너자 이번에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국경검문소가 기다리고 있다. 벌써 오후 4시 6분이다. 이곳에서의 입국수속도 비교적 쉽게 끝났다. 이제 우리 모두 한숨을 쉰다. 국경검문소에서 재수가 없으면 한두 시간 늦어질 수도 있다는 가이드의 엄포에 모두 마음을 졸였기 때문이다. 보스니아의 국경도시 즈보르닉으로부터는 왼쪽으로 드리나강을 끼고 계속 산길을 올라간다. 그래서 길은 좁고 주변 경치는 굉장히 아름답다.

드리나강에 세워진 댐
 드리나강에 세워진 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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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가면서 보니 스카프를 두르고 모자를 쓴 이슬람계 주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는 이슬람을 믿는 보스니아계가 43.5%, 세르비아 정교를 믿는 세르비아계가 31.2%, 로마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계가 17.4%다. 특히 우리가 지나갈 길, 즉 즈보르닉에서 사라예보를 거쳐 모스타르로 이어지는 지역에는 주로 보스니아계 주민이 살고 있다.

마침 7월 24일이 이슬람 축일이어서 가까운 모스크에서 나온 사람들로 거리가 복잡하다. 드리나강 주변에는 작은 마을들이 자리 잡고 있고, 마을 가운데로 우뚝 솟은 이슬람 모스크를 자주 볼 수 있다. 또 드리나강에는 댐이 만들어져 상류로 호수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호수에 비친 마을이 다 아름답게 보인다. 그런데 드리냐차라는 작은 마을에서 길은 드리나강을 떠나 산속으로 접어든다. 이제부터는 1500m에 이르는 산 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야 한다.  

사라예보 가는 길

밀리치의 산골 마을
 밀리치의 산골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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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왕복 2차선으로 구불구불하며, 포장상태도 별로 좋지 않다. 우리는 산골 마을인 밀리치까지 가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정말 산골의 오지 마을이다. 이곳에는 밭에 주로 옥수수가 심어져 있고, 과수나무가 좀 있다. 그리고 돼지와 소 같은 가축을 기르는 것이 전부다. 마을이라고 해야 10-20채의 집이 있을 뿐이다. 세르비아 역시 젊은이들이 모두 도시로 나가 시골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다고 한다.

산악지방으로 들어서면서 비가 오기 시작한다. 길가로 흐르는 시냇물도 역시 황톳물이다. 상류지역에 비가 내리는 모양이다. 길도 나쁘고 비도 오고, 이래저래 시간이 더 걸리게 생겼다. 우리가 탄 버스는 블라세니카, 클라다니, 니쉬치를 거쳐 오후 7시가 넘어서야 사라예보 시내로 들어선다. 베오그라드에서 사라예보까지 거리는 321㎞지만, 길이 나빠 이동하는데 7시간이 넘게 걸렸다.

헐리우드 호텔에서 바라 본 사라예보 풍경
 헐리우드 호텔에서 바라 본 사라예보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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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는 동서로 흐르는 밀리야카강을 끼고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주변에는 2000m 전후의 산이 세 개나 있고, 1500m가 넘는 산이 두 개나 있다. 사라예보도 해발 511m나 되는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이런 자연조건 때문에 겨울에 춥고 눈이 많아 1984년 동계올림픽이 열릴 수 있었다. 우리가 묵을 헐리우드 호텔은 시내의 서남쪽 콩그레스 센터에 위치하고 있다. 

헐리우드 호텔이라니?

호텔 이름이 헐리우드다. 사라예보에 헐리우드라니? 조금은 의아하다. 그것은 사라예보 영화제(Sarajevo Film Festival)와 관련이 있다. 사라예보 영화제는 1995년 10월 27일부터 11월 7일까지 이곳 보스니아 문화센터에서 처음 개최되었다. 그 후 이 영화제는 여름 축제로 정착되었고, 금년의 제17회 영화제는 7월 22일부터 30일까지 열리고 있는 것이다. 헐리우드 호텔은 사라예보 영화제에 참석하는 영화인들을 생각해서 문을 열었고 그러한 전통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FIBA 주최 20세 이하 유럽선수권대회
 FIBA 주최 20세 이하 유럽선수권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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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가 사라예보에 머문 7월 24일과 25일에는 사라예보 영화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호텔에 들어가 보니 영화인은 안 보이고 등치가 좋은 운동선수들만 보인다. 어찌된 일인가 알아보니, 이곳에서 국제농구연맹(FIBA)이 주최하는 20세 이하 유럽선수권대회(7월 14일-24일)가 열린 것이다. 24일이 대회 마지막 날이어서 콩그레스홀에서는 대회를 마감하는 연회가 열리고 있었다. 그래선지 호텔 전체가 시끄럽고 들썩들썩하다.

우리는 4층에 방을 배정받은 다음 바로 식사를 하러 레스토랑으로 간다. 콩그레스센터에 위치한 호텔답게 레스토랑이고, 콩그레스홀이고, 리크리에이션센터고 다 크다. 또 콩그레스센터 안에는 농구장이 있어 농구선수권대회를 열 수 있는 것 같다. 밥을 먹고 나와 잠시 콩그레스홀에 가보니 공연도 하고, 노래도 하고 볼 만하다. 홀 밖에는 공연을 끝낸 아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사라예보의 아이들
 사라예보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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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돌아와 밖을 내다보니 보스나강의 지류인 젤리에즈니카천이 흐르고 있다. 수량이 많지는 않지만 주변의 자연 그리고 주택과 잘 어울린다. 강 건너 멀리는 비구름이 가린 높은 산이 짙은 실루엣을 형성하고 있다. 호텔의 활기와 차분한 빗속의 사라예보 풍경이 대조적이다. 비만 오지 않는다면 호텔 밖으로 나가 사라예보의 밤풍경을 즐길 수 있을 텐데 아쉽다. 

세차게 쏟아지는 사라예보의 눈물

아침에 일어나보니 어제보다 비가 더 세차게 내린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4년동안 계속된 보스니아 독립전쟁으로 죽거나 실종된 만 명의 원혼이 흘리는 눈물 같다. 이제 그들의 피눈물을 맞으며, 사라예보를 관광하게 생겼다. 우리 모두는 우산도 준비하고 우비도 준비하고 단단히 채비를 한다. 버스는 국회의사당과 시청을 지나 오발라 쿨리나 바나 거리 끝의 다리 앞에 우리를 내려 준다.

라틴 다리
 라틴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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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사라예보 구시가를 걸으며 문화유산을 살펴볼 것이다. 우리를 안내해 줄 현지 가이드는 김성용씨로 이곳 사라예보에서 15년 정도 살고 있다고 한다. 원래 베오그라드로 왔다가 보스니아 전쟁 후 사라예보로 들어와 살게 되었단다. 그는 이제 사라예보 관광 전문가가 되었을 뿐 아니라, 한국과 관련된 일을 도맡아 하는 명예 영사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의 가족 6명을 제외하면 사라예보에 상주하는 한국인은 없다고 한다.

다리에서 우리는 먼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밀리야카강을 살펴본다. 비 때문에 역시 물이 탁하다. 강의 북쪽으로는 구 시청, 바쉬차르쉬야, 모스크와 성당, 박물관 등 우리가 찾아갈 문화유산이 밀집해 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된 라틴 다리로 간다.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에 사는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 가브릴로 프린시프가 라틴 다리 북쪽으로 지나가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을 암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라틴 다리 건너 오른쪽으로 시립박물관이 보인다.
 라틴 다리 건너 오른쪽으로 시립박물관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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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고, 유럽의 여러 나라가 동맹국과 연합국으로 나눠져 1918년까지 전쟁을 벌였다. 역사적인 라틴 다리를 건너 찾아간 곳은 사라예보 시립박물관이다. 이곳에는 1878년부터 1918년까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지배 하 사라예보와 보스니아의 역사와 문화유산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을 지나면 스타리 그라드(Old city)의 중심 바쉬차르쉬야에 이르게 된다.

현지 가이드를 따라 시내 한 바퀴

유럽 호텔 앞 바쉬차르쉬야 풍경
 유럽 호텔 앞 바쉬차르쉬야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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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쉬차르쉬야 서쪽으로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인 1882년 지어진 유럽 호텔이 있다. 사라예보를 대표하는 호텔로 사라예보가 터키 지배에서 오스트리아 지배로 넘어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물이다. 호텔 앞으로는 발굴을 하다 만 유적이 있고, 그 너머로 베지스탄으로 불리는 가지 후즈레프 베이 아케이드 시장이 있다. 유럽 호텔을 지나 서쪽으로 계속 가면 국립 미술관과 세르비아 정교회 성당이 나온다.

국립미술관은 '창조의 자유(Freedom to create)'라는 이름으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미술관 건너편 북쪽에는 1882년에 지어진 세르비아 정교회 성당이 있는데, 현재 내부를 수리중이다. 그렇지만 내부를 보기 위해 안으로 들어가니, 황금빛 이콘들이 제대와 벽에 그려져 있다. 외부는 기둥을 제외하고 모두 갈색을 띠고 있고, 돔은 모두 5개다. 정면 위의 종탑과 건물의 스타일은 후기 바로크 양식으로 보인다.

구시가지의 중요 문화유산 지도
 구시가지의 중요 문화유산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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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정교회 성당 북쪽으로는 1889년에 건설된 로마 가톨릭 계열의 예수성심성당이 위치한다. 이 성당은 고딕양식을 기본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을 가미했다.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제대고 스테인드글라스고 모두 고딕식이다. 서유럽에서 보던 성당처럼 웅장하지 않고, 조금은 소박한 편이다.

우리는 이제 사라예보 최고의 쇼핑가인 페르하디야 거리를 따라 오스만 터키시대 만들어진 아케이드 시장 베지스탄으로 간다. 베지스탄은 109m에 이르는 석조건물로, 1543년 가지 후스렙-베이 왕의 명령으로 만들어졌다. 건물 안 양쪽으로 52개의 점포가 있는데, 주로 직물을 팔고 있다. 베지스탄 밖은 장인들의 거리로 바로 연결된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장인들의 거리로 간다.

방짜유기 제품
 방짜유기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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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우리식 방짜 제품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 주전자, 향로, 상감 용기, 은제 그릇, 벽걸이, 물담배 등 없는 게 없다. 우리는 커피를 가는 용기와 커피를 끓이는 용기를 하나 산다. 이곳은 터키로부터 들어온 금속공예 기술을 그대로 간직한 거리로 유명하다. 이 거리에는 또한 역사가 아주 오랜 모리카 여관이 있다. 이 여관은 16세기 전반에 카라반을 위한 숙소로 만들어졌으며, 40개의 방에 3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건물에는 방 외에 공동의 거실, 상품 창고, 마굿간 등이 마련되어 있다.

상감 제품
 상감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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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나온 우리는 바쉬차르쉬야 중앙 광장에 있는 세빌리 분수로 간다. 이것은 1754년에 처음 만들어져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주었다고 한다. 그러다 1852년 화재로 전소되었으며, 1891년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이 분수에서 다시 서쪽으로 조금 가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가장 오래된 가지 후스렙-베이 모스크가 나온다. 1530년에 처음 지어졌고, 1892년 모스크 앞에 아름다운 대리석 분수가 만들어졌다. 모스크는 8각형의 건물이 두 개 연결되어 있는데, 하나는 학교 건물로 사용되고, 다른 하나는 기도와 예배장소로 사용된다.

세빌리 분수
 세빌리 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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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비가 오는데도 사라예보 구시가지를 더 많이 보려고 애썼다. 그러다 보니 개개의 문화유산을 꼼꼼히 볼 수는 없었다. 내부도 자세히 보고, 전시된 물건도 하나하나 보아야 하는데 그렇게까지는 할 수 없었다. 비가 온다고 현지가이드가 대충 대충 안내한 측면도 있다. 또 비 때문에 설명도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운의 도시 사라예보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문화유산을 공부하고 체험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사라예보는 유고연방에서 떨어져 나오기 위해 가장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고 피를 흘린 도시이기 때문이다.


태그:#사라예보, #사라예보 영화제 , #라틴 다리 , #바쉬차르쉬야, #보스니아 독립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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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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