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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맛집, 관광지 등은 물론이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낱낱이 보여드립니다. 8월 지역투어 지역은 강원도입니다 [편집자말]
대목장주를 꿈꾸며 화려하게 귀향.
▲ 귀농의 꿈 대목장주를 꿈꾸며 화려하게 귀향.
ⓒ 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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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세요! 모닝콜 시각입니다."

친절한 안내 멘트에 이어 '띠리리, 띠리리리....' 귓전을 울리는 효과 음악이 이른 새벽의 적막을 깬다. 오전 5시 30분. 무거워 주체하기 어려운 눈꺼풀을 굳이 들어 올리려 애쓸 필요는 없다. 휴대전화 알람 시각을 10분 연장하고 벌렁 누워 버린다.

"...세요! 모닝콜 시각입니다."

앞의 멘트는 대개 듣지 못한다. 그새 10분이 흘렀다. 잠결이지만 능숙하게 또 한 번 모닝콜 시각을 연장 설정하고 또 자리에 벌렁. 세 번째 성화에야 마지못해 졸린 눈을 비비고 자리를 턴다.

10분 전 여섯 시. 아무리 서둘러도 여섯 시 정각에 가게 문을 열기엔 이미 늦었다. 제시간에 식사를 못하고 피로가 쌓이면서 부쩍 자주 나타나는 '변기 위의 전쟁'이라도 도지는 날에는 30분 지각을 각오해야 한다.

사슴 이끌고 고향 앞으로, 그러나...

자동차로 5분 남짓의 가게에 '헐레벌떡' 도착. 문 열리기를 기다리던 애연가들의 표정이 곱지 않다. 담배 판매점이 흔하지 않은 외딴 시골 국도 변이기에 마지못해 기다려주는 고객과 이틀에 한 번꼴로 이렇게 마주친다.

넓지 않은 가게 구석구석에서 나방과 하루살이, 날개미 시체가 쓰레받기로 가득 나온다. 밤사이 곳곳에 '레이더'를 장치한 거미들과의 신경전도 기다린다. 바닥 걸레질과 각종 상품이 진열된 쇼케이스 청소, 야외 간이 의자며 파라솔 등을 청소하고 안팎의 쓰레기를 봉투에 담으면 대충 아침청소가 끝난다.

그러는 동안 출근한 주방 아주머니(이곳은 식당과 편의점을 겸업 중이다)가 장 볼거리를 메모지에 적어 건네준다. 오전 9시. 지역신문의 인터넷판에 올라온 기사들을 모아 중학교 총동문회 인터넷 카페에 올리는데 30분은 족히 걸린다. 점점 느려지는 컴퓨터 처리속도 탓에 답답함이 아침부터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가게에서 5km 정도 떨어진 안흥시장에 가서 식재료들을 구입하고, 이장님 댁 비닐하우스에 들러 대파를 '훔친다'. (사전 양해는 있었지만 주인도 없는 비닐하우스에서 농작물을 수확해 오는 행위라 이런 표현을 쓴다.)

이렇게 시작된 일과는 밤 11시에 마무리된다. 앞에서 언급한 이야기에서 살짝 엿볼 수 있지만 국도 변 휴게소 내에 있는 식당과 편의점을 운영하는 게 내 직업이다. 이제 겨우 3개월을 넘긴 처지라 '직업'이라고 당당히 말하는 게 좀 어색하다.

8년 전, 그러니까 2003년10월 대농장주의 꿈을 안고 마리당 1000만 원을 훌쩍 넘는 엘크사슴 22마리를 앞세우고 고향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으로 돌아왔다. 그때가 30대 후반이었으니, 거의 20년 만에 귀향한 셈이다.

서울 등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늘 마음 한구석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다니던 직장 역시 농축산 분야여서 대농장을 일굴 수 있다는 자신감도 컸다. 하지만 지금은 구두굽 높이에 맞춘 바지가 길고 거추장스러워 장딴지까지 걷어 올리고 주방과 계산대를 종종걸음으로 누비는 내 모습에서 목부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경험하지 않고 작성한 '귀향 사업계획서' 쓸모없어

다 정리한 건 아니지만 사슴농장은 이미 크게 축소됐고, 나의 주력 사업도 아니다. 고맙게도 수년간 믿고 찾아주시는 단골손님들과의 인연을 정리할 수 없어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귀향(귀촌) 사업계획서에서 사슴농장 다음의 비중을 차지했던 농촌민박도 접은 지 오래다. 구구절절 '나는 이렇게 했는데 저렇게 안 되더라'며 푸념섞인 그간의 과정을 늘어놓고 싶지는 않다. 다만, 더욱 철저한 사전조사 또는 직간접적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의 '오만한' 사업계획으로는 결코 농촌살이를 성공으로 이끌 수 없다는 게 그동안 얻은 교훈이라면 교훈이다.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농촌에는 젊은 사람이 없다. 즉 일꾼이 없다는 얘기다. 농사일이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활동가가 부족하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도회지에서 눈칫밥 좀 먹고 세상 물정 살피기에 조금 나은 귀향인들에게 그 역할이 집중적으로 주어지게 마련이다.

귀향인이 마다할 수 없는 지역일꾼 역할
 귀향인이 마다할 수 없는 지역일꾼 역할
ⓒ 성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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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낯선(나는 고향으로 왔기에 조금 사정이 낫지만) 마을, 생소한 사람들과 빨리 동화되기 위해 이런저런 사회단체를 기웃거리게 되고, 역할이 하나 둘 늘어나다 보면 정작 본업에 소홀해지는 상황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닥쳐오기도 한다.

새삼 느끼는 것이지만 작은 농촌 지역일수록 각종 성격의 단체와 친목모임, 행사가 많다. 인구 3000명 남짓의 이곳 강원도 횡선군 안흥면에만 30여 개나 되는 기관과 사회단체가 있다. 주변 돌아보지 않고, 손가락질 받아가며 자신의 일에만 몰두하는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50대 이하 청년(?)으로서 사회단체 서너 곳 이상 참여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잠시 우쭐하고 정신 못 차리는 사이 이곳저곳에서 주어지는 감투가 늘어나다 보면 자칫 '건달' 신세가 되어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다. 실제로 수년간 마을 이장직을 맡았다가 문전옥답 팔아 빚 청산하고 결국 고향을 떠난 이들의 생생한 사례가 심심찮게 회자하기도 한다.

처음 귀농이든 귀촌이든 결심을 하고 실행에 옮기려면 배우자나 가족의 동의가 당연히 뒷받침돼야 한다.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전원생활이고, 주변에서 접하는 여러 매체도 다소 과장된 환상을 전하기에 막상 현실로 닥쳐올 불편함을 알기는 어렵다.

도시에서 시골로 오는 사람들을 보면, 생활의 불편함도 그렇거니와 농촌 사람의 사고나 생활방식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의외로 많다. 농촌의 특성상 이웃과 허물없이 매사를 공유하는 것 자체가 개인주의적 생활에 물든 귀농자들에게는 극복하기 힘든 벽이 되기도 한다.

처음 귀농할 시점에는 가족들과 합의가 잘 이뤄졌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의견이 달라질 수도 있다. 서로 잘 풀거나 합의하지 않으면 자칫 가족 간 불협화음이 생기고, 그로 인해 또 다른 어려움의 불씨가 생기기도 한다. 솔직히 나도 그런 경험을 했다.

'거품'을 빼야 진정한 귀농인이 될 수 있다

대목장주의 꿈을 안고 귀향한 내게 식당과 편의점 운영이라는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다. 물론 선택은 나의 몫이었다. 지난 8년의 득실을 따져 본다면, 사실 잃은 게 더 많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앞으로의 일이다.

그동안 마을 이장은 물론, 각종 사회단체를 기웃거리면서 좋은 이웃을 많이 만난 게 지금의 새로운 사업에 많은 도움이 됐다. 계절마다 식당에서 소요되는 나물, 야채 등 음식재료 등을 불쑥불쑥 가져다 놓고는 답례인사라도 받을세라 종종걸음으로 뒤돌아 가는 이웃들을 보면서 진정한 귀농인이 돼가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습관처럼 새벽 5시 30분에 알람을 설정하고 잠자리에 든다.



태그:#지역투어, #농촌살이, #전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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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을 지키며 각종 단체에서 닥치는대로 일하는 지역 머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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