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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 서울시장에게는 '여복이 많은 정치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여성들에게 불쾌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성은 그의 인생행로의 고비마다 전환점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세훈은 초등학생 시절 아버지가 다니던 건설회사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달동네인 삼양동에서 직접 블록을 만들어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그는 1979년 고교를 졸업하던 해에 목표했던 전기대에 떨어져 후기대에 입학했다. 그는 여자친구(현재의 부인)와 같은 대학을 다니기 위해 공부해 마침내 고려대에 편입학했다. 또 결혼을 반대하는 처가에 인정받기 위해 사법시험에도 합격했다. 그 나름의 '인정 투쟁'인 셈이다.

 

변호사 오세훈이 대중에게 처음 얼굴을 알린 것은 94년부터 MBC-TV의 '생방송 오변호사 배변호사'를 진행하면서부터다. 이 법률상담 프로그램은 원래 단독 MC였던 배금자 변호사가 동료인 오세훈을 영입해 더블 MC방식으로 포맷이 바뀌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그는 2000년 16대 총선에 출마하기까지 SBS의 간판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싶다>와 시사토론 <오늘과 내일>을 진행했다. 배 변호사가 그의 정계입문의 단초를 마련해 준 셈이다.

 

방송 진행과 환경운동으로 쌓은 '꽃미남 클린 이미지'

 

오세훈은 이처럼 시사 프로그램 진행으로 대중에 얼굴을 알리는 한편으로 환경운동연합 상임집행위원장으로 시민사회에 '클린 이미지'를 쌓아왔다. 그런 이미지 덕분에 16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공천으로 서울 강남구에 출마해 정계 입문했다. 이때도 이회창 총재의 부인 한인옥씨가 숙명여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인 그를 한나라당의 '젊은 피 수혈'을 위해 추천했다는 얘기도 있다.

 

시민환경단체의 기대에 걸맞게 그의 의정활동은 모범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나라당 소장파 모임인 '미래연대'의 공동대표로 정치개혁에도 앞장섰다. 그러나 오세훈은 2004년 1월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불출마를 '무기'로 나중에 '오세훈법'으로 불린 정치개혁 관련 3법(정당법,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개정을 주도했다.

 

대중정치에서 흔히 이미지는 곧, 콘텐츠다. 방송으로 각인된 '잘난 오빠',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불출마 선언으로 확장된 '합리적 보수' '깨끗한 보수' 이미지는 이렇게 해서 그의 콘텐츠가 되었다. 한나라당은 한동안 정치를 떠난 '클린 오세훈'을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반(反)정치 강금실'의 대항마로 불러냈고, 그는 가볍게 승리했다.

 

2006년 서울시장 한나라당 경선 당시 그와 맞붙은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그런 오세훈이 못마땅했다. 더러는 너무 솔직하게 자신의 거짓 없음을 드러내느라 위악(僞惡)적인 홍준표는 당시 '우직한 촌놈'이 '기생오라비 같은 꽃미남'과의 이미지 전쟁에서 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춤바람(강금실 전 장관을 빗댄 말)에 대항해 한쪽에선 꽃미남(오세훈 전 의원)이 나왔다.…강금실의 보랏빛 카드(스카프)와 오세훈의 녹색 카드(넥타이)가 집중 조명을 받으면서부터 서울시장 선거는 '이미지 대 이미지' 전쟁으로 급변했다. 다른 후보가 강남 헬스클럽에서 썬텐을 하면서 이미지를 가꿀 때 나는 밤새워 서울시정을 연구했고, 피눈물 흘리며 대여투쟁을 해왔다."

 

진보적 환경운동에 가담한 '강남 좌파' 이미지로 정계 입문한 오세훈은 실제로 '꽃미남 강남 좌파' 이미지 덕분인지 여성표가 많다. 당시 강금실 vs 홍준표-맹형규 대결구도였던 선거가 강금실 vs 오세훈으로 바뀐 것도 한나라당 후보 중에서 유일하게 강금실보다 여성표가 더 많은 후보라는 강점이 배경이었다. 참신하고 깨끗한 이미지가 오세훈과 겹친 강금실은 홍준표-맹형규와의 대결에서 누리던 차별화나 독점 효과를 더는 기대할 수 없었다.

 

'꽃미남 이미지' 덕분에 서울시장직 쉽게 거머줘

 

당시 이런 여론의 흐름을 먼저 포착해 보도한 것은 <조선일보>였다. 이 신문은 한국갤럽의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한 ''康男吳女'(강남오녀) 강금실 남성·오세훈 여성표 많아'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오세훈 후보의 등장에 대해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유권자의 성별로는 강 후보가 남성에서 45.3% 대 39.4%로 높았고, 오 전 의원은 여성에서 43% 대 41%로 다소 높았다. 지금까지 각종 여론조사에서 강 후보는 한나라당 다른 후보들에 비해 여성 지지율이 크게 강세였지만, 오 전 의원과 가상대결에선 여성의 지지가 오 전 의원으로 많이 옮겨갔다."(조선일보, 2006. 4. 10)

 

표본 집단을 구체적으로 보면, 가정주부(사례수 157)에서 오세훈 지지율은 48.1%로 강금실 지지율(37.3%)을 10%p 이상 앞섰다. 그는 실제로 그해 서울시장 선거에서 240만9천736표를 얻어 강금실을 가볍게 따돌렸을 뿐 아니라 같은 당 김문수 경기지사 당선자(218만1천677표)를 앞서는 전국 최다득표의 영예까지 안았다. 서울 신촌 유세중 괴한으로부터 '면도칼 테러'를 당한 박근혜 효과를 본 덕분이니 이 또한 '여복'이라면 '여복'이다.

 

그가 서울시장 재선에 도전한 2010년 6.2 지방선거를 앞두고 3파전으로 진행된 한나라당 경선에서도 나경원-원희룡 의원은 남성 유권자 지지율이 높은 반면에 오세훈은 여성 유권자 지지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본선에서 낙승이 점쳐진 야권 단일후보 한명숙과의 대결에서 거의 익사할 뻔했던 그를 수렁에서 건져 올린 것은 '강남 몰표'였다. 물론 그중의 절반 이상은 여성표였다.

 

결국 '꽃미남' 이미지 덕분에 서울시장직을 쉽게 거머쥐었고 지금도 그 덕을 보고 있으니 <조선>이 작명한 '康男吳女'(강남오녀)가 지금은 '江南吳女'(강남오녀)로 바뀐 셈이다. 그에게 '여복이 많은 정치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닐 법하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쟁쟁한 여성 후보와 싸웠는데, 그것도 막강한 여성(박근혜)과 여성표의 지원으로 승리했으니 '여복 많은 정치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물론 그에 대한 여성표의 상대적 우위가 순전히 '꽃미남 이미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실제로 그는 "여성이 행복하면 모두가 행복하다"는 슬로건 아래 여성의 시각과 경험을 기존의 여성가족 분야뿐 아니라 교통·주택·문화 등 도시생활 전반에 걸쳐 정책기획, 입안단계부터 반영하는 '여행(女幸) 프로젝트'를 추진해 젊은 직장여성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는 '2010 UN 공공행정 대상'을 수상했다.

 

오세훈의 눈물은 여성표에 호소하는 마지막 승부수

 

그런 점에서 그가 21일 주민투표에 시장직을 걸겠다는 기자회견에서 다섯 번이나 눈물을 흘린 것은 '눈물에 약한 여성표'라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그로서는 든든한 지원세력이었던 여성표에 호소하는 마지막 승부수인 셈이다.

 

실제로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는 말에서 보듯, 한국 사회는 눈물을 드러내는 것을 남자답지 못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바보가 아니라면 눈물로 남성표에 호소할 리 없다. 그에 앞서 오 시장의 거취가 관심의 대상이 된 가운데 실시된 리얼미터 여론조사결과에서도, 여성(70.0%)이 남성(63.2%)보다 '사퇴 반대' 의견이 7%p가량 높게 나타났다.

 

그러나 남녀의 차이를 떠나 공인이 대중 앞에서 눈물을 비치는 것은 '위선'이거나 프로답지 못한 행위로 간주된다. 연예인도 예외가 아니다. MBC 인기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의 수석 명예 졸업생 박정현이 마지막 경연에서 '그것만이 내세상'을 부를 때도, 새로 투입된 인순이가 자신의 인생역정을 담은 '아버지'를 부를 때도 오세훈처럼 그렇게 내놓고 울지는 않았다. 이들은 눈가에 살짝 이슬이 맺힐 듯 말듯 하면서 감정이입을 절제해 청중의 공명을 이끌어냈다.

 

'나가수' 팬인 나는 경제학자 홍종학 교수(경원대 경제학과)가 쓴 "경제학자가 왜 '나는 가수다'에 열광하나?"라는 칼럼처럼 공감을 주는 멋진 '나가수' 평을 보지 못했다. 그는 제레미 리프킨이 새롭게 제기한, '감정이입' 또는 '공감'을 의미하는  'empathy' 개념을 빌려 경제학자답게 '나가수' 경연에 빗대어 우리 사회의 '슬픈 경쟁을 아름다운 경쟁으로 바꾸는 방법'을 이렇게 제안했다.

 

"합리적인 오세훈이 무상급식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나 보수인사들이 복지가 망국병이라고 우겨대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분명 동정심에 가득 차 있겠지만 감정공명을 모르는 사람들의 한계다.

 

생존권을 지키고자 망루에 올랐다 불귀의 객이 되어버린 용산 참사의 희생자들이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 그리고 지금도 전국 도처에서 농성 중인 노동자들의 참담한 삶에 대해 우리가 동정이 아닌 감정의 공명을 느낀다면 우린 새로운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아마도 그 해법이 모든 경쟁을 부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경쟁의 탈락자가 아니라 잠시 쉬면서 재충전을 하여 새로운 도전자가 되는 아름다운 경쟁이 더 현실적 해답이 될 것이다."

 

조전혁 "무상급식은 일부 게으른 젊은 엄마들의 인기에 영합한 것"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에게 대권 야심은 차고 넘칠지언정 '상대방의 감정 상태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며 경험하는 능력'은 없는 것 같다. 또 "의회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시장이란 정치적 오명을 남기더라도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는 오만과 독선만 가득할 뿐, 김문수 경기지사처럼 '무상급식' 문제를 '친환경급식 지원'으로 풀어가는 유연성도 찾을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된 '친환경 무상급식'의 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려는 오기를 부리는 데 시장직을 걸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6.2 지방선거에서 이 공약을 내건 상당수 후보가 당선된 뒤, 무상급식은 일선 학교에서 이미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다. 올 1학기에 보면 16개 광역시-도 가운데 대구를 제외한 15개 광역단체에서 모두 초등학교 무상급식을 실시했다. 기초단체는 전국 229개 곳의 80%인 183곳이 무상급식을 했다. 이번 주민투표가 먹던 밥그릇을 빼앗는 비정한 투표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오세훈과 복지포퓰리즘추방 국민운동본부라는 급조된 보수단체가 '짜고 치는' 이 '고스톱 선거'에는 교육의 진정성마저도 찾을 수 없다. 실정법을 어기면서까지 전교조 교사 명단을 공개해 파문을 일으킨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 1월 이 단체 발족식 축사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무상급식은 무상이 아니라 공산주의에서 하는 급식배급이다. 무상급식하자는 것은 배급제 하자는 것이라고 해야 맞다…(중략)…급식도 교육이라고 하지만 가장 교육적인 급식은 어머님이 싸주는 도시락을 먹이는 것이다. 무상급식은 일부 게으른 젊은 엄마들의 인기에 영합하는 부분도 있다."(라이트뉴스, 2011. 1. 21)

 

일부 게으른 젊은 엄마들이 아이들 도시락 싸주기 귀찮아 무상급식을 찬성한다는 얘기다. 이처럼 이 땅의 여성들이 '오세훈에 의한, 오세훈을 위한, 오세훈의 주민투표'에 들러리를 서지 않아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특히 '게으른 젊은 엄마들'이여, 아이들 밥그릇에 시장직을 연계한 '악어의 눈물'에 속지 말지어다!


태그:#오세훈, #무상급식, #주민투표, #조전혁, #여성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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