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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섬이라지만 이건 너무 멀구먼, 도대체 얼마나 더 가야 되는 거야?"

"그건 나도 몰라. 나도 첫 길이니까?"

 

백수들 주제에 그렇잖아도 붐비는 휴가철에 덩달아 끼어들면 안 된다는 것이 친구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그래서 한 박자 늦춰 출발한 것이 연휴가 끝나는 날인 15일, 네 가족 아홉 명이 두 대의 승용차에 나눠 타고 목포를 향해 달렸다.

 

목포를 둘러볼 틈도 없이 육지와 연결된 다리를 건너자 압해도, 이곳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1004개의 섬들로 이루어진 신안군청이 자리 잡고 있었다. 승공선착장에서 연락선을 타고 바다를 건너 오도선착장에서 내렸다. 압해도에서 부슬부슬 내리던 비는 다행이 그쳤다.

 

미지의 섬으로 가는 길에서 맛본 민어매운탕

 

오도선착장에서 다시 승용차를 타고 길을 나섰다. 그런데 찾아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모두 난생 처음 길인데다 그 흔한 내비게이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침 일찍 출발하여 군산에서 간단히 먹은 아침식사 후 먹은 것이 없어서인지 배가 슬슬 고파온다.

 

"우와! 보기보다 매운탕 맛이 끝내주는 걸."

 

성미 급한 친구가 밥부터 먹고 가자고 나섰다. 마침 길가의 주유소에서 승용차에 기름을 넣고 난 후 주인에게 물으니 근처에 있는 식당을 가르쳐 준다. 허술해 보이는 식당이었지만 우리 일행이 주문한 민어매운탕은 맛이 좋았다.

 

점심을 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 몇 번인가 길을 잘못 들어 헤매다가 다리를 건너자 암태도다. 면소재지인 이 섬은 제법 넓었다. 우리들은 암태도를 지나 바다 갯벌 가운데로 뚫린 추포노두를 건너 추포도에 당도했다. 갈림길에서 해수욕장이 있는 언덕에 오르자 웬 아주머니 한분이 헐레벌떡 달려와 우리를 안내하겠다고 나선다.

 

"마을로 오시지 않고 길을 잘못 드신 것 같아서 쫓아 왔구만이라."

 

아주머니의 안내로 언덕길을 넘자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이 마을이 신안군 암태면 추포리 마을이었다. 아주머니의 집은 마을 안길 끝 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담한 집 마당에는 넓게 그늘을 드리운 후박나무 아래 평상을 만들어 놓아 나그네들의 쉼터가 되어주었다.

 

대문도 없는 집안으로 들어서자 50대로 보이는 키가 크고 거무튀튀한 남자가 우리들을 맞는다. 우리들이 묵을 민박집 주인이었다. 집 뒤쪽은 나지막한 언덕에 숲이 우거져 있었다. 앞쪽에는 고추밭과 고사리밭, 그리고 작은 논 몇 개. 옆으로는 몇 채의 집들 주위를 역시 나지막한 언덕이 에워싸고 있었다. 아주 작은 섬에 있는 작은 마을 풍경은 맞은 편 언덕 아래 집에서 들리는 송아지 소리 외에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아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우리들에게 이틀 동안 묵을 방과 주방, 화장실, 수도와 주변 시설을 안내해주고 밖으로 나갔다. 방에 짐을 푼 우리들은 우선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우리들이 집을 나서려고 하자 잠깐 동안 보이지 않던 아주머니가 나타나 남편과 함께 앞장을 선다. 그런데 대문도 없는 집인데 문단속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괜찮겠느냐고 물으니 평소에도 항상 그렇게 집안을 열어놓고 산다며 웃는다.

 

항상 문 열어 놓고 사는 포근하고 아름다운 섬마을 인심

 

집 왼편으로는 너무 허술해 보이는 두 채의 집이 있었다. 그런데 한 집은 지붕 한쪽이 뻥  뚫려 있고 또 다른 집은 입구와 마당이 온통 잡초로 뒤덮여 있다. 그래도 두 채 중 지붕 한쪽에 구멍이 뚫린 한 집엔 사람이 살고 있었고, 한 채만 빈집이라고 한다.

 

오른편에는 몇 채의 반듯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무더위에 집안에 있거나 논밭이나 바닷가에 일하러 나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 18가구가 살고 있는 이 마을의 본래 이름은 추엽리였다. 그런데 마을입구 언덕 너머에 있는 다른 마을과 합쳐지면서 추포리로 이름이 바뀐 것이다.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저녁시간이다. 섬으로 들어가는 길에서 구입한 쌀로 밥을 짓고 오리고기 구이를 곁들인 밥상이 푸짐하다. 그러나 더욱 입맛을 돌게 한 것은 바로 집 앞에 있는 텃밭에서 채취한 부추무침과 들깻잎이었다. 주인아주머니도 함께한 저녁자리였다.

 

"부추랑 들깻잎 저거 농약도 하지 않았응게 언제든지 마음 놓고 뜯어다 드셔도 되는구만이라."

 

아주머니는 집 앞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를 마음껏 뜯어다 먹어도 좋다고 한다. 두 식구가 소비하기에는 너무 넓은 텃밭만큼 넉넉한 인심이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도 필요하면 누구에게나 개방해놓은 채소들이라고 한다. 채소까지 푸짐하게 곁들인 섬 마을의 첫날 저녁식사는 주인부부의 넉넉한 마음까지 담겨 더욱 정답고 맛스러웠다.

 

다음 날, 요즘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주인집 소유의 함초 자생지에 나갔다가 아침을 먹고 망둥이 낚시를 하기로 했다. 함초는 마지막 날 아침 채취하기로 했다. 우선 면소재지에 나가 낚싯대 한 개를 구입하고, 주인남자가 만들어준 대나무 낚싯대에 낚시를 매어 갯벌 가운데로 난 노두길 옆 웅덩이를 찾았다. 낚시에 갯지렁이 미끼를 끼어 웅덩이 물에 던지자 금방 손맛이 온다.

 

얏~! 그러나 낚시에 걸렸던 망둥이 한 마리가 하늘로 솟구치다가 물속으로 퐁당 떨어진다. 그런데 옆에서 조용하던 아내가 낚아챈 낚시엔 씨알 굵은 망둥이 두 마리가 대롱대롱, 얏호! 아내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이렇게 우리 일행들이 잡은 망둥이는 점심상 한 자리를 버젓이 차지했다.

 

점심을 먹고 주인집 아주머니가 집 앞 텃밭에서 잡초를 제거하고 있을 때 작은 트럭 한 대가 다가왔다.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는다. 누구시냐고 물으니 이웃 마을에 사는 남편 친구라고 한다. 길에서 나누는 대화는 마을에서 공동운영하는 해수욕장 민박집과 몽골텐트 운영에 대한 것이었다.

 

"모르셨는기라? 이 아주머니가 머나먼 강원도 삼척에서 시집오신 분이지만, 이 마을 이장님이시고, 집안을 일으켰지라우"

 

강원도 삼척에서 머나먼 이곳 섬마을에 시집을 오다니? 그리고 여성 이장님이라니? 참 대단한 인연이었다. 이웃마을 남자의 말에 의하면 올해 49세인 심해숙 아주머니는 강원도 삼척 태생으로 김대식(55세)씨와 결혼하여 올해 28세된 아들과 서울에서 대학에 다니는 딸을 둔 남매의 어머니였다.

 

심해숙씨는 마을에서 이장 일을 맡아하면서 자신의 집안일은 물론, 마을에서 공동운영하는 해수욕장 민박집, 그리고 몽골텐트와 마을의 대소사를 앞장서 해나가는 성실한 봉사자라는 것이었다. 대화가 끝나갈 무렵 이장 아주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면사무소에서였다. 마을의 태풍피해 현황을 조사하여 보고하라는 것이었다.

 

아주머니는 이날 밤이 깊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농사피해와 가옥피해, 그리고 선박피해까지 조사할 일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오후에는 근처 선착장에서 면사무소에 근무하는 공무원과 함께 선박피해를 조사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이장 아주머니는 그야말로 정신없이 바빴다. 햇볕이 나자 남편과 함께 염전에 나갔다, 일행들과 함께 바닷가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염전에 들렀다. 전체 면적이 1만여 평이라는 염전은 상당히 넓었다. 바닷물을 끌어들여 저장해 놓은 저수조. 그리고 염전에서 소금생산을 하다가 비가 내리면 그 물을 빗물과 섞이지 않게 저장해 놓는 얕은 지붕이 있는 또 다른 저수조와 소금을 운반하는 운반차와 레일, 소금보관창고가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올해는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소금생산을 많이 못했구만이라."

 

김대식씨의 말이다. 날씨가 좋을 때면 거의 매일 소금을 생산하는데 올여름엔 비 내리는 날이 많아 소금 생산에 지장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들 부부에게서 소금에 대해 알아보았다.

 

삼척에서 시집와 희망을 일궈낸 심해숙씨

 

소금은 봄부터 가을까지 생산되지만 품질은 5월과 6월에 생산된 소금이 제일 좋다고 한다. 기온이 27~28도에서 생산된 염도 28~29도 정도의 소금이 제일 좋다는 것이었다. 봄과 가을에 생산되는 소금은 대개 염도가 30도 이상이며 특히 한여름에 생산되는 소금은 염도가 32~33도로 쓴맛이 나기 때문에 맛이 좋지 않다는 것이었다.

 

"바닷가에 나가보셨으니까 아시겠지만 이곳 신안은 청정해역이라 소금생산에 아주 적합한 곳이구만이라. 미네랄도 풍부하고 맛도 최고지라, 그러나 이곳에서 생산되는 소금이라고 품질이 모두 똑 같지는 않구만이라. 아까 말씀 드린 것 같이 5~6월에 생산되는 소금이 최고지라, 요즘 도시에서 많이 유통되는 중국산 소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거구만이라."

 

염전의 규모가 제법 커서 부부가 감당하기엔 벅차지만 일손 구하기가 힘들어 어쩔 수 없이 부부가 힘을 모으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부인이 이장 일까지 맡아서 하다 보니 더욱 힘들다며 도시의 남아도는 인력이 아쉽다는 것이었다.

 

"섬 마을이 마냥 가난하기만 한 것은 아니구만이라.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은 보기보다 잘 삽니다. 갯벌이며, 염전, 논밭 일까지 할 일이 많구만이라...."

 

"저희 마을엔 다행히 거동이 불편하신 노인이나 장애인이 계시지 않아 저는 참 편한 이장이구만이라. 다른 마을 이장님들은 정말 수고 많이 하시지라"

 

강원도 삼척에서 머나먼 신안 바다 섬 마을에 시집와서 마을 이장 일까지 맡아 봉사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심해숙씨, 그리고 가난하던 섬 마을에 농사와 염전으로 희망을 일궈낸 이들 부부의 말이 끝없이 펼쳐진 갯벌 너머 푸른 바다처럼 긴 여운을 남기고 있었다.


태그:#심해숙, #김대식, #신안, #이승철, #추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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