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가까이로는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연상케 하지만 멀리는 할리우드의 <에일리언>시리즈와 <딥 블루 시Deep Blue Sea> (1999), <레비아탄Leviathan>(1989), <딥 식스DeepStar Six>(1989)같은 영화들과도 무척 비슷하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연상시키는 이유는 겉으로 보기에 '괴수영화'라는 장르에 속한다는 점때문이기도 하지만 영화에 담긴 주제가 '한강의 기적'과 '7광구'로 대표되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 산업화 과정대한 의심이라는 점때문이기도 하다.

한편, 다른 할리우드 괴수영화들과 이 영화가 비슷한 점은 우주든, 바다 한가운데, 또는 바다 속이든 간에 우주선이나 시추선이라는 폐쇄된 공간 안에서 선원들이 정체불명의 괴물의 공격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그 과정에서 하나둘씩 죽어나간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그들이 처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바로 그들이 속한 회사인데, 이 회사는 그들을 구출하지않고 회사의 이익을 위해 이들을 희생시키기로 결정한다.

이런 영화의 이야기 구조는 그렇게 복잡하지않다. 대신 이런 경우에 이 폐쇄된 공간에 모인 선원들이 단순히 각자 개성있는 개인들의 조합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축소판으로 본다면 이 텍스트를 다르게 읽을 수 있게 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크게 기술자들과 과학자들로 이루어져있다. 기술자들은 대체로 현장에서 시추작업을 담당하고 과학자들은 시추작업으로 캐낸 물질의 성분을 분석해서 그것이 경제적으로 효용이 있는 물질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 수개월에 걸쳐 작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나오지않자 시추담당 회사는 철수를 결정한다. 철수작업을 담당할 선장으로 오래 전에 7광구에서 작업한 적이 있는 안정만 (안성기)가 부임하는데 그는 철수작업을 미루고 작업을 몇개월 더 할 것을 지시한다. 수개월이 지난 후에, 이들 기술자들과 과학자들은 정체불명의 괴물을 보게 되고 시추선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게 된다.

시추작업을 계속 할 것을 요구하고 지휘하는 안정만은 오래 전에 7광구에서 시추작업을 했던 경력이 있다. 그는 1970년대, 80년대에 한국이 산유국이 됨으로써 강대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원민족주의'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차해준(하지원)은 7광구에서 아버지를 잃었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엘렉트라 컴플렉스로 안정만의 '자원민족주의'에 부응하고 아버지 세대의 과업을 유지로 받아들인다. 나머지 인물들은 안정만과 차해준에 버금가는 석유시추작업에 집착하지 않는다. 안정만이 오기 전에 시추선의 선장이었던 황인혁(박정학)은 시추작업의 실효성에 대해 계속 회의적이고 결국에는 안정만의 부임에 대해서도 의심한다. 한편, 차해준을 사랑하는 김동수(오지호)는 유질분석관이고 차해준과 더불어 유이한 여성인 현정(차예련)은 해저생태 연구원이다. 현정은 우연히 시추봉에 걸려 올라온 심해 화학성 생물을 분석해서 상부에 보고한다. 차해준이 엘렉트라 컴플렉스때문에 이전 세대의 '자원민족주의'에 동조한다면, 현정은 동기는 불분명하지만 심해 생물 처리에 일조함으로써 '자원민족주의'에 기여(?)한다.

이외의 인물들은 특별히 시추작업에 대해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고 결정에 따라 자기 임무를 묵묵히 수행한다. 이들이 하는 작업은 대체로 시추작업으로 기계와 도구를 다루는 육체노동으로 그려진다. 즉, 이들은 노동계급을 상징한다. 지역적으로는 이들중 절친한 선후배로 나오는 도상구(박철민)과 고종윤(송새벽)은 호남사투리를 사용하고 있으며 해저생태 연구원 현정을 짝사랑하는 장치순(박영수)는 영남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다. 즉, 전문적인 지식과 시추작업의 향방을 결정하는 지도적인 역할을 하는 이들은 서울말씨를 사용하며 명령을 수행하고 기술적인 업무를 맡은 이들은 지역사투리를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체불명의 괴물에 희생되어가는 인물들의 순서 역시 이들 인물들간의 위계와 위계가 상징하는 지식과 기술, 서울과 지역, 상층계급과 하층계급의 위계를 담지한다. (스포일러가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그 구체적인 순서를 여기에서 거론하지않겠다.) 위의 할리우드 영화들이 괴물들과 더불어 괴물을 낳게 한 대기업을 악당으로 그리는 동시에 과학기술에 대한 비관주의적 시각을 드러낸다. 7광구는 전세대의 자원민족주의와 집착에 대해 의심을 제기하는 쪽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만약 영화가 그렇게만 끝났어도 이야기의 일관성은 유지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에필로그에 '7광구 지역이 2025년까지 개발이 재개되지않으면 국제적인 영토분쟁지역으로 남게 된다'는 문구를 삽입함으로써 이 영화는 갑자기 국토수호의 의지를 피력한다. 차라리 '7광구' 개발에 몇명의 인력이 투입되었고 얼마의 자본이 투입되었으며 몇명의 사상자가 나왔다는 식으로 처리했으면 7광구로 대표되는 '개발'로 인해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다는 점을 밝히는 것이 더 이야기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아울러 김지훈 감독은 <목포는 항구다>에서 보여준 비슷한 실수를 이 영화에서도 반복하고 있다. <목포는 항구다>에서 싸움을 못하는 형사인 이수철(조재현)이 갑자기 숙달된 권투 선수가 되어 권투경기에 나가 경기에 이기는 장면을 보여주어 내용 전개상 앞뒤가 안맞게 처리한 적이 있는데, <7광구>에서는 해저 생태 연구원 현정의 죽음이 그렇게 앞뒤가 안맞게 처리되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시네21의 개인블로그 '사과애'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7광구 김지훈 괴수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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