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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놀 때는 시간이 빨리 가는데 학교에서 공부만 하면 시간이 안 간다"며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것이 '공부'인 우리 집 막둥이. 사교육을 하지 않기 때문에 방학은 한마디로 천국입니다. 특히 엄마가 오전에는 공부하라는 타박을 하지만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피아노 학원 시간강사로 잠깐 동안 집을 비우면 천국 중 천국입니다. 아빠는 공부하라는 타박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긋지긋하게 내리던 비가 멈추고 오랫만에 뜨거운 햇살을 드러내자 온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됐던 지난 금요일 오후. 부엌에서 '달그락 달그락'라는 그릇 소리가 났습니다. 왠지 조용하다 싶었는데 역시 막둥이었습니다. 아빠와 누나를 위해 새참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복숭아와 콜라 그리고 치즈였습니다.

 

"아빠! 복숭아 드세요."

"막둥이가 복숭아를 썰었어?"

"응."

"야, 정말 맛있겠다. 막둥이가 어떻게 복숭아를 다 썰고, 치즈까지!"

"배가 고파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복숭아와 치즈, 콜라가 보였어요. 그런데 갑자기 나만 먹을 것이 아니라 아빠가 생각났어요."

"우리 막둥이 다 컸네. 아빠도 생각할 줄 알고. 누나 것은?"

"누나 것도 다 준비했어요."

"형아도 같이 있었으면 좋았겠다."

"형은 수련회 갔잖아요. 그리고 엄마는 학원은 끝나면 차려드릴게요."

 

마냥 어려 어리광만 부릴 줄 알았는데 새참을 준비하다니 마음이 울컥하고 좋았습니다. 딸과 맛있게 먹었습니다. 갑자기 더운 날씨에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엄마를 위해 새참을 준비하겠다는 말을 듣고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빠! 엄마한테 전화했어요. 내가 복숭아와 치즈로 새참을 만들어 주겠다고."

"엄마가 좋아하시지?"

"응. 좋아했어요."

"아빠는 엄마에게 시원한 물 한 잔도 떠 준 일도 없는데. 막둥이는 엄마를 위해 새참을 다 준비하고 아빠보다 낫다."

"아빠는 엄마 생일때마다 생일상을 차려 드리잖아요."

"그래. 아빠는 1년에 엄마 생일상 한번 차려주고 다 끝낸다."

 

엄마가 돌아오자 막둥이는 나섰습니다. 냉장고 문을 열고 복숭아와 치즈를 꺼냅니다. 칼질하는 모습이 왠지 불안하지만 아내 얼굴은 싱글벙글입니다. 막둥이가 차려준 복숭아와 치즈 그리고 물 한잔이지만 얼마나 흐뭇하겠습니까.

 

"엄마. 덥고 배고프지요? 내가 복숭아와 치즈로 새참 만들어 드릴게요. 시원한 물 한잔도 대접합니다."

"엄마 배고프다. 덥고, 막둥이가 차려준 새참, 정말 맛있겠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손 다치지 말고 천천히 해야 된다."
"걱정 마세요. 아까 아빠와 누나 새참을 준비했기 때문에 잘할 수 있어요."
"막둥이가 정성스럽게 차려준 새참 정말 맛있다."

"엄마 아빠, 내일도 제가 차려드릴게요."

 

 

앞으로 우리집 새참은 막둥이가 다 준비할 것 같습니다. 이 녀석 저녁을 먹은 후 이번에는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다른 부엌일은 잘하지 않지만 설거지는 자주 합니다. 아빠가 설거지 하는 모습을 보고 그런지 몰라도 정말 잘합니다. 아내는 아주 편안한 모습으로 막내아들이 설거지 하는 것을 바라봅니다. 아이들과 4시간을 씨름하고 온 어깨가 오늘은 피곤한 것이 아니라 아주  편안하게 보입니다.

 

 

"막둥이가 설거지를 하니까 엄마가 엄청나게 편안하다."
"아빠가 설거지 자주 하는데 나도 해야지요."

"맞다. 부엌 일은 함께 도와주는 거다. 너도 나중에 결혼하면 아빠처럼 해야 한다."
"알았어요."

 

공부만 아니면 무엇이든지 좋아하는 막둥이가 차려준 복숭아와 치즈 그리고 물(콜라) 새참으로 우리 가족은 아주 넉넉하고 즐거운 하루를 보냈습니다.

 

'막둥아 앞으로도 맛있는 새참 부탁한다.'


태그:#막둥이, #새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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