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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체장애인인 김씨는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는 불편한 몸인데도 불구하고 금 세공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에 뒤지지 않는다.
▲ 좁은 골목길을 헤치고 오고 있는 김철성씨 지체장애인인 김씨는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는 불편한 몸인데도 불구하고 금 세공에 대한 열정은 그 누구에 뒤지지 않는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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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게 인연을 맺은 금 세공은 이제 저의 인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전부입니다.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의뢰인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세공품을 만들기 위해서 땀을 흘릴 것입니다."

충남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의 작은 골목길. 줄지어 늘어선 주택가 문 앞에 '골드사'라는 작은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언뜻 들어도 금은방이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금은방 치고는 너무나 초라해보였다.

집 앞을 서성이고 있을 즈음, 작은 골목길 저편에서 힘차게 휠체어를 굴리며 다가오는 이가 있다. 바로 골드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철성(49)씨.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김씨는 지체장애인이지만 그의 밝은 얼굴에서 장애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는 없었다.

이름만 보고 자칫 금은방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이곳은 김씨가 의뢰인들의 주문을 받아 금을 세공하는 작업장이다.
▲ 김씨가 운영하고 있는 '골드사' 이름만 보고 자칫 금은방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이곳은 김씨가 의뢰인들의 주문을 받아 금을 세공하는 작업장이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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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를 따라 들어간 '골드사'. 금은방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고 사실상 김씨가 거주하고 있는 집 한켠에 마련된 초라한 작업장이다. 문에 들어서자 2평 남짓 작은 작업장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김씨는 금 세공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미다스의 손으로 성장했다.

의뢰인으로부터 금을 받아 주문을 받고 전통방식으로 산소로 금을 녹이고, 틀에 붇고, 크기별로 늘어서 있는 재래식 세공도구로 정교하게 깎는 일련의 과정이 김씨의 손을 거치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금 장신구가 탄생한다.

반지에서부터 목걸이는 물론 브로치에 이르기까지 의뢰인들이 원하는 모양을 말만 하면 수공작품으로는 보기드물게 명품으로 탄생한다. 태안에서만도 김씨의 손을 거친 결혼예물이 꽤 된다. 큰 금은방도 많은데 찾아가기 어려운 외진 골목에 위치한 이유로 의뢰인들이 몇 안 될 것으로 추측했지만, 김씨에게 예물을 맞춘 부부들의 입소문을 타고 알려지게 된 것이다.

세공은 나의 운명... 충남 장애인기능대회 8번 우승 

재래식 방법으로 금 세공을 하는 김씨의 작업 도구들. 손 때 묻은 도구들에서 김씨의 세공 연륜이 묻어난다.
▲ 김철성씨의 소박한 작업실 재래식 방법으로 금 세공을 하는 김씨의 작업 도구들. 손 때 묻은 도구들에서 김씨의 세공 연륜이 묻어난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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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처음으로 금속공예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고향 태안을 떠나 부산으로 내려간 22살 당시다. 김씨는 지금도 마음의 고향이라고 여기는 부산의 양지기술원이라는 재활원에서 금 세공과 첫 인연을 맺었다.

몸이 불편한 지체장애인이 배우기에는 결코 쉽지 않은 분야였지만 김씨는 이를 악물고 기술 습득에 열중했다. 함께 받았던 30명의 동기생 중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인원은 고작 5명 남짓. 교육 중간에 힘들다는 이유로 포기자가 속출하면서 김씨 또한 마음의 동요가 있었다고.

하지만, 김씨는 금 세공이 오직 자신이 가야할 길이라고 믿고 인내에 인내를 거듭한 끝에 무사히 기술원을 수료하게 됐고, 다시 고향인 태안으로 올라와 1989년 직접 공장을 운영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김씨가 손수 차려 한때는 금세공에 있어서 태안에서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공장 운영에 위기가 찾아왔고 IMF가 터지기 이전인 1996년에 자식같이 여기던 공장 문을 닫게 된다. 그러나, 세공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 온 김씨는 일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의 '골드사'를 차려 15년째 결혼예물을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충남 장애인기능대회 귀금속분야에서 무려 8번의 우승을 차지한 김철성씨. 김씨는 자신의 작업장에서 홀로 대회를 준비하는 등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우승을 일궈냈다.
 충남 장애인기능대회 귀금속분야에서 무려 8번의 우승을 차지한 김철성씨. 김씨는 자신의 작업장에서 홀로 대회를 준비하는 등 열악한 환경속에서도 우승을 일궈냈다.
ⓒ 김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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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생업을 이어가면서도 김씨는 세공기술을 인정받아 태안군 대표로 장애인 기능대회에 출전해 올해까지 모두 8번의 우승과 2번의 준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김씨는 지난 6월 공주에서 열린 기능대회에 참가해 귀금속부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의 빼어난 실력으로 여덟 번째 우승을 일궈내 오는 9월 보령에서 열리는 전국장애인기능대회에 출전 자격을 얻었다.

김씨는 "전국대회에도 여덟 번 출전하 바 있지만 5위를 차지한 게 최고 성적"이라며 "전국대회를 위해 연습할 공간도, 준비할 여건도 안 돼 평소 하던 대로 실수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회에 임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김씨는 또 연평도 해병대에 근무 중이라는 큰 아들을 생각하며 "연평도 피격 당시 큰 아들이 엉덩이에 파편을 맞아 부상을 입었는데 다행히 회복이 되었다"며 "내년 2월에 전역하는데 전역할 때까지 건강하길 바란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바람을 전했다.

비록 열악한 환경이지만 불굴의 장인정신으로 오직 금세공이라는 한길을 걸어온 김씨가 그동안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한 전국장애인기능대회에서 꽃피우기를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태안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김철성, #장애인기능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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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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