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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잠들기 전에> 겉표지
▲ <내가 잠들기 전에> 겉표지
ⓒ 랜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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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갑자기 기억을 잃는다면 어떻게 될까?'

S. J. 왓슨의 <내가 잠들기 전에>를 읽다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기억이란 내면과 정신의 토대를 이루는 것이다. 기억을 잃는 것은 자신의 모든 과거와 경험을 한꺼번에 잃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자신이 어떻게 성장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 모른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충격이다. 나아가서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 다정하게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누구인지조차 모른다면 패닉상태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이런 상태가 되면 본인도 고통스럽겠지만 주변사람들도 힘들어진다. 크건 작건 사람들은 누구나 희망을 가지고 살아간다. 이런 기억상실증이 완치는커녕 조금이라도 좋아질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남은 인생을 살아갈까? 모든 기억을 잃는다면 나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내일이면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는 여인

<내가 잠들기 전에>의 주인공인 크리스틴 루카스는 독특한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마흔일곱 살인 크리스틴은 스물다섯 살에 결혼을 했고 스물아홉 살에 사고를 당해서 기억을 잃었다. 크리스틴이 가지고 있는 기억상실증의 특징은 그녀의 기억이 만 하루를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사고 이후로는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지 못하고 과거의 일도 제대로 떠올리지 못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모든 것이 낯설다. 사고 이후에 20년 가까이 자신의 곁을 지키고 있는 남편도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도 남편 벤은 참을성있게 아침마다 자신과 크리스틴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려준다.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가 부부사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집안의 구조가 어떤지도 말해준다. 그렇게해서 하루가 지날때 쯤이면 크리스틴은 나름대로 현실에 적응한 상태가 된다. 문제는 밤에 자고 일어나면 전날 들었던 내용이 모두 머릿속에서 사라진다는 점이다.

때문에 아침마다 한 침대에 누워있는 벤을 보면서 "당신 누구야?"라고 소리친다. 이런 일상이 20년 가까이 매일 반복되어 왔으니 벤도 환장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벤 이외에도 크리스틴의 주변에는 그녀를 도우려는 사람들이 있다. 신경심리 전문의사인 내시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내시는 크리스틴의 기억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그녀에게 일기를 쓰라고 권한다. 그래서 일기를 쓰지만 자신이 일기를 썼다는 사실도 그 다음 날이면 잊어버린다. 내시는 매일 전화를 걸어서 크리스틴에게 일기장이 어디에 있으니 찾아서 읽어보라고 권하고, 크리스틴은 그렇게 매일 자신의 과거를 '학습'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그러던 어느날 크리스틴은 일기장을 열어보고 그 안에서 '벤을 믿지 마라'라고 자신이 쓴 글을 마주한다. 크리스틴은 지금까지 벤이 자신을 돌봐주고 지켜줬다고 믿었다. 그런만큼 그 글을 보고나서 커다란 혼란에 빠지게 된다.

크리스틴의 기억상실증에 숨겨진 비밀

내시는 크리스틴에게 기억상실증의 원인과 종류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인간의 두뇌 속에는 단기 기억 창고도 있고 장기 기억 창고도 있다. 크리스틴의 경우는 과거의 일을 모두 잃어버렸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기억을 형성해내지도 못한다. 단기 저장고와 장기 저장고 모두에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다.

학자들이야 이런식으로 분류하고 체계화하는 것을 좋아하겠지만, 막상 기억상실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분류는 별 의미가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어떻게하면 자신의 기억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크리스틴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거창한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보통 사람들처럼 사는 것, 경험을 토대로 경험을 쌓아가는 것, 오늘을 바탕으로 내일을 이어가는 것뿐이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일들이 크리스틴에게는 이루지 못할 꿈처럼 되어버렸다.

크리스틴은 먼 미래도 함께 걱정한다. 늙어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어서도 기억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떨지, 죽음이 눈앞에 있는 상황에서 돌이켜볼 과거도 없고 회상할 만한 즐거움도 없다면 어떨지를 생각한다. 그러면서 밤에 잠들기 전까지 자신의 기억을 단단히 붙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무엇이 원인이건 간에, 기억을 잃는다는 것은 정말 무서운 일이다.

덧붙이는 글 | <내가 잠들기 전에> S. J. 왓슨 지음 / 김하락 옮김. 랜덤하우스 펴냄.



내가 잠들기 전에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6-1

S. J. 왓슨 지음, 김하락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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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과 장르소설을 좋아합니다. 저서로 <오래된 길, 우즈베키스탄을 걷다>, <바오밥나무와 여우원숭이>, <실크로드의 땅, 중앙아시아의 평원에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