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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사발과 달항아리.
 찻사발과 달항아리.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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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 그 흙으로 만든 게 도자기입니다."

언젠가 어느 도예가에게 도자기 굽는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었다. 간단명료한, 게다가 철학적인 느낌까지 있어 이 말을 아직도 가슴에 담고 산다.

그러니까, 내가 도자기에 관심 가진 건 2000년 전후. 지리산에서 야생녹차를 만들던 이를 알고부터였다. 당시, 차를 마시다가 다구 잡는 법, 보는 법 등에 대해 염탐한 게 시초였던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게 문화예술품이다. 도자기 또한 그러하다. 경험이 보는 눈을 만드는 법.

지난 토요일, 가족 여행길에 올랐다. 마침 지인인 김원주 씨가 <찻그릇과 달항아리>란 주제로 도예전(오는 15일까지)을 갖는 터라 남원 선원사 '선원문화관'이 첫 도착지였다.

그를 알게 된 건 지난 해 말 전주에서였다. 그는 만남 자리에 밤늦게 나타났었다. 수염과 머리를 기른 모습은 퍽이나 세련되고 인상적이었다. 알고 보니 환쟁이 겸 도자기꾼이었다. 퍽이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또 그는 진솔한 자신만의 영역을 갖고 있는 틀림없는 예술가란 생각을 했다.

남원 선원사 선원문화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원주 도예전>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김원주 씨.
 남원 선원사 선원문화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원주 도예전>에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김원주 씨.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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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의 하얀 색감과 냄새가 좋아 내가 수수해진 느낌

김원주, 그는 1997년부터 꾸준히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고 있다. 지난해에도 '술잔전(전주술박물관)'과 '막걸리 막사발전(The K Gallery)'을 열었다. 가족 휴가 중 <김원주 도예전>을 둘러 본 딸은 그 느낌을 이렇게 표현했다.

"전시된 도자기가 작가를 닮았다. 처음에는 도자기들이 다 똑같이 보였는데 볼수록 밑이 길쭉하거나 휘어진 부분이 위, 중간, 밑 등 다양했다. 그리고 백자의 하얀색 색감과 냄새가 너무 좋았다. 내 자신이 수수해진 느낌이다."

딸의 소감 앞에 지인인 작가 인터뷰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러고 보면 <김원주 도예전>은 딸과 아버지를 연결해주는 또 하나의 '소통 통로'였던 셈이다.

다음은 도예가 김원주 씨와의 인터뷰다.

도예가 김원주.
 도예가 김원주.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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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전은 "자연을 닮고자하는 인간의 갈구와 지향"

- 회화 전공자가 도자기를 하는 이유는?
"격동의 1980년대와 1990년대 초까지 미술운동을 하다가 작업과 삶의 일치를 위해 농촌으로 자리 잡은 곳이 여주였어요. 한 2년 농사도 짓고 그림도 그리며 살았는데, 아내와 나 둘 다 그림만 그리고 살다보니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지인의 소개로 도자기 공장에 그림 그리는 화공으로 취직해서 작업과 생계를 이어 갔습니다.

그러니까 돈 벌려고 도자기를 시작했던 거죠.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도자기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어요. 흙으로 빚는 모습이 신기해서 혼자 물레연습도 하고 그러다가 1995년도에 집 앞 마당에 가마를 설치하고 본격적으로 흙과 씨름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 이번 전시를 위한 작품 제작과정과 전시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움>입니다. '자연스럽다'는 '자연'과 '스럽다'가 만나서 생긴 말입니다. 자연을 닮고자 하는 인간의 갈구와 지향이 담긴 아름다운 말입니다. 정형화 되지 않고 작위적이지 않으며, 편안함과 희열로 안내하는 '자연스러움'이 제 작업과 삶 속에 늘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백자 달항아리 <합일>
 백자 달항아리 <합일>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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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때기는 사투, 처절한 자기와의 싸움"

- 도자기를 제작할 때의 매력은?
"흙이라는 1차적인 물성이 가마 속 불을 통해 도자기라는 전혀 새로운 물성의 변화를 이루어 냅니다. 그것도 다양한 형태와 색상으로 말이죠. 좋은 도자기를 만들려면 어떤 흙을 찾는가가 제일 중요합니다.

좋은 유약이나 빚는 기술은 연마를 통해 시간이 가면 이룰 수 있지만 좋은 흙은 발품을 팔아 전국을 돌아다녀도 인연이 있으면 만날 수도 있고, 인연이 없으면 만나지 못합니다. 어렵게 찾은 흙을 불 때기를 통해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그 결과가 나오면 잘 생겼건 못 생겼건 기물은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되는 것입니다.

불 때기는 사투, 처절한 자기와의 싸움이며, 순간순간 어려운 결정을 요구합니다. 불은 두렵고도 정말 어렵습니다. 가마 안에서 일렁이는 불길은 내가 넣은 장작으로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렁이는 것, 정말 스스로 '자(自)' 그럴 '연(然)' 숭엄한 '자연(自然)'입니다.

내가 만들고 내가 땠지만 새 생명을 얻어 탄생된 도자기는 내가 아닌 자연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흙을 캐고, 빚고, 가마에 넣어 불을 때는 모든 과정 하나하나가 흐트러짐 없는 자연과 합일 과정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매력적입니다."

백자의 매력에 대해 설명하는 김원주 씨.
 백자의 매력에 대해 설명하는 김원주 씨.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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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비대칭 미학, 이것이 달항아리의 묘미"

- 장작 가마와 가스 가마 또는 전기 가마의 차이는?
"무엇이 좋다 나쁘다 평가 할 수는 없습니다. 가스 가마나 전기 가마는 다루기가 장작 가마에 비해 조금 더 편하고, 노동 강도를 줄이면서 효율적인 생산을 할 수 있는 과학문명이 만든 좋은 결과물입니다.

이에 반해 장작 가마는 날씨와 바람의 세기, 장작 굵기의 차이 등 자연과 자연물을 이용하며, 노동 강도가 높고 비효율적이지만 의도하지 않은 좋은 작품을 만날 수도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어떤 가마든 불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죠. 불은 죽는 날까지 공부해야 하는 그릇쟁이에게는 '화두'입니다."

- 작품전 주제를 찻그릇과 달항아리로 정한 이유는?
"처음엔 달항아리전을 하려 했는데 전시회를 선원사라는 사찰 안의 갤러리에서 하다 보니 찻그릇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차를 올리는 '차례'는 제사나 추석, 또는 궁중에서만 행하여진 의식이 아니라, 불가에서도 부처님께 차를 올리는 '다례'가 있고 그 의식에 사용된 차를 담는 용기가 찻사발입니다. 불가와 차는 밀접한 연관 관계가 있죠.

전통 달항아리는 보통 40에서 50센티미터가 되는 17,8세기에 만들어집니다. 백자 항아리로는 그 당시 세계 최대의 항아리였습니다. 달항아리는 대접 모양의 큰 그릇 두 개를 위아래 붙여서 만드는데, 그 이유는 지금처럼 전기의 힘을 이용한 전동물레가 아니라 나무로 만들어 사람의 발로 차서 기물을 만드는 나무물레였기 때문입니다.

이 나무물레 위에서 만들어진 두 개의 그릇은 보통 한쪽 방향으로 만들어지고, 두 개 중 하나의 그릇을 위로 올려 서로 맞붙여서 둥그런 구의 형태를 만듭니다. 이때 위에 올려진 그릇은 뒤집어서 붙여지기 때문에 아래 그릇과 반대의 회전결을 이루게 되는데 이 때문에 불속에서 일그러져 비대칭의 곡면을 만듭니다. 순백의 비대칭 미학, 이것이 달항아리의 묘미입니다."

찻사발.
 찻사발.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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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에도 올립니다.



태그:#찻사발, #달항아리, #김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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