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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나 한국의 피폭자보다 의료면이나 식량면에서 더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북한 피폭자의 실태를 더 많은 분들이 알고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재북피폭자의 현실을 일본사회에 알려, 일본정부가 우선은 의료적 지원이라도 시작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지난 4일, 일본의 한 다큐멘터리 감독이 한국을 찾았다. 북한 원폭피해자들의 어려운 상황을 그린 영화 <히로시마·평양-버려진 피폭자> 상영회를 위하여 한국의 시민단체들이 감독 이토 다카시씨를 초청한 것이다. 이토 감독의 방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이미 1980년대 초반부터 한국의 원폭피해자나 일제강점기 시대 피해자 인터뷰 등을 위하여 수십 차례 한국을 찾았다.

 

영화는 1945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돼 수많은 조선인이 함께 희생된 8월 6일을 맞이하여 경남 합천에서 상영됐다. 하루 전부터 원폭피해 및 평화에 대한 전시회와 청소년 평화캠프, 영상전과 추모문화제가 열렸고, 당일 오전에는 한국인 원폭희생자를 위한 추모제가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고 난 뒤였다.

 

영화가 상영된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는 자리가 부족할 만큼 많은 관객이 참석했다. 주로 복지회관에서 생활하는 원폭피해자 1세 어르신 및 지역의 원폭피해자와  2·3세들이었고, 추모제를 함께 준비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와 자원봉사자들, 어린이·청소년들도 많았다.

 

엄마는 왜 딸에게 피폭 사실을 숨겼나

 

영화는 2008년과 2009년, 총 3회 평양을 방문하여 촬영되었으며, 1945년 8월 당시 세 살이었던 리계선씨와 그의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한다. 리씨는 세 살 때 어머니와 함께 히로시마에서 피폭을 당하지만, 해방 후에도 귀국하지 못하고 일본에 남게 된다. 이후 재일동포사회의 민족의식이 뜨겁게 타오르면서 귀국 요구 시위가 대대적으로 벌어지고, 일본 정부도 호시탐탐 재일조선인들을 추방해 버리려 했다. 때문에, 이런 두 가지 움직임이 맞물려 일본에서는 재일조선인의 북한으로의 귀국사업이 벌어진다. 리씨도 이때 가족을 히로시마에 남겨둔 채, 홀로 북으로 가는 뱃길에 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59년이 지나도록 자신이 원자폭탄 피폭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알 수 없는 질병 등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히로시마에 있던 부모님이 몇 차례 만경봉호를 타고 북녘의 딸을 방문하기도 하였고, 편지 등의 왕래도 있었으나 어머니는 한 번도 피폭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딸이 결혼하지 못할까봐, 결혼해서는 남편과 시댁을 속였다고 이혼 당할까봐 차마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리씨의 부모님 이야기만은 아니다. 피폭자 사회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결혼과 취업, 그리고 바깥 사회의 차별이 피폭자들을 압박하였던 것이다. 실제로 리씨는 자신이 피폭자라는 사실도 몰랐지만, 북한에서 (자신과 똑같이) 귀국동포였던 남편을 만나 결혼하려 했을 때, 자신이 히로시마 출신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시아버지가 반대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59년 만에 어머니는 딸의 건강을 염려하여 일본 정부가 실시하는 피폭자를 위한 다양한 지원을 받게 하고자 사실을 털어 놓는다. 리씨는 더 빨리 사실을 알았더라면, 피폭자에게 적합한 치료를 진작에 받았을 텐데 왜 알려주지 않았는가 어머니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차츰 자신이 어떤 상황 속에서 피폭을 당했는지 좀 더 많은 사실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북한 주민인 그녀는 일본에 갈 수 없었다.

 

어머니를 다시 만나기를 원하였지만 2006년부터 북한과 일본을 잇던 왕래선 만경봉호가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 북한의 선박인 만경봉호의 입항을 일본이 금지한 것이다. 북일관계 때문이다. 일본에 있는 어머니도 더 이상 딸을 만나러 북한으로 갈 수 없게 된다.

 

딸은 어머니를 기다리고, 어머니는 딸을 그리워하며 감독이 전해주는 비디오 필름을 통해 서로의 얼굴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가슴 절절한 딸의 마지막 영상편지가 히로시마의 어머니에게로 가기 위해 녹음된 뒤, 뜻밖의 사건이 일어난다.

 

영화는 비틀어진 북일관계로 인하여 어머니와 딸이 만날 수 없는 상황, 일본이나 한국, 그리고 다른 외국에 있는 원폭피해자들이 이제는 피폭자건강수당, 피폭자의료지원 등 다양한 지원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원폭피해자만이 완벽하게 버려져 있는 차별을 고발한다.

 

영화를 본 한 여고생이 감독에게 평양에서 취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냐고 묻자, 이토 감독은 "북한 당국과의 교섭(협상)"이었다고 답했다. 감독은 이번 영화뿐이 아니라 북한과 관련된 몇몇 텔레비전용 다큐멘터리도 만들었는데, 협상이 잘 안 되면 촬영을 못하게 되기 때문에 해마다 끈질긴 협상을 해야만 했다는 것이다. "자유롭게 찍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상당한 제약 속에서 촬영을 해야 했기 때문에 이 정도도 간신히 찍은 것"이라는 속사정을 털어놓기도 하였다.

 

감독에 따르면, 일본에서 2009년에 제작되어 일본 국내와 해외영화제 등에서 상영된 <히로시마·평양>은 현재까지 약 8천 명 정도의 관객이 보았다고 한다. 좀 더 많은 사람이 보면 좋겠지만 북일관계가 오랫동안 풀리지 않고 상당히 경색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정치적 상황 속에서 이 영화가 일본 사회에 호소하는 데는 아직까지는 한계가 있는 듯하다고 감독은 말했다.

 

"북한 피폭자 총수 1911명, 그중 382명만 생존" 

 

 

한편, 최근 이토 감독은 일본 후쿠시마에서부터 발생한 핵 방사능 재앙 이후, 원전 사고에 대한 취재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이전의 히로시마, 나가사키 피폭자 인터뷰 경험의 연장선상에서 그가 특별히 신경쓰는 것은 방사능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최근 전문가와 연구자들을 집중 인터뷰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 일본 정부나 유엔이 만든 방사능 방호(안전) 기준은 히로시마, 나가사키 피폭자 건강조사를 통하여 만들어진 것인데, 이 기준치는 미국의 의도에 따라 터무니 없이 낮게 책정되었다는 게 감독의 말이다. 그것이 현재 후쿠시마에서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기준치'란 것은 기준 이하의 방사선량이라면 인체에 영향이 없다는 것인데, 실제로는 아무리 적은 양의 방사능이라도 인간의 유전자에 영향을 주고 유전자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해외, 특히 유럽의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주류이며, 이제는 일본 안에서도 이런 생각이 퍼지고 있습니다."

 

영화를 본 관객 중에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 2세 '환우'도 있었다. 그가 북한의 피폭2세 실태에 대하여 물었다.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북한에서 만난 2세는 딱 한 명이었습니다. 그리고 태내피폭자(엄마 뱃속에서 피폭)도 한 명 만났는데, 이 두 분 다 건강상태가 좋지 못하였습니다. 북한에서는 10년에 1번씩 피폭자 조사를 하는데, 2007년 현재 조사된 피폭자 총수가 1911명이고, 그중 382명만이 생존해 있었습니다. 2세의 경우도 그 수치는 당국이 파악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건강실태조사까지는 이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덧붙였다.

 

"일본정부도 민간피폭자단체도 2세에 대한 건강영향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지만, 저는 후쿠시마 사고를 보면서 피폭자가 유전자에 상처를 입으면 2세에게도 분명히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피폭에 의한 질병과 건강 피해는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부모의 피폭에 의해 2세에게 반드시 병이 생긴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부모의 피폭이 그 자녀에게 영향을 끼칠 확률이 있다는 것만큼은 명백합니다."

 

"일본, 과거문제 청산 안 하면 신뢰관계 만들기 어렵다"

 

핵 방사능의 문제가 일본, 한국 또는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지구적인 문제라는 점이 후쿠시마 방사능 대재앙 이후로 더욱 확실해진 지금, 너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미국에게 66년 전 원자폭탄 투하에 대한 법적, 도의적, 전지구적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객석에서 나왔다.

 

이토 감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국과 일본 정부는 이미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원폭투하에 대한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기로 약속하였지만, 미국의 원폭투하에는 도의적 책임이 남아 있으며 그것은 범죄행위였기 때문에 미 대통령의 사죄가 필요하다는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다만 감독은 관객과의 대화를 마무리 지으며, "일본이 과거 문제를 성실하게 청산하지 않고는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동아시아 공동체 같은-사람과 사람 간의, 국가와 국가 간의- 신뢰관계를 만드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책임과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영화는 8일, 전남 광주에서도 공동체상영을 통하여 또 다른 관객들과 만났으며, 연내 서울과 대구에서도 상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태그:#북한 원폭피해자, #이토 다카시, #북일관계, #히로시마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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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주부이자, 엄마입니다.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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