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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워싱턴포스트>와 퓨리서치센터가 공동으로 실시한 부채 한도 증액안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민심은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포스트>와 퓨리서치센터가 공동으로 실시한 부채 한도 증액안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민심은 부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 <워싱턴포스트>&퓨리서치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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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안 되는, 역겨운, 어리석은, 좌절하게 만드는, 실망스러운"

미국의 부채 한도 증액안이 하원에서 통과되기 몇 시간 전인 지난 1일 저녁(현지 시각), 미국 내에서 최고의 뉴스 시청률을 자랑하는 NBC <나이틀리 뉴스(Nightly News)>의 브라이언 윌리엄스 앵커는 뉴스의 첫머리를 이렇게 시작했다.

부정적인 의미의 형용사를 또박또박 열거하면서 뉴스를 시작한 윌리엄스의 멘트는 지난달 말, <워싱턴포스트>가 '팩트 탱크' 기관인 퓨리서치센터와 공동으로 실시한 부채 한도 증액안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한 것이었다. 당시 여론조사의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워싱턴의 협상안에 대해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설문에 대한 국민들의 의견은 '예상대로' 부정적이었다. 예상대로라는 것은 국가 부도 위기 시한인 8월 2일을 앞두고 그동안 민주·공화 양당이 보여준 태도가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이들은 문제의 해법을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에서 찾으려 했고 국민들을 위하기보다 자신들의 당리당략을 추구하는 모양새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결국 응답자 1001명 중 72%는 협상안을 두고 정쟁을 벌이는 정치인들에 대해 부정적인 의미의 형용사들을 마구 쏟아냈다(긍정적인 응답은 단 2%, 중립적 응답은 11%).

"유치한, 장난해?, 혼란스러운, 한심한, 헷갈리는, 미친, 멍청이…."

이뿐만이 아니었다. CNN과 시장조사 기관인 ORC인터내셔널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부채 한도 증액안 협상에 대한 의견은 부정적이었다.

전국의 성인 860명이 응답한 이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7%는 정부의 부채 한도 증액안 협상에서 선출직 의원들은 버릇없는 응석받이처럼 행동했다고 대답했다. 책임 있는 어른으로 행동했다고 응답한 사람은 17%에 불과했다.

세계 제일의 경제 대국, 왜 이 지경에?

증액안 협상에서 민주·공화 양당이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난항을 겪자 미국 언론은 부채 한도 증액안이 통과되지 않을 경우에 벌어질 심각한 상황을 연일 보도하면서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이자율이 오르고 미국 달러 가치가 하락하게 될 것이다. 주택담보대출과 자동차론, 학생대출금이 껑충 뛰어오르게 될 것이다. 미국이 갖고 있는 최고 국가신용도인 AAA와 주식시장도 떨어지게 될 것이다. (기자 : 부채 한도 증액안 타결 후, 국제 신용평가사인 S&P는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낮췄다.)

연방정부는 당장 다음 달부터 급료 지불도 어렵게 될 것이고 노인과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보장 연금 지급도 불확실할 것이다. 정부가 시행하는 중요 정책도 지출을 줄여야 하는 처지여서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고..."

미국인들은 100도(화씨) 이상의 세 자릿수 무더위와 심한 가뭄으로 농작물이 타들어가는 현실보다 더 끔찍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할 말을 잃었다. TV에 나온 한 대학생은 부채 한도 증액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학자금 대출을 받아 공부를 하고 있는 자신이 당장 가을학기부터 학교를 그만두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사회보장 연금을 받고 있는 연금수혜자나 파병된 아프가니스탄 군인의 아내는 TV 인터뷰에서 한숨을 내쉬고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이런 직접적인 상황에 처하지 않은 미국인들도 세계 최강국, 세계 1위의 경제 대국 자존심에 먹칠을 한 '국가 부도 위기' 현실에 상처를 받았고 불안해했다. 이런 불안감은 결국 정치권과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로 이어졌다.

실제로 7월 31일, 버지니아 스탠튼의 자동차 정비소에서 기자가 만난 한 중년남자는 대기실 안의 CNN 보도를 지켜보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도대체 이 나라가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정치인들을 믿을 수가 없다. 오바마가 앞으로 이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염려가 된다."

오바마 대통령을 비난했던 남자는 자신이 공화당원은 아니지만 보수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의 높은 실업률, 고용 창출 전망이 여전히 어두운 점, 중국의 경제 파워가 날로 막강해지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앞으로의 미국 경제는 비관적이라고 말했다.

 CNN/ORC 여론조사 결과, 대부분의 미국인은 이번 부채협상에서 의원들이 버릇없는 응석받이처럼 행동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NN/ORC 여론조사 결과, 대부분의 미국인은 이번 부채협상에서 의원들이 버릇없는 응석받이처럼 행동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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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학적인 빚과 관련된 씁쓸한 진실

현재 미국이 안고 있는 총 부채액은 14조5000억 달러다. 일반인들에게는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1조, 트릴리언(trillion) 달러가 얼마나 큰돈인지 감이 안 잡힐 것이다. 이에 대해 버지니아의 웨인스보로에 사는 한 신문 독자는 모호한 트릴리언 달러의 규모에 대해 이렇게 실감나게 설명했다.

"1조 달러? 예수 그리스도 탄생 이후 하루도 빼놓지 않고 날마다 100만 달러를 썼어도 아직까지 다 못 쓰고 있는 금액! (켄 엘킨스)"

신문(DN-R)에서도 '빚에 대한 생각들'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미국이 현재 지고 있는 국가 부채 14조5000억 달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친절하게 설명했다.

"미국은 지금으로부터 2011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한 이래 해마다 72억 달러를 써왔다. 그것은 하루에 1970만 달러, 시간당 82만833달러, 분당 1만3680달러를 쓴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28년 전인 1783년, 미국 공화정 수립 이후로만 따져 본다면 미국 정부는 해마다 636억 달러, 매일 1억7400만 달러, 매 시간 730만 달러, 분당 12만1666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

2011년도 정부 예산액은 3조8200억 달러다. 이를 다시 나눠보면 하루에 105억 달러, 시간당 4억3750만 달러, 분당 730만 달러를 쓰는 것이다."

협상 타결, 그러나 "행복해진 건 최상층 2%뿐"

"의회 양당 지도부가 재정 적자를 줄이고 정부 부도 사태를 피하는 데 합의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상원에서 증액안이 통과된 뒤 백악관 연단에서 극적인 타결 소식을 전했다. CBS 아침 뉴스쇼인 <얼리쇼(Early Show)>에서는 증액안이 타결된 뒤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50세 생일인 4일에 행복한 '해피 버스데이 투 유' 노래 대신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어쨌건 미국은 국가 부도 위기라는 난제는 '우선' 해결했다. 모두 안도했지만 이번 증액안이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많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오바마 대통령과 민주당이 원칙을 버리고 공화당의 '세금 인상 없는 재정적자 감축'에 전적으로 동의함으로써 향후 사회 복지 예산마저 삭감될 수 있다는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가 소식을 다루는 <폴리티코(Politico)> 2일자에서는 데이비드 로저스가 '증액안 합의로 재앙은 피했지만 어느 누구도 진정 행복하지 않다'는 기사를 실어 독자들의 공감을 샀다. 흥미로운 것은 이에 대한 한 누리꾼의 정곡을 찌른 댓글이다. 

"아무도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다. 최상층인 2%는 진정 행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또다시 꼭두각시를 써서 자신들의 탐욕을 보호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공화당의 베이너 하원의장과 공화당이 한 일은 98%의 희생 위에서 자신들의 주인인 2%를 보호했다는 사실이다." (Marine3)

부채 한도 증액안 합의를 두고 '비굴한 굴욕'을 당했다는 말까지 들은 오바마 대통령. 모두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 이번 법안에 대해 과연 오바마는 어떤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실망한 지지자들의 등을 다시 돌려놓을 수 있을까. 

 지난 1월 애리조나 투산 총기 사건으로 머리를 크게 다쳤던 민주당의 가브리엘 기퍼즈 하원의원이 한 표를 보태기 위해 투표장에 나타났다. 여야 의원들이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다.
 지난 1월 애리조나 투산 총기 사건으로 머리를 크게 다쳤던 민주당의 가브리엘 기퍼즈 하원의원이 한 표를 보태기 위해 투표장에 나타났다. 여야 의원들이 기립박수를 보내고 있다.
ⓒ <뉴욕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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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여, 국가 빚을 물려받을 것이니라"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대공황(Great Depression) 시대에 31대 대통령(1929~1933)을 역임한 허버트 후버의 족집게 예언(?)이 다시금 각광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후버 대통령은 성경의 마태복음 5장 5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젊은이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국가 빚을 물려받을 것이니라(Blessed are the young for they shall inherit the national debt)."

82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후버의 예언이 그대로 맞아떨어지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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