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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포스터다. 2005년 개봉된 영화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전쟁을 모르는 산골마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포스터다. 2005년 개봉된 영화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전쟁을 모르는 산골마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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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개봉한 <웰컴 투 동막골>(박광현 감독)은 한국전쟁 중 길을 잃은 군인 여섯이 우연히 발길이 닿은 마을 '동막골'에서 벌이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동막골, "아이들처럼 막 살아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뜻으로 오해할 수 도 있지만,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아이처럼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며 살라"는 의미라는 걸 말해주지 않아도 이해하게 된다.

마을 주민들은 마을 이름만큼이나 순수한 유토피아다. 이들은 촌장의 지도력 아래서 공동으로 농사를 짓고, 공동으로 생활한다. 전쟁의 포화가 전국토를 휩쓸고 지나갔는데도, 어찌된 영문인지 이 마을 주민들은 전쟁이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가장 먼저 이 마을에 들어오게 된 병사는 스미스(스티브 테슐러 역)라는 미공군 조종사다. 작전 중 비행기가 추락하여 부상을 입고 마을 주민들의 보살핌을 받는다.

다음으로 들어온 것은 부대에서 탈영한 국군 표현철(신하균)과 표현철을 우연히 만난 문상상(서재경 역)이다. 그런데 이들이 마을로 들어온 그날, 인민군 리수화(정재영 역), 정영희(임하룡 역), 서택기(류덕환 역)도 여일(강혜정 역)을 따라 마을로 들어오면서 군과 인민군이 서로 총을 겨누는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리고 서로 겨누고 수류탄을 뽑아드는 대치 결과, 군인들은 주민들이 곡식을 저장하는 저장고를 날려버리게 된다. 하지만 결국 군인들은 주민들의 선한 성품에 의해 스스로 무장해제를 당하면서 험악한 군사적 대치는 종결된다.

군인들은 주민들의 곡식창고를 날려버린 것을 갚기 위해 주민들과 같은 옷을 입고 열심히 농사를 짓는다. 이효석이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서 '소금을 뿌려 놓은 것처럼 하얀 메밀밭' 위에서 인민군과 국방군과 주민들이 어우러져 농사를 짓는 모습이란 "창과 검을 녹여 보습을 만든다"는 성경의 구절만큼이나 유토피아적이다. 

하지만 이들의 유토피아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실종된 미군 조종사 스티브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 연합군 지휘부는 스티브가 인민군의 포격에 의해 추락했을 것으로 판단한다. 그리고 그 공격의 거점을 동막골 일대로 추정하여, 동막골을 향한 대대적인 폭격을 준비한다.

그리고 표현철과 리수화 일행은 동막골을 연합군의 포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작전에 돌입한다. 동막골과 떨어진 산등성이에 위장 대공포 진지를 만들어 연합군의 공격을 유인하겠다는 것.

연합군 조종사인 스미스도 동막골을 보호하기 위해 이들의 작전에 동참하려 했지만, 표현철과 리수화는 스미스에게 살아남아서 동막골을 지켜달라고 당부한다. "당신 말이라면 그들도 믿어 줄 것"이라며 "동막골 이즈 업 투 유(Dongmakgol is up to you)"라는 말로 당부를 마무리한다.

연합군의 융단폭격을 맞선 이 다섯 명의 싸움이란 패배가 뻔한 것이었다. 하지만, 죽음을 눈앞에 맞이한 상황에서 류덕환이 남긴 한 마디 조크 "우리도 연합군이 아닙니까?"는 눈물과 웃음을 동시에 자아낸다.

그리고 그 웃음도 잠시. 전투가 시작되자 포탄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이들은 '성공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전장에서 이들이 맞는 장렬한 죽음이란 하얀 설원만큼이나 아름답다. 그리고 동막골에서는 한밤중에 주민들이 모여 선 너머로 보이는 영문 모를 현란한 불꽃쇼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본다.  

동막골 같은 유토피아, 강정마을

2007년에 이 마을이 해군기지 예정지도 결정된 이후 주민들은 4년 째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 해군기지 반대 투쟁에 나선 어린이 2007년에 이 마을이 해군기지 예정지도 결정된 이후 주민들은 4년 째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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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에 오래된 영화 스토리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최근 강정마을에서 빚어지는 일들이 영화의 내용과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해군기지를 짓겠다고 벼르고 있는 강정마을은 오래도록 각종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었던 곳이다. 그 때문에 강정마을은 제주도 해안 마을들이 대부분 겪었던 개발광풍을 겪지 않고 지냈다.

불과 5킬로미터 남짓한 거리에 중문 관광단지와 서귀포 신시가지가 시간차를 두고 건설되면서, 부동산 투기바람이 주변을 휩쓸고 지나갔지만 강정마을은 마치 오래도록 시간이 멈춰버린 듯 조용했다. 마치 전쟁의 와중에도 전쟁이 모르던 동막골처럼 말이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공사가 진행되면서, 구속을 당해 사법처리를 받았거나 판결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 4명에 이른다. 한 명은 고향이 강정인 사람이고, 나머지 세 명은 강정마을을 걱정하여 주민들에게 힘을 도와주러 온 사람들이다.

이 외에도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고, 해군기지 공사를 방해한 혐의로 수 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이 진행 중이다. 앞으로 사법처리를 받을 주민이 얼마나 늘어날지 예측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종북좌파 세력으로 매도하는 보수언론과 한나라당

정부가 추진하는 해군기지로 인해 주민들의 삶이 한없이 피폐해져가는 상황에서도 <조선일보>는 지난 20일 기사에서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투쟁은 북한에 불리한 상황이 발생하면 기를 쓰고 반대하는 종북 좌파 세력 활동의 연장"이라며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비난했다.

그리고 조현오 경찰청장은 21일 서귀포경찰서를 방문한 자리에서 "이제 끌 만큼 끌어왔으니 단호한 입장을 가지고 불법행위에 맞설 수 있도록 각오를 새롭게 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조현오 총장의 방문 때문인지, 지난 24일에는 경찰 병력 300여 명이 강정마을 해군기지 예정지에 배치되면서, 주민들과 대치하는 상황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도 지난 27일 당내 회의에서 강정마을에서 해군기지 공사를 저지하고 있는 세력들을 향해 "김정일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고 있는 종북세력"이라고 비난하며, "해군기지 건설 현장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강력한 공권력 투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해군기지 공사가 주민들의 반대로 중단되었다. 권력 집단은 해군기지 공사를 저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을 향해 "김정일을 추종하는 세력"이라고 비난하며, "엄정한 법처리"를 주문하고 있다.
▲ 해군기지 공사 현장 해군기지 공사가 주민들의 반대로 중단되었다. 권력 집단은 해군기지 공사를 저지하기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을 향해 "김정일을 추종하는 세력"이라고 비난하며, "엄정한 법처리"를 주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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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주장은 영화에서 보급로 확보를 위해 마을 정도는 쓸어버려도 좋다는 연합군 장교의 태도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정권의 안위와 군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주민들의 인권쯤은 무시해도 좋다는 사고가 바탕에 깔려있지 않고서야 주민들의 사정을 직접 들어보지 않고서 저리도 쉽게 주민들을 비난하지는 못할 것이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강정마을 주민들을 향해 '폭탄'을 준비하는 동안 그 반대편에서는 주민들을 돕기 위한 행동들도 늘어가고 있다.

천주교는 신부님들이 강정마을에 상주하면서 "공권력이 투입되면 가장 앞장서서 매질을 당하겠다"고 버티고 있고, 일주일에 한 차례 드리던 미사를 이젠 매일 드리고 있다.

최근 제주도 밖에 사는 지인들로부터 강정마을을 걱정해서 걸려오는 전화통화의 횟수가 많아졌다. "언론을 통해 강정마을에 대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며, "주민들의 안타까운 처지를 돕지 못해 마음이 무겁다"고들 한다. "이번 여름휴가를 강정에서 가족과 함께 보내겠다"고 약속하는 사람들도 있다.

해외에서 수많은 평화 활동가들이 찾아오고, 이들의 활동이 계기가 되어 굴지의 외신들도 취재 의사를 밝혀오고 있다. 많은 이들이 강정마을을 지키는 '연합군'의 길을 자처하고 나선 일은 참으로 반갑고도 다행한 일이다.

이 싸움은 강정마을'만' 지키는 게 아니다

최근 제주도 야5당이 강정마을을 돕기 위해 해변에 평화캠프를 마련했다. (사진을 평화캠프에 모인 사람들)
▲ 강정마을을 돕기 위해 모인 사람들 최근 제주도 야5당이 강정마을을 돕기 위해 해변에 평화캠프를 마련했다. (사진을 평화캠프에 모인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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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동막골이 아름다운 건, 그 마을 주민들의 삶이 소박하고 행복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주민들의 삶을 통해 자신을 내려놓고, 주민들과 동화되어 갈 뿐만 아니라 종국에는 마을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들의 생명까지도 내놓는 군인들의 모습이 장렬하기 때문이다.

강정마을을 지키는 건 단지 한 마을을 지키는 일이 아니다. 저들의 '종북' '좌파' 공세를 쉽게 극복할 수 있을 정도의 '연합군'(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각자의 내면에서는 항시 도사리는 탐욕의 유혹도 쉽게 넘어 설 수 있는 '동막골'을 키워가는 일이라 아름다운 것이다.

박광현 감독과 배우 임하룡씨 등을 비롯해 영화 <웰컴 투 동막골> 제작에 참여한 영화인들을 강정마을에서 만나 뵐 수 있는 날이 언제쯤일까? 그들이라면 강정마을 주민들의 손을 누구보다도 따뜻하게 잡아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다.


태그:#강정마을, #웰컴 투 동막골, #해군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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