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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해군기지 건설 추진으로 아픔을 겪고 있는 제주도 강정마을. 강정마을엔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다양한 이들이 함께 폭염의 여름을 나고 있습니다. 어떤 이는 서울에서 왔고, 어떤 이는 프랑스에서 왔고, 또 어떤 이는 날 때부터 강정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평화를 지키겠다며 스스로 강정마을 찾은 이들을 '자발적 평화유배자'로 부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강정마을로 자발적 평화유배를 떠난 이들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여덟 번째로 대만에서 온 국제평화운동가 왕 에밀리 이야기입니다. 통역과 번역은 마을대책위 국제팀 영실 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  <편집자말>

 

7월 15일 오전 7시 40분쯤이었고 제주도 서귀포 경찰서 앞이었다. 한 무리의 전투경찰은 경찰서 안마당에 진을 치고 있었고 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닫힌 경찰서 정문은 경찰 간부들이 다시 자물쇠로 채웠다. 경찰서 정문 앞에는 가톨릭 사제 1명, 기자 2명, 평화활동가 3명 등 고작 여섯 명이 저마다의 이유로 서성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날 새벽 연행된 세 사람, 강동균 강정마을회장과 고권일 강정마을해군기지대책위원장, 송강호 박사(국제평화단체 '개척자들' 소속)의 면회를 신청한 사제의 요구는 무시되었고, 기자들의 취재활동은 방해되었다. 세 사람의 석방을 요구하는 평화활동가들의 요구 역시 묵살되었다.

 

그때였다. 누군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모진 비바람이 몰아친대도 어떤 유혹의 손길에도 흔들림 없는 바위처럼 살아가보자…."

 

부정확한 한국어 발음이었지만 노랫말은 리듬을 타고 선명하게 경찰서 안을 흔들었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도시의 소음이 대기에 섞이지 않은 탓도 있었다. 경찰서 구조도 소리 울림에 큰 보탬이 되었다. 넓은 마당은 공명의 공간 역할을, 마당을 내려 보듯 낮은 경사각을 하고 비스듬히 높게 자리 잡은 본관은 울림 판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예상치 못한 노래 한 자락이 기묘한 정적을 만들어 냈는데 마치 전쟁터에 갑자기 울려 퍼진 정전신호 같았다. <바위처럼>을 부른 주인공은 왕에밀리(26). 대만에서 온 그는 강정마을에서 평화활동을 하고 있다.

 

"송강호 박사 권유로 강정마을에서 평화활동을 하게 되었어요. 강정마을의 목격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는데 송 박사님조차 구속한(그는 7월 28일 보석으로 풀려났다-기자 주) 대한민국 정부가 외국인인 저에게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갑작스런 노래처럼, 예상치 못한 한국행 나선 에밀리

 

대만 국립정치대학교에서 토지경제학을 전공하고 있던 그는 대학교 3학년 때(2008년) 우연히 동티모르에서 열린 국제평화캠프에 참석할 수 있었다. '제3영역센터'라는 대학 부설 기관이 '개척자들'과 같은 국제NGO 등과 공동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화캠프는 동티모르에서 열렸다. 그는 일본과, 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온 40여 명의 친구들과 함께 한 달 동안 평화봉사활동을 했다. 이 한 달이 그의 길을 바꾸어 놓았다.

 

대만에서 토지경제학과는 부동산개발을 공부하는 과다. 원래 문학을 전공하고 싶었던 그였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제3의 과'를 선택해야 했다. 고등학교 성적, 부모님의 선호 등 이것저것 고려해서 토지경제학과로 진학했는데 부모님은 매우 만족했다.

 

평화캠프에 다녀오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잘 나가는 '대만의 커리어우먼'이 되는 길을 택했을지 모른다. 대만에선 부동산 개발 기획을 하는 여성을 매우 전문성이 높은 커리어우먼으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평화캠프에 참여한 후 대만 환경단체에서 시간제로 일을 했어요. 하지만 마음속엔 늘 동티모르가 그리웠어요. 그래서 동티모르로 가려고 마음을 먹고 있는데 송강호 박사님이 '한국에 강정마을이란 곳이 있다, 그곳의 사정도 동티모르만큼 절박하다'며 며칠 동안이라도 가서 그 곳 상황을 보고 결정하자고 설득했어요. 강동균 마을회장님, 고유기 제주범도민대책위원회 집행위원장님을 그때 만나서 감명 깊은 이야기를 들었어요."

 

섬나라 대만에서 나고 자라 섬마을 동티모르에서 '평화'를 깨치고, 이제 섬마을 제주 강정에서 평화를 그리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 섬에서 섬으로 이어지는 에밀리의 생애 동선은 남중국해와 서태평양을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있다.

 

"강정마을을 돌아다녀보면 '주민들이 아름다운 풍경과 지연 속에 살고 있구나'하고 절로 느껴져요. 이런 모습은 동티모르와 매우 비슷해요. 특히 밭에서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들어요. 동티모르를 떠올리면 진한 파랑색과 흰색 그리고 붉은색이 연상되어요. 특히 붉은색에서는 더운 냄새가 나요. 그런데 강정마을 중덕해안에 있는 구럼비 바위에서도 붉은색이 연상되어요. 동티모르의 붉은색보다는 더 부드럽지만 정수리에 숨은 붉은 기운을 느껴요. 강정마을 사람들 내면의 강한 열정과 힘을 구럼비 바위가 껴안고 있는 것 같아요."

 

세상을 색의 이미지로 이해하고 기억의 창고에 저장한다는 것은 본질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본질에는 다가설 수 없다. 그러나 사랑하기엔 이곳은 일상의 호흡이 너무 가쁜 곳이다.

 

"제주해군기지 문제는 세계 모두의 문제"

 

비상사이렌은 이른 아침과 게으른 한낮, 안온한 저녁을 가리지 않는다. 언제 공권력이 들어올지 모른다는 강박은 사람들의 신경을 극도로 예민하게 만든다. 사이렌이 울린 후 이어지는 마을회장의 안내방송을 숨 자락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창가에 바짝 서서 온 몸을 연다. 귀로만 들을 수 없는 소리,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실낱같은 희망을 온 몸을 열고 마을회장의 숨 자락에서 건져내고서야 겨우 긴 숨 한번 내쉰다.

 

'휴우~~~~. 그래, 별일 아니야. 아무 일 없을 거야.'

 

그리고 이곳에선 특정한 소리와 움직임에 극도로 불안해진다. 이를테면 헬리콥터 나는 소리나 강정마을 앞바다를 지나가는 어선이나 바지선은 '공권력 진입 초읽기'로 해석되어지고 그때부터 마음은 초조해진다.

 

이 초조와 강박, 불안과 경계, 신경과민의 상황이 자그마치 4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아무리 더러운 전쟁도 사람들의 정서의 피를 말리며 4년 넘게 하지 않는다. 하물며 나를 지켜줘야 할 정부와 군대가 내 피를 바싹바싹 태우고 있다. 사랑을 하기엔 사람도, 바다도, 바위도 지친 상태다. 그런데 에밀리는 사랑을 느끼고 있다.

 

"너무 더워서 동네마트에서 팥빙수를 사서 계산하려고 서있었어요. 근데 아저씨 한 분이 팥빙수 값을 내주시는 거예요. 깜짝 놀랐더니 '와서 고생하니까…' 하고서 그냥 가세요. 한 번은 걸어가고 있는데 동네아주머니가 저를 보더니 모자를 주세요. '아가씨가 얼굴 타면 안 된다'고 하시면서요. 이게 바로 그 모자에요. 그래도 두 분은 얼굴이라도 뵈었고 짧은 말이라도 들었지만 아예 누군지도 모르는 분들이 계세요. 일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가면 오이랑 먹을 것이 놓여있어요. 누가 언제 다녀가셨는지 몰라요. '아 이 분들이 나를 많이 사랑해주시는구나, 나를 격려하고 지지해주시구나'…." 

 

온전히 사랑을 느껴본 이가 온전히 사랑할 줄 안다. 툭 내뱉는 말로, 싸구려 모자 하나로, 밭 흙 덜 털어진 오이로 그들은 그렇게 서로 온전히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 두 글자는 얼마나 상투적인가. 하지만 지순한 정이 숨은 사랑은 그 자체로 순결하다. 그래서 지순한 사랑은 서로를 아름답게 의탁하게 만들고 두려움 없이 헌신하게 만든다. 이것이 온전한 사랑이다.

 

"난 외국인이지만 이곳 강정마을에서 와서 낯섦을 느끼지 않아요. 양심의 소리로 말하고 행동하는 이들이 있으니까요. 제발 와서 들어보세요. 마을사람들이 뭐라고 얘기하는지. 제발 와서 구럼비 바위를 걸어보세요. 얼마나 아름다운지 느끼실 거예요. 그리고 종환 삼촌(주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식사를 챙겨주고 있는 주민 김종환씨-기자 주)이 만든 음식을 함께 들어요.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요. 제주 해군기지 문제는 대한민국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세계 모두의 문제에요."

 

"구럼비의 신음소리가 들려요, 울지마요 구럼비"

 

그는 재능이 많은 사람이다. 그림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그의 스케치는 단순하면서 색이 살아 있다. 그는 노래를 지어 부르기도 하는데 <구럼비의 노래>는 강정마을 촛불문화제 때 부르려고 만든 노래다.

 

"저는 타이완에서 강정마을로 왔어요

강정바다는 매우 아름다워요

저는 타이완에서 강정마을로 왔어요

바위는 따뜻하고 굳세요

사람들은 당신을 구럼비라고 불러요

저는 할망이 고요히 잠든 모습을 봤어요

사람들은 당신을 중덕바다라고 불러요

중덕이와 중덕이 아버지는 흔들림없이 꿋꿋하게 이곳을 지키고 있어요

구럼비의 신음소리가 들려요

구럼비의 신음소리가 들려요

전세계 평화일꾼들이 모여들고 있어요

구럼비여, 울지 말아요."

- 왕 에밀리 <구럼비의 노래>

 

그는 "내면에 부당한 것을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 있다"며 평화를 갈구하는 현장에 있는 이유를 말했다. 그리고 그는 "좋은 사람들 만나는 것이 너무 좋아서 국제평화운동가로 살아가겠다"고 한다.

 

어느 이른 아침, 108배를 마친 그가 우두커니 구럼비에 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사람 뒷모습을 본다는 것은 쓸쓸한 일이다. 하지만 그의 뒷모습에선 머나먼 뭍을 그리워하는 쓸쓸함을 느낄 수 없었다. 새로운 항해를 눈앞에 둔 아득함이 등에서 배어나왔을 뿐.

 

섬에서 그리운 건 뭍이 아니다. 섬에서 그리운 건 또 다른 섬이다. 섬 너머 그리운 섬. 사람 너머 그리운 사람. 그 섬과 섬 사이에 바다가 있다. 그 사람과 사람 사이에 바다가 있다. 평화의 바다, 사랑의 바다….

 

따뜻한 웃음을 머금고 다시 바다를 건너는 그를 보았다.


태그:#강정마을, #제주도, #해군기지, #대만, #에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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