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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붸스터스켈드 하구만 지역.
 붸스터스켈드 하구만 지역.
ⓒ 네덜란드 국립조류보호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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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17일 네덜란드 정부가 제이란드(Zeeland, 네덜란드 12개 주 가운데 가장 남서쪽에 자리한 주) 주 붸스터스켈드(제이란드 주에 위치한 하구만)의 자연 복원 사업에 관한 정책을 발표했다. '자연 복원'은 제방을 허물어 육지가 바다에 잠기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신이 버린 땅, 인간이 빚은 나라>라는 책이 나올 정도로 네덜란드의 자연 환경은 열악하다. 국토의 40%가 해수면보다 낮은 네덜란드는 홍수로 인한 큰 피해를 여러 번 겪었다.

네덜란드 사람들에게 1953년 1월 31일은 대재앙의 날로 기억되고 있다. 유례없이 큰 홍수가 이때 4개 주를 휩쓸었다. 1795명이 목숨을 잃고 15만 헥타르의 땅이 물에 잠겼다(네덜란드 통계청 자료). 피해를 본 4개 주는 모두 해수면이 육지보다 높은 지역이어서 마을마다 물이 범람하지 않도록 제방을 쌓아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제방이 연쇄적으로 파괴되면서 피해가 더 커진 것이다.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네덜란드는 1950년에 시작한 서해안 댐 공사를 확대해 대대적인 공사에 착수했다. 델타 플랜이라 불리는 이 공사는 14개의 댐을 건설하여 만(灣)들을 막는 공사로 60년간 계속되었다. 각 댐의 형태와 길이는 조수간만의 차이에 따른 변화를 감안해 정해졌다.

오랫동안 자연에 맞서온 네덜란드 사람들은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완공하느냐보다 얼마나 튼튼하게 완성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몇 번의 대재앙을 통해 충분히 알고 있었다. 이들은 공사 비용, 기간, 자연과 조화 문제 등을 치밀하게 고려하여 세계 건축업계에서 불가사의 중 하나라고 일컬을 정도로 거대하고 획기적인 공사를 성공시켰다.

 네덜란드 해수면 상승을 예측한 그래프. 빨간색은 가장 높이 상승할 때를, 파란색은 가장 낮게 상승했을 때를 예측한 것이다.
 네덜란드 해수면 상승을 예측한 그래프. 빨간색은 가장 높이 상승할 때를, 파란색은 가장 낮게 상승했을 때를 예측한 것이다.
ⓒ www.ecomare.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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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란드는 긴 시간 동안 델타 플랜의 완공을 학수고대했던 자치주 중 하나다. 이러한 제이란드 사람들이 지난 6년간 붸스터스켈드 자연 복원 사업을 두고 네덜란드 정부와 첨예한 갈등을 빚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벨기에의 안트베르펜은 네덜란드와 이웃한 항구 도시다. 이 항만에 배를 대기 위해서는 네덜란드 영토인 제이란드의 붸스터스켈드 하구를 지나야만 한다(지도 참조). 그런데 붸스터스켈드 하구는 삼각주 지역이어서 시간이 흐를수록 퇴적물이 쌓여 만의 바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퇴적물이 계속 쌓이면 대형 선박이 안트베르펜 항구에 들어오는 것이 어려워진다.

안트베르펜 항구에 더 많은 선박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붸스터스켈드 하구의 바닥을 13미터 더 파내는 공사를 해야만 한다. 이 공사는 두 나라의 이익에 모두 부합하는 것이었다. 안트베르펜 항구가 물류를 중심으로 한 무역항으로 커지면 벨기에에 득이 될 뿐만 아니라, 네덜란드도 무역항 주변의 물류 관련 시설을 유치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붸스터스켈드 하구 공사에 합의했다.

 델타 플랜이 이루어진 지란드 주변 지도.
 델타 플랜이 이루어진 지란드 주변 지도.
ⓒ 위키미디어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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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 파괴 논란과 주민 반대로 6년간 공사 착수도 못한 네덜란드

그러나 공사는 쉽게 진행되지 못했다. 이 공사는 생태계 파괴라는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이와 관련해 유럽연합의 승인을 얻어야 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 회원국은 생태계 보호를 위한 '나투라(Natura) 2000'을 준수해야 한다. 유럽 국가들은 유럽연합 가입과 동시에 '나투라 2000'이 지정하는 생태 보호 지침을 따라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된다. 현재 유럽연합 가입국 영토의 18퍼센트가 '나투라 2000' 지역으로 보호받고 있다. 유럽연합은 생태계 파괴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도 '나투라 2000' 지역을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그 지역들은 생태계 보존을 위해 사람의 통제가 엄격히 제한되고 있다.

 생태계 보존을 위해 사람의 접근을 제한하는 푯말.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는 국립공원입니다", "이곳은 아주 민감한 지역입니다. 사람의 접근을 금지합니다.", "야생동물을 위한 공간입니다. 사람의 접근을 금합니다." 같은 문구가 쓰인 푯말을 네덜란드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생태계 보존을 위해 사람의 접근을 제한하는 푯말. "사람이 접근하지 못하는 국립공원입니다", "이곳은 아주 민감한 지역입니다. 사람의 접근을 금지합니다.", "야생동물을 위한 공간입니다. 사람의 접근을 금합니다." 같은 문구가 쓰인 푯말을 네덜란드 곳곳에서 볼 수 있다.
ⓒ 장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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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붸스터스켈드 하구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 유럽연합 자연보호위원회의 승인을 얻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환경영향평가도 받아야 했다. 환경영향평가 결과, 붸스터스켈드 하구 공사를 진행하면 이 일대의 생태계가 급속히 파괴돼 얕은 바다에 서식하는 물고기가 살 수 없게 될 뿐만 아니라 새들조차 찾지 않는 죽은 바다가 될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 때문에 두 나라는 공사를 진행하기 위해, 자연 손실을 보상하는 차원에서 이 일대의 땅 가운데 일부를 자연으로 복원해야 했다. 네덜란드는 600헥타르, 벨기에는 400헥타르를 자연으로 복원해야 공사로 파괴되는 생태계 손실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2005년 두 나라는 공사 진행을 위해 스켈드 조약을 맺었다.

그러나 스켈드 조약 체결 이후에도 네덜란드 정부 앞에는 넘어야 할 산이 놓여 있었다. 다름 아닌 제이란드 주민들의 반대였다. 제이란드는 붸스터스켈드 하구 공사가 이뤄지는 곳이자, 자연 복원을 위해 600헥타르의 땅을 내놔야 하는 지역이다. 그러나 제이란드의 땅 소유자들은 '1953년 대홍수 때도 지켰고 지금도 농사를 잘 짓고 있는 땅을 바다에 잠기게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정부 방침에 반대했다. 제이란드 주민들은 2005년 이후 지역 곳곳에 반대 팻말을 꽂고 시위를 벌였다.

 자연 복원 계획에 반대해 시위하는 제이란드 주민들.
 자연 복원 계획에 반대해 시위하는 제이란드 주민들.
ⓒ www.refdag.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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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문에 네덜란드 정부는 붸스터스켈드 하구 공사를 6년 동안 미뤄야 했다. 6년이 지나도록 공사를 시작하지도 못한 네덜란드 정부는 결국 6월 17일 이 공사에 관해 새로운 내용을 발표했다. 핵심은 제방을 허물어 바다에 잠기게 하는 자연 복원 지역을 2005년 발표한 곳이 아닌 제이란드 내 다른 지역으로 하고, 붸스터스켈드 컨테이너 터미널을 건설해 물류 기지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2013년에 1차 공사를 시작하고, 2014년에 2차 공사에 착수하며, 3차 공사는 1차와 2차 공사의 진행 과정을 보며 신중히 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이 결정이 농토를 지닌 농민들에게는 뼈아픈 소식이 될지 모르겠지만 제이란드와 네덜란드의 미래를 생각할 때 토지 손실을 최소화하는 가장 좋은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헹크 브레커 농림혁신부 차관은 "하구만 공사를 진행하기 전에 자연 복원 사업을 우선해야 한다. (공사로) 바뀔 자연 형태를 감안하여 주변 생태계가 유지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처음 계획했던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을 선택한 것은 자연 지형을 고려한 결정이다."라고 발표했다.

네덜란드 정부가 새로 선택한 자연 복원 지역은 주민이 비교적 적게 사는 곳이다. 이러한 발표 후 제이란드 지역 주민들의 반발은 많이 누그러졌다.

그러나 야당은 급작스런 정책 변경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자연 복원 사업이 계속 늦춰진 것도 문제 삼았다. 녹색당은 정부의 이번 발표에 대해 "인기에 너무 연연하면 제대로 된 정책을 펴기가 힘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벨기에도 네덜란드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이번 공사가 더 시급한 것은 네덜란드가 아니라 안트베르펜 항구를 보유한 벨기에이기 때문이다. 스켈드 조약에 따라 이미 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벨기에는 네덜란드 쪽 공사가 지지부진한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벨기에는 자연 복원 지역을 바꾸는 등 네덜란드 쪽에서 공사를 예정대로 진행하지 않아 2005년 스켈드 조약 체결 후 2억 5000만 유로의 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연과 싸워온 네덜란드, 자연에 600헥타르 환원하기로

 일간지 <트라우>6월 22일자에 게재된 자연 복원 예정 지역. 이 지역은 머지않아 바다로 환원된다.
 일간지 <트라우>6월 22일자에 게재된 자연 복원 예정 지역. 이 지역은 머지않아 바다로 환원된다.
ⓒ <트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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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는 자연에 맞서 땅을 만들고 제방을 쌓아 그 땅을 지켜온 나라다. 지금도 네덜란드 국민이 내는 세금의 상당 부분은 제방을 쌓고 유지하는 비용으로 들어가고 있다. 그러한 네덜란드 사람들이 어렵게 만든 제방을 허물고 땅의 일부를 자연에 돌려주려 하고 있다.

네덜란드가 자연에 돌려주기로 한 600헥타르가 국토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 결정은 앞으로 네덜란드 정부가 펼 정책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편 녹색당은 네덜란드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자연이 중요한 변수로 놓이도록 하는 데 적잖은 역할을 하고 있다. 하원 150석 가운데 10석을 차지한 녹색당은 경제 발전 지상주의에 반대하고 있다. 녹색당은 지나친 경제 발전이 자연에 큰 해를 끼치며 그 피해가 인간에게도 돌아온다는 것을 국회 안에서 늘 경고하고 있다.

네덜란드가 자연 보존과 경제 발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것인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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