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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판결 20번째다. 이번에는 죽음과 관련된 우울한 사건들이다.

① 출산 직후 아기를 휴지통에 버린 미혼모 (광주지법 7. 20.)
② 생후 8개월 된 친딸 살해한 이유는 (울산지법 7. 15.)
③ 부검전문의 장의사에 '관장사' (부산지법 7. 22.)

원치 않는 아기 낳았다고 이럴 수 있나

원치 않은 임신으로 아이를 출산한 19살의 소녀가 외국으로 입양된 아이를 찾아나서는 가슴 시린 여정을 그린 작품 <영도다리> 중 한 장면.
 원치 않은 임신으로 아이를 출산한 19살의 소녀가 외국으로 입양된 아이를 찾아나서는 가슴 시린 여정을 그린 작품 <영도다리> 중 한 장면.
ⓒ 동녁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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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목숨이 가벼운 시대라 치자. 아무리 그래도 자기 뱃속에서 나온 자식의 목숨을 끊는 일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빛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생명을 빼앗긴 두 아기의 사연을 소개한다. 

[사례 1] A씨(20대 여성)는 작년 한 남자를 만나 교제하다가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었다. 이 사실을 임신 6개월경에야 알게 되었다. A씨는 지난 2월 갑자기 산통이 오자 상가 건물 2층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 좌변기에서 남자 아기를 낳았다.

분만 직후 A씨는 자신이 미혼모라는 사실이 수치스럽고 앞으로 아기를 키울 일이 걱정되었다. 생각 끝에 A씨는 변기에서 아기를 꺼내 휴지통 속에 넣은 다음 아기가 울자 휴지를 아기 입 속에 집어넣어 질식하게 하였다. 그 직후 휴지통을 휴지로 가득 덮은 후 그 자리를 떠났고 아기는 불과 몇 분 만에 세상과 작별을 고해야만 했다.

끔찍하다는 말 한 마디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A씨의 행위는 살인 행위다. 형법의 살인죄 조항은 다음과 같다. 

형법 250조(살인, 존속살해)
①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②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그런데 A씨에겐 형법 250조가 적용되지 않았다. 왜일까. 형법 251조에 영아살해죄가 별도로 있기 때문이다.

형법 251조(영아살해)
직계존속이 치욕을 은폐하기 위하거나 양육할 수 없음을 예상하거나 특히 참작할 만한 동기로 인하여 분만중 또는 분만직후의 영아를 살해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형법은 직계존속(친모, 친부 등)의 영아살해를 일반 살인보다 가볍게 처벌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 예컨대 미혼모가 출산하거나, 강간으로 임신한 경우, 기형아를 출산하는 경우, 경제적 사정으로 양육이 힘든 경우 등은 법에서도 참작하겠다는 뜻이다. 

올해 영아살해죄로 1심 판결을 받은 사건은 약 8건이었다. 최근 판결들을 살펴보니, A씨처럼 화장실 변기에서 아기를 낳은 후 질식사시키는 방식의 범행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출산 후 아기를 침대나 주차장 공터에 방치하거나 심지어는 하천에 버리는 사건도 있었다.

법원은 대부분의 판결에서 "산모에게 참작할 만한 동기가 있다"고 인정하여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있었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곱지 않고 복지제도가 갖춰지지 않은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사건을 맡은 광주지법은 20일 영아살해와 사체유기죄를 적용, 이례적으로 A씨에게 실형(징역 1년)을 선고했다. 법원은 "입에 휴지를 다량 넣어 질식시키는 적극적인 방법으로 분만 직후의 영아를 살해하는 등 죄질이 매우 좋지 아니하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어 엄히 벌함이 마땅하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생후 8개월 친딸 살해, 이유는?

한편, 생후 8개월된 친딸을 살해한 여성도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였을까.   

[사례 2] B씨(30대 여성)는 고아로 자랐고, 결혼 전에 다른 남자와 동거 중에 아이를 낳은 적도 있었다. 그는 시댁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였으나 과거 경력과 생활고 등으로 시부모는 물론 남편과의 갈등도 심해졌다.

어느날 B씨는 생후 8개월 된 딸을 데리고 놀이터로 나갔다. 그날따라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에 짜증이 난 상태에서 아기가 유난히 칭얼대면서 시끄럽게 울자 순간 화가 났다. 그는 아기를 바닥에 눕혀놓고 주먹으로 내리쳐 사망하게 하였다. B씨는 다음 날 인근 야산으로 올라가서 구덩이를 판 후 아기의 주검을 넣고 흙과 낙엽으로 덮어 버렸다.

엽기적인 범죄를 저지른 B씨에게 울산지법은 15일, 징역 5년을 선고하고, 10년간 전자발찌 부착명령을 내렸다. 법원은 "B씨가 딸이 시끄럽게 운다는 이유만으로 때려 숨지게 한 사안으로 죄질이 상당히 중하다"며 "2001년에도 당시 동거하던 남자와 사이에 태어난 생후 4개월 된 친딸을 때려 사망케 한 범죄 전력이 있음에도 다시 범행을 저질러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법원은 B씨에게 정신치료가 필요하고 현재 임신 중인 점 등을 감안하여 양형기준(징역 6년~10년)보다 다소 낮은 형을 선고했다고 설명했다.

B씨는 법정에서 영아살해죄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항변했다. 그러나 법원은 "생후 8개월인 아기는 '분만중 또는 분만직후의 영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살인죄를 적용했다. 

장의사에 '관장사'한 부검 전문의는 무슨 죄?

[사례 3] 변사 사건(자연사가 아닌 범죄로 인한 사망으로 의심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은 검시를 한다. 이때 수사기관은 전문지식이 없기 때문에 의사(검안의)를 반드시 참여시켜야 한다. 부검 경력이 풍부한 C씨는 부산 지역의 변사사건 검시를 도맡다시피했다.

그는 사건현장에 최초로 도착한 장의업자가 장례절차를 맡게 되는 관행을 잘 알고 있었다. 즉 장의사가 검시 과정에서 변사체를 관리하다가 유족에게 인도하면, 유족은 자연스레 장례절차까지 같은 장의사에게 맡기게 되었다. 따라서 C씨가 누구에게 연락을 주느냐는 장의업자들의 밥줄과 연관된 일이었다.

그는 장의업자인 D씨와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변사 사건이 발생하면 변사체 운구를 몰아주겠다"고 제안했다. D씨는 약 3년간 10여 차례에 걸쳐 약 3천만 원의 돈을 C씨에게 송금해주었다.

검안의의 영향력을 이용한 C씨의 행동은 그야말로 '관 장사'였다. 하지만 C씨는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다. 자신의 행위는 경찰 업무와는 관련이 없고 D씨에게 받은 돈도 대가성 없이 사교적인 차원에서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알선수재죄를 적용했다. 부산지법은 22일 C씨에게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3조(알선수재)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의 알선에 관하여 금품이나 이익을 수수ㆍ요구 또는 약속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법원은 변사체의 관리·운구·보관 등이 경찰의 직무에 속하는지를 따졌다. 법원은 "경찰은  검시 결과 사망 원인이 범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명백히 인정되었을 때에는 사체를 신속히 유족 등에게 인도하여야 한다"며 따라서 "사체를 인도하기 전까지의 변사체 관리는 경찰의 직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장의업자가 변사체를 관리하는 일은 경찰의 직무를 대신 수행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C씨가 D씨에게 전화하여 검시 사건 현장에 오게 하는 행위는 "유족에게 인도하기 전 변사체 처리에 관하여 장의업자인 D씨와 경찰 사이에서 알선하는 행위로 봄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또한 장의업자간 경쟁이 치열한 상황을 감안하면 C씨와 D씨는 주종관계로 볼 수 있고, 연 평균 1천만 원 이상의 돈을 주고 받은 것은 대가성으로 보기에 충분하다고 보았다. D씨는 "C씨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고소취소장을 냈으나 유죄판결을 되돌릴 순 없었다. 

덧붙이는 글 | 김용국 기자는 법원공무원으로, 일반인을 위한 법률서적인 <생활법률상식사전>(2010년)과 <생활법률해법사전>(2011년)을 썼습니다.



태그:#영아살해, #친딸살해, #알선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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