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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부산, 아무리 느린 무궁화호를 타도 너댓 시간이면 족한 거리다. 하지만 대륙의 기차는 달랐다. 오후 7시 경 돈황을 출발한 K9668 열차는 다음날 오전 9시가 넘어야 난주에 도착한다고 했다. 열네 시간. 열차 안에서 꼬박 하룻밤을 보내는 것이다.

중국에서 기차를 타고 여남은 시간쯤 가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란다. 스무 시간이나 서른 시간, 심지어는 마흔 시간이 넘게 가는 기차도 있다고 하니. 역시 대국이다, 대국.

돈황→난주 14시간? 대륙에선 별 것 아니야

중국의 기차 좌석은 크게 네 가지 등급으로 구분된다. 가격 순으로 나열하면 딱딱한 의자, 부드러운 의자, 딱딱한 침대, 부드러운 침대가 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비싼 좌석일수록 더 편하다. 좌석 자체도 그렇지만 이용객도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돌아다니기에 편리하고 화장실도 더 깨끗하다.

열차 침대칸 내부의 모습
 열차 침대칸 내부의 모습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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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이 이용한 것은 딱딱한 침대(hard sleeper)칸이었다. 부드러운 침대를 이용해보지못해 객관적인 비교는 불가능하지만 이름처럼 문자 그대로 '딱딱'하지는 않으니 불편할까봐 염려할 필요는 없는 수준이다.

침대칸은 3층까지 있다. 몇 층 침대냐에 따라서도 가격이 다른데, 위층으로 올라갈수록 더 싸다. 위층일수록 천장이 좁아 앉아 있기 불편하고 오르내리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3층 침대칸은 천장이 낮아 앉아 있기도 힘들다. 침대가 창문보다도 위에 있기 때문에 창밖을 볼 수도 없어서 딱 잠만 자야 하는 구조다.

상황이 이러한데 운 나쁘게도 '上'자가 명확히 새겨진 3층 침대, 당첨! 게다가 일행의 좌석이 모두 모여 있는 게 아니라서 모르는 중국인들과 섞여서 목적지까지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열네 시간 동안!

중국 기차는 10일 전부터 예매가 가능한데 표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휴가철에는 더하다. 까마득하게 높아만 보이는 사다리를 타고 3층까지 올라갈 엄두가 안 났지만, 그래서 그러려니, 어쩔 수 없는 것이려니 하고 받아들였다(열흘 간의 중국 여행을 통해 늘어난 건 빠른 체념 능력!).

3층 침대에서 내려다본 모습
 3층 침대에서 내려다본 모습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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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의 1층 침대에 같이 앉아 수다를 떨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창밖으로는 황혼 무렵의 사막과 초원과 산들이 지나갔다. 객차 안에서는 승무원이 지나다니며 간식거리와 도시락을 팔았다. 먹을 것 외에 장난감이니 잡지, 그림 등을 팔기도 한다. 되게 열심히(!) 판다. 궁금한 마음에 관심을 보이자 알아듣지도 못하는 중국어로 자세한 설명을 해준다. 호두과자를 파는 우리나라 기차가 생각나서 피식 웃었다.

중국의 기차 이용 Tip
- 기차에서 파는 식음료는 외부에 비해서 값이 두 배 수준으로 비싸니 미리 준비하는 게 좋다.
- 열차 내에는 뜨거운 물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이 있어서 컵라면을 먹거나 차를 마실 수 있다.
- 침대칸에서 잠은 잘 수 있지만 씻을 수 있는 시설은 조그만 세면대 뿐이다. 물티슈 등을 미리 준비하면 조금이나마 깔끔한 기분으로 여행할 수 있다.
- 소지품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곳이 없기 때문에 귀중품 보관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는 오히려 불편한 3층 침대가 안전할 수 있다.

실크로드 햇빛사냥, 그 끄트머리에서

기차 내부의 모습
 기차 내부의 모습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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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시가 되니 승무원이 소등을 알린다. 불이 꺼지자, 삼삼오오 모여 떠들던 이들도 모두 각자 자리를 찾아 든다.

피곤하지만, 자고 싶지 않았다. 이 끝내주게 이국적인 풍경과 상황 속에서 잠을 자는 게 아까웠다. 일층의 여자애는 계속 휴대폰만 만지작거린다. 침대칸의 옆 구역에는 한 가족이 편안히 잠들어있다. 실크로드에서의 여정이 끝나 간다. 내일 아침, 기차가 난주에 도착하면 곧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온통 깜깜한 어둠만이 되비치는 창가에 앉았다. 펜을 꺼내들고 상념들을 적어내려갔다.

또 하나의 여행을 통해 또 한 뼘 성장함을 느낀다. 사람이라는 존재는, 언제나 그가 선택한 일들에 대한 결과로서 존재한다.

나는 자유다. 나는 언제나 자유를 선택했다. 자유롭고 싶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나름대로 감당할 몫이 있었다. 안정이나 돈… 그런 편안한 것들을 포기하고, 나는 자유를 택했다. 안락한 지상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힘겹지만 날아 보기로 했다.

아쉬움은 물론 있다. 하지만 양 손에 떡을 쥘 수는 없는 법. 선택에는 언제나 기회비용이 수반된다. 최소한 나는 스스로 선택한 바대로 살고 있다. 남이 선택한 길, 혹은 선택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흘러와버린 길을 걷고 있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그러나 막상 자유를 얻자, 조금 외롭기도 했다. 후텁지근한 한여름의 온도에도 추웠다. 그래서 햇빛사냥을 떠나왔다. 이제 그 여정도 다 끝나 간다. 사막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에서, 내 가슴은 몇도씨쯤 더 뜨거워졌을까?

침대차 입구의 불빛에 의지해 일기를 쓰고 있는데 옆에서 알아듣지 못할 중국어가 들려왔다. 자고 있는 줄 알았던 옆 칸의 2층이다. 무진장 어려 보이는 여자애가 나를 쳐다보며 뭐라고 말하고 있었다.

"Sorry, I can't speak Chinese(미안, 나 중국어 못 해)"라고 하면서도 그애가 영어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안 했다. 중국인들이 굉장히 영어를 못한다는 걸 열흘 간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반갑게도 그 여자애는 조금 생각하는 듯 하더니 "Why you don't sleep?(왜 안 자니?)"이라고 다시 물어왔다.

그렇게 호북성(湖北省, Hubei Province) 출신의 장차차와 이야기를 하게 됐다. 앳된 얼굴의 그녀는 그래도 열아홉이나 됐다고 했다. 중국에서는 만 나이를 쓰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스무살쯤 된 셈이다. 미술을 전공하는 대학생인 장차차는 남자친구와 그 가족들과 함께 여행하는 중이라고 했다. 난주에 도착해서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만날 거라고 했다. 중국인들은 우리네와는 달리 결혼을 굉장히 일찍 한다. 분위기를 보아 하니 거의 결혼을 예정한 사이인 듯 했다.

장차차는 옆 침대의 샤오쟝과 놀아주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샤오쟝은 남자친구의 동생인데, 잠이 안 온다고 떼를 쓰고 있었다. 아이의 아버지가 쟝씨이므로 아이에게는 '샤오(小)' 자를 붙여 작은 쟝이라는 뜻으로 '샤오쟝'이라고 부르는 거란다.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영어로 이야기를 하자 꼬마는 신기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기차에서 만난 장차차와 샤오장
 기차에서 만난 장차차와 샤오장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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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럽고, 시끄럽고... 그러나 정겨운 중국인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갓 깨어나 푸석푸석한 얼굴로 이미 일어나 있는 장차차에게 "Good morning(좋은 아침)" 하고 인사를 건넸다. 샤오쟝이 한국돈을 갖고 싶어 해서 우리는 약간의 돈을 교환했다. 나는 샤오쟝에게 갖고 있던 사탕을 한무더기 주었다. 짧은 인연이지만(그래도 나름 길었다. 14시간이나 됐으니까!) 헤어지게 되니 아쉬웠다. 장차차의 가족들은 나를 점심 식사에 초대하려고까지 했다. 결국 연락수단이 없어서 다시 만나지는 못했지만, 기차에서의 인연은 여행의 막바지에서 무척 따스한 기억으로 남았다.

중국에 가면 꼭 기차를 타 보세요
 중국에 가면 꼭 기차를 타 보세요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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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주 기차역 근처에서 유명하다는 난주 우육면을 먹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호텔로 이동했다. 첫날 묵었던 취이잉 호텔, 그대로였다.

유리창 너머로 열흘 전과 다를 바 없는 대로를 내려다본다. 지나간 여정이 아스라하다. 언제 여기를 다시 와 볼 수 있을까? 북경도, 상해도 아닌 실크로드였기에, 더더욱 꿈만 같았다. 죽기 전에 다시 와 볼 수나 있을까?

'슈아이찌(率姬)'라고 하는, 내 이름의 중국식 발음에도 이제는 아주 익숙해졌다. 더럽고, 시끄럽고, 질서 없고 중국에 대한 편견은 깰 수가 없었지만…(그것은 진실이었으므로!) 그들에게는 '정'도 있다는,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게 된 것은 수확이었다. 우리네가 가진, 혹은 이제는 많이 잃어버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 그네들에게는 아직 끈끈하게 남아 있었다.

빵빵, 창밖에서는 차들이 연신 경적을 울려 댄다.

시끄럽게만 들리던 그 재촉과 신경질도, 이제는 그들 나름대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대로 반가워진다.

실크로드 햇빛사냥의 마지막. 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Tip - 중국에 대한 오해 혹은 진실
1. 무단횡단은 무단횡단이 아니다. 횡단보도, 신호등은 있으나마나인 경우가 많고(그나마 북경 올림픽 이후로 많이 설치한 거라고 한다) 그냥 조심해서 빨리 건너는 게 방법. 왕복 8차선 도로에서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2. 스킨십에 대한 개념이 우리와는 다르다. 길거리에서 부딪혀도 사과하지 않는다. 기차에서 남의 자리에 앉거나 발을 올리는 일이 실례가 아니다.
3. 밤에 어리버리 돌아다니면 위험하다. 대한민국은 정말 치안이 잘 돼있는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된다.
4. 택시는 의외로 안전하다. 모두 정부에서 관리하기 때문이다.
5. 세금도 깎는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 바가지 요금 두려워 말고 있는 대로 깎아 보자.
6.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접속할 수 없다. 당국에서 차단하기 때문이다. 대신 중국에서만 쓰이는 QQ라는 메신저가 있는데 가입자 수가 8억이나 된다고.
7. 웬만한 박물관에서는 사진 촬영 금지 표시가 있더라도 대부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정말 찍으면 안 되는 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막고굴 정도.

덧붙이는 글 | 박솔희 기자는 2011년 7월 11일부터 21일까지 재학 중인 숙명여대와 중국 난주대의 문화 교류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중국 서북부의 실크로드를 여행했습니다.



태그:#중국여행, #실크로드, #중국기차, #난주, #여행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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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없는 곳이라도 누군가 가면 길이 된다고 믿는 사람. 2011년 <청춘, 내일로>로 데뷔해 <교환학생 완전정복>, <다낭 홀리데이> 등을 몇 권의 여행서를 썼다. 2016년 탈-서울. 2021년 10월 아기 호두를 낳고 기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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