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역 최고령이자 타이거즈의 살아있는 전설 이종범 선수. 그는 팀의 11번째 우승을 맛 볼 수 있을까.

현역 최고령이자 타이거즈의 살아있는 전설 이종범 선수. 그는 팀의 11번째 우승을 맛 볼 수 있을까. ⓒ 기아타이거즈


8개팀이 각자 한 여름밤의 꿈을 꾸던 2011시즌 프로야구 전반기 일정이 모두 끝났다.

지난해 전반기 종료 후 순위는 SK 와이번스의 독주체제 속에 삼성 라이온즈, 두산 베어스가 2위권을 형성하고 롯데 자이언츠가 5할이 채 되지 않는 승률로 4위에 올랐었다. 그러나 올해는 양상이 사뭇 다르다. 4강권 두 팀의 얼굴이 바뀌었다. 삼성만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모든 팀들의 순위가 요동쳤다. 현재 달콤한 1위 자리에 올라있는 팀은 올시즌 화려하게 부활한 전전년도 우승팀 기아 타이거즈.

그렇다면 올시즌 전반기 기아 타이거즈가 강호 삼성 라이온즈, SK 와이번스 등을 따돌리고 선두에 나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요약하면 관리야구의 진수라고 말할 수 있다. 현역 감독 중 선수들의 몸상태를 가장 잘 챙기기로 유명한 조범현 감독은 경기마다 일희일비하는 자팀 팬들마저 인정할 정도로 시즌 구상을 길게 가져갔고, 이는 결국 무리수를 두지 않는 운용의 근간이 되었다.

조범현 감독은 타이거즈와는 인연이 없는 이방인의 신분으로 호랑이굴에 들어와 조련사가 되었다. 그가 취임한 2008년(정확한 데뷔전은 2007시즌 마지막 경기) 이래 타이거즈에서 혹사로 인해 수술대에 오른 선수가 없다는 점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누구보다 성적에 민감한 자리에서 팀을 위해 선수를 짜내기하는 것이 아닌 선수가 강해야 팀이 강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게다가 리빌딩과 성적,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 쉽지 않은 여건에서 명가 재건을 위해 그는 당장의 잇속에 골몰하기보다 장기적으로 팀을 강하게 만드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이는 곧 선수들과 교감할 수 있는 신뢰의 밑바탕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 예로, 투수들은 등판 후에 휴식일을 철저하게 보호해 주는 한편 타자들은 조금만 몸에 이상이 와도 무리시키지 않고 라인업에서 제외시켜 휴식을 챙겨준다. 또한 경미한 부상이나 부진에는 2군에서 차분히 몸을 만들고 올 수 있도록 선수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 이는 당장 내일이 없는 1승에 집착하는 조급증을 넘어 장기적 관점에서 시즌 1위를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믿음의 이유가 되고 있다. "다음 감독이 팀을 맡아도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팀을 잘 꾸려나가겠다"고 한 그의 발언이 허언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팬들 뿐만 아니라 현장 역시 긴 한 시즌을 적확하게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전술을 펼칠 때 부상 선수만큼 치명타로 다가오는 변수도 없기 때문이다. 타이거즈 호는 시즌 개막하기도 전에 난감한 상황에 맞닥뜨렸다. 타선의 주축이 되어야 할 나지완, 김원섭, 안치홍이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전지훈련 시기에 중도 귀국한 것이다. 게다가 시즌이 들어가고 나서는 더욱더 어려운 암초에 부딪혔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타선으로 상대팀 마운드를 공략했던 이용규, 나지완, 김상현, 최희섭, 김원섭, 안치홍, 김상훈이 시즌 중 유행처럼 돌아가면서 부상을 입었고, 최근에는 알토란 활약을 펼치던 김선빈마저 플레이 도중 중상을 당해 시즌 아웃 위기에 처했다. 연이은 타자들의 부상으로 타선이 무너지는 듯했지만 고비 때마다 거짓말처럼 타선은 끈끈함과 파괴력을 보여주었다. 그 중심에는 타이거즈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고, 그가 타이거즈로 와 승리의 의미가 되어 준 '꽃범호' 이범호가 자리한다.

전반기 팀 MVP 후보들- 이범호, 윤석민, 로페즈, 이용규

 올시즌 마운드의 제왕으로 군림하며 리그 에이스로 우뚝 선 윤석민 선수와 알토란 활약을 펼치다 부상으로 재활중인 김선빈 선수.

올시즌 마운드의 제왕으로 군림하며 리그 에이스로 우뚝 선 윤석민 선수와 알토란 활약을 펼치다 부상으로 재활중인 김선빈 선수. ⓒ 기아타이거즈


올시즌 상반기 메이저리거 최희섭의 부상 이탈과 2009시즌 홈런왕 MVP 김상현의 부진 속에 기아 타선을 이끈 선수는 단연 일본에서 돌아온 이적생 '꽃' 이범호다. 시즌 초반부터 한결같이 기복 없는 플레이를 펼친 그는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향해 거침없이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현재 타점 1위(73타점)를 비롯, 득점 공동 1위(60개), 출루율 2위(.442), 홈런 3위(17개), 장타율 3위(.557), 타격 6위(.314), 최다안타 6위(90개)에 랭크되어 있다.

비공인 기록인 OPS(출루율+장타율)는 이대호에 이은 2위(0.999)이고, 득점권 찬스에서 강하다(.321). 또한 삼진(49개)보다 많은 볼넷(65개)을 얻어내며 다음 타자에게 찬스를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내야 수비의 화약고였던 3루에서 유례없는 안정감을 보여주는 등 공수양면 흠 잡을 데 없는 보배 역할을 하고 있다.

타이거즈의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는 또 한 명의 타자는 '커트왕' 이용규다. 국가대표 1번타자의 이름에 걸맞게 상대 투수들과의 끈질긴 승부를 통해 올시즌 더욱 강력한 최강의 리드오프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다. 부상으로 적지 않은 경기에 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타격 1위(.373), 출루율 1위(.458), 득점 3위(58), 최다안타 3위(100), 도루 4위(20)에 랭크되어 있다. 2개의 홈런밖에 기록하지 못한 전형적인 똑딱이 타자가 9할이 넘는 OPS로 장타율마저 15위(.448)에 올라있다. 특히 타이거즈의 득점 공식이 보통 이용규 출루, 이범호 적시타임을 감안할 때 리드오프와 중심타선이 가져다주는 둘의 시너지 효과는 의심할 여지없는 리그 최강 수준이다. 

마운드로 시선을 돌려보자. 이론(異論)의 여지가 없다. 에이스 윤석민 활약이 눈부셨다. 리그를 함께 호령하던 류현진, 김광현 등과 함께 초반 부진에 애가 탔으나 점점 구위를 회복하며 12승으로 리그 다승 단독 1위를 비롯, 방어율(2.53)과 탈삼진(114)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17차례 선발 등판 중 70%가 넘는 12경기에서 퀄리티 스타트(6이닝 이상 3실점 이하)를 기록하며 평균 6과 2/3이닝을 소화하면서 에이스의 위용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이 페이스대로 팀우승에 공헌한다면 가장 강력한 시즌 MVP 후보가 된다.

특급 외국인 선수 로페즈의 분전 역시 빼놓으면 섭섭하다. 리그 투수 중 유일하게 매선발경기 평균 7이닝 이상 소화하며 투수 중 가장 많은 119이닝을 소화해 이닝이터의 면모를 과시했다. 10승으로 다승 공동 2위, 3.03의 방어율로 4위에 랭크된 것은 그의 진가를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물. 특히 7이닝당 단 하나 꼴로 허용한 볼넷(17개)에 비해 압도적인 삼진 개수(81개, K/BB 4.76)를 기록하며 규정 이닝을 넘긴 선수 중 이닝당 최소 투구수(14.3개) 기록만 보더라도 공격적으로 타자를 잡아내는 그의 승부사 기질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이밖에도 중간에서 홀로 63이닝을 책임지며 2.57의 방어율로 5승 4세이브 8홀드를 기록한 마당쇠 손영민과 100이닝을 넘게 책임지며 방어율 5위(3.05)로 7승을 거둔 왼손 에이스 트레비스 역시 마운드의 숨은 주역 중에 하나다.

우승을 위해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과 기대되는 부분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향해 맹활약 중인 기아 타이거즈 이범호 선수. 그의 목표는 생애 첫 "팀 우승"이다.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향해 맹활약 중인 기아 타이거즈 이범호 선수. 그의 목표는 생애 첫 "팀 우승"이다. ⓒ 기아타이거즈


그러나 타이거즈의 열한 번째 우승을 위해서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다. 첫 번째로 계투진의 운용이다. 현재 타이거즈의 중간 계투는 기대했던 유동훈이 부진한 가운데 손영민 홀로 분전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그마저도 마무리 기용에 대해서는 물음표가 된다. 최근 좌완 기대주 심동섭의 가세로 조금 숨통이 트이긴 했지만 승계주자 득점 허용율(IRS)이 높은 데에서 보듯이 아직 경기 후반 접전 시 믿고 맡길 만한 확실한 '믿을맨' 중간 계투가 없는 실정이다.

그러니 현장도, 팬들도 경기 후반 투수 교체 시점을 가늠하기가 수월치 않다. 결국 2년 만에 복귀한 한기주에게 철벽 마무리 역할을 기대해야만 하는 게 작금의 타이거즈 현실이다. 지금 기아에겐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어줄 구원진이 필요하다. 그 답이 '10억팔' 한기주가 되거나, '제 2의 선동열' 김진우가 되거나, 혹은 전혀 다른 투수가 될 수도 있다.

두번째는 경기 초반 번트의 지양이다. 리그 최고 공격력(팀타율, 팀장타율, 팀출루율, 팀득점 등 각종 팀타격 지표 1위)을 지닌 기아지만 유독 초반 번트 횟수가 잦다. 1회 이용규 출루시 다음 타자 번트는 거의 공식화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득점 생산력 1, 2위를 다투는 현 기아 타선에서 초반 번트는 사치다. 류현진, 니퍼트 급의 철벽 투수들 등판 때나 선취점 중요성의 의미로 시도할 만하지만 그 외의 경우 타선에 믿고 맡기는 편이 나을 수 있다. 타자들이 자신은 죽고, 1루 주자를 2루에 보내는 데에만 익숙해지는 것이 아닌 주자도 살고, 자신도 살 수 있는 타격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번트는 필요할 때 경기를 잘 풀어나가게끔 만드는 적절한 옵션이 될 수 있지만 무턱대고 무조건 시도해야하는 타격 기술은 아니다.

마지막은 포수의 각성이다. 늘 백업에 머물러 있던 차일목이 올시즌 주전 자리를 꿰차고 있지만 포스트 시즌에서도 당연히 주전이란 보장은 없다. 우승 경험이 있는 김상훈의 경험과 관록은 그리 쉽게 무시될 만한 게 아니다. 현재 기아 수비 포메이션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포수 자리다. 투수와 호흡을 맞추는 부분은 괜찮으나 상대팀의 발빠른 주자를 견제하는 데 있어 종종 미숙한 점이 보인다.

특히 경기 후반 한 점이 중요한 시기에 도루 허용은 치명타가 될 수 있다. 주루 능력이 뛰어난 선수들을 보유한 상대팀에서는 비교적 어깨가 약한 포수 쪽을 집중 공략할 것이 뻔하다. 팀 분위기를 쥐고 있는 안방마님 자리인 만큼 우승을 위한 산을 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도루 견제 능력을 개선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이거즈의 우승 전망은 비교적 밝은 편이다. 그 이유는 바로 기대할 대기 전력이 아직 남아있다는 데에 있다. 팔꿈치 수술을 끝내고 근 2년 만에 돌아온 한기주는 팀 사정상 마무리로 나오면서 팀 우승을 위한 마지막 퍼즐이 되어줄 준비를 마쳤다. 서재응은 최근 선발로 나오며 녹록치 않은 기량을 과시 중이며 흙 속의 진주 심동섭은 중간에서 쏠쏠한 활약을 해주고 있다. 이밖에도 투구 밸런스를 잡지 못해 고전 중인 양현종과 시즌 도중 수술을 받은 곽정철 그리고 오랜 방황에 마침표를 찍고 돌아온 김진우까지 본격적으로 가세할 경우 타이거즈 마운드는 한층 두터워질 전망이다.

타선 역시 부상 전력들이 속속 복귀해 팬들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현 중심타자 최희섭, 김상현과 차세대 중심타자 나지완, 안치홍은 후반기 선두 질주의 선봉에서 대포를 쏘아올릴 예열을 마쳤으며, 팀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만점 활약을 펼친 김원섭과 내야의 버팀목 이현곤, 팀의 정신적 지주 이종범도 막강 타선을 뒷받침 하게 된다. 김주형과 최훈락, 신종길, 박기남 등도 백업으로 호시탐탐 주전의 기회를 노리고 있으며 여기에 시즌 막판 순조로운 재활을 마친 김선빈과 김상훈이 가세한다면 수비 안정감과 타선 파괴력은 한층 배가될 전망이다.

 타이거즈 첫 이방인 감독이면서 김응룡 감독 이후 유일한 우승을 안겨 준 조범현 감독. 그의 장점인 관리야구가 올시즌 시즌 끝날때까지 빛을 발하게 될지 주목할 일이다.

타이거즈 첫 이방인 감독이면서 김응룡 감독 이후 유일한 우승을 안겨 준 조범현 감독. 그의 장점인 관리야구가 올시즌 시즌 끝날때까지 빛을 발하게 될지 주목할 일이다. ⓒ 기아타이거즈


전반기를 1위로 마친 타이거즈의 올시즌 한국시리즈 최종 우승 조건에는 분명 강한 선발진과 막강 화력이 조합된 투타의 조화가 필수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건 남은 경기에서 더 이상의 부상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관리야구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조범현 감독의 행보가 주목된다. 숱한 부상선수들을 안고서 우승까지 일궈낸다면 정말 값어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명장 김응룡 감독 이후 사라진 타이거즈 승리의 포효를 12년 만에 찾게 해 주었고, 앞으로도 타이거즈의 전성시대를 열어젖힐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감독이라는 점에서 기아 타이거즈의 후반기 성적이 자못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기록은 KBO를 참조. 오마이 뉴스 정식기사 나간 뒤로 다음 뷰(view)에도 올릴 예정입니다.
기아타이거즈 프로야구 조범현 이범호 로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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