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을 메고 향한 재능교육농성장에는 용산 현장에서 봤던 반가운 얼굴이 많았다. 마치 남일당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서로 안부를 물으며 이것저것 이야기하는데 "어? 희망버스 타세요?"라며 묻는다. 용산 철거민 참사 유가족인 내가 희망버스를 탄다는 게 놀랄 일인가? "물론이죠, 함께 가야죠"라고 하자 그제야 더욱 반갑게 반겨주었다.

김진숙. 얼굴 한번 보지 못한 그녀에 대한 아린 기억이 있다. 용산참사 355일 만에 장례를 치르고 다들 본래의 삶으로 돌아가는데 난 돌아갈 곳이 없었다. 아니 돌아갈 수가 없었다. 집도, 남편도, 나에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남편 면회 가는 일 외에는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오히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제자리로 돌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 혼자 상처받고 나만 힘들다고 느끼며 하루하루 괴로워하고 있을 때, 박래군씨  책 한 권을 빌려주셨다. <소금꽃나무> 바로 김진숙의 책이었다.

한 여자의 처절한 삶…. 책의 무게가 가벼워질 무렵 내 속에 있던 적개심이나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마저 가벼워졌다. 그 후 난 용산참사 유가족도 구속자 아내도 아닌, 용산철거민으로 다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1차 희망버스... 85호 크레인은 용산 남일당 망루였다

세상에 혼자라고 느낄 때 힘이 되었던 김진숙씨가 부산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 세상과 홀로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날부터 온종일 트위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6월 11일, 1차 희망버스에 올라 한진중공업 정문에 도착 했을 때의 설렘과 뜨거움. 한진 해고자 가족대책위원회(가대위)의 환호와 85호 크레인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를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는 85호 크레인을 향해 뛰었다. 밑에서 바라볼 수조차 없는 높이에 다시금 가슴이 저려왔다.

85호 크레인에서 난 용산 남일당 위 망루에서의 처절함이 보였다. 마치 저 위에 용산 열사분들과 나의 남편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2009년 1월 20일 남일당 위를 바라보며 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1박2일 동안 난 85호 크레인 밑에 서 있었다. 아무 말도 못 한 채 바라보며 기도만 했다. 부디 살아서 내려오게 해달라고.

눈물짓던 가대위 사람들의 모습이 내 모습이었고, 가족들의 절규가 나의 절규였다. 한진 노동자 자녀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그 어떤 말보다 아름답고 절실했다. 너무 늦게 찾아온 것에 죄송하고, 한진 노동자들의 절규를 알지 못했던 그동안의 삶을 반성했다. 한진을 떠나야 하는 시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꼭, 다시 오겠노라'는 다짐으로 돌려세웠다.

며칠 후 집 우편함에 낯선 봉투가 하나 꽂혀 있었다. 부산 영도경찰서에서 보냈다. '진짜? 드디어 나도 소환장이라는 걸 받은 거야?' 부끄럽고 철없는 얘기 같지만, 신기하면서도 신났다. 그동안 용산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연행되고, 재판을 받고, 벌금이 내려져도 정작 난 유가족이란 이름으로 피해 갔다. 심지어 분명 내가 한 행동임에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신해 조사받는 걸 보면서 늘 죄송한 마음뿐이었다. 그런 나에게 소환장이라니. '유가족이란 약발, 사라졌나 보다' 싶었다.

2차 희망버스를 앞두고는 주변 사람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2차 때는 더 많은 사람이 가야 한다는 생각에, 한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선후배 모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무슨 '한진 알림이'가 된 것처럼 김진숙씨 이야기, 한진 노동자 이야기, 가대위 식구들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며 한 명씩 확답을 받아냈다. 혹, 바쁘다는 핑계를 대는 사람에겐 "나 소환장까지도 받았는데"라며 애교 섞인 협박도 했다.

2차 희망버스에는 전국민주화운동 유가족협의회 어머니들도 가시기로 했다면서, 역시 용산참사 유가족인 시어머니께서도 가신다고 했다. 이번엔 완전 노숙을 할 수 있기에, 연세 많은 어머니가 걱정되었지만, 한편으로 든든했다. 교도소에 있는 신랑도 이번엔 어머니도 함께 희망버스를 탄다고 하니 한결 마음이 놓인 듯 "잘 갔다 오라"고 했다.

2차 희망버스, 제가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7월 9일, 2차 희망버스를 타기 위해 부푼 마음으로 어머니와 함께 재능교육 농성장으로 향했다. 정말 많은 사람이 모였다. 각 단체뿐 아니라 시민, 학생들, 어린아이들까지….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서로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이 많은 사람이 85호 크레인을 향해 소리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김진숙씨가 얼마나 기쁠까? 한진 해고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될까? 가대위 분들에게 이 큰 희망을 보여주면 다시 살아야겠다는 용기가 생기겠지?' 나도 모르게 혼자 중얼거렸다.

드디어 출발! 희망을 전하러, 우리가 출발했다. 내가 탄 2호차는 전국철거민연합 철거민들과 일반 시민이 함께 탔다. 간단하게 서로 인사를 한다. 내 차례다. 용산참사 유가족이라고 인사하니 고개 숙이고 있던 시민까지 나를 바라보며 놀란 눈치다. 역시 내가 희망버스를 탔다는 게 놀라운가 보다. 하지만 이후 모두 따뜻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며 손을 잡아주었다. 너무 감사했다.

비가 쏟아지던 부산역광장. 그 속에 한진 가대위 분들이 보였다. 아이를 안고 그 빗속에서 우릴 기다리는 그분들을 보니 또 마음이 울컥했다. 버스가 속속히 들어오고, 빗속에서 진행되는 축제의 한마당에서 가대위분들의 환한 웃음을 보니 다시 희망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바탕 축제를 마무리하고 이제 85호 크레인으로 향하는데, 경찰이 우릴 막는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한 손엔 방패, 한 손엔 곤봉을 들고 우릴 막아선다. 우린 그냥 김진숙씨에게 잘 지내시냐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우리가 항상 함께 숨 쉬고 있다고, 꼭 살아서 내려오셔야 한다고 말하고 싶을 뿐인데….

우릴 막아선 그들은, 최루액을 쏘고 방패로 찍고 몽둥이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최루액을 맞아 눈이 시리다며 울부짖고 어린아이들이 제발 보내달라며 붙잡고 애원도 해 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용산에서, 평택 쌍용차에서 했듯 부산 한진에서도 우리를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여기, 사람이 있다"는 2009년 1월의 울부짖음이 다시 분노의 응어리가 되어 가슴이 두근거렸다.

밤새 비를 맞으며 경찰과의 몸싸움으로 지칠 만도 한데 1만 명은 아침이 되도록 축제를 이어갔다. 85호 크레인에서 들을 수 있도록 하나의 목소리로 외쳤다. 1만 명이 함께 맞이하는 길바닥에서의 아침, 감동적이었다.

가대위분들이 양손 가득 무언가를 들고 왔다. '희망의 엽서'였다. 한진중공업 정문에서 우릴 반기려 많은 것을 준비했는데, 다 빼앗기고 말았다며 그래도 이것만은 전하고 싶었다면서 희망엽서를 꺼낸다. 김진숙씨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써주면 전하겠다며 엽서를 나눠준다. 엽서 한 모퉁이에는 종이배가 붙어 있다. '희망의 배'라고 한다. 커다란 배를 만들던 한진 노동자들은 반드시 복직해서 희망의 배를 만들겠다는 결의를 담아, 그 거칠고 큼직한 손으로 종이배를 접었던 것이다. 어떠한 선물보다 소중하고, 감동적이었다.

이제 더는 외롭지 않은 "여기, 사람이 있다"

희망의 엽서에 김진숙씨에게 보내는 글을 쓰려니 가슴이 시려왔다. 그녀의 트위터를 빠짐없이 보면서도 미안한 마음에 한마디 전하지 못했는데…. 옆에 있다면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꼭 안아드리고 싶은데…. 그녀에게 전하는 한 자 한 자가 힘겹고, 가슴이 시렸다.

다시 서울로 출발을 앞두고, 김진숙 그녀의 목소리를 전화로나마 들을 수 있었다. 또다시 하염없이 눈물이 난다. 한 번 만난 적도, 이야기 나눈 적도 없는 사람인데 마치 내 분신처럼 마음이 저려온다. 얼마나 두려울까? 얼마나 외로울까? 얼마나 땅이 그리울까?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한진 동지들의 손을 놓기가 싫다. 가대위분들의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85호 크레인으로 뛰어 올라가 김진숙씨의 손을 잡고 함께 내려오고 싶었다. 그렇게 난 또 하늘 끝 85호 크레인을, 하늘 끝 남일당 망루를 바라만 봐야 했다.

희망버스는 나에게 큰 선물이다. 2009년의 틀 속에 박혀 살던 나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해준, 너무도 소중한 선물이다. 희망을 전하려 했는데 오히려 내가 희망을 보고 느꼈다. 그래서 난 멈출 수가 없다. 아니 멈춰지지 않는다. 억압하고 막아선다 해도 난 달려갈 수밖에 없다. 

더 이상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희망의 길잡이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 더 이상 절망하며 망루에, 크레인에 오르는 이들이 없도록, 그들을 외롭게 두지 않을 것이다. 나는 3차 희망버스에도 더 큰 희망과 행복을 안고 오를 것이다. 김진숙씨가 환하게 웃으며 내려오는 그날을 꿈꾸며 오늘도 희망버스를 전파하러 집을 나선다.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은.... "여기,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