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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맛집, 관광지 등은 물론이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낱낱이 보여드립니다. 7월 지역투어 두 번째 행선지는 대구경북과 울산입니다. [편집자말]
현대차 비정규직 오씨. 그는 "얼굴대신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라'는 문구는 곡 나오게 해달라"고 말했다.
 현대차 비정규직 오씨. 그는 "얼굴대신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화하라'는 문구는 곡 나오게 해달라"고 말했다.
ⓒ 박석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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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건 사람들을 서로 비교하지 마라. 인간에게 비교의식만 없어도 세상이 참 살만해질 텐데…."  

중학교 때 사회 선생님이 하셨던 이야기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더러들 경험이 있겠지만, 기자도 학창시절 공부 잘하는 이웃 아이 때문에 부모님께 잔소리 좀 들었다. 공부도 1등에, 얼굴도 잘 생겼던 그 녀석 때문에.

30년이 훌쩍 지나 아이 둘을 키우는 아버지가 됐지만, 비교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필자가 살고 있는 울산 지역의 대기업 정규직들은 연말이면 천 만원 이상의 성과금을 받는데, 그날이 되면 아내의 잔소리가 심해진다. 그날은 부부싸움 할 확률이 90%가 넘는다.

나도 나지만 내가 살고 있는 울산 주변에는 정말 억울한 사람들이 많다. 비정규직이 바로 그들이다.

특히 현대차 비정규직들이 그렇다. 정규직과 비교하면 억울한 점이 한 둘이 아니다. 현대자동차로부터 똑같은 지시를 받고 똑같은 일 혹은 더 노동강도가 센 일을 하고서도 임금은 절반 수준이거나 그에 못미친다. 정규직이 누리는 복지 혜택까지 감안하면 그 차이는 더 커진다.

'현대차 비정규직 인터뷰'를 하기 위해 여러 경로를 통해 섭외를 했지만, 그들을 인터뷰하기는 쉽지 않았다. 부탁을 받은 사람마다 하는 이야기가 "불이익을 받을까봐 나서지 않으려 한다"는 것이었다.

아주 어렵게 30대 평범한 가장으로 현대차 비정규직으로 10년 째 생활해 오고 있는 오동식(34·가명)씨를 만났다. 그를 처음 본 순간 "참 잘 생겼다" 다는 인상을 받았다. 비정규직만 아니라면 걱정이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인상이었다.

인터뷰는 그의 근무시간에 맞춰 20일 오후 7시 30분부터 약 한 시간 가량, 현대차 울산공장 앞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주야간 맞교대 근무를 하는 그는 이날 오후 9시까지 출근을 해야 했다. 이런 근무사정을 감안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2001년 제대 후 선택한 길... "비정규직 개념 정말 몰랐다"

전문대학을 다니다 군에 가게된 오동식씨. 그는 군에서 제대하던 2001년, 아버지 지인의 소개로 현대차 협력업체(하청업체)에 입사하게 됐다. 대학을 졸업해도 비전이 없을 것 같아 내린 결정이었다. 그는 몇 번이나 "그때는 비정규직의 개념을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당시 24세였던 그는 현대차 협력업체에 다니는 것에 대해 "현대차 안에서 일하고 현대차에 속한 회사라는 사실에 자부심마저 느꼈다"고 했다. 정규직들이 모두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형님들이라 더 그랬다.

하지만 3년 정도 지나자 "이게 아니다" 싶었단다. 일은 힘들고 정규직보다 임금은 적은 것이 점점 억울함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함께 일하던 비정규직들이 수시로 퇴사하고 입사하는 것을 목격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처음 가졌던 그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요즘은 현대차 공장라인에서 차종 교체를 통해 정리해고를 하지 않는 한 (현대차에서 차종 교체를 할 경우 라인에 있던 비정규직들이 먼저 회사를 그만둬야 한다) 회사를 떠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현대차 공장 밖 세상의 사정이 썩 좋지 않기 때문이다.

오동식씨는 기자가 "같은 일을 하고 돈은 적은..."이라고 말을 꺼내자 손사래를 쳤다. 같은 라인에서 함께 일을 하지만 비정규직이 더 힘든 일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

"같은 컨베이어벨트를 타지만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공정과 여유가 없어 힘든 공정이 있어요, 힘든 공정은 비정규직 차지입니다. 더 힘이 들어요."

그는 자신이 일하는 공장 라인을 볼펜으로 그려가면서까지 설명했다. 그의 설명을 들으니 컨베이어벨트에도 노동강도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주야간 맞교대 월급 170만 원..보너스 타는 달, 빚 갚기 바빠"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2010년 11월 울산 현대차 제1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자료사진)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2010년 11월 울산 현대차 제1공장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였다. (자료사진)
ⓒ 박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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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궁금한 게 있었다. 지난해 현대차 비정규직이 공장 점거 농성을 벌일 때 회사에서 주장해 회자된 현대차비정규직 고임금론이었다. 지난해 11월 공장 점거 파업 농성이 이어지자 강호돈 현대자동차 대표이사 부사장(울산공장장)은 직원들에게 보낸 가정통신문을 통해 "현대차 사내하청 업체 근로자 4~5년차 평균연봉은 4000만 원 수준으로, 이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올해 전국 근로자 임금평균의 1.4배나 되는 금액"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재완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대차 비정규직 연봉이 고시합격 4년차보다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오동식씨는 어떨까? 그는 10년째 현대차 울산공장안의 한 공장 라인에서 주야간 맞교대로 일을 하고 있다. 일주일은 오전 8시 출근해 오후 7시 퇴근, 일주일은 오후 9시 출근해 다음날 오전 8시 퇴근이다. 1시간 빠진 11시간씩 근무다. 한 달에 3~4일 정도만 쉰다. 주5일제는 남의 나라 이야기다. 더군다나 상대적으로 수당이 많은 휴일날 근무를 하지 않으면 임금이 많이 차이가 나기 때문에 쉬는 게 쉽지 않다.

"제 기본급이 130만 원입니다. 야간에 근무해야 월 받는 돈이 딱 170만 원 정도입니다. 현대차에서 10년째 근무한 사람이 이 정도입니다. 그나마 두 달에 한 번 기본급으로 보너스가 나오는 달이면 밀렸던 카드값이나 빌린 돈을 갚아요. 아이들 두 명 키우기 정말 빡빡합니다."

여기다 현대차 정규직노조가 진통끝에 임단협을 마치면 의례적으로 받는 성과금을 약간 나눠 갖는 수준이다.

"정규직이 성과금에 더해 우리사주를 받을 때면 정말 화가 나죠. 왜 우리는 더 힘든 일 하는 데 못 받나 하는 생각 안 할 수 없어요."

현대차 정규직은 2007년 30주, 2009년 40주, 2010년 30주의 무상주를 임단협 후 받았다. 현대차 주가가 현재 23만 원대인 것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액수다.

오동식씨는 야간 근무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야간근무 때면 휴대전화에 저장된 두 아이의 모습을 수시로 보면서 힘을 낸다고 말했다.

"비정규직이라고 하면 여자가 두 번째부터 연락이..." 

현대차를 생산하는 라인의 모습.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힘든 일을 하지만 임금 등 근로조적은 열악하다. (자료사진)
 현대차를 생산하는 라인의 모습.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힘든 일을 하지만 임금 등 근로조적은 열악하다. (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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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30대 후반과 40대를 넘기면서도 결혼을 못한 비정규직 동료들이 대부분인데 자신은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기 때문이다.

"번번이 선을 보고 퇴짜를 맞는 동료들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에 대한 생각이 이 정도구나 싶어서요. 우리 노총각 동료가 그러던데 요즘 여자들이 현명(?)해서 그런지 현대차 정규직이 아니라고 하면 두 번째는 연락이 안 된다는군요."

오씨는 이모의 소개로 한 여성을 만났다. 다행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오빠도 현대차 비정규직이었다. 이심전심이었을까? 둘은 2005년 결혼에 골인하게 됐다. 오씨는 "아내 오빠의 입김이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차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차별은 이미 여러차례 언론에 보도됐기 때문에 식상하기까지 하다. 정규직만 통근버스를 탈 수 있고, 학자금 지원 등 복지혜택도 비정규직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오씨는 그래도 "현대차는 정규직과 같은 식당에서 밥은 먹을 수 있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비정규직으로 가장 비애감을 느낄 때가 출근할 때라고 말했다. 정규직은 당당히 코팅된 '현대자동차' 사원증을 항상 부착하고 다니는데 반해 비정규직은 출입증을 가방에 넣고 다닌다. 그러다 정문으로 들어갈 때면 출입증을 가방에서 꺼내 든다.

"비정규직은 출입증을 가방에만 넣어 두고 정문 출입 때만 꺼내요. 사원증을 단 정규직은 무조건 패스. 비정규직은 경비들이 꼼꼼하게 사원증을 검사해요. 그럴 때면 무슨 검문 받다는 생각이 들어요."(인터뷰 후 기자가 현대차 정문과 4공장 문을 지나다보니 상당수 사람들이 가방에서 출입증을 꺼내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오동식씨의 큰 아이는 내년에 초등학교 입학을 한다. 그는 "아이들이 아빠가 현대차 비정규직이라는 것으로 상처를 받을까 봐 걱정"이라며 "아이들이 자라서 비정규직이 되면 안 되는데..."라고 말을 흐렸다.

울산에서 나고 자란 오동식씨는 아주 가끔씩이지만 친구들과 술자리를 한다. 이때 친구들은 회사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고 했다. 친구들이 마음이 상할까봐 배려를 하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하고 있다.

한편 오동식씨는 2004년 현대차 비정규직노조에 가입해 지난해 비정규직 파업 때 하루 참가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이것을 두고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그는 3개월을 쉬고, 6월달부터 출근했다. 현대차는 오동식씨 하청회사에 근무하는 비정규직노조 조합원 27명에 대해 10억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해 현재 재판이 진행중이기도 하다.

"법원에서 통지서가 날아오던 날 아내가 큰 충격에 빠졌다고 하더군요. 파업 당시 제 모습이 TV에 나왔나봐요. 부모님도 많이 걱정하시고... 나이 서른이 넘으면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에 분노를 느끼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비정규직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난해 파업을 하면서 우리의 부당함을 이 세상에 주장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용기를 얻었습니다. 이제 두려움은 없습니다."

현대차는 지난해 7월 22일 대법원이 "2년 이상 근무한 사내하청 노동자를 직접고용하라"는 판결이 나왔고, 대법원 판결 취지로 다시 지난 2월 파기환송심 결과도 나왔다. 현대차는 다시 재상고를 했고, 판결의 근거가 된 법률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직접 헌법소원까지 냈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법원의 판단에 희망을 걸고 있지만, 현대차는 김앤장을 법률대리인으로 내세워 1년 넘게 '시간끌기'만 하고 있다. 



태그:#지역투어, #현대차,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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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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