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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마찬가지겠지만 음식도 자주 만들어 보면 ‘도사’가 됩니다.
 뭐든 마찬가지겠지만 음식도 자주 만들어 보면 ‘도사’가 됩니다.
ⓒ 홍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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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국수를 좋아했습니다. 국수는 우선 그릇에 담긴 녀석의 모습이 푸짐해서 좋(았)습니다. 그처럼 푼푼한 모습은 '만성가난'에서 허덕인 소년일 적에도 헛헛하게 꺼졌던 제 배를 금세 포만감으로 채워주는 일등공신이었기에 더욱 반가웠죠.

시인 이상국은 '국수가 먹고 싶다'는 시에서 '때로는 허름한 식당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끊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또한 '삶의 모서리에서 마음을 다치고 길거리에 나서면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듯'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과도 국수가 함께 먹고 싶다고 '절규'합니다.

이 시를 구태여 인용하는 건 실제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끓여주었던 그 시절의 국수가 지금도 제 기억의 창고에선 여전히 실눈을 뜨고 스멀스멀 움직이는 때문입니다. 너무도 일찍 어머니를 잃은 '죗값'으로 가파른 세상살이의 최전선에 나오고 보니 늘 그렇게 배가 고팠고 추웠으며 외로웠습니다.

그런 소년가장에게 있어 인근의 허름한 국숫집 아줌마는 정말 고마운 천사에 다름 아니었지요. "밥은 먹었니?" "한창 클 나인데 굶으면 쓰나?" 마치 친엄마처럼 챙겨주신 그 아줌마의 통큰 심성 덕분에 공짜 국수도 무시로 얻어먹었습니다. 집에 가 봤자 만날 쥐코밥상에 반찬이라곤 시어터진 김치쪼가리뿐이었기에 그 아줌마가 거듭의 토렴으로 말아주신 국수는 진수성찬에 다름 아니었지요.

아줌마는 손님이 뜸할 무렵엔 이따금 비빔국수도 말아 주셨습니다. 십인십색으로 입맛이 모두 다른 게 바로 사람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개인적으로 물국수보다는 비빔국수를 선호하죠. 그러한 입맛은 지금도 여전한데 아무튼 다행히(?) 어려서부터 산전수전에 이어 공중전까지의 고생살이를 마스터한 때문에 저는 음식을 잘 만듭니다.

이같은 연유는 이 '억울한 세상'에서 다른 건 몰라도 먹는 요리와 조리법만큼이라도 스스로 터득해야만 최소한 굶어서 죽는 비참과는 조우하지 않을 거라는 나름의 방책이 그 근저였지요. 이런 관점에서 시작된 저의 음식 만드는 솜씨는 아이들도 진즉부터 인정할 정도입니다. 위에서 어머니 같은 여자가 끊여주는 국수가 먹고 싶은 사람을 인용하였습니다.

그런 이 외에도 '삶의 모서리에서 마음을 다친' 사람은 아마도 믿었던 이에게 하지만 빌려준 돈을 떼였다거나, 아님 사랑했던 여자에게 배신을 당한 이도 그 축에 끼겠지요? 또한 '고향 장거리 길로 소 팔고 돌아오는' 뒷모습이 허전한 사람들은 역시도 가족처럼 키웠던 소를 팔았으니 그 얼마나 마음이 시릴까 싶어 결코 허투루 읽히지 않는 글입니다.

사설이 길었네요. 장마의 끝을 물고 들어선 무더위는 어제도 열대야의 횡포까지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더운 날에 있어 잘 먹는다는 건 일종의 양생법(養生法)과도 부합되는 화두입니다. 그래서 나름의 '보양식'인 비빔국수를 저녁에 만들었지요. 세계 각국에도 보양식은 있겠습니다만 우리 국민들이 즐기는 보양식은 종류도 많습니다.

대표적인 삼계탕과 소위 영양탕 외 추어탕과 옻닭, 냉면과 장어구이, 냉콩국(수)도 그 틈에 편승하여 명함을 당당히 내밉니다. 욕심을 더 내자면 용봉탕과 초계탕도 먹을 만하지요. 그러나 이러한 거개의 보양식은 하나 같이 그 값이 만만치 않다는 한계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더구나 요즘엔 물가가 더욱 대폭 올라서 식당에 들어가 맘에 드는 보양식이라도 먹을라 치면 솔직히 주머니 사정부터 따지지 않을 도리가 없지요. 여하간 이런 맥락에서라도 즐겨 만들어 먹는 한여름의 별미이자 더위까지 냉큼 몰아내 주는 '홀아비표 비빔국수'는 매우 경제적으로 맛볼 수 있는 별식이기에 적극 추천합니다.

이 비빔국수의 브랜드(?)에 '홀아비'표가 붙은 건 다 이유가 있답니다. 지금도 발휘하고 있는 저의 요리솜씨는 모두가 어머니(아내) 없이 쓸쓸히 혼자 사시다 세상을 버리신 홀아버지가 생존해 계셨을 때 배운 것이기 때문이죠. 이는 또한 생존해 계실 적에 제대로 효도를 못 한 불효자인 저의 자책감까지를 은연중 담았노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개그콘서트>를 보자면 '한국어~ 절대 어렵지 않아요'라는 꼭지가 방송되지요? '홀아비표 비빔국수'의 조리법도 절대 어렵지 않습니다. 우선 국수를 삶아 건진 뒤 얼음물에 잠시 담가둡니다. 국수를 삶았던 커다란 냄비를 씻어 물기를 없앤 뒤 거기에 썬 오이와 풋고추, 찧은 마늘과 깨소금, 고추장에 이어 참기름 한 방울과 썬 양배추를 넣습니다.

적당히 익은 물김치 약간과 국물, 설탕으로 간을 맞추고 고명으론 달걀 프라이와 제철과일을 얹으면 금상첨화입니다. 그러니까 이 음식은 국수라는 독립된 개체에 무려 열 가지나 되는 각종의 재료를 가미한 그야말로 십위일체(十位一體)의 원군(援軍) 앙상블까지 되는 셈이죠. 기왕이면 다홍치마랬다고 이 음식을 먹으면서 얼음이 동동 뜬 식초를 넣은 오이냉국을 곁들이면 더위는 더 이상 버틸 여력조차 없이 순식간 줄행랑을 놓게 마련입니다.

따지고 보면 보양식은 내가 그 음식을 먹었을 때 몸에서 잘 받고 소화도 잘 되며 포만감의 행복까지를 누리면 되는 것 아닐까요? 제가 비록 이름난 숙수(熟手)는 아니되 아이들도 인정하므로 다시 또 아들과 딸이 집에 오면 이 맛난 비빔국수를 적극 만들어 줄 요량입니다.

덧붙이는 글 | ‘나만의 보양식’ 응모 글입니다



태그:#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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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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