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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오후 충남 아산시 둔포면 운용리 유성기업 인근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18일 오후 충남 아산시 둔포면 운용리 유성기업 인근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들이 점심을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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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19일 오전 10시]

"오늘은 특식이네요."

식판에는 밥, 김치, 김가루, 고추장이 담겼다. 오이냉국도 나왔다. 이현성(가명·42)씨는 "보통 밥과 김치만 나온다"며 "밥은 매일 인근 방앗간에서 쪄서 가져오고, 충남 농민회에서 만들어준 김치가 유일한 반찬"이라고 했다. 이씨는 어느새 큰 양푼에 기자의 식판을 엎더니, 뚝딱 비빔밥을 만들었다.

먹는 건 이렇게 해결할 수 있지만, 비닐하우스에서 지내는 것은 여간 고달픈 일이 아니다. 장마는 비닐하우스 바닥을 진흙탕으로 만들더니, 이젠 뜨거운 햇볕에 찜통이 됐다. 제대로 씻지도 못한다. 이씨는 "농성자 200여 명이 샤워기 2개로 씻고 있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이하 노조) 조합원들은 여전히 집과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주간연속 2교대 협의를 요구하며 시작된 노조의 파업과 회사의 직장폐쇄는 이미 두 달 전 일이다. 노조는 지난 5월 24일 경찰에 의해 강제진압을 당한 후 6월 14일 복귀를 선언했다. 하지만 공장 정문은 철조망이 쳐진 컨테이너와 높이 솟은 망루로 막혀 있다.

회사는 조합원을 선별해 복귀시키고 있다. 유성기업 아산·영동공장 직원 560명 중 300여 명이 생활고 등의 이유로 복귀했다. 복귀하지 못하고 남아 있는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18일 오전 농성장으로 향했다. 충남 아산시 둔포면에 있는 유성기업 아산공장 정문에서 불과 100m 떨어진 농장이다.

"6살 딸 '우리 집 돈에 없잖아'라고 해... 가슴 아프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이 18일 오후 충남 아산시 둔포면 운용리 유성기업의 굳게 잠긴 정문에서 '사측은 직장폐쇄를 풀고, 조합원들의 일괄복귀를 허용하라'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이 18일 오후 충남 아산시 둔포면 운용리 유성기업의 굳게 잠긴 정문에서 '사측은 직장폐쇄를 풀고, 조합원들의 일괄복귀를 허용하라'는 내용의 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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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수(37)씨는 "밤에 잔다는 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7월 입사 이후, 한 달에 2주씩 야간근무를 했던 그였다. 주말에도 일했다. 그는 "가장 하고 싶은 게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지만, 지난 두 달 동안 가족을 몇 번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휴대전화에 담긴 가족사진을 내보였다. 10살과 5살인 두 딸은 밝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고씨는 사진을 볼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 그는 "얼마 전 큰딸이 학교에서 '비닐하우스에 사는 너희 아빠는 예쁜 옷도 못 사주는 거지다'라는 놀림을 받고, 집에서 아내랑 펑펑 울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큰딸은 두 돌 때 망막에 악성종양이 생기는 희귀병인 망막모세포종에 걸렸다. 한쪽 눈을 제거했고 보안기를 꼈다. 큰돈이 들어갔다. 지금껏 마이너스 인생이었다. 평범하게 살고 싶어 지난 1월 퇴직금을 정산했다. 빚을 거의 갚고 충북 영동군에 3500만 원짜리 전세방을 구했다. 그런데 파업 이후 두 달간 월급을 제대로 못 받고 있으니…."

신용불량자인 고씨는 6~7월 보험 약관 대출 700만 원을 받았다. 그의 아내가 시급 4500원을 받고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지만, 가계 사정은 좋지 않다. 복귀가 늦춰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다른 이들도 생활고와 가족 이야기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현성씨는 "16일은 6살짜리 딸의 생일이었다, 시간을 내 가족들과 함께했다"며 "평소에는 선물을 사달라던 딸이 이번 생일에는 '우리 집에 돈이 없잖아'라고 했다, 너무 가슴이 아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 동료의 아이가 용역 직원 사진을 보자 '나쁜 사람'이라며 때리는 모습을 봤다"며 "가족대책위원회의 많은 아내와 아이들은 남편이자 아빠인 조합원들이 용역 직원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모습을 봤다, 아이들이 그런 모습을 보고 큰 충격에 빠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밝혔다.

18일 오후 충남 아산시 둔포면 운용리 유성기업 인근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농성중인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 고성수(37)씨가 두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18일 오후 충남 아산시 둔포면 운용리 유성기업 인근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농성중인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 고성수(37)씨가 두 딸과 함께 찍은 사진을 기자에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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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역 직원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두개골 함몰... 경찰은 뭐하나"

노조 파업 당시,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은 대대적인 비판 보도를 통해 "현대·기아차 공장이 멈추고 한국 경제가 어려움에 빠질 수 있다"며 파업 철회와 빠른 복귀를 요구했다. 이후 노조의 복귀 선언에도 회사가 직장폐쇄를 풀지 않고 대화에도 나서지 않지만, 이들 언론은 입을 닫은 지 오래다.

이정훈 노조 비상대책위원장은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위원장인 충남 노사민정협의회에서 모두 회사의 조치에 '명분이 없다'고 했다"며 "회사는 노조 탈퇴 각서를 쓴 조합원들을 선별적으로 복귀시키고 있다, 어용노조 세력을 키워 현 노조를 파괴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유성기업 복수 노조 신고서가 제출됐다.

그는 "노조 파괴는 이명박 정부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특히, 경찰은 노골적으로 회사를 편들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달 22일 유성기업 앞에서 노조와 경찰·용역 직원의 충돌로 경찰 108명이 다쳤다며 127명으로 구성된 특별수사본부를 구성했다.

지난 6월 22일 유성기업 용역 직원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두개골이 함몰된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인 조춘재(37)씨가 18일 오후 충남 천안시 성환읍의 한 병원에서 기자에게 당시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6월 22일 유성기업 용역 직원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두개골이 함몰된 금속노조 유성기업지회 조합원인 조춘재(37)씨가 18일 오후 충남 천안시 성환읍의 한 병원에서 기자에게 당시의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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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위원장은 "다쳤다는 경찰은 대부분 타박상이었다, 그런데 특별수사본부 규모는 '개구리 소년 실종사건' 때보다 더 크다"고 지적했다. 현재 김성태 노조 아산지회장 등 노조간부 5명이 체포됐고, 3명에게는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조합원 70여 명은 출두요구서를 받았다. 농성장과 민주노총 충북본부에 대한 압수수색도 이뤄졌다.

반면, 같은 날 조합원 20여 명이 크게 다쳤지만, 경찰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조춘재(37)씨는 "당시 현장에서 용역 직원들의 폭력으로 많은 조합원들은 피범벅이 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손 놓고 있는 경찰을 못 믿겠다"고 말했다. 조씨는 당시 용역 직원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맞아 두개골이 함몰돼 뇌출혈이 발생했다.

"전날 용역 직원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며 진압 연습하는 것을 봤다. 경찰에게 항의하니, '아직 맞지 않았으니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튿날 쇠파이프에 맞았다.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곧 중환자실에 실려가 큰 수술을 받았다. 사실상 살인 미수다. 7월 초 인터넷에 내 사진이 공개돼 논란이 되자 그제야 진술서를 받았다. 그 뒤로는 연락이 없다. "

현재 조합원들은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한 조합원은 "회사는 개별 면담을 진행하면서 '이번에 복귀하지 않으면 앞으로 일 할 수 없다'고 협박 한다"며 "또한 회사가 손해배상 가압류를 계속 시도하고 있어, 조합원들이 갖는 심적 부담을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성수씨는 "노모와 함께 살면서 이혼 후 혼자 세 아이를 키우는 친한 동료가 생활고와 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해 복귀했다,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며 "딸에게 떳떳한 아빠가 되기 위해서라도 다 같이 일괄 복귀하는 길을 택하겠다, 사회적으로도 많은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잘 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유성기업 "선별 복귀 아니다...노조 탈퇴 요구한 적 없어"

한편, 유성기업은 "선별 복귀가 아니다"며 "진정성을 가지고 근무의사를 밝힌 모든 조합원을 받아주고 있다"고 밝혔다.

유성기업 아산공장 관리노무담당 상무는 "공장에 들어와 보복 차원에서 또 다시 불법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조합원이 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복귀시키고 있다"며 "개별 면담을 통해 '성실히 근무하겠다'는 확약서만 쓰면 되는데, 일괄 복귀만 주장하는 것은 다른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회사가 노조를 파괴한다는 주장에 대해 "노조 탈퇴 요구를 한 적이 없다, 회사가 어떻게 노조를 파괴할 수 있겠느냐"며 "회사가 회유와 협박을 했다는 것은 노조의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태그:#유성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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