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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맛집, 관광지 등은 물론이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낱낱이 보여드립니다. 7월 지역투어지인 대구경북과 울산을 만나 보세요. [편집자말]
 1978년 왜관 캠프 캐럴에서 고엽제를 매립했다고 폭로한 전 주한미군 스티브 하우스씨가 27일 오후 경상북도 칠곡군청에서 왜관 주민 간담회에 참석해 "제가 한국에 처음으로 주한미군으로서 왔을 때 한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온 것이지 해를 끼치러 온 것이 아니다"며 "이번 방문으로 진실이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고 발언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1978년 왜관 캠프 캐럴에서 고엽제를 매립했다고 폭로한 전 주한미군 스티브 하우스씨가 27일 오후 경상북도 칠곡군청에서 왜관 주민 간담회에 참석해 "제가 한국에 처음으로 주한미군으로서 왔을 때 한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온 것이지 해를 끼치러 온 것이 아니다"며 "이번 방문으로 진실이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고 발언하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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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경북 왜관 캠프 캐럴에서 고엽제를 매립했다고 폭로한 전 주한미군 스티브 하우스가 27일 캠프 캐럴을 방문했다. 하우스씨는 자신이 고엽제를 묻었던 장소로 캠프 캐럴 내 헬기장 주변 비탈길을 지목했다. 그 동안 한미공동조사단이 조사를 진행한 곳과는 상당히 떨어진 지역이다. 

하우스씨가 이날 주민들과의 간담회에서 "고엽제를 파묻는데 동원됐던 점과 이 자리에 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린 점에 대해 주민들과 한국민들에게 사과드린다. 이제 진실을 밝히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달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고엽제가 매립된 경북 왜관 캠프 캐럴 기지와 담장 사이 하나를 두고 있는 성베네딕도 왜관 수도원 사제들은 스티브 하우스의 이야기를 듣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성베네딕도 왜관 수도원은 이날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과 김선동 민주노동당 고엽제 대책위원장에게 '국회 차원의 진상조사단' 구성을 요청하는 건의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신부들은 왜 거리로 나섰나

 성베네딕수도회 왜관수도원 신부들이 사제복을 입고 지난 5월 29일 왜관 미군기지 고엽제 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행진하는 모습.
 성베네딕수도회 왜관수도원 신부들이 수도복을 입고 지난 5월 29일 왜관 미군기지 고엽제 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행진하는 모습.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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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 미군기지 고엽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이들 가운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성 베네딕도 왜관 수도원 사제들이다. 성 베네딕도 왜관 수도원 사제들은 지난 5월 29일에는 이례적으로 거리로 나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행진까지 벌였다.

"백만 평의 땅이 만신창이가 되고 썩어가는데도 미군들은 '우리가 괜찮으니까 여기 살고 있는데 밖에서 왜 그러느냐?'고 하지만 이 지역에 대두되고 있는 고엽제 문제에 대해 그냥 놔두면 나중에 회복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우리가 나선 겁니다."

성 베네딕도 왜관 수도원 김종필 원장신부의 말이다.

그는 고엽제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해 "1차적으로 생존을 위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수도원에서 살아갈 후배 신부들을 위해서라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왜관 캠프 캐럴 미군기지 고엽제 피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데 실무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베네딕도 수도원의 고진석 신부.
 왜관 캠프 캐럴 미군기지 고엽제 피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데 실무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베네딕도 수도원의 고진석 신부.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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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신부는 "이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나서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면서 "그것이 구도자로서의 소명"이라고 밝혔다.

미군기지 고엽제 피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데 실무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고진석 이사악(세례명) 신부는 이 사건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계기는 아주 사소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5월 동기 수사들과 함께 제주도로 휴가를 갔다가 한라산 등반을 하고 내려와 저녁을 먹으면서 '왜관 미군기지에 고엽제가 묻혔다'는 뉴스를 보고 사실 그냥 지나쳤어요. 그런데 휴가를 마치고 수도원으로 돌아온 다음날 원장 신부와 이야기를 하면서 상황이 달라졌어요. 그렇게 시작된 싸움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몰랐죠."

고진석 신부는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기자회견, 성명서 발표, 군중집회, 일인시위, 촛불집회, 전단지 제작 및 배포, 주민문화제. 대학시절에도 못해본 시위를 두 달 동안 풀세트로 다 해 본 것 같다고.

고진석 신부는 "이곳의 주민들이 적극 나서지 못하는 이유는 생계 등 경제적인 이해관계가 걸려있기 때문이지만 우리는 수도자들이라 잃을 것도 없고 얻을 것도 없기 때문에 양심에 맞다고 생각해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고 신부는 "왜관에는 제대로 목소리를 내는 단체가 없었다.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고엽제 문제는 유야무야 될 것이 뻔했고 정부는 형식적으로 조사를 하고 끝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교황청에서 발표한 정의, 환경, 생명의 사회교리에 따라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왜관 수도원은 '왜관미군기지 고엽제 매립범죄 진상규명 대구경북대책위원회'와 '캠프 캐럴 고엽제 진상규명 민간대책협의회'가 함께 활동할 수 있도록 장소를 마련해주고 주민문화제를 개최하는 등 고엽제 문제가 불거진 직후부터 적극적으로 나섰다.

시료 채취까지 나선 사제들

이곳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수도자들은 오전 5시부터 오후 8시까지 하루에 5번 기도를 하고 중간중간에 각자의 소임에 맡겨진 일을 하며 수행을 통해 완전한 하느님의 사람이 되기 위한 구도자의 길을 걷는다.

하지만 이들은 고엽제 문제를 계기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지난 16일 미군 기지 고엽제 사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오렌지 둘레길을 걷는 행사를 진행했다.
 지난 7월 16일 미군 기지 고엽제 사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오렌지 둘레길을 걷는 행사를 진행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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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관 수도원의 신부들은 고엽제 진상규명을 위해 거리로만 나선 게 아니라 대구 사수동에 위치한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들과 대책위와 함께 세차례에 걸쳐 문화제를 갖고 지역민들에게 고엽제의 진상을 알리고자 적극 노력했다. 지난 6월 10일 수도원 구성당과 정원에서 '정의의 야단법석', 2주 후인 6월 24일에는 대성당에서 '생명의 야단법석', 또 7월 8일에는 '평화의 야단법석' 문화제가 왜관역에서 열려 호응을 받았다.

왜관 수도원 수도자들은 주민들을 상대로 고엽제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알리는 데에만 머무르지 않고 직접 시료채취에 나서는 적극적인 행동에도 들어갔다. 아직도 지하수를 마시는 지역주민들의 건강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고엽제가 묻혀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미군기지 D구역 앞 2군데를 비롯해 41구역 앞 2군데, 복지관쪽 2군데 등 8곳의 음용시료를 채취해 분석을 하고 캠프 캐럴 정문 옆 지천과 동경천이 만나는 합수지역, 그리고 그 반대지역 등 3군데의 흙을 채취해 분석에 들어갔다.

베네딕도회 남녀 수도자들이 나서자 왜관의 민간대책위도 적극적으로 나서 고엽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그동안 주민들의 의견을 전달하고 진실을 밝히기를 요구하는 구심점이 없던 왜관에 수도자들이 나서자 진상규명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는 셈이다.

폭염 속에서 '오렌지 둘레길'을 걷다  

 지난 16일 미군 고엽제 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시민들이 미군기지에 리본 달기를 진행한 모습.
 지난 7월 16일 미군 고엽제 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시민들이 미군기지에 리본 달기를 진행한 모습.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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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같이 돌자 캠프 한바퀴
고엽제가 매립된 캠프 한바퀴
우리보고 미군들 인상 씁니다
그래도 웃어주며 캠프 한바퀴
고엽제 진상규명 빨리 좀 해라."

지난 16일 경북 왜관 미군기지 고엽제 불법매립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오렌지 둘레길, 우리 땅 밟기 30리길 다같이 돌자 캠프 한바퀴' 행사가 진행됐다. '오렌지 둘레길'을 걸으면서 참가자들는 함께 노래를 불렀다. 1960년대 베트남전에서 미군이 사용했던 고엽제를 '에이전트 오렌지'라고 불렀다. '오렌지 둘레길'은 바로 여기에서 유래됐다. 

'오렌지 둘레길'은 왜관 성베네딕도 수도원에서 시작된다. 이 행사에 참석한 이들은 고엽제가 매립된 왜관 캠프 캐럴 후문에 모여,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요구 사항을 담은 리본을 묶었다.

리본을 다는 모습을 보고 미군부대에 있는 용역 직원들이 좀 봐달라고 하자 멀리 부산에서 온 올리베따노 베네딕도회 수녀들은 "저희들 이거 묶으려고 부산에서 왔거든요, 한 번만 묶을 게요"해서 모두가 웃기도 했다.

성베네딕도 왜관 수도원을 비롯해 시민단체과 시민들 50여 명은 두달이 넘도록 진상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고엽제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폭염이 쏟아지는 길을 걸었던 것이다.

고진석 신부는  이번 고엽제 싸움을 참 애매한 싸움이라고 말한다. 고엽제 불법매립 진상규명을 위해 동분서주했음에도 도무지 누구와 싸우는지 갈피를 잡지 못할 때가 많았다는 것. 물론 범죄를 저지른 미군이 싸움의 상대가 되어야 하지만 그들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협장) 뒤에 숨어 꿈쩍을 안 한다. 대신 정부를 상대하려고 하니 초점이 맞지 않는 것 같고,  지역주민들과 함께 해야 하는데 선동하는 분위기로 비쳐서도 안 되고,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27일 캠프 캐럴을 방문한 스티브 하우스의 구체적인 증언을 들으면서 고 신부는 자신들의 활동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하우스씨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미합동조사단의 조사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알게 됐습니다. 한미합동조사단은 하우스씨가 일방적인 주장을 한다는 투로 나오고 있지만 그의 증언을 들어보면 매립사실은 아주 명확합니다. 하우스씨의 국회 증언을 보면 구체적으로 매립지시를 내린 장교 이름이 나오고, 같이 작업을 했던 병사이름까지 거명하고 있어요. 또한 하우스씨가 증언한 매립당시 상황을 보면 이미 드럼통이 깨지고 액체상태의 고엽제가 흘러나왔다고 했습니다.  앞으로 한미합동조사단은 시늉뿐인 조사를 그만두고 하우스씨가 지목한 장소에 대한 실질적인 조사를 진행하고, 아울러 정부에서도 고엽제를 묻은 헬기장과 칠곡군 주민복지회관 뒤편에 자리한 매원 3리와 41구역 뒤편에 자리한 왜관 9리 지역에 대한 역학조사와 피해실태를 즉각 조사해야 합니다."  

고진석 신부는 정신없이 보낸 날들이지만 같은 뜻을 가지고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깨닫고 있다. 그래서인지 고엽제 불법매립 진상규명에 많은 단체들이 참가해서 일을 진행시키면서  함께 하는 단체들과 적극적인 소통과 협조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왜관 수도원 수도자들이 이 싸움을 끝까지 포기할 수 없고, 낙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Don't forget, Camp Carrol is Our Land!"(잊지마, 캠프 캐럴은 우리 땅이야!)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은 어떤 곳?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의 모습. 1909년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베네딕도회는 1952년 왜관에 자리잡았으며 현재 70여명의 수도사들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의 모습. 1909년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베네딕도회는 1952년 왜관에 자리잡았으며 현재 70여명의 수도사들이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 조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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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군 왜관읍에 자리잡은 성 베네딕도 왜관수도원은 1909년 2월 25일 독일의 성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이 선교사 2명을 서울에 파견해 백동수도원(현 서울 혜화동 가톨릭신학교 자리)을 만든 이후 덕원수도원(지금의 원산 근처)을 거쳐 1952년 왜관에 자리를 잡았다.

베네딕도회는 지금으로부터 1500년 전 이태리 누르시아(Nursia) 출신 성 베네딕도(St. Benedictus, 480-547경)가 저술한 수도규칙을 따르는 남녀 수도회들의 연합을 일컫는다. 과거에는 분도회(芬道會)라고도 하였다.

왜관 베네딕도 수도원에는 70명의 수도사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살고 있으며 크게 기도와 노동으로 하루가 짜여져 있는데 하루에 6번의 기도와 목공소, 분도출판사,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실,금속성물공예실, 원내농장 등에서 맡은 소임을 통해 하느님의 완전한 사람이 되고자 수행을 하고 있다.

이곳에 있는 분도출판사는 우리나라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의 사상적인 토대를 마련해준 '해방신학' 등을 소개하는 책들을 발간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농민운동의 효시인 가톨릭농민회가 만들어지기도 했으며 장충동분원 지하는 민중세력들의 집결지이기도 했다. 또한 분도출판사 사장이었던 세바스찬 신부를 통해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많은 신부들이 고엽제 사건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한꺼번에 거리로 나오기는 왜관수도원이 생긴 이래 처음있는 일이다.

이곳 수도원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겸재 화첩이 보관돼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겸재의 화첩은 1925년 한국을 방문한 노르베르트 베버 당시 오틸리엔 수도원장이 귀국할 때 수집해 간 것으로 독일의 남부 오틸리엔 수도원에 보관돼 있다가 영구임대 방식으로 2005년 반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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