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맛집, 관광지 등은 물론이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낱낱이 보여드립니다. 7월 지역투어 두 번째 행선지는 대구경북과 울산입니다. [편집자말]
들어가며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곤 한다. 대구라는 도시이름을 들으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게 뭐냐고. 그들은 예외 없이 머뭇거리거나 쭈뼛거린다. 그건 대구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문제는 확대해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 하면 뭐가 떠오르는지, 독자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바란다. 그리고 대답해보시라. 뭐가 있는가, 하나라도. (김치^^*)

<오마이뉴스>가 전국 투어를 시작했다. 제주를 시작으로 이번에는 대구를 방문한다. <오마이뉴스>팀이 대구에 오는 것을 환영하면서 대구를 소재로 한 글을 쓰기로 했다. 핵심은 영화에 대한 것이지만, 21세기 두 번째 10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대구가 어떤 곳인가, 하는 문제도 아울러 생각하려고 한다. 영화도 사람 사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이므로.

재작년 8월 8일 대구 <매일신문> 사설에 흥미로운 글이 실렸다. 부산을 배경으로 한 <친구>가 800만 관객을 불러들였고, <해운대>가 천만 관객을 향해 진군하는데, 대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왜 없는가. 대구를 세상에 알려서 문화와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담긴 글이었다. 대구의 인물과 문화, 영화는 어떤 형편일까?

대구의 인물

 2010년 11월 14일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주차장에서 열린 숭모제에 참석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0년 11월 14일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 주차장에서 열린 숭모제에 참석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오늘날 대구는 보수적이고 진부하며 낙후하다는 인상을 주는 듯하다. 시대와 역사의 변화에 둔감하거나 냉소적인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란 인상도 있다. 자기들만의 패거리 문화가 너무 강해서 외지인들과 화합하지 못하는 면도 없지 않다. 그런데 지난 20세기를 돌아보면 사정은 영 딴판이다. 대단한 사람들로 넘쳐났던 곳이 대구이기 때문이다.

<봄은 고양이로다>의 고월 이장희와 <운수 좋은 날>, <빈처>, <B사감과 러브레터>, <물레방아> 같은 단편소설과 장편소설 <무영탑>으로 잘 알려진 빙허 현진건. 그들은 모두 1900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나의 침실로>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같은 절창으로 유명한 이상화 시인은 1901년 대구에서 출생하여 1943년 대구에서 절명했다.

한국인의 애창곡 <동무생각>과 <오빠생각>을 작곡한 박태준도 대구가 고향이다. 한국의 고갱으로 불리는 화가 이인성 역시 대구에서 태어나 <계산동 성당>이나 <해당화> 같은 걸작을 남겼다. 1970년 11월 13일 '노동3권 보장'과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고 분신한 전태일 열사와 <전태일 평전>의 저자 조영래 변호사도 모두 대구 출신이었다. 

하지만 대구 사람들이 가장 자랑하는 인물은 누가 뭐래도 박정희다. 그가 김재규의 총탄에 세상을 버린 지 30여 년 세월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살아서 대구를 움직인다. 박근혜를 필두로 한 그의 지지 세력은 여전히 강고한 힘을 떨치고 있다. 그가 살해한 '인민혁명당 재건위사건'의 8인 역시 대구를 고향으로 두고 있던 박정희의 동향인들이었다. 

대구의 영화감독과 영화제

대구가 배출한 영화감독도 적잖다. 춘사 나운규의 <아리랑>(1926)과 함께 일제 강점기를 대표하는 흑백 무성영화 <임자 없는 나룻배>(1932)를 연출한 이규환 감독이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나그네>(1937)와 <새 출발> (1939) 같은 수준 높은 영화를 감독했고, 광복 후에는 고전물인 <춘향전>(1955)을 처음으로 감독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1989년 제42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으로 대상을 받은 배용균 감독의 고향도 대구다. 그는 1995년 <검으나 땅에 희나 백성>을 끝으로 침묵하고 있다. 김동현의 <상어>는 2005년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는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의 대구를 배경으로 세 남자와 한 여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청연>의 한 장면.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 박경원도 대구 출신이었다.

영화 <청연>의 한 장면.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 박경원도 대구 출신이었다. ⓒ 코리아픽처스


윤종찬 감독의 <청연>(2005)은 한국 최초의 여류비행사 박경원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영화가 상영되기도 전에 박경원의 친일행각이 문제가 되어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이제는 고인이 된 장진영이 주인공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의 반일감정을 누그러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박경원의 고향 역시 대구였다.

2000년 11월에 시작된 '대구단편영화제'가 12년째를 맞이한다. 영화제 첫해에는 175편이 출품되었고, <이발소>가 첫 번째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해마다 출품작이 늘어나 2007년에는 500편을 넘어섰고, 올해도 532편이 출품되어 성황을 맞고 있다. 오는 8월 17일부터 21일까지 있을 제12회 '대구단편영화제'에 대한 여러분의 관심을 부탁드린다.  

독립영화 <도약선생>을 생각한다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조직위원회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도약선생>이다. '아리랑 TV'를 통해 세계 180여 개국에서 방영될 <도약선생>은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끝없는 도전과 사랑을 그린 영화다. 2007년 '올해의 독립영화상'을 수상한 <은하해방전선>과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2010) 등으로 유명세를 탄 윤성호 감독의 작품이다.

<도약선생>은 2011년 8월 27일부터 9월 4일까지 펼쳐지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 관련 있는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영화는 운동선수나 운동경기를 주인공이나 주제로 삼지 않는다. 장대높이뛰기는 영화의 모티프를 제공하고 있을 따름이다. 장쾌한 경기 장면이나 놀라운 스타플레이어를 보고자 한다면 이 영화는 실망스러울 것이다.

 영화 <도약선생>의 한 장면

영화 <도약선생>의 한 장면 ⓒ 디앤디미디어


<도약선생>은 1개월 남짓한 시간 속에서 대구 곳곳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룸메이트였던 여자친구인 우정에게 작별통보를 받은 원식(나수윤 분)은 그들 관계가 회복되기를 간구한다. 우정은 그녀(원식)에게 "무엇인가 남자답고 늠름한 것"을 보여 달라고 한다. 원식은 우정이 원하는 것을 실현하려다가 우연히 장대높이뛰기 코치 전영록(박혁권 분)의 눈에 띄어 운동을 시작한다. 이런 식이다.

영화는 대구가 자랑하는 수성유원지와 동촌유원지, 대구 스타디움과 대구체고, 계산 성당과 이상화 생가 등을 두루 보여준다. 또한 대구 유일의 예술영화전용관인 '동성아트홀'도 소개된다. 원식을 짝사랑하는 기타리스트 한받이 원식과 함께 영화를 보는 곳이 '동성아트홀'이다. 여기 더하여 대구가 자랑하는 막창집도 영화의 풍미를 더해준다.

그런데 <도약선생>은 우리에게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는가. 원식과 함께 전영록 코치의 가르침을 받는 재영(박희본 분)은 원식에게 동성으로 이끌린다. 원식과 우정 역시 그런 관계다. 따라서 영화는 일정하게 '퀴어 영화'의 양상을 취한다. 하지만 거기에는 높이를 향한 청춘의 도전과 사랑을 갈구하는 젊은 영혼의 애틋함이 웃음과 함께 따뜻하게 그려져 있다.

2011년, 대구는 도약할 것인가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대구에서 8월 27일부터 9월4일까지 진행된다.

2011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대구에서 8월 27일부터 9월4일까지 진행된다. ⓒ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


나 한 점, 그대는 멀찌감치 떨어져 한 점/ 흐릿한 발자국은 그리움에 사무친 노스탤지어/ 크게 한번 뛰어 올라도/ 당신 곁에 갈 수 없는 비련의 60도/ 나는 너에게로, 너는 나에게로/ 사이좋게 60도씩/ 사라진 그리움의 노스텔지어/ 우리는 그렇게 도약

<도약선생>의 자막이 내려올 때 화면 가득 울려 퍼지는 <도약은 패턴>이라는 노랫말이다.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다가설 수 없는 두 사람의 엇갈림을 상큼하게 표현하는 노래다. 애틋한 마음으로 지난날을 돌이키면서 각자를 향해 60도씩 도약을 해보자는 노래. 하지만 그들은 그리움의 노스탤지어를 간직하고 그리워할 뿐, 그것으로 그만이다.

영화는 심각하지도 애틋하지도 않으며, 비극적이지도 않다. 스무 살 언저리 청춘들의 있을 법하지 않은 일상과 헐거운 서사구조에 의지하면서 무겁지도 우울하지도 않으려 애를 쓴다. 가벼운 웃음과 단편적인 일상의 조각을 조금씩 기워서 21세기 첫 번째 마지막 10년을 보여준다. 그렇게 흘러가버린 시간을 딛고 곧 '세계육상선수권대회'가 열린다.

1988년 서울 올림픽,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2011년 세계육상선수권대회,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이런 식으로 대한민국은 운동경기를 통해 일정한 도약을 경험하고 있다. 서울 올림픽으로 중진국 대열에 들어섰으며, 세계적인 수준의 화장실 문화를 가지게 되었다. 월드컵축구를 통해 온 국민이 하나 되는 거리응원문화를 세계에 수출하기도 하였다.

그러면 대구는 무엇으로 이 나라를 한 단계 높일 것인가. 과연 그런 웅혼한 기획과 전망을 가지고 세계대회에 임하고 있는가, 그것이 문제다. 아니 그것보다 더 필요한 것은 대구가 배타적인 지역주의와 순혈주의, TK 본산임을 자랑하는 소영웅주의와 작별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21세기 통일한국과 세계의 창으로 거듭나는 대구가 되면 정말 좋겠다.

* 대구 전역에서 <도약선생>을 상영하는 곳은 CGV 한군데였다. 그것도 하루나 이틀에 한 번 상영하는 것에 그쳤다. 상영 전날까지도 상영여부가 결정되지 않기 일쑤였다. 일주일 상영기간에 고작 대여섯 번 상영에 그친 영화를 본 관객이 얼마나 될까. '의무상영일수(스크린쿼터)'와 <트랜스포머 3> 같은 블록버스터 때문이라 해도 좋다. 하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그런 생각을 한다. 아직도 세상에는 돈보다 더 소중한 것도 있으니까 말이다.


지역투어 대구 도약선생 세계육상선수권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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